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1919년 출간 * 한줄 감상: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삶, 즉 개성화를 추구 * 기억할 문장: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Modern Library 선정 20세기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 |
1. 저자 소개: 서머싯 몸 (1874~1965)
- 프랑스 파리 출생, 니스 사망이지만 영국인. 8세 때 어머니, 10세 때 아버지 별세
-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 독일 유학 후 런던 의과 대학 입학
-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 첩보부원으로 활약. 1917년 러시아 잠입
- 주요작품: 인간의 굴레에서(1915년), 달과 6펜스(1919년)
- 달과 6펜스: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과 작품에서 영감. 타히티 방문. 백만장자의 신부감 광고로 히트
2. 스토리
8쪽: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소설 속에는 나(화자)가 등장한다. 주인공 스트릭랜드 사후 4년이 흘러 그의 미술 작품이 재평가되면서 천재성이 인정되었다. 이에 화자가 스트릭랜드가 화가가 되기 전의 런던, 화가로서 어려웠던 파리 그리고 말년을 보낸 타히티에서의 흔적들을 회상하며 소설이 진행된다. 미술의 작품성은 이미 전문비평가들이 인정하는 터이고, 자신은 그의 인격과 관련된 부분을 다룬다.
나는 런던 사교계에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에이미 스트릭랜드 부인을 만나 자주 어울렸고, 주식 중개인인 남편 찰스 스트릭랜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스트릭랜드 부부는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남편은 40세, 상당한 성공을 이뤘고 행복한 듯했다.
36쪽: 거기에는 잘 정돈된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내 혈기는 좀 더 거친 삶의 방식을 원했다. 그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에는 무엇인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을에 기막힌 소문이 나도는데 스트릭랜드가 어떤 여자하고 눈이 맞아 17년 결혼의 부인을 버리고 파리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파리로 가서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달라는 부인의 부탁을 받는다.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구설수가 무서워서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이런 충격적인 사건 와중에도 세상의 평판을 먼저 신경 쓰는 스트릭랜드 부인을 보고 좀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부인과의 친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트릭랜드를 설득하러 파리로 갔는데, 그는 아주 허름한 숙소에서 기거중이었다. 그는 부인과 아이 둘을 혼자 힘으로 살도록하고 떠나 온 것에 대하여 창피하거나 죄의식이 없다고 밝힌다. 대신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나이 40이라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기회가 없었고 일년 전부터 야간반에 나가 그림을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69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나는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스트릭랜드 부인에게 남편은 여자와 바람난 게 아니라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간거라고 말해주었다. 부인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사랑 때문에 나간게 아니라면 절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거라며 남편과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한다. 이후 부인은 속기와 타자를 배워 사무실을 열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달아난 남편을 갖고 있다는 이력을 감추기 위해 자신은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아들과 예쁜 딸이 있다는 사실을 입에 달고 살았다.
5년 후 나는 단조롭고 판에 박힌 런던 생활에 싫증을 느껴 파리로 이주했는데, 화가 더크 스트로브와 자주 어울렸다. 그는 화가로서는 자질이 떨어지지만 작품을 평하는 안목은 뛰어났다. 바로 그가 스트릭랜드를 만난 적이 있었고 백년 후 빛을 볼 천재라고 평했다.
스트릭랜드는 매일 빵 한 조각에 우유 한 병으로 궁핍하게 생활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격렬한 개성을 캔버스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느날 스트릭랜드가 크게 아파서 스트로브가 자기의 집으로 데려왔고 부인 블란치가 6주간이나 극진히 간호를 하였다.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에서 나는 야수성과 원시성을 엿보게 된다.
138쪽: 얼굴에는 야수적인 관능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말이 안되는 것 같기는 해도, 그의 관능성에는 야릇하게 영성이 어려 있는 듯했다. 그에게는 어딘지 원시성 같은 것이 있었다.
다시 이삼 주일이 지났는데 블란치가 스트릭랜드와 사랑에 빠졌고 오히려 스트로브가 집을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블란치는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0쪽: 사랑이란 무엇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스트릭랜드가 그런 상태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외부의 낯선 속박을 견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미지의 어떤 것으로 몰아가는 그 불가해한 갈망을 방해하는 것이 혹시 자기 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 방해물을 가슴속에서 뿌리째 뽑아낼 수 있는 인간 같았다.
스트릭랜드는 블란치를 모델로 누드 그림을 한 점 남겼다. 스트로브가 이 그림을 보자 그림에다 커다란 구멍을 내줄 작정으로 팔을 막 치켜들었을 때, 그 순간 그는 진짜 예술 작품을 보았고, 감히 손댈 수가 없었다. 겁이 났어.
