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과 정맥/백두대간 (완료)

백두대간 28구간: 하늘재 - 포암산 - 부리기재 (2007.10.13)

클리오56 2007. 10. 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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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자: 2007.10.13

** 산행지: 백두대간 28구간: 하늘재 - 포암산 - 부리기재

** 산행로: 하늘재(520M) - 포암산(961.8M) - 관음재 - 마골치삼거리 - 꼭두바위봉 -부리기재(870M) - 중평리

** 산행거리: 약 14.77Km (마루금 11.77Km + 연장 3Km)

** 산행시간: 총366분 (산행 309분 + 식사 및 휴식 57분)

** 산정산악회 (김)

 

 

 

 

  

07:20 양재 출발 (10:20 하늘재 도착)

10:26 산행들머리 하늘재 출발

11:11 포암산

11:36 관음재 (이정목 13-05)

12:10 만수봉분기점

12:19 메밀봉 갈림길 (중식 20분)

13:10 (휴식 5분)

14:34 너덜지대 (휴식 15분)

14:50 1032봉

15:10 1062봉

15:31 부리기재 (휴식 5분)

16:03 개울 (족탕 12분)

16:32 산행날머리 문경 중평리 박마을

18:02 중평리 출발

21:20 양재도착

 

2주 연속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치 못한탓인지 대원들도 낯설고 산행도 힘이든다. 특히 지난 이틀간이나 상당량의 술을 들었으니 각오는 했지만 예상 보다 힘이든다. 오늘 대간의 출발지는 하늘재이니, 많은 의미를 가진 유래 깊은 역사의 현장이다. 월간산의 자료를 우선 간추려본다.

 

"하늘재(520m). 백두대간에 열린 고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름을 단 곳이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이 고개가 하늘재로 불리게 된지는 모르겠으되 옛 기록상의 이름은 계립령(鷄立嶺)이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에 아달라 이사금 3년(154) 여름 4월에 계립령 길이 열렸다고 기록돼 있다. 기록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로 죽령보다 2년 앞선다.

하늘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다툼을 벌이던 곳이다. 신라는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곳으로 길을 열었다. 고구려의 장군 온달은 “계립령, 죽령 서쪽이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죽어서 돌아오지 않겠다”며 싸움터에 나갔다가 아차산성에서 최후를 맞았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내용이다.

한편 하늘재는 불교문화가 전해진 길목이기도 했다. 지금도 하늘재 서쪽 괴산의 미륵리나 동쪽 문경의 관음리에는 수많은 불적이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현세의 관음과 내세의 미륵을 연결하는 고개여서 하늘재라 불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스라하기는커녕 약간의 고도감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 있는 고개를 하늘재라 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언제나 현세가 고달팠던 민중들의 염원이 그 이름에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재는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니 현세의 관음리에서 내세의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하여 관음리는 도로로 포장되어 있고, 미륵리는 아직 비포장으로 옛길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최근 하늘재엔 산장이 들어섰으니 홀로 대간꾼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단다.

 

하늘재 

  

하늘재에서 포암산은 1.2Km 정도로 짧은 구간이지만, 고도를 520M에서 961M로 올려야하니 초반부터 가풀막으로 숨차다. 초입에 하늘샘을 지나고, 바위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면 주흘산이 뚜렷이 다가온다. 문경새재 넘어 시내를 지나면서 하늘재 오는 도중에 가장 멋진 주흘산의 형상을 보았지만, 산에 올라 아스라히 먼 주흘산 역시 아름답다. 노송의 짙푸른 가지가 뻣어내린 바위에서 아래로 펼쳐진 마을이 관음리이다. 밧줄타며 슬랩을 오르기전 북쪽방향으로 월악산 정상부도 조망할 수 있다. 아마도 서쪽으로 보이는 능선은 부봉에서 마패봉으로 연결되는 봉우리들이리라. 하지만 베바우산, 즉 포암산이 정상에서 산허리까지 흡사 베로 �어 놓은 듯한 모습이어사 비롯되었다는데, 정작 베바우산을 오르면서 그 모습은 볼 수 가 없다. 멀리서 조망해야 볼 수 있는데, 지난 대간산행을 빼먹었으니 다음 기회에 잘 볼 수 있으리라. 포암산은 또한 희고 우뚝한 모습이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 같다 하여 마골산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고, 계립산이라는 옛 기록도 있다고 한다.  

