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영국 런던 (예술, 도시를 만나다 + 아트 앤더 시티): 전원경 (2024.7.5)

클리오56 2024. 7. 5. 21:14

 

유튜브에서 아트 앤더 시티는 반복 반복하며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런던 뿐만 아니라 파리, 빈, 뉴욕, 안달루시아 등등 여러 도시를 카바한다. 지난번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빈을 소개하였고 이번에는 런던 편이다. <예술, 도시를 만나다>에서 첫 도시가 런던이다. 나름 도서와 유튜브를 혼합해서 잘 정리해보려고 하였다. 이번에는 책을 먼저 읽고 정리한 뒤 유튜브를 시청하였다. 전원경 교수는 '예술, 인간을 말하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도 저술하였는데 모두 흥미롭게 보인다. 그외에도 클림트, 페르메이르 등 다수가 있다. 

 

* 런던 인구는 850만, 파리의 230만, 베를린의 300만에 비하면 규모가 엄청나다. 유럽에서 인구로는 모스크바 다음이다. => 우리나라는 인구 300만명이면 부산과 인천인데... 파리가 230만이라니... 우리 도시들은 아파트가 밀집해서 그런가??

* 런던의 신시가지는 로마나 파리의 고풍스런 이미지와는 다르다. 높은 건물, 특히 공원도 많이 산재한다. 공원들이 예전에는 왕실 사냥터였고, 지금도 왕실 소유라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 자연스런 공간으로 유지.  

* 런던 지하철이 1863년 개통. 당시에는 자동차가 없던 시대, 지상의 많은 마차로 인하여 길이 막혀 증기기관차로 지하철 운행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런던의 모습. => 1863년에 지하철 개통, 믿어지지 않는다...

 

들어가며

8쪽: 여행과 예술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쓸모는 없는 대신,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이 기왕이면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면 그 이상 매력적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8쪽: 흔히 말하기를,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맥주든 위스키든 와인이든 간에 그 참맛을 음미하려면 술이 생산된 현지로 가야 한다는 말일 게다. 술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 작품도 그렇다. 진정한 걸작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우피치 미술관이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절대 해외로 반출하지 않으니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는 길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술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예술 작품이 탄생하고 연주되는 현장에서 우리는 그 작품을 직감적으로, 그리고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01 그랜드 투어/귀족들의 수학여행

16쪽: 1600년대 중반, 유럽이 오랜 종교 분쟁에서 벗어날 때쯤 비로소 여행 또는 문화기행과 가까운 그랜드 투어가 등장했다..... 그랜드 투어는 십자군, 순례보다도 오늘날 우리가 떠나는 유럽 배낭여행이나 언어연수에 더 가까운 여정이었다. ... 그랜드 투어는 영국과 독일어권 귀족의 자제들이 1660년대부터 철도망이 유럽에 깔린 1850년대까지의 기간, 200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육로로 떠난 이탈리아 여행을 뜻하는 단어다. ... 상류층의 장기간 대륙 여행의 의미를 내포

 

18쪽: 그랜드 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 기독교의 3대 순례지, 고대 로마의 유적으로 종교, 문화의 집산지. 종교분쟁의 30년 전쟁이 1648년 막을 내리면서 신-구교 간의 갈등 많이 감소. 

 

20쪽: 17세기 후반 유럽미술계에는 로마 풍경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가 생겨났다. 이 장르의 특징은 로마의 풍경을 목가적이고 고전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하는데 있다. ...푸생, 로랭이 시작해서 19세기 초반 터너에까지 이어짐. 로마에 도착해서 꼭 구입해야 하는 귀중한 기념품 역할을 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 1638년
<존 스튜어트 경과 버나드 스튜어트 경>
3년간의 대륙여행을 앞둔 찰스 1세의
사촌들을 담은 2인 초상화
니콜라 푸생(1594~1665) 1650~1651년
<목가적 풍경>
고전적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세련된
방법으로 고대 로마 유적을 재해석
클로드 로랭(1600~1682) 1648년
<시바여왕의 도착>
고요하며 평온한 로마 유적의 폐허를
아련하고 이상적인 느낌으로 묘사

 22쪽: 독일인 미술사가 요한 요아힘 빙켈만(1717~1768): 고대예술사를 저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미의 수준을 그리스 예술로 규정하고 위대함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대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결론. 고대 그리스 조각의 위대함은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엄'에 있다. => 괴테의 그랜드 투어에 큰 영향

 

22쪽: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작가로서 큰 성가를 얻었으며,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초빙 된 상태에서 별안간 이탈리아 여행. 1년 9개월 체류. '이탈리아 기행' 출간. 신고전주의 탄생. 이후 아들도 이탈리아 여행, 하지만 로마에서 사고로 사망. 