191쪽: 스트릭랜드는 그때까지 자신을 얽매어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뭐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힘으로 넘치는 새로운 혼을 발견했던 것이다. .... 거기에는 어떤 영적인 것이, 혼을 어지럽히는 전혀 새로운 어떤 영성이 깃들어 있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을 이끌어 가면서, 영원한 별들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 빈 우주를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221쪽: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베 사막에 사는 은자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찰스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릭랜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5년 전, 그가 죽은 지도 벌써 9년이 흘러 나는 우연히 타히티를 방문했다. 이곳은 스트릭랜드가 오랜 방랑 끝에 이른 곳이었으며, 바로 그 자신의 명성을 확립시켜준 그림들을 그려낸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필요한 소재들을 사방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259쪽: (나의 친구 이야기를 티아레에게 해주었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타히티에서 만난 캡틴 니콜스가 스트릭랜드를 회상해주었는데, 그는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로 갔으며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는 등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말다툼과 싸움에 휘말렸고 이를 피해 배를 타고 타히티로 건너왔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 타히티에서도 처음에는 늘 돈에 쪼들린 부둣가의 떠돌이에 지나지 않았고 농장 감독도 잠시 하기도 했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다.
타히티 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티아레의 중매로 방 청소하는 17살 원주민 아타가 스트릭랜드와 살림을 차렸다. 이후 3년간이 스트릭랜드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목조 방갈로 집은 섬의 도로에서 8km 떨어진 오지였다. 그래서 스트릭랜드와 아타는 몇 주일씩이고 사람 구경을 못하는 수도 있었다. 아타는 아이를 낳았고, 출산을 도우러간 할머니는 그대로 눌러 살게 되었다.
찰스는 나병으로 진단되고 혼자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하지만, 아타는 '당신은 내 남자고 나는 당신 여자예요, 당신이 어딜 가든 나도 따라가요'라며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 할머니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결국 찰스와 아타, 아이들만 남는다. 2~3년이 흘렀고 찰스가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에 닥터 쿠트라가 오두막 집을 방문하는데 사방의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일년 가까이는 앞을 보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었다.
293쪽: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295쪽: 내 생각에 스트릭랜드는 최후의 힘을 내어 거기에다 자신의 온 존재를 표현했던 것만 같았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깨닫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삶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 자신이 깨달은 모든 것을 그 그림에 표현했음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는 마침내 거기에서 평온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사로잡은 악마를 마침내 몰아내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준비해왔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외로움과 괴로움에 지쳐 있던 그의 영혼 휴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닐까.
299쪽: 스트릭랜드 본인도 그게 걸작인 줄 알았을 겁니다. 자기가 바랐던 걸 이룬 셈이죠. 자기 삶이 완성된 거예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것을 바라보니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 다음 자부심과 함께 경멸감을 느끼면서 그걸 파괴해 버린 거죠.
나는 런던으로 돌아와 스트릭랜드 부인을 방문했다. 벽에는 스트릭랜드의 걸작품을 원색으로 복제한 그림들이 몇 장 걸려 있었다. 은근히 자신이 남편과의 관계가 늘 좋았다며 천재의 아내로서 남편에 관한 사항을 세상에 알려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3. 소감
(1) 달과 6펜스의 상징
- 소설 본문에서는 달과 6펜스에 대한 언급을 찾지 못했음, 타이틀로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 달은 예술, 이상을 암시하고 6펜스는 물질, 현실의 세계를 암시한다.
- 역자 송무의 해설: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2) 나이 40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꿈을 찾기에 늦은 때는 없다.
- 스트릭랜드는 나이 40세, 결혼 생활 17년, 두 아이들, 이런 상황에서 현실을 벗어나 '숭고한 예술'을 추구하는 삶에 집중한다. 삶에서 뭔가 결핍을 느낄 때, 향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떠나는 용기. 일반인들은 좀 더 젊은 나이라면 가능할까?
- 작가 정여울은 에고와 셀프의 개념으로 설명: 에고는 사회화, 즉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셀프는 개성화, 즉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는 에고가 훨씬 강해서 셀프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파리에서는 셀프가 점점 커졌으며, 도시인의 문명에 길들지 않은 타히티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였다.