 

포암산 정상

 

금일 산행의 대표산인 포암산을 너무 초반에 올란 탓인지 계속되는 산행에서 뭔가 목표를 잃어버린 듯하다. 포암산 다음 봉우리가 964봉인데 제법 단풍이 들어보여 울긋불긋한 모습이다. 포암산과 964봉은 멀리서 보면 형제처럼 쌍봉을 이루어보인다. 관음재도 지나고 포암산 떠난지 1시간여만에 만수봉 분기점에 도달하였다. 만수봉 2.3Km, 포암산 2.8Km이자 구조대 이정목 13-09 지점이다. 여기까지는 월악산 국립공원 구역내라 이정표도 잘 정비되어있었다. 우린 여기서 좀 더 진행하여 아마도 메밀봉 갈림길에서 자리를 잡아 중식을 들었다. 아내가 부산에 갔기에 식사를 준비해오지 못했고, 휴게소에서 감자떡으로 김부장님과 함께 이른 식사를 조금 해두었다. 김부장이 준비해온 점심을 나눠들고, 혼자 오신 한분과 떡을 나누어 들었다. 이분은 2기로서 이미 대간을 완주하신 분이다.

 

등로는 다시 수직으로 휘어져 동으로 향한다. 여러 무명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지리한 산행이 계속되는데, 제법 골이 깊게 내려서기도 하니 또한 오르기도 힘이 들기도 한다. 꼭두바위봉, 꾀꼬리봉 등 이쁜 이름의 봉우리를 확인하지 못한채 산행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여러 차례의 전망대가 있어 조망의 즐거움으로 피로함을 잠시 잊기도 한다. 정상부가 고원처럼 길게 편편한 산이 아마도 만수봉으로 짐작하지만 확신은 못한다. 포암산에서 부터의 지나온 능선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지너온 능선 (중앙부가 포암산) 

 

 

 

이후 밧줄을 잡고 암벽을 통과하는 약간의 험로 한군데를 지나고, 다시 한참 동안 산행을 계속하니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중간대장이 조금 후면 1032봉이라니 바로 여기가 그 직전의 너덜로서 지도상에도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천 덕산 방면으로의 조망이 넓게 펼쳐진다. 여러 대원들이 함께 휴식을 취하며 준비해온 과일들을 나눠들었다. 1032봉에서 큰 굴곡없이 1062봉까지 진행되고 이후 내림길을 타게 된다. 속도가 빨라진다. 이윽고 대간길의 끝인 부리기재이다. 고도는 870M이니 꽤 높은 지대이다. 회장님과 대장 등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곤 바로 박마을 방향으로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고개와 안부,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가는 분들에겐 고개이지만 대간길 종주하는 분들에겐 안부이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참고하는 두분의 산행기가 있는데, 한 분은 아미산, 또 다른 한분은 시인마뇽이시다. 시인마뇽께서 아마도 이 구간이 대간 첫산행이었는데 남기신 글이다.

 

" 재는 산을 넘는 분에는 가장 높이 다다르는 고개이지만, 산줄기를 종주하는 분들에는 가장 낮은 곳에 자리 잡은 안부입니다. 현세에서 내세로 넘나든다는 하늘재 역시 고개이자 안부입니다. 서기 159년에 길을 낸 하늘재는 그 후 1,800여 년을 고개로만 역할을 해왔을 터인데 이제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에 안부로서 쉼터이자 출발점이자 마침 점으로서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듯싶습니다. 재가 이러한데 제가 이번에 산을 오르며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무엇일가 화두로 떠올리며 백두대간의 첫 번째 산행기를 맺습니다. "

 

부리기재

 

하산 도중 개울에서 족탕을 잠시 즐겼고, 낙엽송 짙은 마을로 내려섰다. 문경의 중평리 박마을이다. 청국장이 유명한지 일부대원들이 구입하였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니 부리기재가 골짜기 위로 패여있고, 우측은 다음 구간인 대미산이다. 일부 선두는 주막에서 한잔 중이고, 차기사께서 준비해둔 식사를 들었다. 도착시간이 4:32이니 대장이 지정해둔 시간을 준수한 셈이다. 일부 대원들이 약초를 캐느라 6시가 되어서야 도착하니, 본인들이 없을 땐 욕설이 난무하는 지경까지 사태가 악화된다. 하지만 본인들 앞에선 대 놓고 충고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다음에 또 재발하지 않을까. 벌써 한두번이 아닌데.... 산행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으면 한다. 귀경길이 막히고 서울에서도 우회를 하여 양재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다.  (나중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한분이 다리가 불편하여 늦어졌다. 잠시이지만 오해를 하였음에 죄송한 마음이다)

 

박마을에서 (중간이 부리기재, 우측은 대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