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도전, 10년 프로젝트

(1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2026.7.16)

클리오56 2026. 7. 16. 20:4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1984년 출간
* 한줄 감상: 가벼운 삶과 무거운 삶, 그 극단의 삶 사이 어느 지점에서 삶의 무게추가 이리저리 균형을 잡아가지 않을까?
* 기억할 문장: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뉴욕타임즈 선정 20세기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선 

 

1. 저자 소개: 밀란 쿤데라 (1929~2023)

- 1929 체코슬로바키아 출생, 1975년 프랑스 망명, 프랑스 국적, 2019년 체코 국적도 취득

대표작: 농담(1967), 웃음과 망각의 책(1979), 무의미의 축제(2014), 커튼(200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 자유로운 시점 전환: 1인칭 시점, 3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 옴니버스 식 전개,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

* 관련 영화 프라하의 봄: 1989년 개봉, 감독 필립 카우프만

 

2. 스토리

배경: 체코슬로바키아의 1968, 소련 치하에서 자유와 민주화를 외친 프라하의 봄, 그리고 이후 소련의 침공으로 민주화가 중단되고 억압받는 시기를 전후하여 남녀 4(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의 삶, 사랑, 운명이 전개된다.

 

소설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며 시작

9: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12: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토마시는 프라하의 뛰어난 외과의사, 삶을 무겁게 만드는 모든 구속(결혼, 책임)을 거부하며, 수많은 여성과 '에로틱한 우정'을 추구하는 가벼운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 날 시골의 호텔 식당에서 일하는 테레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상처 많은 유년 시절을 보낸 테레자는 사랑을 영혼의 결합이자 절대적인 책임으로 여기는 무거운 인물이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깊이 사랑하지만 그의 외도를 견디지 못해 질투와 불안 속에서 괴로워한다.

 

1968년 민주화를 추구한 프라하의 봄이 시작되지만, 곧 소련군이 침공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스위스로 망명하지만, 테레자는 토마시의 변하지 않는 외도에 지쳐 홀로 프라하로 돌아갔다. 토마시도 테레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 때문에 프라하로 돌아온다. 토마시는 공산정권을 비판한 대가로 의사직을 박탈당하고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로 신분이 전락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토마시의 외도는 지속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갔는데, 토마시는 외도를 멈추고 트럭 기사로 생활하고, 테레자는 질투와 불안에서 벗어나 삶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들이 키우던 개 '카레닌'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하지만, 트럭 브레이크 고장 사고로 동시에 함께 죽음을 맞이하였다.

 

화가 사비나는 토마시의 오랜 연인이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벼운 인물이다. 테레자에게 직장을 구해주고 사진작가로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 사비나의 예술가적 분방함을 동경하며 그녀를 사랑하던 또 다른 인물인 스위스 대학 교수 프란츠는 아내에게 이혼 통보하고 사비나를 찾아가지만, 그런 구속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비나는 이미 그를 떠났다. 공산주의에 적합한 예술만이 허용되는 모국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작가 생활을 계속한다.

 

프란츠는 사비나와의 결혼이 무산되지만, 곧 자신을 따르는 여학생과 별 고민없이 동거한다. 프란츠는 자신이 좋아했던 대장정의 일환으로 캄보디아의 공산 혁명운동에 참여하러 태국으로 갔다.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베트남군의 반대로 입국하지 못했고, 현지에서 골목길을 걷던 중 불량배의 공격을 받고 치명상을 입었으며, 귀국 후 아내의 품속에서 곧 숨을 거둔다.

 

3. 소감

(1) 인간의 한번 뿐인 삶, 가벼움과 무거움

인생은 단 한 번으로 끝나기에 쉽사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가벼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기에 매 순간이 절대적이고 무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가벼움과 무거움에 추가하여 영혼과 육체, 필연과 우연, 책임과 자유,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네 사람(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스위스에서 살던 테레자가 외도를 계속하는 토마시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토마시는 이틀 동안 달콤한 가벼움을 느꼈다.

55: 그는 테레사에게 얽매여 7년을 살았고 그녀는 그의 발길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마치 그의 발목에 방울을 채워 놓은 것 같았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 거의 날아갈 듯했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프란츠는 부인과 이혼하고 사비나를 찾아가지만, 삶의 무거움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사비나가 미리 떠나버렸다. 이후 사비나는 프란츠의 행동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게 된다.

203: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개인의 삶이 영원회귀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반복되지 않으므로 가벼운 것이다.