(3) 스트릭랜드 주변 여성
- 런던의 아내 에이미는 파리로 떠난 남편이 돌아오면 용서하겠다며 한계를 설정
- 파리의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에게서 야수성, 원시성이라는 매력을 느끼며 내가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하라. 하지만 그는 블란치를 누드 모델로 활용한 후에는 흥미를 잃는다.
- 타히티에서 아타의 헌신적 사랑을 체험하며 스트릭랜드는 진정한 자기와 사랑을 찾았다.
(4) 스트릭랜드의 인격
-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져버린 것, 자기를 병에서 구해준 스트로브의 아내와 동거후 냉대하여 결국은 자살하게 만든 것을 보면 스트릭랜드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기까지 하다.
-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세속 사회의 가치와 평판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이미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있다. 오히려 이런 해방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나병에 걸려 눈까지 멀었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그는 초연하다. 이때 영혼의 눈은 더 밝아져 자신의 최고의 걸작을 남겼다.
- 예술을 향한 과정에서 주변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자신과 주변의 희생에 흔들리지 않는 독한 마음 없이는 성공은 없는 듯하다. 사회화와 개성화 모두를 이루는 것, 달의 세계와 6펜스의 세계 모두를 갖는 것은 더 과한 욕심이 아닐까? 이 둘을 조화스럽게 공통 분모를 취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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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의 앞부분에서는 아주 모범적이고 그리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스트릭랜드라는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실종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그전에 아주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이야기가 보이는데,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그 가족의 이면에는 어디론가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완전히 바꾸고, 그리고 가족까지 버리고 누구도 자신을 못쫓아오게 하고,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하는 한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가 있습니다.