 

24쪽: 괴테는 멘델스존에게도 이탈리아 여행을 권유. 1829년 여행. 여행은 젊고 재능 넘치는 작곡가에게 관현악 서곡 <핑갈의 동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4번 <이탈리아> 등 수많은 영감을 선사했다. 

 

요한 조파니(1772~1777), <우피치의 트리부나>
조지 3세의 아내인 샬럿 왕비의 청탁을 받아 그린 그림.
이탈리아 예술품에 대한 영국 투어리스트들의 열망. 
카날레토(1697~1768) 1723~1724년
<산 마르코 광장과 도제의 궁>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 정확성으로 인기.
사람보다는 건축물과 빛의 조화가 더욱 강조. 
티치아노 베첼리오(1488~1576), 1550년
<아담과 이브>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1628~1629년
<아담과 이브>
티치아노의 그림을 모사.
전체적 구도를 그대로 두면서 좀 더 짙고 치밀한 색상을 사용. 아담의 포즈와 몸의 근육에서 약간의 변형을 둠. 
23세였던 1600년부터 8년간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제노바에 체류

29쪽: 루벤스는 1628년 스페인 방문해 펠리페 4세를 만나며, 이때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가르침을 청하자 '로마로 가서 대가들의 작품을 보라'고 권유. 이후 2년간 국비 유학. => <빌라 메디치 정원>(1630년 작) 묽은 물감을 써서 가벼운 느낌으로 그린 경쾌한 야외 풍경화. 궁정화가의 책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홀가분한 심정이 느껴지는 풍경화로 200년 후 등장할 인상주의를 예고. 

 

31쪽: 1663년, 루이 14세가 제정한 '로마 대상'은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들 중에서 수상자를 선발해 2년간 로마로 유학을 보내주는 미술 분야 국비장학생 제도였다. 1803년 음악 분야까지 확대. 1968년까지 존속.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780!1867), 1814년 < 그랑 오달리스크>
모델의 허리와 팔이 실제보다 더 길게 그려진 누드화 

33쪽: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셸리는 이탈리아 언저리를 떠돌다 삶을 마감. 

 

34쪽: 1739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발견된 폼페이는 다시 한번 고대문화의 위대함을 웅변해 주었다. 결국 그랜드 투어를 통해 유럽 전역에 고전에 대한 향수와 열망이 다시 한번 꽃피게 된다. 화가들은 고대의 조각에서 회화의 모티브를 차용했다. 르네상스 이후로 새롭게 되살아난 이 고전에 대한 향수를 우리는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고전에 대한 이 귀족적이고 우아한 갈망은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고 앙시앵 레짐이 무너질 때까지 주류를 이루는 사조로서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 

 

02 런던/지성과 문학이 숨쉬던 거리

40쪽: 런던 상주인구 830만, 면적 1,579제곱킬로미터, 1863년 지하철 세계 최초 개통. 서기 43년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 섬 점령하고 템스강의 빠른 조류를 거슬러 올라와 늪지대에 보급기지 건설. 새기지를 론디니움이라 불렀는데 런던의 어원

 

* 영국은 두번 외부 침략을 받았는데, 첫번째가 43년 로마 침공, 두번째가 1066년 정복왕 윌리암 노르만디 침공이다. 로마 침공 때 배를 타고 템즈강을 따라 진입하여 늪지(현재의 런던 타워)에 기지 건설하면서 런던이 유래. 당시 켈트족이 그 늪지를 린딘이라고 부른게 런던으로 변천. 