364: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2) 토마시와 테레자: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테레자는 육체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로 탈출: 모친의 약탈자 같은 억압에서 탈출하여 프라하의 토마시에게 갔다. 그가 문을 열어 주어 영혼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하지만 바람둥이 토마시는 테레자를 영혼의 존재로 대하지 않고, 또 한 명의 여자, 육체로 대한다.

 

토마시는 25년 동안 200명의 여성과 에로틱한 우정, 3의 법칙을 준수

233: 토마시는 사랑과 성행위는 서로 다른 두 세계라는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세상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과 유쾌한 허망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이야기라고 하는 이유: 연민의 대상이었던 테레자의 위치로 토마시가 자신을 끌어내렸기 때문. 즉 가벼운 세계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의 무거운 세계로 이동

* 토마시: 유망한 외과의사 => 스위스로 망명 => 프라하 돌아옴 => 기고문 철회 거부로 의사자격 박탈. 유리창 청소부 => 농촌 트럭 기사

* 첫만남: 6번의 우연 => 테레자가 토마시의 프라하 집으로 찾아옴: 바구니 아기 연민/동정 => 스위스에서 프라하로 돌아옴: 그래야만 한다 => 의사 자격 박탈후 유리창 청소부: 테레사 지킬 의무로 반체제 서명 거부 => 시골에서 트럭 기사: 사랑과 행복

 

515: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나는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516: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3) 키치

- Kitsch(키치)는 독일어로 얕은, 얄팍한, 피상적인의 뜻, 영어로는 shallow이다.

* 고급을 따라가고 싶은 저급함,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빈 위선으로 해석

 

- 사비나는 집단적으로 어떤 절대적인 가치, 무거움, 진지함을 추구하는 태도들을 키치라고 일컫고 그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 확고 부동한 동의를 표현하는 이러한 태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똥(더러움, 흠집, 실수 등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시선

406: 그녀에게 혐오감을 일으켰던 것은 공산주의 세계의 추함보다는 공산주의가 뒤집어쓰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였다.

 

키치적 사례 (박웅현 책은 도끼다’)

. 파쇼와 싸운 지도자의 아들,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 스탈린의 아들 이아코프의 죽음

. 유럽의 지식인 캄보디아에서 민주화 투쟁 중 사망: 프란츠의 죽음

 

(4) 인류의 실패: 사랑과 행복이 동물을 대하면서 무조건적, 자발적으로 더욱 발휘된다.

소설의 마지막 파트인 7부의 제목은 카레닌의 미소인데, 테레자가 키우던 개 카레닌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느껴지는 생각이다.

 

첫째, 인류가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동물 위에 군림한다는 데카르트의 잘못을 지적한 니체에 공감한다.

478: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바로 그런 니체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죽을병에 걸린 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쓰다듬는 테레자다. 나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행진을 계속하는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

 

둘째,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약자나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맡긴 동물에 대해서 발휘된다.

테레자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토마시에 대해서도 잘 대했는데, 이는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정중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고,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사랑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이처럼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선의도 이기적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기르는 개, 카레닌에 대해서는 어떤 강요도 없었던 자발적 사랑이 펼쳐졌다.

490: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셋째, 소설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다시 언급한다. 시작 부분에서는 영원회귀는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원형적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삶은 무거움과 가벼움, 이들은 상대적이고 내가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린게 아닐까?

492: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갈등이나 가슴이 메이는 장면, 진화같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 주위로 반복에 근거한 삶의 원을 그었고 두 사람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 주길 기대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테레자는 생각한다.

 

오직 현재의 자유만을 누리며 한없이 가볍게 사는 토마시, 반대로 운명적 사랑을 믿으며 무겁게 사는 테레자, 그 극단의 삶 사이 어느 지점에서 삶의 무게추가 이리저리 균형을 잡아가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인 토마시, 테레자, 프란츠가 어이없는 사고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 삶을 그렇게 무겁게 볼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또한 삶이 한없이 덧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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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부 가벼움과 무거움

12쪽: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
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
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14쪽: 그는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처럼 보였다.

16쪽: 지금 그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체험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17쪽: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 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17쪽: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이렇게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25쪽: 그의 모든 친구들 중 오로지 사비나만이 그를 잘 이해했다. 그녀는 화가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모든 점에서 키치와는 정반대라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키치의 왕국에서 당신은 괴물이야. 미국 영화나 소련 영화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파렴치한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을 거야."

38쪽: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39쪽: 토마시는 동정이 그의 운명(혹은 저주)이 되었기에 서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쓴 사비나의 편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인 것처럼 느꼈다. 그는 테레자를 이해했고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48쪽: 국민들의 행복한 도취는 점령 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체코 정치인들은 잡범처럼 소련군에게 끌려갔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소련군에 대한 증오는 술기운처럼 치밀어 올랐다. 증오감에 도취된 축제였다.