찰스의 삶을 보면 그에게 어떤 것을 배우고 싶기도 하고 또 부인으로부터 제발 잃어버린 우리 남편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라는 주인공이 그 사람을 찾아 떠나기 전에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잘 정돈된 행복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조금 불안해 보이는, 즉 오히려 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여서 뭔가 부숴질 것 같은 어떤 불안함을 느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한 거지만 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모험적 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한 번도 실현해 보지 못했던, 겉으로는 완벽했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마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모험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자신이 뭘 잘하는지, 어떻게 해야할지, 과연 새로운 삶을 꿈꾸었을 때 그 결과는 어떨지에 대한 보장이 없었던거지요. 하지만 그 모험을 위해서 어떤 험한 암초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매혹을 느끼면서도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것 같다. 왜냐하면 너무 갑작스럽거든요.

찰스는 지금 이미 40대 나이고, 아이들도 커가고 있고, 그리고 부인은 남편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까 화가가 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나 미쳐버릴 것 같다는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예전부터 그림을 취미로라도 그렸다던가, 아니면 저 사람은 뭔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 이런 느낌을 줬으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해를 가질 수 있을 텐데 아무에게도 말도 안하고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살겠다는 어떤 편지 조차도 남기지 않고 부인을 떠났기 때문에 부인은 너무 당황스럽고 버려진 느낌이고 너무나 절망적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는 있지만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직업이 있거나, 가족이 있거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중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완벽한 중산층의 안정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찰스는 행복하지 않았던 거다. 마음 속에서는 난 이게 아닌데, 이 증권 회사의 유능한 중개인으로 살고 있지만 행복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고 있지만 난 별로 행복하지 않고 이건 나의 삶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런던인데, 런던의 아주 가장 발달된 문명,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사교계의 일원으로 굉장히 잘 살고있고 행복한 모습을 그동안 전시하듯이 쇼윈도 부부처럼 살았던거다. 그래서 부인은 그 삶을 굉장히 행복하게 여기고, 남편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거의 숭배할 정도로 사랑한다. 그런데 찰스는 그것조차 위안이 되지 않았던 거다. 부인이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아이들이 그렇게 귀여운데도 그는 그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남들은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지만, 돈도 많고 그리고 또 직업도 안정적이고, 그리고 런던의 이 복잡한 도시에서 그렇게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거,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인 평판으로나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찰스가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이거는 야반도주를 한 것이 아니냐,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서 그것도 아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야반도주를 한 것 같다는 소문이 나버렸다. 독자도 처음에는 모른다. 정말 야번도주 한거 아닐까.

그런데 조금 이따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 같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도 없고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재능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한번도 칭찬을 받아왔다든지 아니면 그전에 그림을 그려봤다는지 이런 경험 조차 없는거다. 그런 상태에서 런던에서 파리로 무작정 떠나고, 어디있는지 주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택한 이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그런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너무 충격인거다. 찰스를 알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실망을 하고, 그리고 그림을 그리러 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졌을 거다, 그것도 아주 어린 여성과 이런 헛소문이 났다.

그런데 막상 이 나라는 주인공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찰스를 바라본다. 그런데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다. 막상 가봤더니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부근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돈도 없었다.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와서 월세와 끼니를 걱정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빛이 나고 얼굴에도 열정의 빛이 보인다.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 뭘 하든 집에 와서 하라고 권유를 했다. 부인이 너무나 걱정을 한다, 당신 돌아오기만 한다는 당신이 부인에게 준 모든 상처를 잊어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찰스는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고 얘기한다.

너무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그렇지만 눈에서는 열정과 어떤 삶에 대한 희망 이런 것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준다. 달과 6펜스는 고갱의 삶을 모델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고갱이 타히티 섬으로 그림을 그리러 떠나게 되는데 당시 화가로서 최초였기 때문에 굉장히 화제가 됐었고, 고갱이 스트릭랜드 처럼 가족과 연락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가족과 연락을 하고 부인과도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굉장히 인기가 많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비슷한 설정이다.

나라는 관찰자와 찰스가 이야기를 나눈 그 장면을 보면 마치 벽에다 대고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찰스를 약간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는 한데 저 사람처럼은 나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 고갱을 모델로 하긴 했지만 풀 고갱 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그린 것 같다. 그래서 헤엄을 잘 치고 못치고가 아니라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그림을 그려야 숨을 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 행위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한 열정이고 순수한 열망이기 때문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거다.