* 런던에 안개끼면 일찍 퇴근. 안개낀 런던을 그린 화가는 오히려 외국인들, 휘슬러(미)와 모네(프). 오스카 와일드: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

 

43쪽: 런던을 대표하는 예술가는 셰익스피어, 1997년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복원 (1599년 개관)

*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활동. 영어가 제대로 대접받는 언어로 성장. 초상화가 남아있지만 확답은 되질 않는데, 평민이라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샤일록으로 분장한 얼굴이다는 설도 있음. 그의 사후 동료들이 희곡 37편을 모아 First Polio 희곡집을 만들때 그 초상화를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 엘리자베스 여왕은 후계문제 언급을 금지시켰는데, 셰익스피어 희극은 리어왕, 햄릿 등 후계문제가 많이 언급됨. 

* 헨리 8세는 6명의 왕비와 결혼 이혼을 반복했는데 아들을 얻기 위한 것. 교황청이 이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회를 만들어 수장이 되고 스스로 교황을 파문. 두번째 왕비 앤 불린은 아들을 낳지 못했고 흥미를 잃어 결국 간통죄를 덮어씌우고 참수. 그의 첫 아내에서 태어난 딸이 메리 여왕이고, 두번째 왕비 앤에게서 태어난 딸이 엘리자베스 여왕이 되었다. 헨리 8세는 변방의 작은 영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군 육성에 주력했고,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이어갔다. 결국 1588년 영국 해군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시킨다.  

* 헨리 8세 초상화를 보면 눈이 부리부리하여 무서워보인다. 뒷배경은 청금석, 그림자가 없다. 더블릿을 입고 그 위에 담비털 외투를 걸쳤다. 

* 나비같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 당시 나이 60세.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을 요정의 여왕, 즉 반인반신이기 때문. 그녀의 치세에 어둠이 걷히고 밝은 세상이되며 전세계를 발아래에 두게된다. 자신의 이복 언니 메리 1세의 발 밑에 엎드려서 내가 개종하여 나의 타락한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하여 살아났다. 그래서 반역자로 들어갔던 런던 타워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걸어서 나왔다. 엘리자베스의 초상을 보면 세계 지도를 밟고 있는데, 정말 세계를 지배하는 여왕이 될 것이다라는 그녀의 포부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결국 자신의 목숨이 이렇게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생존할 수 있었다. 

 

45쪽: 1649년 찰스 1세 처형, 1666년 런던 대화재로 1만3천채 가옥 소실  

* 찰스 1세는 루벤스를 초청하고 싶었으나 워낙 바쁘기에 그의 수석 도제 반 다이크가 영국에 옴. 말 탄 찰스 1세는 말을 타고 숲에서 나와 밝은 세상으로 나아감. 말은 실제 보다 크지만 유순한데 국민을 상징. 왕의 위엄을 보여주려 했지만 얼굴은 우유부단해 보인다. 크롬웰이 이끄는 공화파에 의해 영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참수당함(1649년). 

 

안토니 반 다이크, 1635년, 찰스 1세의 수석궁정화가
<사냥터의 찰스 1세>
별다른 장식이나 상징없이도 왕의 위엄을 드러낸, 절대주의 왕권의 상징과도 같은 초상. 편안한 자세와 우아한 인상만으로도 그림 속 다른 인물들과 명확히 구분되며 우월한 인물
안토니 반 다이크, 1635-6년, 찰스 1세의 수석궁정화가
<찰스 1세 삼중 초상화>
찰스 1세의 어둡고 나약한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냄. 
교황이 찰스 1세를 회유할 목적으로 흉상 제작을 위해 요청
 * 공화정을 실험하였지만
크롬웰의 사후 왕정 복고가 이루어졌다.
초상화를 보면 갑옷 위에 리본을 매달고 있다.
마치 절대군주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타난다.
술집과 극장을 폐쇄하는 등 청교도처럼 너무 엄격하여
그는 사후 후계자로 그의 아들을 지명했지만
사람들은 왕정복고하였다. 

48쪽: 대화재때 소실된 세인트 폴 성당 재건, 1675년 착공하여 35년만인 1710년 완공. 세계 2번째로 큰 돔 (최대는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기간 120년), 런던에서는 드문 바로크 건축. 2차 세계대전중 폭격에도 불구하고 견뎌냄.


