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과 정맥/백두대간 (완료)

백두대간 21구간: 밤티재 - 청화산 - 조항산 - 고모치(2007.08.11)

클리오56 2007. 8. 1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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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자: 2007.08.11

** 산행지: 백두대간 21구간: 밤티재 - 늘재 - 청화산 - 조항산 - 고모치 - 삼송리

** 산행로: 밤티재(500M) - 늘재(380M) - 청화산(984M) - - 갓바위재(720M) - 조항산(951M) - 고모치(680M) - 괴산 삼송리

** 산행거리: 약 17.74Km (마루금 11.74Km + 연장 6Km)

** 산행시간: 총390분 (산행 340분 + 식사 및 휴식 50분)

** 산정산악회 (김)

 

07:40 양재출발 (밤티재 도착 10:53)

11:00 산행들머리 밤티재 출발

12:01 늘재 (휴식 5분)

13:39 청화산 (중식 25분)

15:41 갓바위재 (휴식 5분)

16:25 조항산 (휴식 5분)

17:08 고모치 (휴식 10분)

17:30 채석장 (알탕 30분)

20:20 삼송리 출발 (23:00 양재 도착)

 

 

 

 

2주만의 산행이다. 그런데 일기예보는 중부지방에 10-50mm의 강수량을 예보하고 있다. 그들의 상투적인 예보, 천둥, 번개, 돌풍에 국지성 호우까지. 그럼에도 새벽의 날씨는 양호하니 일단 출발이다. 7시 양재에 도착하니 평소완 딴판으로 우리 대간 일행 뿐이다. 다른 등산객들은 전혀보이지 않는다. 전국적인 호우예보에다가 얼마전의 낙뢰사고로 5명이나 사망한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조선배는 불참이고 김선배와 동행이다. 한 좌석만 빠졌으니 대간꾼들은 거의 미침의 수준이다. 

 

오랜만에 정 총대장께서 함께 하였다. 대간 첫회에 모습을 보여준 후 처음이다. 역시 산행의 설명이 막힘없는 청산유수이시다. 10여년의 대간산행 경험이 체화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편대장은 회사일로 자주 나오지 못한다는 작별의 시간이 주어졌다. 9차대의 회장단 선임이 있었고, 총무와 4명의 운영위원이 소개되었다. 모두 자기 소개가 훌륭하다. 역시 PR 시대라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하여 각인 시킴이 중요하다.

 

연풍 IC를 빠져나와 한참을 달린 후 늘재에 일반산행꾼 4명을 하차시키곤 대간꾼들은 범티재에서 출발한다. 이동캠프가 늘재에서 기다리므로 배낭을 둔채 모두들 간편한 차림으로 나선다. 나도 색에 생수와 우의만 챙긴 채 출발한다. 밤티재는 경북의 상주시 화북면 소재인데, 장암리 늘티마을에서 중벌리 밤티마을로 포징 도로로 이어진다. 그 밤티마을에서 밤티재의 명칭이 유래한다.  

 

밤티재

 

산악회의 코스 설명에 따르면 산행시간은 6시간, 하지만 산행후기 4편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모두 8~9시간이 소요되었으니 만만치 않은 코스임을 보여준다. 특히 늘재에서 청화산, 갓바위재에서 조항산이 모두 긴 오름새이고, 특히 여름철이라 체력 소모가 많다. 평소처럼 거의 최후미에서 출발하여 오르는데, 뭔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 2주만의 첫산행이라 워밍업되는데 시간이 소요되나 생각했지만, 발걸음이 너무나 무겁다. 잔대 혹은 모시풀, 정확한 이름은 모르는 야생화를 찍으며 출발이 좋다는 마음도 가졌지만... 좁은 암릉을 오르는데 외길이고 조금 높아 서로 끌어주기도 하는 지점도 통과한다. 바위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니 속리산 연봉이 펼쳐지는 장관을 조망한다.

 

전망바위에서 속리산 배경으로

 

작년 여름 아내와 함께 동네 산악회를 따라 종주한 기억이 새롭다. 밤티재 출발 30여분 후엔 등로에서 청화산을 조망할 수 있었다. 오늘 산행에선 특이하게도 버섯이 자주 눈에 띄인다. 늘재로 내려서기 전 청화산 전경을 담아본다.

