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둘레길/수도권 둘레길

인왕산 숲길 (2023.1.16)

클리오56 2023. 1. 16. 22:24

일자: 2023.1.16

코스: 인왕산 숲길

등로: 경복궁역 1번 출구 ~ 사직단 ~ 택견수련터 ~ 수성동계곡 ~ 해맞이동산 ~

가온다리 ~ 이빨바위 ~ 청운공원 ~ 시인의 언덕 ~ 윤동주 문학관 ~ 창의문

소요시간: 2시간 7분 ( 휴식시간 7분 포함)

도상거리: 4.47km

고도: 34m -> 126m

Track_2023-01-16_인왕산숲길.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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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나의 실험, 경복궁역에서 수성계곡을 지나 인왕산 숲길을 따라 창의문까지 도달하고,

다시 창의문을 기점으로 진경산수화길을 따라 수성계곡까지, 그리고 경복궁역으로 돌아오는 것.

 

결론적으로 인왕산 숲길은 2시간, 진경산수화길은 3시간 소요되었고 상당히 만족,

다만 좀 더 보완한다면 인왕산 숲길은 왕복으로 진행하되

인왕산숲속쉼터와 더숲초소책방을 코스에 반영하도록~

 

인왕산 숲길은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출발했다.

사직단 대문을 좌측에 두고 좁은 길을 관통하면 대로변을 피할 수 있고

지나면서 사직단을 멀리서나마 슬쩍 엿볼 수 있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左廟右社라 하여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종묘, 우측에는 사직단을 설치했는데

사직단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왕의 조상을 모시는 종묘는 그런대로 잘 관리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까지 되었고

백성들의 배고픔을 잊게할 사직단은 별볼일 없이 처리되어 있음을 볼 때

위정자들에게 백성 보다는 왕 조상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 않나 생각든다.  

 

사직단 대문 (보물)

사직단이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또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 문은 사직단의 정문으로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새부리 모양의 부재를 이용해 기둥 위에서 보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사직단 정문의 법식과 넉넉한 느낌을 주는 건축 문화재이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사직단(사단과 직단)

황학정 옆을 지나는 중 도로에 설치된 등과정터 표시석. 

도로기준으로 황학정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인왕산 숲길이 시작되는데

입구의 제법 큰 표시석이 아주 유용하니 코스 전체가 상술되어 있다.

 

인왕산 숲길 입구

택견수련터

안내판을 읽어보면 전세계 전통무예중 최초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대단한 무예인듯 하다.

이정목에서 인왕산 숲길(청운동) 표시를 따라간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안내를 볼 수 있다. 

겸재가 태어난 곳이라는 경복고등학교 교정(청운동)에는 '화성겸재정선의 집터' 기념석이 있다.

겸재는 이처럼 고향이 인왕산 아래이니 인왕산에 대해서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인지하고 있었고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에 비 안개가 걷힐 때 드러나는 준수한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유홍준 교수는 언급하였다.

 

수성동 계곡

이번 인왕산 숲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수성동 계곡이니

계곡 골짜기, 소나무 숲 그리고 그너머 하늘 아래 거대한 바위군의 인왕산이 펼쳐진다.

바로 이러한 풍광을 화폭에 담은 겸재의 수성동도를 함께 보면 그 감탄은 품격을 높여준다. 

그림속의 다리가 기린교로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 다리를 볼 수 있으니 기쁨은 더해진다. 

인왕산의 거대한 벼랑이 병풍바위 또는 치마바위라고 부르는데

중종의 첫 왕비 단경왕후의 애틋한 전설이 담겨있다.

 

단경왕후는 신수근의 딸로 진성대군과 결혼했는데

 이 진성대군이 연산군을 축출하는 중종반정으로 왕이 되면서 왕비가 되었지만

7일만에 역적의 딸이라하여 폐위되어 궁궐에서 쫓겨났다. 

