(71) 김소월 "진달래꽃"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김소월 정끝별·시인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1
(70) 손택수 "방심(放心)"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손택수 문태준·시인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31
(69) 신경림 "농무"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신경림 정끝별·시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9
(68)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문태준·시인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8
(67) 황인숙 "칼로 사과를 먹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정끝별 시인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8
(66) 이정록 "의자"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이정록 문태준 시인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6
(65) 유치환 "생명의 서(書)"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유치환 정끝별·시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5
(64) 김용택 "섬진강1"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김용택 문태준·시인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4
(63) 구상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구상 정끝별·시인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4
(61) 박노해 "노동의 새벽"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정끝별·시인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