49쪽: 1710년 하노버 궁정 악장 헨델 방문, 이탈리아 오페라를 섭렵하여 런던 청중들은 열렬히 호응, 헨델은 런던에 거주하였고 영국 국적을 취득. 영어 가사로 된 오라트리오로 인기, 특히 메시아. 대단히 명쾌하고 단순하며 밝은 음악  

 

51쪽: 윌리엄 호가스가 활동하던 조지안 시대(1714-1837)에 런던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주가가 출렁이면서 벼락부자와 파산자가 속출했고 암스테르담의 무역을 주도하던 유대인들이 런던으로 건너왔다. 1700년대 초반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런던은 200년 이상 세계 제1의 도시로 군림했다.

 

화가이자 철학자이던 윌리엄 호가스 (William Hogarth,1697-1764)의 연작들은 흥청거리는 런던의 분위기, 유럽의 경제를 주도하며 활기와 배금주의, 부도덕과 탐욕이 횡행하던 대도시의 단면을 솔직하고도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요즘 결혼식> 여섯 장은 이러한 호가스의 비판의식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 산업혁명을 통해 런던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부패하지 않은 시민의식을 유지. 

<1. 결혼 계약>
백작인 신랑의 아버지는 가계도를 자랑스럽게 가리키고 있고 그의 아들은 거울을 보기에 여념이 없다.
벽에 걸린 메두사는 이야기의 그로테스크한 결말을 암시한다. 
<2. 결혼 직후>
결혼식을 마친 신부는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데
대단히 만족하고 있으나, 신랑은 불손한 태도로 앉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3. 의사의 검진>
남편이 남몰래 프랑스인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정부가 옮은 성병을 치료해 달라고 돈을 내밀고 있다.  
<4. 숙녀의 방>
백작부인이 된 상인의 딸은 정부인 변호사와
가장무도회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5. 매음굴>
가장무도회가 끝난 후, 커피 하우스 뒤편의 방을 빌린 정부와 상인의 딸이 뒤를 밟아 온 남편과 맞닥뜨린 장면이다.
정부는 얼결에 남편을 죽이고 달아나고 있다.
이 소란에 매음굴의 인도인 주인이 방으로 뛰어들어온다. 
<6. 숙녀의 죽음>
신문을 통해 정부의 교수형 소식을 들은 상인의 딸은
독약을 먹고 죽어간다.
상인이 슬픈 표정으로 딸의 손에서 결혼 반지를 빼고 있다. 

* 산업혁명 당시의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그림이다. 진공 속의 새가 질식해 죽는 모습을 과학적으로 보여준다. 딸들이 참석하는게 계몽주의의 특징이다. 

 

 

55쪽: 윌리엄 터너(1775~1851)는 명실상부하게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지만 당대에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영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터너는 프랑스의 인상파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서서 빛과 대기의 극적이고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해낸 화가다. ...모네는 그의 그림을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았다. 모네는 터너의 빛과 대기에 대한 묘사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자신의 고향인 르아브르 바닷가의 일출을 그리며 <해돋이-인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비, 증기, 속도: 대서부 철도> 1844년
막 팽창하고 있던 런던의 명암을 묘사한 작품들,
문제는 당시의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자연이
그림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타는 국회의사당> 1834~5년
밤의 화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새벽처럼 밝은 푸른빛으로 빛나며
추악한 정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불타 무너지는 동안에도 성당은 기적같이 굳건하다. 

터너의 자신만만한 모습.   

분위기를 그린다. 하여 마치 시와 같다. 당시의 사람들이 터너 그림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겨자와 캐첩 단지가 깨진 주방바닥과 같다는 평을 듣게됨.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는 미친게 틀림없다는 평을 들러 상심.  

 * 모네 그림이 더 보수적으로 보이기까지. 모네가 보불전쟁의 징집을 피해 영국에 왔는데, 이때 터너 그림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1874년 인상파전에 제출하여 주목. 

 * 당시 영국인들이 좋아한 그림은 라파엘 전파로서 꼼꼼하게 그리는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근면의식, 윤리의식, 직업의식이 화풍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신록을 보고 양심이 깨어나 돌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불가능하고, 즉 빅토리아 시대의 허위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57쪽: 터너의 그림에 등장한 것처럼,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은 1834년 화재로 무너져버렸다. 새로운 국회의사당이 현재 빅벤으로 유명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이 중요한 건물이 고전주의와 고딕 양식을 혼합해 지어졌다는 점은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말해 준다. 최근 빅벤은 엘리자베스 타워로 명칭이 바뀌었다. 

