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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시간을 걷다, Chapter 3 르네상스: 최경철 (2022.12.29)

클리오56 2022. 12. 29. 22:07

Chapter 3 르네상스 : 예술가와 인본주의로 도시를 빚다

- 변화의 발단: 중세가 마무리되던 시점의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상

* 흑사병: 5년의 기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 시킴

* 화약의 발명: 전투의 양상과 전쟁의 승패를 변화시킴, 공성전 의미가 없어지고, 지방 영주 몰락 

* 흑사병 + 화약의 발명 => 봉건제와 그리스도교 점진적 해체 => 권력 집중의 절대왕정 혹은 신흥세력(부와 군사력 동시)

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1562~1563)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집단적 죽음의 현상인
흑사병의 모습을 표현했다.
신분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마주한 죽음의 공포가 보인다. 

- 연속과 단절

* 고대(그리스 도시국가시대 + 로마제국 시대) -> 중세 -> 르네상스(그리스-로마 고전주의의 부활)

* 르네상스의 중심은 이탈리아(피렌체 가문): 이탈리아는 거대 산맥과 삼면 지중해로 막힘, 따라서 다른 유럽(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여전히 중세적 전통(고딕의 시대)을 지키려는 노력이 강했다.

* 이탈리아는 중세의 두 양식인 로마네스크와 고딕 중 로마네스크의 비중이 높았는데, 이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딕 양식에 대한 경계가 있었기 때문. 고대 로마 시대와 중세시대는 모두 그리스-로마 고전주의에 기반을 둔 시대였고 르네상스 또한 유사성이 있었던 이유로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 할 수 있다. 

피렌체 대성당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에 기반을 둔
르네상스 양식과 고딕 양식이 동시에 표현됨으로써
시대의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건물.
고딕적 요소는 뾰족한 아치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플라잉 버트리스의 경우
프랑스 고딕의 주요한 특징으로 여겨 받아들이길 꺼렸다.

* 도시의 새로운 지배자와 예술가, 대중: 새로운 지배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비전 제시의 필요성. 예술가와 대중은 자유와 권리가 교회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각성으로 새로운 세계관의 확장. => 단절의 필요성

* 단절의 한계도 존재: ①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주요 몇 개 도시에 한정, 즉 다수는 여전히 중세에 머물었다. ② 완벽한 단절은 존재 불가능

르네상스의 특징 => 근세로 진입
고전시대의 부활 새로운 가치는 창출하지 못했고, 대신 고대세계의 헬레니즘 문명에 주목. 재해석하여 르네상스의 주류 문화로 형성. 그리스 시대 책 번역 및 재해석, 로마시대의 유적 발굴.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종교영역에서 유지
도시의 시대 그리스 시대의 도시국가처럼 이탈리아에서 많은 유명 도시가 탄생, 하지만 개별적인 단일 도시의 영역을 넘어 큰 영토가 있는 국가를 형성.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는 15개 국가로 분할.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등 
인본주의 시대 인간중심에 기초한 사상이나 세계관. 철저히 신에게 귀속된 중세시대의 인간이 아닌 인간자체의 주체성 강조 => 주체적인 개인이 탄생. 예술, 과학,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발견 성취
상업의 시대 도시를 중심으로 중계무역이 발달하면서 물자, 재화, 사람이 도시에 집중. 상업중요, 상인길드와 수공업자 길드 조직화.

- 고전의 회복

* 고전주의의 부활은 동로마제국이 몰락하면서 중세시대 동안 떨어져 있었던 이 나라의 수많은 역사가, 문학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로 유입되면서 시작. 이들은 그리스-로마 문화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전주의 부활에 큰 역할. 특히 문학, 철학, 건축 분야에서 두드러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연구 기관 설립.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09~1510)
바티칸궁의 프레스코 벽화로 총 54명 등장
중세시대에는 철학이 신학의 부수적인 존재였지만
르네상스시대에는 순수한 철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이해 시작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고대 그리스의 학자라고 통칭되지만
활동한 시기는 수백 년까지 차이가 나므로
동시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이 학자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은
라파엘로의 재기가 돋보인다.


