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관광100선 (시즌 2023~2024)

(3) 서촌마을 / 서촌: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권 (2023.1.12)

클리오56 2023. 1. 1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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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가회동의 한옥마을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이에 대응하여 서촌마을이 등장했고 심지어 세종마을로 명명했다는게 유홍준 교수의 말씀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1권 서울편 3에 '내 어린 시절 서촌이야기'라하며 서촌에 한 장을 할애하였다.

 

서촌마을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2023~24년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되었는데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의 별칭으로 한옥마을의 옛 느낌과 현대의 세련된 공간의 공존이 매력적이라는거다.

 

또한 현재 읽고 있는 '서촌을 걷는다: 유영호 지음'은 창의문 계곡에서 시작하는 백운동천이

경복궁 서쪽 자하문로를 따라 흘러 청계광장의 소라탑에 도달하는 물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늘 코스는 유홍준 교수의 서촌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지만

지하철 내린 곳이 회현역이라 일단 걷기를 이곳에서 시작했고 청계천 소라탑을 경유,

백운동천의 물길이 숨어있다는 자하문로를 따라 자하문(창의문)에서 마쳤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등장하는 명소를 언급하지만 많이 누락되기도 하고

또한 서적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워 포함시키기도 했는데

부족한 것은 모두 내탓이니, 결코 유 교수의 탓이거나 책임이 아니다.

 

서울 시청 앞은 스케이트장이 조성되어 많은 시민들이 겨울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청계천 소라탑

사실상의 서촌마을 시작점. 하지만 우리 유홍준 교수의 서촌에는 당연히 언급이 없다. 

세종대로 사거리의 동화면세점

이 건물은 광화문 빌딩인데 두 건물이 재개발을 통해 하나의 빌딩이 되었다.

그런데 원래의 땅이 북쪽은 종로구, 남쪽은 중구에 속하는지라

막대한 세원을 놓칠 수 없는 두 구청은 이 건물의 관할을 놓칠 수 없었고

결국 수평분할로 타협점을 찾았다. 종로구가 지하 5층~지상12층, 중구가 13층~20층을 관할한다.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서울의 진산 북악산이 보인다. 

광화문 7번 출구에서 골목길 세문안로 9길로 휘어지는게 백운동천의 물길이다. 

비록 복개로 인하여 땅속으로 숨어버렸지만.

길 이름은 세문안로 5가길로 바뀌고~~

경복궁역 교차로

이제부터는 자하문로를 따라간다. 명소를 찾아 옆길로 새는 경우도 많지만~ 

세종마을 거리 입구

세종대왕이 통인동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하여 세종마을이라 명명했다지만

동네 이미지에도 맞지않고, 새롭게 주목하며 생긴 서촌이 차라리 낫겠다는 유 교수의 평.

예전 경북궁 서쪽 지역은 통상 장의동, 줄여서 장동이란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는 필운대, 옥류동, 청풍계, 백운동까지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 명승이 다들어 있으니 서촌의 옛이름은 장동인 셈이다고 언급.

우리은행 효자동 금융센터

예전 상업은행 효자동 지점 시절엔 청와대의 주거래은행이었기 때문에

여느 지점과는 격을 달리했다고 한다. 당시는 서촌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고.

통의동 백송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7월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되었음. 현재 밑둥만 남아있고 어린 백송 3그루가 지금은 제법 자랐다.

예전에 후계목이 4 그루라고 했는데, 한 그루는 어느 주인이 가져갔나?

4 그루의 주인은 서울시, 종로구청, 문화재청, 그리고 백송 할머니였다는데~~

그리고 여기는 추사 김정희가 한 때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예전에는 그 표시도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질 않네....

경복궁 영추문

보안여관, 경복궁 영추문 낮은 편에 위치. 

1942년부터 여관 운영, 지금은 레노베이션 되어 갤러리, 서점, 카페가 추가되었다.

보안여관 옆 작은 골목 안 감성적 풍경들, 여러 채의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다.

형제마켓

유 교수가 어릴 적 부터 있었던 가게.

형제상회 -> 형제 슈퍼 -> 형제마켓으로 가게 이름조차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듯.

형제마켓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수성동 계곡까지 연결된 인왕산길 메인도로이다.

자교교회

미국인 여성 선교사 캠벨이 내자동 배화학당 기도실에 처음 설립한 뒤

1922년 현재의 터전에 2층 양옥의 붉은 벽돌집으로 세웠다. 100년을 맞이한 오래된 교회.

스테인드글라스가 환성작이라는 평

해공신익희 가옥

자하문로에서 바라 본 북악산

신교터 안내문

청운중학교

담장을 따라 정철 송강의 시비와 부근에 표지석이 있을 듯하다. 다음엔 잘 살펴봐야지....

백세청풍

유 고수의 설명은 이러하다. 청풍계는 청운초등 후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왼쪽으로 난 가파른 비탈길이 있는 골짜기이다. 

이곳에는 병자호란 때 장렬하게 순절한 안동 김씨 선원 김상용의 저택이 있었다.

그는 척화파로 청나라에 끌려간 청음 김상헌의 형으로 우의정을 지냈으며

병자호란 때 왕족을 호송하여 강화로 피난시켰다가 이듬해 강화산성이 함락되자 자결했다.

백세청풍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주희의 글씨를 집자해 새겼다.

겸재 정선의 <청풍계도>

동네 모습

주한 브루나이 대사관

자하문 터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에서의 북악산 조망 

백운장 터 

이 부근에 백운동천 암각글씨가 있다는데 찾지를 못했지만

후기성도교회를 되돌아가면서 위에서 보니 뭔가 안내판이 보였으니 다음 기회엔 찾을 수 있겠다. 

공사장 담에 붙여진 진경산수 그림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 담과 주택의 색상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청운문학도서관

윤동주 문학관

최규식 서장 동상과 정종수 순경의 흉상

1968년 1월21일 김신조 등 32명의 북한무장군인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침투하여

이곳에서 남쪽으로 900미터 떨어진 현재의 청운실버센터 일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경찰 두분이 사망하였고, 무장공비 30명 사망, 1명 귀순, 1명 탈출한 대사건이었다.

창의문

광해군을 축출하려는 반정군이 이 문을 통하여 도성으로 진입하였고

결국 새로운 임금 인조가 등장(1623년)했다. 

그로부터 120년 뒤, 인조반정 2주갑을 기념하여 영조가 창의루를 방문,

당시의 공신들을 회상하며 그들의 이름을 직접 썼다는데 그 어필이 문루에 걸려있다고 한다. 

다만, 반정군을 총지휘했던 이괄은 이름이 빠졌는데

자신이 2등공신으로 분류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정 1년 뒤 난을 일으킨 때문이다.

이때 인조는 이괄의 군대를 피해 공주로 피난가는데

현재의 양재역 사거리를 지나던 중 말위에서 급히 팥죽을 먹었다하여 말죽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훗날 병자호란(1637년)에서 항복하여 인조가 몸소 오랑캐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린 굴욕을 겪기도 한다.

창의문에는 지네의 천적 닭을 그린 봉황 한쌍의 그림이 있다.

자하문 너머 세검정의 모습이 지네의 형상이라 이를 퇴치하려는 의도라 한다. 

다음 기회엔 진경산수화길을 서촌 탐방길과 연계한 답사를 시도하겠다.

이번에 누락된 많은 부분들을 보충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