54쪽: 그는 그녀와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고 그들의 관계가 이보다 더 잘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달리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테레자는 예고도 없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떠났다. 그녀는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묵직 묵직한 트렁크를 들고 떠났다

55쪽: 그는 테레사에게 얽매여 7년을 살았고 그녀는 그의 발길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마치 그의 발목에 방울을 채워 놓은 것 같았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 거의 날아갈 듯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적 공간 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57쪽: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미래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월요일 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중압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그는 동정심에 굴복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채찍과 명령을 가했고, 동정심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을 따랐다. 동정심은 자기가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은근히 고집을 꺾지 않아서 테레자가 떠난 지 닷새 후 원장에게 당장 돌아가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끄러웠다. 무책임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원장이 생각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59쪽: 원장은 정말 화를 냈다. 토마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Es muss sein.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암시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중 마지막 악장은 이 같은 두 모티프로 작곡되었다.
이 단어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 첫 부분에 이렇게 써넣었다.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신중하게 내린 결정.

60쪽: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는다시 한번 말했다. "네, 그래야만 합니다! Ja, es muss sein!"

61쪽: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베토벤은 무거움을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 같다.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되었다. ("es muss sein!")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64쪽: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65쪽: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66쪽: 테레자의 호흡이 한두 번인가 가벼운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토마시는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

 

2부: 영혼과 육체

78쪽: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79쪽: 물론 테레자는 어머니가 남자 중 가장 남성적인 남자에게 조심하라고 속삭였던 밤의 일화를 몰랐다. 그녀가 느끼는 죄의식은 원죄와 마찬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속죄하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 어머니가 학교를 그만두게 하자 테레자는 15살부터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버는 돈을 몽땅 어머니에게 바쳤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할 수 있었다.

86쪽: 그런데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92쪽: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113쪽: (사비나) " 이 그림은 망친 거야.......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 그 뒤에는 무대 장치의 찢어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 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132쪽: 그녀는 그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오류에 근거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날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는 토마시를 속이기 위해 그녀가 사용했던 가짜 신분증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하던 중 30초쯤 말을 멈추었던 둡체크 같았고, 말을 더듬고 숨을 돌리고 말을 잊지 못했던 그녀의 조국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곤 카레닌의 털북숭이 머리에 뺨을 대고 그녀는 말했다. "카레닌, 날 원망하지 마. 다시 한번 이사를 가야겠다."

136쪽: 그녀에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러했다. 토마시는 그녀 때문에 돌아왔다. 그녀 때문에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제 그녀를 책임질 사람은 그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그녀가 그를 책임져야 한다.

 

3부 이해받지 못한 말들

156쪽: 배신. 우리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교사들은, 배신이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것이라고 누차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배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배신한다는 것은 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신이란 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사비나에게 미지로 떠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169쪽: 프란츠는 책에 파묻힌 그의 삶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그는 현실적 삶, 다른 남자들, 혹은 다른 여자들과 나란히 걸으며 느끼는 접촉, 그들의 환호 소리를 희구했다. 그가 비현실적이라 판단했던 것(도서관에 고립된 그의 연구 생활)이 그의 현실이며, 그가 현실이라 간주했던 시위 행렬은 하나의 볼거리, 춤, 축제, 달리 말하면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는 데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186쪽: 그는 의자를 떨어뜨리지 않고 팔걸이를 수직으로 세우는 데 성공했고 사비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아니 기분 좋네!"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프란츠는 강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약하다. 프란츠의 허약함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88쪽: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다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이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192쪽: 공개적으로 변한 사랑은 무게를 더할 것이고 짐으로 변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허리가 휘었다.

200쪽: 그 순간 그는 불현듯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사비나라는 육체의 존재가 그가 믿었던 것보단 훨씬 덜 중요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의 삶에 각인해 놓았던 황금빛 흔적, 마술의 흔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로부터 앗아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자유와 새로운 삶이 부여한 이 예기치 못한 행복, 이 편안함, 이 희열, 이것은 그녀가 그에게 남겨준 선물이었다.

 

201쪽: 어느 날 그는 부인을 찾아가 다른 여자와 재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리클로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혼 한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당신은 아무 것도 잃을 거 없어. 당신에게 다 주겠어!"

"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 뭐가 중요하지?"

"사랑."

"사랑이라고?"하며 프란츠가 놀랐다.

마리클로드는 미소를 지었다. "사랑은 전투야. 나는 오랫동안 싸울거야. 끝까지."