그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걱정을 하게된다.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정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왔는데 과연 성공할 수 없다면, 화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면 이건 너무 창피한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하다. 정말 내가 너무너무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이전의 일을 접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평판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전 일에서는 인정을 받았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다른일을 하게 되면 그 때는 완전히 밑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되니까. 그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하면 과연 내가 기존 직업에서 갖고 있던 그 평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공포를 느끼게 되는거죠. 그런데 찰스는 그런 공포 조차 느끼질 않아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완전히 미쳐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찰스 스트릭랜드와 고갱의 삶에 어떤 공통점이 그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런 열정적인 모습, 사람들이 생각은 하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너무나 위험한 모험이 더 한 거죠. 그렇게 멋들어지게 떠나왔는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면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창피 하겠죠. 하지만 나이도 많고 재능도 인정을 못받은 그 스트릭랜드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 절박함과 절실함 하나만으로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냥 예술에 올인해버린 거죠. 자신의 삶을 던져 버리는거죠. 그래서 파리에 있는 동안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 나증에 영양실조까지 걸려요. 영양실조가 걸릴 정도로 괴로워 하면서도 식음을 전폐하고 그림을 그리는 거죠. 아주 허름한 방에서. 그 모습에 나라는 주인공이 처음에는 당황을 하다가 점점 감동을 받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부인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해 질 수밖에 없었지만, 부인이 나중에는 포기해버려요, 안올 것 같으니까. 이 재능과 열정의 길을 따라서 떠난 사람들의 특징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좀 특이한 점이 노력도 안해요. 노력도 안하고 저절로 돼요. 이 사람은 열정이 최고치에 달했기 때문에 그 순수한 예술을 향한 열망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 자체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이 가족을 버린 나쁜 남자라는 타인의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그림을 향한 순수한 정열만으로 자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예술가의 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아니면 뭐 인상파나 이런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그냥 자기 그림, 나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매혹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릭랜드는 완전히 집중을 하게 돼요.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이나 직업이나 어떤 사회적 평판이 아니라 완전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원시성과 야수성을 갖춘 사람인데, 이 원시성과 야수성이 본 작품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게 뭐냐면 도시에서 살고 문명인으로서 살았던거다. 현대인이고 런던이라는 아주 대도시에서 정말 문명화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너무나 불편하고 가난하고 초라한 삶을 견디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파리에서 자기가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니까 파리라는 예술의 도시에서는 어떤 기본기를 다진
습작의 시기였고 그리고 파리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니까 타히티라는 좀처럼 사람들이 가지 않는 정말 머나먼 섬으로 가게되는데 ,타히티에서는 뭔가 내가 꿈꾸는 그 원시적이고 야수적이고 어떤 생동감 넘치는 그런 원주민들의 삶의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당시로서는 굉장히 용감한 선택이었고 어떤 풍토 병에 걸릴 것 같은 그런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스트릭랜드의 외모를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이 묘사를 보면 찰스가 보통 도시인들의 길들여진 모습 그리고 문명인으로서 편안하게 적응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사람은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도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못생겼지만 매력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정돈되지 않은 어떤 매력을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의 관능 그리고 영성,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관능은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고 남성으로서 매력적이라는 뜻도 되서 그리고 영성이라는 말은 그의 마음 속에는 그의 어떤 눈빛 속에는 뭔가 이 세속적인 것을 초월하는 어떤 힘,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초월하는 어떤 성스러운 에너지가 숨쉬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 세상의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지 않는, 뭔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그 매력에 나라는 주인공이 점점 빠져들게 되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리러 갔다가, 처음에는 스트릭밴드가 제발 집으로 돌아오세요라고 말리러 갔다가 나중에는 스트릭밴드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자기도 왠지 모방하고 싶어져요. 나도 이렇게 도시에서 사는 거 싫은데, 나도 이렇게 런던에 늘 보는 사람들만 보고 늘 비슷하게 사교계에 어떤 안정된 질서 속에서 남들에 대한 약간의 험담을 즐기면서 그렇게 일상적이고 세속적으로 사는 것이 뭔가 권태롭다고 생각이 되요. 그러니까 그 권태가 이 도시적인 삶에 대한, 문명인의 삶에 대한 권태가 스트릭밴드에게로 이 나라는 사람을 이끌었던 거죠. 그래서 스트릭밴드는 이 현대인이나 문명인이나 도시인이라 불리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고, 전화도 없고 편지도 안하고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는 완전히 봉인된 상태로 그림을 그리게 되요.
그런데 이 봉인이라는 개념은 심리학적인 단어이기도 하는데, 봉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주변의 모든 자극으로부터 자기를 차단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나의 길로 가기 위해서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기도 해요. 오직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서, 오직 나의 미션에 완전히 나를 던지기 위해서 그냥 혼자서 그림을 그린 거예요. 혼자서 그림을 그렸는데 스트로브란 화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정말 천재구나 생각하고, 스트로브란 화가는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굉장히 겸손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천재적인 화가인 스트릭랜드가 배가 고프고 그리고 너무나 힘든 상태에서 혼자서 정말 목숨을 걸고 그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요.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저 사람이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내가 반대하니까 스트로브는 천재 옹호론을 펼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천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호를 해줘야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내를 이런 식으로 설득하는 거에요. 천재는 정말 우리가 보호해야 될 너무나 소중한 존재고, 이 세상에서 정말 천재를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천재가 아니지만 나는 화가로서 실패했지만 내가 그 사람을 돕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내가 이제 이 사람을 위해서 밥도 해줘야 되고, 빨래도 해 줘야하고 모두 보살펴줘야 되는 그런
처지가 된거죠.