수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가 많은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학문이 분화되지 않아
철학자가 수학자와 천문학자 등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의 중심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 손가락을 하늘로 향하는데, 추상적 관념의 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
=> 우주와 인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를 다룬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모델
- 아리스토텔레스: 손바닥이 땅으로 향하는데, 현상과 관찰 및 논리에 집중하면서 현실의 세계를 이야기
=> 현실세계의 도덕을 다룬 니코마스 윤리학,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모델

- 도시의 시대

*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형태로 활발한 문화운동이 전개되었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연구와 발전을 이룩. 기타 유럽은 통합국가의 형태인데 방대한 영토에 흩어져 있는 지방의 정치세력을 통합하는데 집중하여, 이탈리아와 같은 전방위적인 사회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 기타 유럽이 절대왕정을 중심으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여 이탈리아의 개별적인 도시를 해체 => 도시국가가 사회변화를 유연하게 대응시켜 르네상스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가 종결을 맞이한 이유 

1. 피렌체: 르네상스가 시작, 문화적으로 미편향, 고전주의 + 그리스도, 새로운 생각과 실험에 관대
2. 로마: 고대 유적을 간직하여 언제든 고전주의에 접근, 교황청이 있어 종교적 열망이 예술로 화려하게 전환, 교황의 힘은 하락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교회를 중심으로 존재
3. 베네치아: 물의 도시, 지중해 및 동방국가와 교류하여 중개무역 발달, 다양한 문화 유입 
* 르네상스의 한계: 당대에 이미 화려한 문화를 완성했던 비잔틴 문화와의 비교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서양 주류 역사가들이 의도덕으로 르네상스를 과장했을 가능성. 아직도 계급사회이고, 귀족가문과 교황청, 엘리트 예술가들이 남긴 유산으로 포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취: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무명의 예술가들이 이름을 되찾기 시작. 인본주의. 기존에 진리로 여겨졌던 것들이 과학적 증명을 통해 새로운 진실로 대체되기 시작(지동설) => 시대의 가치가 기존의 선험적인 세계관에서 경험적인 세계관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의 주체성과 자의식이 발생할 수 있는 씨앗이 싹튼 과정. 
지오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흑사병이 피렌체로 번져 아비규환에 휩싸여 있던 중 일곱명의 여인과 세명의 청년이 같이 여행을 떠나 나눈 이야기로 구성
=> 계급적으로 억압된 사람들, 즉 성직자, 여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들이 가진 종교적, 계급적 금기를 깨는 이야기를 담았다.
=> 나약함, 욕망, 좌절이 드러나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세시대의 절대적 종교의 틀에 갖혀 있던
인간의 이야기가 비로소 펼쳐진 시대가 된 것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향연'

- 아름다움에 대하여

* 르네상스 시대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양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고전주의 법칙과 그리스도교의 문화를 차용한 후 일부 변형을 통해 양식적 변주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 패러다임의 전환 => 자연주의와 경험주의: 고딕 시대는 종교중심의 사회였지만, 르네상스 시대는 자연으로 그 중심이 넘어갔다. 자연주의는 자연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조화로운 비례와 상태에 대한 추구를 의미한다. 즉, 아름다움을  이전 시대처럼 초월적인 종교 세계와 연관시키지 않았다. 고딕건축의 하늘을 향한 극단적 수직성은 종교적 아름다움일 뿐 자연의 미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 경험주의로의 전환은 사람들이 실제의 삶 속에서 겪는 일들이 예술의 형태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고의 확산을 의미한다. 소피스트들이 주창했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가 경험주의의 단서이다. 인간에게서 발견한 수의 원칙, 척도, 비례, 형태가 사람이 만들어내는 예술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 두 패러다임은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 고전주의로의 회귀, 아름다움의 상대성을 추구하는 태도로 연결. 사람의 인체를 이용해 원과 정사각형이라는 완벽한 비례의 원칙과 형태가 완성.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1300-150년 사이에 지어진 성당이었으나,
1470년경 알베르티가 중앙의 둥근 창과 밑 부분의 장식 등 낡은 기존의 부분을 교묘히 살리면서 새로 구성했다.

건물 전체는 거대한 정사각형의 비례를 적용.
층의 구분, 조형 요소의 위치와 크기 및 배열은
동일한 비례의 작은 정사각형들과
내접하는 원의 관계를 고려. 