 

 58쪽: 엘가(1857~1934)가 묘사한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 위풍당당 행진곡은 BBC방송이 매년 여름 주최하는 프롬스 페스티발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전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대대적인 환호를 받으며 연주된다. 

 

* 빅토리아 시대(1837~1901)는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확장되고, 신사 계층들은 런던의 삶을 즐기면서 동시에 보수적, 독립적이고 근면한 생활을 한다. 이 시대 중산층의 복장을 보면 남녀 모두 얼굴과 목과 손을 빼고 다 가렸다. 영국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모두 발전했지만 사회 분위기는 묘하게 보수적이었다. 그들은 모두 중세시대의 영주 부인인 빅토리아 여왕을 모시는 기사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셜록홈즈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집에서 조차 말끔하게 정장을 갖춘다. 지하철도 개통되고 주식이 올라서 백만 장자들이 속출하고 또 크림 전쟁에서의 승리 등 영국은 승승장구했고 런던은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남편인 앨버트 공과 20년밖에 같이 살지 못했다. 엘버트 공과의 사이에 아홉 명의 아이를 낳았고, 사후에도 여왕은 공식석상에서 상복을 40여년간 입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마부와 염문설이 있다.  

* 가장 런던다운 모습은 공원에서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것. 담요, 과일, 비스켓, 책을 동반하면 좋지 않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제1의 도시라는 칭호는 미국 뉴욕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런던에는 뉴욕에는 없는, 천년의 역사를 살아온 명예로운 흔적이 아직도 면면히 남아있다.... 장구한 시간 동안 쌓아올린 역사와 문화의 자취, 이것이야말로 비싼 물가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런던을 찾게 만드는, 런던만이 가진 변치 않는 매력이다. 

 

03 스코틀랜드/산과 호수에 남은 슬픈 전설들

64쪽: 스코틀랜드 기 => 세인트 앤드류스 기, 해피 버스데이 투 유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불리는 노래 올드 랭 사인, 아일랜드와 같은 켈트족이 문화적 뿌리. 

 

70쪽: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아들이지만 개신교를 받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타계한 후,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함으로써 두 나라는 통합의 수순을 밟게 된다. 1707년 두 국가의 의회가 합동볍령으로 통합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완전히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71쪽: 멘델스존이 그랜드 투어로 에든버러에 도착하여 그의 교향곡 3번 을 구상했고 1악장은 누가 뭐래도 애달픈 운명의 여왕 메리에게 바치는 비가이다. 

 

72쪽: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실제 왕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무대 역시 스코틀랜드 스트라스모어에 있는 동화 속의 성처럼 아름다운 글라미스 성이다..... 베르디는 1847년 맥베스를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으나 희곡의 핵심인 세 마녀가 여기서는 코러스로만 처리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78쪽: 멘델스존의 관현악 서곡 <핑갈의 동굴>은 헤브리디스 군도의 스투파 섬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 '외롭고 아름답고 슬픈 파도의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교보문고 책소개

도시는 어떻게 걸작을 탄생시켰는가?
예술과 역사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시각으로 찬사를 받은 『예술, 역사를 만들다』의 저자 전원경이 이번에는 예술과 공간의 관계를 탐색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지역과 교감하며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간다. 많은 예술 작품은 그 예술가의 주변 환경, 좀 더 넓게 그가 살아간 도시와 국가의 광범위한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노르웨이의 강렬한 노을 없이는 뭉크의 〈절규〉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독일의 울창한 숲은 슈베르트의 많은 리트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숲속의 방랑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인문 지리적인 특성과 예술 작품, 또 예술가 사이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일은 예술과 역사 사이의 관련성을 좇는 것 못지않게 의미 있는 작업이고, 이것이 『예술, 도시를 만나다』의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의 선물 같은 부분은, 모든 장이 끝날 때마다 저자가 추천하는 음악이다. 이 곡들은 모두 책에 담긴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이기에 낯선 도시가 전해 주는 여운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폭넓은 인문적 시선으로 예술 작품의 숨겨진 한끝을 찾아내는 ‘예술 3부작’은 예술과 역사, 예술과 도시의 뒤를 이어 예술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계속될 예정이다.