그래서 예술가나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렇게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스트릭랜드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내는 처받고 그리고 이 스트로브 가족도 결국에는 스트릭랜드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요.

이런 것을 에고와 셀프의 차이라고 하는데, 에고는 사회적인 자아인데 그래서 에고는 끊임없이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신경을 쓴다. 저 사람이 날 인정해 줄까,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까, 그래도 내가 이 정도는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는게 에고이다. 그래서 사회적 시선에 항상 결박되어 있다. 그런데 에고가 없으면 셀프도 없거든요. 에고와 셀프는 원래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는 하나였어요. 그래서 어린이들 보면, 아기들을 보면 눈치를 안본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죠. 그래서 에고와 셀프가 아직 분화되기 이전에 우리는 굉장히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나누면서 에고와 셀프가 나뉘게 되는데 에고가 사회적 자아라면 셀프는 내면의 자기이거든요.

그 내면의 자기는 계발을 해야만 깨어나요. 그러니까 스트릭랜드 처럼 그림을 그린다든지, 작가들처럼 글을 쓴다든지 이런게 대표적으로 셀프를 개발하는 과정이에요. 진정한 내면의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시선이 있는 곳에서도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근데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마음가짐이 돼요.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그걸 하고 있죠. 그리고 아주 극단적인 방식인데, 사실 이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이런 식의 예술가가 되는 법을 여러분들에게 권해 주기에는 좀 위험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분명해요.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억압 됐을 때 마음의 병이 올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 중년의 위기라고 할 때 40대 이후에 이런 일이 많이 생기는데 스트릭랜드도 40대 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한 번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위험하죠. 진정한 자기를 그러니까 셀프 를 찾아 볼 수 있는 어떤 마음의 여유 없었던 거에요. 그리고 끊임없이 가정을 위해서 끊임없이 직장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굉장히 멀쩡해 보이는데, 훌륭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속으로는 막 타 들어간 거죠.

번아웃 증상을 겪을 수도 있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스트릭랜드 처럼 완전한 일탈, 지금까지 내 삶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에고와 셀프를 젊었을 때부터 보살펴야 되는 것 같아요. 진정한 나의 내면의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사회적 자아가 어떤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의 사회적 자아는 무엇을 추구하는 지를 알아야 셀프도 발견이 되고 더 계발이 될 수 있어요.

스트릭랜드는 40대 초반까지는 계속 에고로만 살아오다가 셀프가 너무 억압된 거죠. 그 억압된 셀프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이 그렇게 갑자기 터져 나오게 된거죠. 에고의 사슬을 풀어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그 대목을 한번 읽어 드릴게요.


그런데 이건 일상적인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타인의 시선을 모두 차단하고 완전히 나의 미션에 올인하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초월의 경지라는 거다. 스트릭랜드는 아주 짧은 시간에 도달했는데 몇 년 만에, 왜냐하면 모든 걸 다 차단하고 예술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재능이 있었던 거에요. 다행히 재능이 있었고 그리고 그 재능을 위해 자기의 삶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제가 좀 비판적으로 보고 싶은 면이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작품의 중반부 까지는 여성에 대한 가혹한 착취가 계속 일어나거든요. 일단 아내를 착취한다. 아내의 행복을 빼앗고 그 다음에는 스트로브의 아내를 괴롭혀요.