 

청화산

 

청화산은 오늘 산행의 대표산인데, 택리지로 유명한 이중환은 그의 호를 청화산에 따서 청화산인으로 불리웠다. 그가 청화산을 높이 평가하는 글귀를 월간산 2005.9월호에서 옮겨본다.  

" 청화산은 수석이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고, 산의 높이나 크기는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지만 속리산 같이 험한 곳이 없다고 하였으며, 흙으로 된 봉우리에 돌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으며 단정하다" 

 

속리산,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서 범인의 눈에는 청화산이 가장 처지는 산인데 그런 평가가 나옴이 아직 이해되진 않는다. 월간산의 설명이 이어진다.  

"속리산의 남쪽 백두대간은 형제봉에서 갈령쪽으로 가지 줄기를 뻗어 동북쪽으로 도장산(827.9m)을 솟구쳐 올린다. 그리고 청화산에서도 동남쪽으로 가지를 쳐 한 봉우리를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시루봉이다. 마주보고 선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로는 한줄기 물길이 흐른다. 병천(농암천으로 흘러듦)이다. 이들 산줄기를 선으로 그어보면 시루봉~청화산~늘재~문장대~천황봉~형제봉~갈령~도장산이 된다. 흡사 그 모양이 시위를 팽팽히 당긴 활 모양인데, 그 사이의 분지가 바로 용유리다. 외부세계로 열린 곳이라고는 병천밖에 없다. 그래서 소의 뱃속처럼 안온한 곳이라는 것이다."

 

청화산에 올라 시루봉과 도장산, 그 사이로 뻗어지는 쌍용계곡을 살펴보며 복 받은 땅을 조망코자 했으나 좋은 전망터 찾다가 정작 조망을 놓쳐버렸다. 하여튼 1시간여만에 늘재에 도착하였다. 늘재엔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이란 안내판을 보고, 그 반대편의 면급 보호수로 수령이 320년 이상인 엄나무를 지나 청화산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한다.

 

늘재

 

배낭을 챙겨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청화산까진 2Km이지만, 600M나 표고를 올려야하니 계속되는 오름길이라 1시간반이나 소요된다. 밤티재에서 늘재까지 1시간의 산행으로 워밍업했건만 컨디션은 최악이다. 모스크바 출장중 목에 가래가 생겼는데, 지난 일주일간 많이 줄긴했어도 아직 남아있다. 공룡능선을 탄 다음날 모스크바까지 9시간 비행, 그리고 이후 바쁜 출장 여정, 밤마다 보드카 마신 덕분에 피로가 누적되었는데, 그리고 그 징후가 가래로 나타났는데 자신의 몸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산행을 나선 징벌이다.(사진의 시각은 모스크바 표준시 기준인데 귀국후 시각 수정했어야했는데 놓쳤다) 늘재에서 25분여 오르면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란 비가 나오고 좌우로 향로가 있는데, 그 배경이 속리산 주능선이라 조망이 기막히다. 아미산님의 산행후기로 그 비의 연유를 대충 짐작해 본다. 

"정국(靖國)'이란 조용하고, 편안한 나라라는 뜻인데, 아마 이곳에서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리는 것 같고, '백두대간 중원지'라고 한 것을 보면 현재 남한에서 동서남북의 한가운데란 뜻이 된다. 여기에서도 역시 관음봉, 문장대,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국기원단

 

858봉, 801봉을 연이어 넘어선 후 헬기장을 거쳐 청화산에 도착한다. 대간 동료들 일행 여럿이 휴식중이고 김선배와 함께 한 자리를 잡아 휴식 겸 중식을 들었다. 하지만 식사는 2/3 정도는 남기고 귤과 찬 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청화산은 984M로 소개되나 정상석엔 970M로 표기되어 있다. 푸른 색으로 글자가 새겨져 청화산을 특징지워 준다.

