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관광100선 (시즌 2023~2024)

(2) 서울 경희궁 (2023.1.5)

클리오56 2023. 1. 9. 08:45
사적인 경희궁은 새문안 대궐 또는 서쪽의 궁궐이라 해서 서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왕족의 사저로 쓰이다가 광해군 8년(1616)에
이 새문안 대궐 자리에 왕기(王氣)가 있어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축출되었으며 영조 36년(1760)에는 궁의 이름을 경희궁이라 개칭하였다.

경희궁에는 회상전, 흥정당, 집경당, 숭정전, 흥화문 등의 건축물이 있었으나,
순조 29년(1829)에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1831년에 중건하였다.
국권침탈 뒤에 건물은 없어지고 그 터에 경성중학교(지금의 서울고등학교)가 세워졌으며
1987년 서울고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 공원으로 가꾸었다.
공원 내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산책길 등이 있고 신라호텔로 옮겼던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다시 제자리에 옮겨졌으며,
정전인 숭정전의 복원작업이 1994년 11월에 완료되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관람 후 전철로 경희궁으로 이동하였는데

서울의 5대궁궐에 경희궁이 포함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모두 최근 건축물이고 작은 규모라 거의 아는게 없다.

 

나무위키에 서술된 경희궁에 관한 객관적인 평을 옮겨본다.

광해군의 명으로 1617년(광해군 9년)에 착공하여 1623년(인조 원년)에 완공했다.

조선 후기 동안 정궁인 창덕궁에 이은 제2의 궁궐로 양대 궁궐 체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많은 왕들이 경희궁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거처하면서 창덕궁이 지닌 정궁으로서의 기능을 일정 부분 나눠서 수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경복궁의 동쪽 궁궐인 창덕궁 + 창경궁을 지칭하는 '동궐'과 대비시켜

경복궁의 서쪽 궁궐을 뜻하는 '서궐西闕'로 불렀다.

규모로 보자면 경복궁 크기의 2/3를 넘는 영역이 경희궁에 속했고,

서울 한양도성 서쪽 성벽 일부와 한양 서북부를 대부분 차지하던 거대한 궁궐이었다.

경희궁은 한양의 궁궐 중 유일하게 흔적도 없이 완전히 파괴 되었다.

이러한 훼손이 일제의 만행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느 정도 경희궁에 관심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공분하며 일제를 규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 흥선대원군 시절에 경복궁 중건을 위한 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희궁 전각의 대부분(90%)이 헐렸다.

일제가 경희궁에 손댄 건 경희궁 터에 방치되어 있던 잔여 전각 5개를 외부에 매각한 것 뿐이다.

그러나 문화재청 등에서 발간한 여러 자료에는 이러한 사실이 일절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일제에 의해서 훼손되었다고만 적혀 있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이러한 내막이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 최근에 발표된 학술논문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2016년 서울박물관의 특별전 〈경희궁은 살아있다〉에서는

경복궁 중건을 위해 경희궁의 전각을 대부분 해체했다는 내용을 분명히 명시했다. 

이 사실이 대중들에게 처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례일 것이다. 앞으로 오해가 바로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일 듯.

게다가 광복 후에도 경희궁 터 위에 지어진 서울고등학교의 존재 때문에 한동안 복원은 꿈도 꾸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1980년 서울고등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에야 경희궁 터의 본격적인 유적 발굴과 복원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경희궁 복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경희궁 터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특별시

잽싸게 그 자리에 서울특별시 교육청,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을 짓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도리어 경희궁 유구가 더욱 훼손되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시는 잔여 경희궁 터를 민간에 매각하려 했으나 땅값이 너무 비쌌던 데다가

당시에도 경희궁 부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매각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서울특별시는 그 땅이 경희궁으로 온전히 복원되는 것을 저지하고

끝끝내 서울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경희궁의 잔여 유구를 훼손하고 말았다.

또 일부 부지는 서울특별시가 끝내 민간으로 매각해버렸고 이것이 현재 경희궁 복원의 걸림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남은 전각이 적고 협소한 탓에 조선 5대 궁궐 중 인지도가 가장 낮다.

<1박2일>의 서울특별시 문화유산 특집에서도 5대 궁궐을 문제로 내자,

다른 4개의 궁은 어렵지 않게 맞혔으나 경희궁에서 다들 헤맸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이나 역덕후가 아닌 이상 다른 일반인에게도 사정은 비슷할 듯.

훼손이 너무 심하다 보니 책에 따라선 4대 궁을 먼저 묶은 뒤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터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으로 일제강점기 중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흥화문을 떼어 갔었고, 광복이후에는 그 자리에서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경희궁으로 복귀하였지만 원래의 자리는 구세군이 차지하여 이 장소에 설치되었다. 

경희궁 내의 다른 전각들이 모두 제 위치에 복원만 했을 뿐

조선 시대에 건축된 오리지날 건물이 아니지만

이 흥화문은 옮겨다녔을 뿐 경희궁 내의 유일한 오리지날인 듯하다. 

숭정문

경희궁의 안내문에서 조차 경희궁지로 부르고 있다.

아마도 원래의 경희궁이 많아 훼손된 상태에서 현재 복원작업이 일부 이루어졌지만

경희궁이라 부르기에는 많이 미흡하여 경희궁 터로 인식하는듯 하다.

 

유홍준 문화유적답사기에서도 경희궁이 잠시 언급되지만

현존하는 건축물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없고 경희궁 건축의 과정과 소멸의 역사를 알려줄 뿐이다. 

숭정전

경희궁의 정궁이나 일제가 일본인 사찰에 매각하였고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 중이다.

자정문

자정전

임금의 공무 수행 장소. 일제가 헐어내었던 것을 서울시에서 확인하여 발굴한 자리에 복원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정문으로 되돌아나오는데

인왕산을 배경으로 궁의 모습이 아름다운게 더 가슴아프다. 


 

경희궁 홈페이지에서 자료 추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