스트로브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서 그녀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든 다음에 버려요. 이젠 네가 필요없다고 그렇게 해서 또 한 번의
상처를 주고. 근데 마지막에 타히티에 가서 또 사랑에 빠지는데 스트릭랜드가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사랑을 받아요. 자신은 생각할 수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첫번째 아내는 스트릭렌드에게 어떤 스위트한 가정, 행복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역할만을 원했어요. 그러니까 그게 아닌 스트릭랜드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두번째 여인 블란치는 열정적인 사랑만 원해요. 그러니까 야수성, 원시성이라고 했던 스트릭랜드인데 그 매력을 본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남편에게는 전혀 없는 완전히 반대되는 면을 찾아요. 블란치는 자신에게 이런 끊임없는 열정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스트릭랜드라고 하는 거죠.

스트릭랜드는 이 여성을 처음에는 정말 자신의 살림을 도와주는 빨래를 해주고 밥을 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보다가 블란치가 자신을 사랑하니까 스트릭랜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둘이 이제 사랑을 하면서 또 누드모델로 활용을 해 버린다. 그런데 그 여자의 누드를 그리고 나서는 관심이 없어져 버려요. 사랑이 떠나버려요. 그러니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랑만 한 거죠.

너무 잔인하다. 이렇게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여성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거에요. 여기서 독자가 스트릭렌드에게 분노를 하게 되죠. 어쩌면 이럴 수가, 아무리 예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다니. 그런데 지금 나라는 관찰자가 이 사람을 계속 보다 보니까 이 사람이 왜 이러는 지를 점점 더 알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나도 어쩌면 저렇게 예술을 향해서 나의 재능을 찾는 그 꿈과 모험을 위해서 떠나고 싶은데 떠날 만한 용기가 없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런 얘길 하죠.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서 내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내가 어떤 그림을 그려야 될 지 이제 느낌이 오는 거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고 내가 나 자신의 셀프를 찾기 위해서, 나의 에고가 아닌 셀프를 더 계발하기 위해서는 뭔가 야생의 유토피아 같은 그런 장소를 찾아야 되겠다, 그게 바로 타히티였어요. 그래서 오직 자신의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이 야생의 숨결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도시인의 문명에 길들지 않은 정말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 타히티 섬을 선택한 이유는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물론 이것도 서양 중심적인 사고이기도 하죠. 문명인 중 심적인 사고고, 도시인 중심적인 사고이다. 파리에서 그림을 잘 그리고 있다가 이제 좀 안정을 찾나 싶었는데 떠났네요. 그것도 도시가 아닌 가기도 힘든 타히티로 가겠다고 하니까 또 한번 이제 소문이 난 거죠. 저사람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돼요. 그러니까 파리는 과도기였던 거다. 파리는 뭔가 자신이 끊임없이 모색하는 에고와
셀프의 중간단계 였는데, 런던에서는 에고가 훨씬 강해서 셀프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파리에서는 셀프가 점점 커져서 진정한 나를, 내면의 자기를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절정에 다다른 거죠.


그런 다음에 타히티에 갔을 때는 이제 어느 정도 완성이 돼서 간 거예요. 타히티에 갔을 때는 이제 완전히 개성화가 된거죠. 런던에서는 사회화된 상태였어요. 사회화와 개성화는 서로 반대되는 말이다. 사회화는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상태,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겪어왔던 것이 사회화인데,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규칙과 여러가지 어떤 제도를 지켜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제도나 유행에 따라서 내가 정말 저 차를 사고 싶은 것은 아닌데, 정말 저 옷을 입고 싶은 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입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 차를 좋다고 하니까 구입한 것과 비슷해요.

