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관광100선 (시즌 2023~2024)

(7) 청와대 앞길 / 북악산: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권 (2023.2.6, 추가 2023.5.22)

클리오56 2023. 2. 7. 10:18

Track_2023-02-06_청와대.gpx
0.07MB

부산의 김 후배, 그리고 박회장, 강교수와 함께

청와대 관람과 북악산 둘레길 답사를 함께 하였다.

(첨언: 5.22일 부산 남교수, 구미 김교수가 방문하여 강교수와 함께 추가 답사)

 

청와대에 대해서는 마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권에서 다루고 있었기에

미리 읽어 사전지식을 갖출 수 있었고 유용하게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권, 북악산: 서울의 주산, 그 오랜 금단의 땅
서울의 주산, 북악산 / 백악사 / 회맹단 / 육상궁 / 육상궁에서 칠궁으로 / 칠궁의 냉천정 / 칠궁 안의 다섯 사당 /
경무대의 융문당과 융무당 / 친경전 팔도배미와 영빈관 /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
대통령 관저 / 상춘재와 녹지원 / 침류각 / 오운정 / 석조여래좌상 ‘미남불’ / 천하제일복지 암각 글씨

여기 글들은 많은 부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옮겨왔기에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2023~4년 한국관광100선에 포함된 '청와대 앞길'은 이번 투어로 카바할 수 있겠다.

한국관광100선에서의 소개

약속 장소인 경복궁역에 이르게 도착하였기에 무궁화 동산과 분수대 부근을 혼자 먼저 다녀왔다.

동선에 따라 먼저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갔는데, 이곳은 본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한다.

 

19681.21사태 이후 오랫동안 이 지역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청와대 사랑채로 개관되어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와 한국 전통문화의 홍보관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뭐 그럴 필요가 있는 건물인지 의문이든다, 맹탕 노는 그런 보직들이 아닐까..

청와대 사랑채 좌측으로 대고각 건물에는 큰 북이 있어 예전 신문고 역할이라는데 글쎄요~~

아무튼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상 대통령의 역할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만.

분수대는 봉황 조각 아래 지구의, 온누리 상징의 12개 기둥, 무궁화, 십장생, 국민상 등이 둘러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각 보다는 서울의 진산 북악산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울 뿐~~ 그만으로도 족하다.

무궁화 동산은 옛날 안가였고 10.26의 진원지로 이해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록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곧 국민투표로 정당한 집권을 하였고

경제적 혁명을 일으킨 업적으로 보아 역대 대통령중 가장 위대한 분으로 나는 꼽는다.

중국의 모택동 같은 놈은 수천만의 인민을 굶겨죽이거나 사형 집행했지만

공산혁명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공 7, 과 3으로 국부 비슷하게 숭상받고 있다.

무궁화 동산은 그 위치가 경복궁 근처라 예전부터 명당의 하나였으니

여러 시중호걸들이 놀았음직 하고 대은암, 독락정, 취미대가 이곳에 위치했다는 것이고

청음 김상헌의 집터 표석과 그의 시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이건 뭔지???

다시 친구들을 만나러 경복궁역으로 돌아가는 중 일출의 광경을 볼수 있었고 인왕산도 멋지다.

청와대는 정각 9시에 오픈하는데 우리 일행 앞으로는 5명뿐, 뒤로는 제법 줄을 서기 시작.

청와대 본관은 2층 한옥 모양의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단층 한옥 모양의 별채를 배치했다.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연회장, 식당이 있고,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이 건물은 노태우 시절에 그 필요성이 제기되어 1991년 준공되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함께 청와대 구관인 옛 조선총독 관저도 철거했다. 

철거된 자리는 빈터로 남겨두고 건물 현관 지붕 꼭대기에 얹혀있던

화강암 절병통(항아리 형태의 장식 기와)만 표지석과 함께 잔디동산에 남겨두었다.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기역자 한옥 형태로 지어졌고

대문에는 인수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관저 뒤편의 숲길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오운정이 나오는데 현재 청와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정자로

사방 한칸에 난간이 둘러 있는 단순한 구조에 단아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다.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다. 

오운정에서 조금 더 오르면 미남불이라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본래 경주에 있던 것을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서울로 가져온 것이다.

조형적으로 뛰어나고 얼굴이 미남형이어서 일찍부터 미남불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1974년 1월 15일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하대석은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큰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특히 비대하고 무겁게 보이는 형태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 평행선 주름 등은
9세기의 새로운 시대적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石佛) 중 머리와 몸체가 일체(一體)로 완전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연꽃문양을 새긴 사각형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이 동 석불의 문화재적 가치를 종합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 불상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천하제일복지 암각 글씨를 찾으려 좀 더 둘러보았지만 실패. 다음 기회를 엿보겠다.

** 5.22일 부산/구미 친구들 왔을 때 재차 방문했는데, 오운정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내리막길에 출입금지 구역이 있는데 그 사이로 각자 암벽이 약간 드러나 보였다. 10여m만 내려가면 온전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금지구역이라 아쉽다.  

