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지금과 같은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당시 전각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 건물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복원한 것이다.
불국사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영역,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영역,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영역,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영역으로 구성된다.
경내 범영루를 기준으로 좌측 연화․칠보교 위에 극락전 영역이,
우측 청운․백운교 위에 대웅전 영역이 자리한다.
불국사를 상징하는 석가탑과 다보탑은 대웅전 앞에, 관음전과 비로전은 대웅전 뒤 석축 위에 있다.
사적 502호인 불국사는 1995년 12월 6일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 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 불국사 (2019.11.11)
경주불국사는 초등시절 수학여행은 물론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다녀왔지만 아득한 옛일이라
금번 답사에서도 내가 예전에 왔던 불국사가 맞는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무튼 이번 기회에 천천히 되집어보면서 불국사 경내를 둘러보았는데
아무래도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위주로 진행되겠다.
자료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수록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과
불국사에서 입수한 '경주길라잡이' 안내서에서 많이 인용하였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사후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하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다른 자료들은 이미 그 전에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존재하여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성이 중창한 뒤 임진왜란 전까지 이 절은 9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다고 하며
쇄락하였던 불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발원으로 중창되었고,
이때의 대복원공사를 위하여 1969년에는 문화재위원들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며,
1970년 2월에 공사를 착공하여 준공하였다.
당시까지 유지로만 남아 있던 무설전·관음전·비로전·경루·회랑 등은 이때 복원되었고,
대웅전·극락전·범영루·자하문 등을 새롭게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천왕문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불국(佛國),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다.
불국을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양상으로 이곳에 나타나 있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이 셋은 각각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일곽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일곽과
비로전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놓았다.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제23호)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범영루와 좌경루
현재의 범영루는 옛 모습대로 중건된 아담한 누각이다.
경루는 경전을 보존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원래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제22호)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극락세계를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락 전해진다.
독특한 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 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칠보교·연화교는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가구식 석축 (보물 제1745호)
경주 불국사는 신라의 동악인 토함산 서측 기슭에 위치한다.
불국사는 북측이 높고 남측이 낮으며,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은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석축을 가구식으로 조화롭게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고 정연하게 건물을 배치하였다.
사역은 크게 동쪽의 대웅전 영역과 서쪽의 극락전 영역으로 구분되며,
대웅전 뒤쪽으로 강당인 무설전이 있고, 그 뒤 높은 지대에는 관음전과 비로전이 위치한다.
극락전
입구에서 연화교·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7호)
높이 1.66m,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웅전 (보물 제1744호)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으로 현존하는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이나,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석가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으며,
다시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두 제자상이 모셔져 있다.
석가탑(국보 제21호)과 다보탑 (국보 제20호)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이다.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 탑은
영원한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보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상주한다는 깊은 상징성을 가진 탑으로서,
불교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노력한 신라 민족혼의 결정이기도 하다.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유물인 국보 제126호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자하문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이 있다. 자하문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이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金光身)이라고도 하므로
불신에서 발하는 자주빛을 띤 금색 광명이 다리 위를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에서 자하문이라 한 것이다.
무설전
대웅전 바로 뒤에 있는 무설전은 불국사의 여러 건물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670년(문무왕 10)에 이 건물을 짓고 문무왕은 의상과 그의 제자 오진(悟眞)·표훈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의 강론을 맡게 하였다.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 때에 불탄 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여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하였다.
경론을 강술하는 장소이므로 아무런 불상도 봉안하지 않고 설법을 위한 강당으로서만 사용하였으며,
무설전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진리의 본질, 불교의 오의가 말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관음전
무설전 뒤의 한층 높은 언덕에 있다. 751년 김대성이 6칸으로 지었던 것을
1470년(성종 1)에 중수하였는데, 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불타버렸다.
그 직후 1604년에 해청(海淸)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1)과 1718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원래 이 관음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언제 관음상이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는 1973년의 복원 때 새로 조성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
비로전
관음전 아래 서편에 있으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국보 제26호인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 봉안하였다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6호)
사리탑 (보물 제61호)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05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33년 환수되었다.
당간지주 (경북 유형문화재 제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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