 - 르네상스의 시작, 피렌체

*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연 도시, 상업가문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중도를 지키면서 문화와 예술 발전을 지원. 그 결실은 최고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그 작품,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즉 피렌체 대성당)의 돔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회화에서 최초로 원근법 고안, 마사초가 산타 마리아 노벨로 성당의 '성 삼위일체'에서 완벽히 구현. 이전에는 소재의 중요도에 따라 대상의 크기와 위치를 결정. 원근법은 '있는 그대로 본다'는 새로운 개념. 

성 삼위일체
(마사초,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1428년) 

원근법이 교회의 종교적 강론에도 활용
=> 삼위일체 개념을 알리는데 사용

마사초는 성자(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뒤편의 성부, 그리고 성자와 성부 사이의 흰 비둘기(성령)을 동일한 축 위에 그림

그림을 보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상단은 삼위일체가 보이는 기도실의
내부이고, 하단은 외부로 드러난 납골실이라 각각 부활과 죽음을 의미

최상단은 삼위일체
그 밑으로 성모와 상 요한
한 계단 아래에 후원 부부
가장 하단은 납골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436년경)

르네상스를 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건축물

미완성의 돔을 로마에서의 연구를 기반으로 완성
구조적 안전성과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잘 표현  

원근법 + 돔 => 르네상스의 문을 연 최초의 예술가
피렌체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동쪽'
(로렌초 기베르티, 1425~52)

산 조반니는 세례자 성 요한을 뜻함. 
피렌체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여기 데려와 세례를 받게함

미켈란젤로가 문의 조각을 보고 감명을 받은 후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음 

이 문 조각을 위한 공모가 1401년 열렸는데
이 공모를 시점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평가도 있음

브루넬레스키도 공모전에 참여했지만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서
조각가의 길을 포기하고 건축에 몰두 

- 르네상스 황금기, 로마

* 로마에 교황청이 있어 종교 중심지의 위상은 있었지만, 서로마제국 멸망이후 유럽사회의 변방.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로마가 다시금 유럽의 중심 도시로 부각 => 로마가 간직한 풍부한 유구, 유물, 오래된 문헌들이 수많은 예술가들을 매혹

* 도나토 브라만테가 로마의 초기 르네상스를 주도, 미켈란젤로가 전성기를 이끌었음. 라파엘로는 브라만테의 제자. 

로마 몬트리오 소재 성 베드로 템피에토 (도나토 브라만테)

템피에토는 작은 예배당이나 기도실의 뜻
이 예배당은 원형이 갖는 단순 명쾌한 조형에 고전주의 요소인 도리스식 기둥을 사용

회랑으로 둘러싸인 1층과 회랑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벽면에 조각된
사각 벽기둥을 통해 기둥의 장식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2층 부터는 기둥이 아닌 난간으로만 구성되었으며 상단부에 돔을 올려
작은 건물임에도 안정감과 수직적 상승을 느낄 수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가 대성당의 건축가로 결정되었을 때는
이미 브라만테 이후로 다섯명이 넘는 예술가들의 손을 거친 상태

브라만테의 초기 스케치를 원형으로 삼았지만
작은 기둥 요소들이 많아서 공간의 일체감과 집중을 해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두꺼운 벽과 기둥으로 수정하면서
훨씬 간결하고 집중되는 공간을 만들었음 

특히 돔은 돔이 시작되는 기단부의 쌍기둥과 상부의 벽기둥, 돔 표면의 구조 뼈대가 하나의 선형적 흐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직성이 강조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미켈란젤로)