 

아버지 신수근이 "내가 매부(연산군)를 폐위하고 사위를 왕(중종)으로 세우는 일은 못하겠다"고

거절한 탓으로 철퇴를 맞아 죽으면서 역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경왕후는 중종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기 위해 다홍치마를 바위에 펼쳐두었다는 이야기.

 

훗날 영조 시절에 복위되어 단경왕후의 무덤은 왕릉으로 조성되고

능호를 온릉이라고 했으며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다.

수성동 계곡은 청계천 발원지라는 안내, 하지만 정확히는 발원지의 한곳이겠지만 

통상 발원지라면 하천의 가장 긴 길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말이니

창의문 인근의 북악산 기슭이 맞으며 그곳에 청계천 발원지 표시석이 있다.

 

수성동 계곡의 물길은 옥류동천이며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보면

파비앙과 함께 옥류동 바위 글씨(송시열의 글씨로 보인다)를 찾아가 확인한 이야기가 있다.

이중섭이 서촌 지역에 살았던 기간은 고작 서너달,

윤동주가 잠시 하숙 살았던 집과 함께 명소로 알려진 것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불편한 심기, 이 곳에 오래 살았던 한국사신론을 편 이기백 교수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면서.  

아래  '친구의 초상'은 구본웅이 절친한 단짝 친구였던 시인 이상을 그린 것으로,

하얀 색 물감으로 덮혀진 이상의 얼굴과 뒤의 어두운 배경이 대비되어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상이 실제로 폐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과 야수파의 기괴하고 강렬한 느낌이 겹쳐져

묘한 리얼리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해맞이 동산

일출 명소라는 안내 설명이 있지만 나무 숲으로 어느 정도 시야가 가려지는데.... 

위항문학

한자사전을 보면 위委는 맡기다, 막히다라는 뜻이고 항巷은 마을의 거리라는 뜻이다. 

한국고전용어 사전에 따르면 巷은 꼬불꼬불한 좁은 길이나 좁은 골목길. 민간의 초라함을 일컫는 말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

18세기부터 양반사대부가 아닌 계층인 중인 이하 상인·천인까지 포함하는 하급계층이 한문학 활동에 대거 참여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들의 한문학 활동이 시단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 데에까지 이른다.

당시에 양반사대부가 아닌 계층인 중인 이하 하급계층을 위항인(委巷人)이라 지칭한 예에 따라

편의상 위항문학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위항문학 활동의 내용은 첫째 시사의 조직, 둘째 공동시집의 발간, 셋째 공동전기를

중심으로 한 중인역사의 정리로 요약할 수 있다.

시사의 조직은 17세기말 숙종 때의 임준원()을 맹주로 한 낙사시사()를 필두로

18세기말 정조 때의 옥계시사의 조직이 본격적인 것이다. 그 맹주는 천수경()이다.

그의 집 송석원()이 이들 시 동인들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송석원시사로 별칭되기도 한다.

 

송석원 시사 

북악산

가온다리

가온은 순우리말로 가운데, 중심이란 뜻이며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아보라는 안내가 붙어있다.

두꺼비 바위

인(仁)의 동물 호랑이

대금 명인 정약대와 나막신

이빨바위

청운문학도서관: 월요일은 휴관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청운공원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

부근에 정자(서시정)와 시비(서사)가 있으며

한양순성 도성길에서 지척의 북악산 뿐만 아니라 북한산 능선 조망이 탁월하다.

윤동주 문학관: 역시 월요일 휴관

창의문

창의문 봉황 무늬

세검정이 지네 형상이라 닭의 형상으로 그렸다고 한다.

창의문을 끝으로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한 인왕산숲길 탐방을 끝낸다.

도상거리 4.47km, 휴식 포함하여 2시간 7분이 소요되었다.

 

다음 기회 때는 인왕산 숲길을 왕복으로 진행하되

인왕산숲속쉼터, 더숲초소책방, 석굴암을 탐방 코스에 반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