"사랑이 전투라고? 나에겐 싸울 마음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어."라며 프란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203쪽: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207쪽: 그는 돈 후안이 아니라 트리스탄으로 죽은 것이다. 사비나의 부모는 같은 주에 세상을 떠났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같은 순간에 죽었다. 갑자기 그녀는 프란츠와 함께 있고 싶어졌다.

 

211쪽: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던 유일한 것은 프란츠가 러시아의 탄압을 받았던 모든 나라에 대해 품은 이상한 동정심이었다.  

 

4부 영혼과 육체

229쪽: 불현듯 그녀는 하녀를 내쫓듯 이 육체를 파면하고 싶었다. 오직 영혼만이 토마시와 함께 있고, 육체는 다른 여성의 육체들이 남성의 육체들과 하는 짓을 똑같이 할 수 있도록 멀리 추방하고 싶었다! 그녀의 육체가 토마시에게 유일한 육체가 될 수 없었고, 테레자 인생의 가장 큰 전쟁에서 패배한 육체이기에, 그렇다면 멀리 꺼질지어다, 육체여!

 

233쪽: 토마시는 사랑과 성행위는 서로 다른 두 세계라는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세상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빅극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과 유쾌한 허망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벼움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5부 가벼움과 무거움
291쪽: 그러자 누구나 공산주의자를 비난했다. 이 나라의 불행과 독립의 상실과 합법적 살인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당신들이요! 이런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대답했다.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은 거야!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백한 거야!

292쪽: 그리고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92쪽: 토마시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줄 몰랐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그는 자기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315쪽: 보헤미아에서 의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국가가 의사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국가에 그럴 의무까지는 없었다. 토마시는 동료와 함께 자신의 사임에 대해 토론했는데, 그는 토마시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를 존경했다. 그는 토마시에게 직장을 떠나지 말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토마시는 문득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지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일종의 충성 서약 같은 것에 의해 이 결심과 자신이 이미 결부되었다고 느껴 사임을 고집했다. 그래서 그는 유리창 닦는 노동자가 되었다.

324쪽: 이제 그는 유리창을 닦는 긴 막대기를 들고 프라하를 누비고 다녔으며 십 년은 젊게 느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326쪽: 내가 여자와 관계를 맺은 지 이제 그 25년이 넘었어. 200을 25로 나누어봐. 매년 새 여자가 8명쯤 있었던 셈이지. 그리 많은 건 아니잖아. 그러나 테레사와 함께 살면서부터 그의 에로틱한 행동은 시간 배정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343쪽: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은유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 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359쪽: 서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직까지도 고민하는 이유가 뭘까? 그의 모든 결심 기준은 하나뿐이다. 테레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 것. 토마시는 정치범은 구할 수 없었지만 테레자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다. 아니다, 그것조차도 그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탄원서에 서명한다면 경찰이 더욱 자주 그녀를 괴롭히러 올 것이며 그녀의 손은 더욱 심하게 떨릴 것이라는 것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363쪽: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역사도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다. 체코인들에게 역사는 하나뿐이다. 토마시의 인생처럼 그 역시 두 번째 수정 기회 없이 어느 날 완료될 것이다.

364쪽: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6부 대장정
405쪽: 존재에 대한 확고 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이것은 감상적이었던 19세기 중엽에 생겨나 그 이후 다른 모든 언어에 퍼졌던 독일어 단어다. 그러나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함에 따라 그것이 지닌 원래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지워졌는데, 말하자면 키치란 본질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문자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에서 그렇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406쪽: 공산주의에 대한 사비나의 첫 번째 내면적 저항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학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녀에게 혐오감을 일으켰던 것은 공산주의 세계의 추함보다는 공산주의가 뒤집어쓰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였다. 이러한 키치의 모델은 소위 5월 1일 축제였다..

417쪽: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에 숨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 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 사비나가 테레자에게 자기 그림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앞은 이해 가능한 거짓말이고 그 뒤로 가야 이해 불가능한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422쪽: 프란츠가 미치도록 좋아했던 대장정이라는 개념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성향의 좌익 인사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정치적 키치였다. 대장정이란 멋진 전진, 장정이 대장적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우정, 평등, 정의, 행복을 향해 멀리 나아가는 노정이었다.