수도라는 뜻이며 미켈란젤로 사후에 완공

원근법을 극복하는 설계, 타원의 형상을 가진 광장과 비대칭적인 건물 배치 등을 통해
고전주의의 원칙과 틀을 벗어나는 모습을 발견

=> 이는 르네상스가 지속되면서 형식의 파격과 변주를 즐겼던 예술가들로 인해 나타남

- 르네상스의 확산, 베네치아

* 1526년 독일과 스페인이 로마 침략하면서 로마가 일군 예술품들을 대약탈 => 예술가들이 베네치아로 이주

* 베네치아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가장 독립성이 보장된 곳, 그리고 가장 안전, 바다 인접한 다양하고 열린 도시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총독은 자코포 산소비노에게 로마 고전주의에 기반을 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설계를 요청
당시 베네치아의 중심지였던 산 마르코 광장에는
총독 집무실인 두칼레 궁전(고딕 양식), 대성당(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 결합)의 다분히 중세적인 모습
=> 중세를 탈피하고 새로움에 대한 지향
=> 산소비노는 도서관, 로제타, 이후에도 수도원, 교회 등 도시의 대표적 건물들을 건축 
수평적인 긴 건물에는 고전주의 산물인 기둥들이 반원의 벽기둥 형태로 자리잡았고 1층과 2층의 기둥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
2층의 경우 이오니아식 기둥 뒤로 아치를 지탱하고 있는
작은 기둥을 통해 기둥 크기와 비례의 다양성을,
아치의 중간과 층을 구분하는 영역의 조각 장식을 통해
베네치아의 지역적 특성을 보여줌.
이 모든 요소들은 길게 뻗어가는 수평성을 띠는데,
이는 광장 너머로 보이는 고딕의 수직성과 반대되는 개념을 보여준다.
수직과 수평의 대조를 초월적 수직성과 일상적 수평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르네상스의 가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평적 미학으로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빌라 로톤다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 1591년)
그리스-로마 고전주의를 표방한 르네상스 건축, 즉 르네상스 고전주의 건축양식이 추구하는
질서들(기하학, 비례, 중심성, 대칭)과 팔라디오가 추구하는 기능성이 적절히 조화된 합리적인 평면을 보임.
오른쪽 평면를 통해 그 기능성을 확인 가능
베네치아 일 레덴토레 성당
(팔라디오, 1576~1580년)

전면을 다양한 고전주의 요소들이 그 비례와 형식을 달리해서 설계. 독특하게도 큰 입구 안에 작은 입구가 하나 더 있는 구조. 이를 위해 다른 비례를 갖는 기둥이 활용되었고,
기둥의 장식도 코린트 양식(작은 기둥)과
콤포짓 양식(큰 기둥)으로 달리했다. 

형식에 있어서는 사각 벽기둥과 원형 벽기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페디먼트의 경우에도 독특한데, 한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다르거나 분절된 페디먼트가 양쪽에 붙어있다.

이 입면 하나만으로도 팔라디오가 다양한 요소들의
조화를 위해 배열, 형식에 변주를 준 것을 알 수 있다. 

- 양식의 지루함: 찾아온 매너리즘

* Mannerism(양식주의): 매너리즘이 의미하는 양식은 사회적으로 보편성을 인정받고 체계화된 기성의 양식이 아닌 한 예술가의 독립적인 개성의 드러나는 개인의 양식을 뜻한다. => 파격적이거나 탈피적 특징 => 고전주의의 가치인 기하학, 비례, 형식으로 완성된 조화를 의도적으로 깨는 반고전주의적 성향

* 왜 이런 파격과 일탈의 양식이 생겼나? => 로마 대약탈 이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감, 강력한 왕권체제가 없어 타국의 침략에 대응해 안전 보장이 약함, 1517년 마틴 루터와 1537년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 이러한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은 교황청이 있는 로마와 이를 포함한 이탈리아. => 종교개혁은 기존의 교회가 추구하던 모든 양식을 거부, 교회의 그림과 조각 등 성상들의 파괴. 항해술 발달로 신대륙 발견 및 해상무역이 대서양/인도양 권역으로 이동 및 확장되면서 이탈리아는 성장 동력을 상실 => 이탈리아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의 붕괴

* 매너리즘의 사례: 고전주의 기하학의 원 대신에 타원형을 사용, 페디먼트가 삼각형에서 곡면이 있는 요소로 변화 =>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톨리오 광장의 타원, 팔라다오가 설계한 일 레덴토레가 분리된 페디먼트를 채용

만토바의 테 팔라초 (줄리오 로마노)
팔라초는 고급주택의 뜻,
조화의 규칙과 구성 방식을 의도적으로 탈피하는 모습,
내부 기둥은 고전주의 기둥이 아니라 거친 재질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을 보이고
기둥위의 수평으로 뻗어가는 대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분절.