 

저자(글) 전원경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비평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객석』과 시사주간지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글라스고 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이며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국립중앙박물관의 강의와 수원 SK아트리움, 울산 문화예술회관의 그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비롯해서 『예술가의 거리』,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런던 미술관 산책』, 『클림트』, 『예술, 역사를 만들다』 등 예술과 역사, 문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책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동경했던 예술 작품들의 세계를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와 『예술, 도시를 만나다』의 뒤를 이어 뛰어난 예술 작품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예술, 인간을 말하다』(가제)까지
‘예술 3부작’을 계획 중이다.

목차

  • 들어가며

    01 그랜드 투어: 귀족들의 수학여행
    02 런던: 지성과 문학이 숨쉬던 거리
    03 스코틀랜드: 산과 호수에 남은 슬픈 전설들
    04 노르망디: 가득한 햇빛과 바람과 빗방울
    05 파리 1: 1840년의 파리
    06 파리 2: 파리의 카페들
    07 프로방스: 사이프러스 나무와 라벤더 향기
    08 바이마르와 라이프치히: 독일인의 정신을 잉태한 도시
    09 베를린과 함부르크: 새로운 예술가의 천국
    10 라인 강과 바이에른: 고성과 전설의 고향
    11 암스테르담과 브뤼셀: 중간의 예술가들
    12 빈 1: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
    13 빈 2: 어제의 세계
    14 보헤미아: 영원한 향수
    15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환영이 현실이 되는 순간
    16 안달루시아: 이슬람과 아프리카 사이에서
    17 토스카나: 와인과 예술의 고향
    18 베네치아: 교역의 바다에서 펼쳐진 혁신적 예술
    19 로마와 나폴리: 오렌지와 레몬 향기
    20 스칸디나비아: 우울하고 서늘한 하늘
    21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광막한 대지에서 피어난 걸작들
    22 뉴욕: 욕망의 도시

    참고 문헌

책 속으로

흔히 말하기를,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맥주든 위스키든 와인이든 간에 그 참맛을 음미하려면 술이 생산된 현지로 가야 한다는 말일 게다. 술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 작품도 그렇다. 진정한 걸작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우피치 미술관이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절대 해외로 반출하지 않으니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는 길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술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예술 작품이 탄생하고 연주되는 현장에서 우리는 그 작품을 직감적으로, 그리고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_〈들어가며〉 중에서

윌리엄 호가스가 활동하던 조지안 시대(1714-1837)에 런던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주가가 출렁이면서 벼락부자와 파산자가 속출했고 암스테르담의 무역을 주도하던 유대인들이 런던으로 건너왔다. 1700년대 초반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런던은 200년 이상 세계 제1의 도시로 군림했다. 화가이자 철학자이던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1697-1764)의 연작들은 흥청거리는 런던의 분위기, 유럽의 경제를 주도하며 활기와 배금주의, 부도덕과 탐욕이 횡행하던 대도시의 단면을 솔직하고도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_〈런던: 지성과 문학이 숨쉬던 거리〉 중에서

독일에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파고는 프랑스에도 미쳤다. 프랑스 낭만파의 기수 외젠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1798-1863)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독일식 낭만주의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림 속에서 민중을 이끄는 여신은 신화 속의 여신이 아니라 파리의 보통 처녀처럼 보인다. 그녀는 프랑스 대혁명 때 시민들이 쓰던 삼각 모자를 쓰고 부르봉 왕조가 금지하던 삼색기를 들었다. 민중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실크해트를 쓴 젊은이는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복을 입었고, 그 옆의 젊은이는 누가 봐도 도시 노동자의 복장이다. 멀리 보이는 노트르담을 통해 우리는 이 시가전이 벌어진 도시가 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이 그림을 통해 『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장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들라크루아 본인도 처음에는 그림의 제목을 ‘바리케이드’라고 붙였다. _〈파리 1: 1840년의 파리〉 중에서