 

청화산 정상석

 

먹기도하고 정신도 차리고, 특히 이젠 내림길이란 안도감으로 약간의 원기가 회복되는 듯하다. 중간에 암릉을 거치긴 하지만 갓바위재까지는 내림길이니 큰 힘은 들지 않을거야, 그래도 내림길에 사고가 생기니 정신을 바짝차리자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청화산을 내려오면 바로 삼거리 갈림길인데, 우측은 시루봉길이라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 간혹 이길로 접어들어 혹독한 알바를 경험하기도 한단다. 우리는 바로 쭉이어 내려가는데 858봉, 801봉을 거친다. 중도에 조망되는 조항산과 그너머 대야산의 산세가 대단하다. 그 왼편 중대봉은 대슬랩의 모습이 감지된다. 갓바위재는 좌측으로 의상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산에서 조망하는 저수지가 새파랗다. 어느 백두회에서 갓바위재란 표시를 해두어 산행에 도움이 된다. 국립공원 구간이 아니라 변변한 이정목이 없을 경우 그런 자그마한 단서가 얼마나 산행에 도움이 되는지 우린 잘 안다. 

 

중대봉, 대야산 그리고 조항산

 

조항산 정상으로의 등로는 좁은 암릉이고 날카로와 만만치 않다. 아주 힘들고 어렵지는 않지만 조심은 해야한다. 조항산이란 새모가지란 뜻인데, 청화산에서 바라볼 땐 그렇게 긴 목인줄은 모르겠다. 조항산 동쪽은 궁기리(宮基里)란 마을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가은이 고향인 견훤이 이 곳에 궁궐을 짓고 군사를 모아 기반을 다진 곳이라하여 지명이 되었다.   

 

조항산 정상석

 

조항산에서 고모치까지는 1.2Km이니 30분내로 족하다. 고모치의 고모샘에서 식수보충하기로 작정하니 조항산에서 맘껏 남은 물을 마셔버렸다. 고모령의 전설을 소개한다. 참고로 고모령이란 노래와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옛날 부모 잃은 가녀린 질녀와 고모가 지금의 고모령에 오두막을 짓고 정답게 살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질녀가 병이 들어 죽어서 고모는 죽은 질녀의 이름을 부르며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고모마저 얼마 있지 않아 질녀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동네 사람들이 고모의 애절한 그 정을 기리어 이 고개를 고모령이라 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고모치 10여M 아래 석간수로 물맛 좋은 고모샘이 있다. 거의 한통을 마시고, 다른 한통을 가져왔다. 정말 고마운 샘이다. 비는 커녕 검은 먹구름은 찾을 수 없는 땡볕아래 지친 산객에게 감로수이다. 한통의 물로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비록 산행은 끝무렵이지만, 늦게나마 원기를 회복하였다.

 

고모치

 

좌측 낙엽짙은 길이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로 향한다. 하산길이 장장 5.5Km이니 연장코스론 가히 살인적이다. 그래도 좌측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채석장 못미쳐 작은 소에서 알탕을 즐길수 있다니 그나마 위안이다. 최근 비가 여러 차례왔으니 계곡의 수량은 풍부하고 물은 차다. 이에 대비하여 겉옷과 속옷을 완비했으니 한껏 물질하며 놀았다. 깨운하게 소로를 내려가니 총대장이 마을에서 타이탄을 빌어 일행이 타고갈수 있도록 배려를 해두었다. 덜컹거리며 타는 재미가 우마차 타는 기분이었다. 버스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으나 일행 여성 한분이 조난으로 연락이 되질 않는다. 다행히 나중 통화는 되었지만 위치를 정확히 짐작하지 못한다. 8:20이 되어 우선 일행은 버스로 떠나고 대장 등 3명이 남아 계속 구조하기로 하였다. 밤 11시 서울에 도착때까지 구조소식은 없고, 119 신고하여 구조대 2팀이 파견되었다는 연락이다. 다음날 사이트에서 확인하니 무사귀환했다는 소식이다. 시루봉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들었던 모양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할 듯... 랜턴, 휴대폰 밧데리 여분, 비상식량, 옷가지, 나침반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타이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