페디먼트의 경우 출입구에 있는
아치의 구조적 요소인 홍예석이 장식으로 활용되면서
페디먼트 삼각형 내부와 외부를 관통하는 낯선 조형을 보여줌.
아치 양옆의 페디먼트도 삼각형의 틀을 깨고 다른 조형 요소와 결합된 모습 
목이 긴 성모 (파르미자니노, 1534~40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불안감과 불확실성의 표현이 더욱 두드러져짐

이상적인 비례와는 거리가 먼, 긴 목을 가진 낯선 마돈나에게
아기는 불안정한 자세로 안겨 있다.
화폭의 왼쪽에 치우쳐 있는 천사들로 인해 그림의 구도는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이 모든 불편한 상황을 관조하는 듯한
무표정의 마돈나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킴

이 그림은 작가가 다 끝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기는 했지만
소재와 구도 및 표현에서 매너리즘의 징후를 발견
매너리즘을 통한 규칙의 변화와 변주는 이탈리아에 만연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표현한 것.
더불어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라고 해석.
이러한 표현들이 예술가 개인의 역량에 의해 다르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매너리즘은 보편적 양식으로 체계화되지는 못했다.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출발한 시대의 가치는 매너리즘을 거쳐 새로운 시대의 발현을 기대하고 있다. 

- 독일에서 온 예술가: 알프스 너머의 르네상스

* 알프스 너머의 유럽국가들은 절대왕정을 통해 보다 넓은 지역을 통합하는 국가를 세우던 시기였고 여전히 중세적 전통을 유지. 그래서 예술에서도 고딕 양식을 유지 => 이러한 와중에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를 마감하게되고 동시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이는 전기가 마련

프랑스는 고딕 양식의 발원지였기에 르네상스를 받아들이는데 오랜 과도기를 거침,
초기 르네상스는 기존의 고딕과 변형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결합된 모습
이는 르네상스를 피상적인 장식으로 받아들였다는 혹평도 있지만
과도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파리 생 에티엔 뒤몽 성당 (1517~60)

고딕의 전통과 초기 르네상스가 결합된 모습
입구가 있는 정면부는 르네상스의 흔적, 페디먼트, 기둥, 원형 아치 등 일부 변형이 있긴 하지만 고전주의 전통에서 기인. 측면을 보면 고딕의 전통과 르네상스의 전통이 혼재, 원형 아치와 뾰족한 아치가 혼재되어 있고 플라잉 버트리스라는 고딕의 가장 강력한 전통도 볼 수 있다. 
구 루브르 궁전 (피에르 레스코, 1546~78년)

프랑스만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확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건물
층의 높이가 점점 줄어들면서
건물의 안전성과 권위를 드러내는 조화의 방식

벽기둥을 활용한 장식성의 추구, 원형아치와 페디먼트의 사용,
고전주의의 원칙이 드러난다.
독일은 르네상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데,
종교개혁이 발생한 지역으로 가톨릭에 대한 반감,
과시적인 건축물 건립에 대한 무관심, 가톨릭 교회와 성상 파괴 빈번
다만, 가톨릭 세력이 강한 남부에는 일부 매너리즘 발생

독일은 일부 공공기관 건물에서 르네상스 흔적 발견
좌측 사진은 쾰른 시청 건물
기존 고딕 양식의 건물에 르네상스 양식의 발코니가 추가 
영국: 이니고 존스(건축가)를 통해 르네상스 고전주의 이식, 그리니치 궁전, 찰스 1세가 처형당한 장소인 런던의 뱅큇홀을 설계

- 이 시대의 미술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세계 최초의 미술관이자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
초기 작가 지오토부터 보티펠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작품 소장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1484~86)

고전인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제작
르네상스의 특징을 잘 표상하는 작품으로 바람을 부르는 신과
조개패 위에 선 비너스의 모습, 그녀를 맞이하는 계절의 여신까지.
신화 속 이야기를 생생한 그림으로 재탄생 시킨 시대의 역작
레오 10세의 초상 (라파엘로)

더 이상 그림의 대상이 이상화되어 있지 않다
당시 교황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이점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면모를 확인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2년)
로마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전체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회화, 조각, 건축들로 둘러싸여 있음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 1534~41년)

성경 속 인물들과 이야기가 복잡하게 뒤섞여있는 방대한 내용의 작품. 하지만 복잡함 속에서도 나름의 균형과 조화가
갖춰진 모습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인지를 증명
피에타 (미켈란젤로, 1498~99년)

피에타는 동정 혹은 불쌍히 여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따온 제목

예수 사후 깊은 슬픔에 잠긴 성모의 모습과
예수의 죽음을 감동적으로 묘사

섬세한 인물 묘사와 옷의 주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다빈치, 1480~82)

성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
로 옮긴 학자로서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아우구스티누스 등과 함께
4대 교부이자 성인
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나귀를 잡아먹었다고 오해를 받은 사자가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었던 성 히에로니무스를
언제나 동행했다는 ‘황금 전설’에 따라
성 히에로니무스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사자가 나온다.