루벤스는 1620년부터 1640년까지, 20년 이상 전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군림했다. 베스트팔렌 조약 전후로 유럽 각 국가에서 자리잡은 절대 왕정도 루벤스의 활약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영국, 플랑드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만토바)의 궁정이 그를 원했다. 우리가 오늘날 유럽의 미술관 어디서나 루벤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화에도 능했지만 루벤스의 진가는 바로 역동성과 관능, 우아함이 넘치는 그리스 신화의 재현에 있었다. 루벤스는 화가이자 외교관으로 만년까지 부유한 삶을 살았고 그의 작품들은 훗날 들라크루아와 르누아르에게까지 긴 궤적을 남겼다.
_〈암스테르담과 브뤼셀: 중간의 예술가들〉 중에서

 

출판사 서평

예술의전당 인기 강의를 책으로 다시 만나다!
이 책은 매주 토요일 진행된 예술의전당 인문아카데미의 강연 내용을 정리하고 300여 점의 도판을 담아 완성되었다. 수많은 수강생들을 매주 불러 모은 강의인 만큼 눈에 쏙쏙 들어오는 흥미진진한 예술과 공간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예술, 도시를 만나다』의 구성은 유럽을 거쳐 러시아를 지나 미국 뉴욕에서 끝을 맺는다. 예술을 시간순이 아닌 공간별로 풀어낸 책은 많을 수도 있지만, 서양 예술 전체를 한 지도 위에 펼쳐낸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술, 음악, 문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폭넓은 시각이 빛을 발한다. 20년 이상 하나의 돌산을 그리고 또 그린 폴 세잔, 아를의 건조한 여름 바람과 선명한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들에 반해 불멸의 걸작을 남긴 반 고흐, 프랑스 르아브르의 바다와 지베르니의 연못을 평생 탐구했던 모네에게 공간은 매혹의 원천이자 하나의 우주였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가 예술과 시대의 교감이었다면, 『예술, 도시를 만나다』는 예술과 공간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랜드 투어’의 출발점 런던부터 현대 미술의 상징 뉴욕까지
여행이라는 개념은 고대 로마부터 존재했다. 드넓은 로마 제국 곳곳에 건설한 도로 덕분에 로마인들에게는 여행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1096년 십자군이 출병하면서 먼 곳으로 떠나는 모험이나 순례가 퍼져 나갔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건 여정에 가까웠다. 낯선 곳에서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의 시작은 1600년대 중반 유럽이 오랜 종교 분쟁에서 벗어날 때쯤 등장한 ‘그랜드 투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영국과 독일어권 귀족의 자제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육로로 로마까지 가서 그곳의 앞선 문화를 배워 오는 취지였던 그랜드 투어는 이탈리아 예술 작품들이 섬나라 영국까지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로마 못지않은 ‘예술의 메카’ 파리는 1830년대를 전후해서 젊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파리를 찾기 시작하며 떠올랐다. 프랑스 혁명을 거친 뒤 정치적 혼돈을 겪던 1840년대의 파리는 혁신적인 예술을 갈망하는 분위기 속에서 미술과 음악, 문학이 모두 융성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영향을 주었고, 낭만주의가 만개하던 파리에서 쇼팽은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 예술의 중심 이탈리아로 가 보면, 르네상스가 꽃핀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고, 활발한 무역으로 굳건하게 독립을 유지했던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와 비발디가 이름을 날렸다. 말할 것도 없이 로마는 당대 거장들이 솜씨를 뽐내던 예술의 각축장이었다.
런던에서 시작한 여정은 프랑스를 거쳐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체코와 스페인, 이탈리아를 지나 북유럽과 러시아를 건너 현대 미술의 상징 뉴욕에서 끝을 맺는다. 커다란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서양 예술과 문화를 한눈에 담는 것과 같다. 활동한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간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미술, 음악, 문학을 넘나들며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와 동시에 도시가 문화를 일구어 나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어 예술과 인문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이다.

명작과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다
『예술, 도시를 만나다』에서 하나의 도시가 어떻게 걸작을 탄생시켰는지, 거꾸로 예술은 도시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이 책의 독자라면 똑같이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가더라도 성당을 건축한 브루넬레스키를 떠올릴 것이고, 파리 몽마르트르의 ‘물랭 루즈’를 볼 때 툴루즈-로트레크와 에디트 피아프를 함께 연상할 것이다.
이 책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로 ‘공간’을 택했고, 동시에 하나의 도시를 조망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택했다. 뛰어난 예술 작품이 탄생하고 연주되는 현장에서 우리는 그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