유 교수의 평에 따르면 침류각은 청와대 안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고옥이며,

돌축대 위에 올라 앉은 품위있고 아름다운 기역자형 한옥이지만

이에 관해 아무런 기록이 없고 유래가 확인되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금은 상춘재 앞에 놓여있는 천록 돌조각상이 원래는 침류각의 기단 앞에 있었다고 한다. 

상춘재는 청와대 방문 외국 국빈들에게 우리나라 전통가옥을 소개하고 의전행사를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다.

전형적인 한옥 구조로 되어 있으며 수령 200년 된 금강송을 사용해 그 재질감이 아주 뛰어나다. 

녹지원은 옛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던 곳으로 청와대의 야외 행사장으로 활용된다. 

중앙에는 수령178년의 반송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천연기념물이다. 

영빈관은 1978년 옛 경농재 자리에 들어선 건물로 대규모 회의나 국빈 방문이 있을 때 공식 행사 장소로 활용되었다.

1층은 대접견실로,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에 사용되었다.

 

영빈관을 끝으로 일단 청와대 관람은 마치는데 하나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지난 40여년 동안 청와대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였고

해설사 설명을 옮겨 본다면 대통령 집무실이 세계 최고로 넓다고 자랑하는데

이런 거대한 건물 신축과 집무실 넓다는게 필요한지? 참으로 의문이다.

 

국민들의 경제적 부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놈들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남겨놓은 경제적 유산들을 활용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데는 아주 도통하였다.

그러면서도 민주화 운운하면서 박 전대통령을 비난만 하는 놈들이다.

민주화도 경제적 부가 증대하였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경제적 부의 증가와 확대가 최고 최선의 민주화이다. 부의 증가 없이 민주화 된 나라는 없다.

칠궁은 청와대 영역이 아니므로 청와대 관람을 마친 후 바깥으로 나와

우측으로 청와대로를 따라 진행 후 다시 한번 우측으로 방향 전환하면 칠궁이다.

칠궁은 무료개방이고 마찬가지로 화요일 휴무이다.

 

나무위키의 칠궁 소개를 설펴본다.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청와대 내)에 위치한 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어머니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 칠궁은 법적 어머니인 왕비에게 바치는 효와는 별개로, 생모에게 바치는 사적인 효를 위해 세운 곳이다.

 

원래는 한성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영조가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융희 2(1908)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온다.

그 결과 모두 7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칠궁(七宮)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냉천정 건물은 아주 의젓하고 품위있는 한옥이다. 건물 안쪽에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냉천정 현판은 글자의 생김이 아름답고 필획이 단정하며 순조가 쓴 것으로 전한다.

냉천정 오른쪽의 사당에는 육상궁과 연호궁이 합사되어 있다.

숙빈 최씨 육상궁 현판은 사당 안에 걸려 있고 며느리인 정빈 이씨의 연호궁 현판은 밖에 걸려 있다.

두 신위를 따로 모시지 않은 이유는 공간적 사정도 있었겠지만

두 분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였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칠궁은 왕을 낳은 후궁 일곱 분의 사당이 모여있는 곳인데 그 출발은 육상궁에서 시작되었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영조는 성심으로 모셨다.

영조는 어머니의 지위를 승격시키고자 노력하여 영조 20년 칭호를 육상묘로 바꾸었고

이어 29년에는 육상궁으로 승격시켰다. 파주에 있는 숙빈 최씨의 묘소도 원으로 격상시켜 소령원으로 조성했다.

영조는 52년의 재위기간 중 육상궁을 200여 차례나 찾아와 제를 올렸고

자신의 초상화를 육상궁 안에 봉안하여 어머니의 넋을 지키는 뜻을 보였다. (유홍준 교수)

덕안궁은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이고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경우궁이 나란히 세워져있다.

특히 대빈궁은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사당이며,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북악산 등산로가 완전 개방되었는데 이번 트레킹은 그 중 마지막 개방 부분을 다녀왔다.

코스는 칠궁에서 춘추관까지로 중간의 백악정에서 잠시 휴식하였고 거리는 1.8km, 약 50분이 소요되었다. 

단, 이 코스는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매주 화요일은 휴무라 개방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 

칠궁 담장을 따라 진행 후 우측으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상당히 가파르다. 

백악정 뒤로 조금만 더 오르면 청와대 전망대일텐데

우리는 백악정 앞에서 멈춰 휴식 후 춘추관 방향으로 하산.

이 부근을 전후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의 기념식수 표식이 있는 나무를 보았다.

특히 문재인의 위치가 아주 좋아보였는데 별 한 일도 업적도 없으면서 군데군데 흔적은 많이도 남겼네. 

춘추관으로 내려서니 한쪽은 인왕산, 또 다른 쪽으로는 북악산의 자태가 온전히 드러난다. 

청와대와 칠궁 관람 및 북악산 등산을 마친 후 인근 한식당에서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