이 작품은 히에로니무스가 돌을 들고 자신의 가슴을 치려고
하는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온갖 유혹을 뿌리치려 하였던 히에로니무스는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쳤다고 고백하였는데, 이러한 고백을 돌로 가슴을 치는 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화면에는 돌로 가슴을 치려는 성인과 꼬리가 채찍처럼 휘어져 있는 사자가 대각선의 구도 속에 그려져 있으며, 인체의 표현에는 정확한 해부학적인 지식과 단축법이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다. 부수적인 형체가 완전히 생략되어 있는 이 작품은 회화 기법상 어떤 전통적인 기법과도 거리가 먼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의 독창성이 드러나 있다. 화면 오른쪽 배경이 되어 있는 산에는 대사원의 스케치가 그려져 있다. 

1820년에 한 추기경이 로마의 어느 잡화상과 신발가게에서
얼굴 부분의 화면이 잘려 나간 것을 따로따로 발견하여
원상으로 맞추었다고 전해진다.
밀라노
최후의 만찬 (다빈치, 1495~98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전
그의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식사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제자들 중 한 명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제자들이 놀라며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순간을 포착한 것.

이 그림은 수도원의 식당에 걸려있는데,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을 키워가는 수사들에게 신앙의 본질적 문제를 일깨움

그림의 배경에는 원근법이 적용된 창이 뚫려있는 공간이 있다. 식당에서 이 그림을 보게되면 그림 너머의 공간이
실제의 공간과 통합되면서 보다 넓은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독일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1500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그는 회화에 큰 재능을 보여 몇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원근법과 인체 비례 등 르네상스 회화의 본질을 체득

뒤러만의 특징 중 하나는 중세적 종교화의 전통을 스스로 탈피한데 있다. 

그동안 회화에서 그림의 소재는 주로 종교적 인물과 이야기였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 소재가 왕의 초상이나 자연의 풍경으로 확장됐다.

뒤러는 자화상을 최초로 남긴 예술가이며
당시 예수의 그림에서나 볼 법한 인물의 정면을 그린 파격을 볼 수 있다.
자화상의 뒤러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눈빛과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인 예술가의 자화상은
르네상스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주체의 발견을 의미했다. 
뒤러의 어머니 (알브레히트 뒤러, 1514년)

뒤러는 이상화된 이미지로 포장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실제적인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

사람들이 흔히 어머니에게 떠올리는 온화하고 인자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대신,
삶의 굴곡과 고통과 무상함이 느껴지는 모습의
파격적인 그림을 선보였다.

이 그림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지닌 한 인간만이 보일 뿐,
어머니라는 관념적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정반합의 역사관에 대입해보자. 

고대의 고전주의와 비잔틴 문화에 기반을 둔 로마네스크(정)의 경향이
초월적 종교성을 추구하는 고딕(반)으로 변화하고,
다시 종교적 초월성이 상쇄되면서 로마네스크의 기반이 된 고전주의와 결합이 이뤄진 르네상스(합)로 변화했다.

실제로 예술 형식에서도 우리는 정반합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장식의 경향에서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고 경직된 모습을 보인 로마네스크를 정으로 본다면
새로운 비례의 원칙으로 자연의 미를 묘사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고딕 시대는 반으로 볼 수 있고
르네상스에서는 다시 고전주의의 엄격함과 자유가 결합된 합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형식의 파괴가 이루어진 매너리즘까지 고려해본다면
양식의 변화상은 구체적 형태는 다르지만 순환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천년의 중세시대와 근세의 시작, 그리고 예술사조의 흐름에서 나타난 세개의 양식이 연결되고 구조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반합의 구조는 역사를 이해하는 합리적인 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