443쪽: 통역관은 세 번째로 확성기되고 소리쳤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침묵뿐이었고, 그 때문에 갑자기 프란츠의 고뇌는 광적인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다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다리로 뛰어가 하늘을 향해 끔찍한 욕설을 퍼붓고는 요란한 총성 속에서 죽고 싶다는 엄청난 욕망에 사로잡혔다.
프란츠의 이러한 돌연한 욕망에 우리는 뭔가 떠오른다........ 스탈린의 아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대장정의 영광이 행진하는 사람들의 코믹한 허영심으로 축소되고, 유럽 역사의 장대한 소란이 무한한 침묵 속으로 실종되어 역사와 침묵 간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도 없게 되는 것을 프란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대장정이 똥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칭에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올려 놓았을 것이다.
..... 총을 맞고 죽는 대신 프란츠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버스로 돌아갔다.
...... 푸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몽상가이다. 예를 들면 프란츠가 그렇다. 그가 캄보디아 국경까지 간 것은 오로지 사비나 때문이다. 버스가 태국의 도로에서 들컹거릴 때 그는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다고 느낀다.

453쪽: 그는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낀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그는 그 여학생과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달았다. 문득 캄보디아 여행이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하게 보였다. 도대체 왜 이곳까지 왔을까? 이제 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여행을 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삶, 유일한 실제 삶은 행진도 사비나도 아니며 안경 낀 여학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였다. 현실이란 꿈을 뛰어넘는 것, 꿈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란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7부 카레닌의 미소
475쪽: 창세기에서 이미 신은 인간에게 동물 위에 군림할 권한을 주었으나, 그 권한이란 단지 빌려 준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될 수도 있다. 인간은 이 행성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경영인에 불과하고 어느 날엔가 경영 결산을 해야만 할 것이다. 데카르트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름 아닌 그가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는 사실에는 필경 심오한 물리적 일관성이 있다. 인간은 소유자이자 주인인 반면, 동물은 자동 인형, 움직이는 기계, 즉 Machina Animata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동물이 신음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작동 상태가 나쁜 장치의 삐걱거림에 불과한 것이다. 차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마차가 아픈 것이 아니라 기름칠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의 신음 소리는 이런 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하고 실험실에서 산채로 조각나는 개 때문에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477쪽: 테레사는 태평하게 무릎을 베고 누운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대상에게 잘 대해준다는 것은 아무런 미덕도 아니다. 테레사는 다른 마을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토마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랑 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우리 감정, 우리 사랑이나 비-사랑, 우리의 호의 혹은 증오의 결과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개인간 역학관계에 의해 사전에 규정되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 가장 근본적인 실험, (너무 심오한 차원에 자리잡고 있어서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그것은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동물들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 실패가 발생하며, 이 실패는 너무도 근본적이라 다른 모든 실패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478쪽: 내 눈앞에는 여전히 나무 둥치에 앉아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류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테레자가 있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바로 그런 니체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죽을병에 걸린 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쓰다듬는 테레자다. 나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행진을 계속하는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

488쪽: 전원시라는 단어가 테레자에게 왜 그리 중요했을까? 구약성서의 신화 속에서 성장한 우리에게 전원시란 여전히 낙원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의 삶은 우리를 미지로 끌고 가는 직선 경주와는 동떨어졌다. 그것은 모험이 아닌 셈이다. 이미 아는 것들 속에서 뱅뱅 도는 삶인 것이다. 그 단조로움은 권태가 아니라 행복이다.

490쪽: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492쪽: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510쪽: 그녀의 가슴이 회환으로 묵직해졌다. 그가 취리히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온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그가 프라하를 떠난 것도 그녀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죽어가는 카레닌 앞에서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의심을 하며 그를 괴롭힌 것이다.

511쪽: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
그녀는 뜨거운 물속에 누워 자신이 일생 동안 자신을 허약함을 빌미로 토마시를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했다.

515쪽: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 "나는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516쪽: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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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정말 가벼운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에서는 네명의 서로 다른 등장 인물을 통해서

무거움과 가벼움, 영혼과 육체, 필연과 우연, 책임과 자유, 그리고 역사와 개인의 실존에 대한 문제를 모두 복잡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비나집단적으로 어떤 절대적인 가치, 무거움, 진지함을 추구하는 태도들을 키치라고 일컫으며 그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그처럼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 확고 부동한 동의를 표현하는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바라볼 때는 세상에 존재하는 똥들을 무시하는 태도인데요. 다시 말해서 똥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더러운 것일 수도 있고 어떤 흠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수일 수도 있고 이러한 점들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러한 키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들이 주장하거나 믿는 어떤 절대적 가치와 그리고 숭고함 그리고 진지함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사비나의 관점을 대변하는 부분을 또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장정을 추구

그것은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 장 카레닌의 미소에서 발견하는데 카레닌이라는 테레자가 키우던 개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테레자가 느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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