그런데 개성화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일단 그 사회로부터 나를 좀 떨어뜨려 놔야 돼요.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행도 가고 뭔가 새로운 걸 배우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람 곁에 가면 왠지 그 사람은 나와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줄 수가 있어요. 자기 자신의 열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상태, 그리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믿는 상태 그리고 진정한 내면의 자기를 찾기 위해서 완전히 모험하고 있는 상태를 개성화라고 하는데 이 개성화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거에요.

개성화 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 종착역이 타히티였던거다.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해도, 비평가들이 그림이 왜 이래요, 뭔가 이 시대의 사조에 맞지 않네요, 유행이 떨어지네요, 이건 기법적으로 좀 부족한데요, 이건 뭐 인상파에 속하지 않네, 이런 식의 비평가들의 어떤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여기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은 여기서 완전히 충만한 완전전한 나 자신의 세계를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떠날 필요가 없는 거죠.

여기가 바로 내가 살 곳이야 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끊임없이 여행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게 안되면 내가 고향을 창조하기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스트릭랜드가 런던에서 파리로 그리고 타히티로 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그런 노스텔지아를 찾았던 거에요. 노스텔지아란 말의 어원은 집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마음이 엄청 아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이 아닌 곳에서는 끊임없이 고통을 겪는다는 뜻인데 스트릭랜드는 런던이 집 같지 않았던거죠.

런던에는 물리적인 집도 있고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가정을 이룬 곳이지만 거기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속한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거죠. 그래서 소외감을 느꼈던거고 나는 이곳이 내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자기가 한 가정을 이끌면서도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에 와서 전혀 모르는 새로운 여성을 사귀면서 그 여성과 살림까지 차리고, 그렇게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다. 완전한 이상향을 느끼게 되죠.

타히티 섬이 그냥 타히티라는 일정한 공간이 아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우리가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곳을 몰랐는데 이제 스트릭랜드는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걷는 모든 곳, 숨쉬는 모든 공기,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듯한 환상적인 체험을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모델이고 모든 것이 배경이고 자기가 붓을 대는 모든 작품들이 걸작이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이상적으로 그리긴
해요. 서머셋 몸은 화가가 아니고 그리고 어떤 이상적인 열정을 그린 것이지 실제 인물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히티 섬 을 너무 유토피아 처럼 그린 단점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진정한 자신을 찾았을 때는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진정한 자신을 살았을 때는 타히티 섬 그게 어디야, 어떻게 가는거야, 사람들이 아무리 이상하게 생각해도 자신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완벽하게 행복하기 때문에 사랑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같은 이 사람이 처음으로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는 거죠. 타히티 섬에서 만난 그 여인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다 퍼주고도 질식사 하지 않을 수 있는 이 강인한 한 사람을 만나는 거에요.

그녀는 원주민 처녀 아타라는 사람인데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아내가 되어 평생 그의 곁에 있고자 해요. 스트릭랜드는 그런 뜻이 아니었거든요. 잠시 자신을 보살펴 주기를 바랐던 거에요. 그리고 잠시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주기를 바랐던 거죠. 그러니까 이번에도 여성을 이용하려고 했어요. 스트릭랜드의 이기심이 보이는 대목이죠.
그런데 이 여성은 어떻게 대하는가 하면 당신은 절대로 나를 떠날 수 없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줘요. 끊임없이 나 없이는 당신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요. 너무나 큰 사랑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막 쏟아 부음으로써 스트릭랜드가 이제 어떡하지 난 떠날 수가 없네, 이렇게 사랑으로 완전히 결박당해 버리는 거죠.

스트릭랜드는 나중에 나병에 걸리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치료가 힘들었죠. 타히트 섬이니까 더더욱 힘들었다. 나병에 걸려 홀로 산으로 잠적하려고 한다. 이제 난 죽겠구나, 그냥 산으로 혼자 들어가서 죽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한다, 절망을 한거다. 그런데도 안 떠나요. 그러니까 아내의 사랑보다, 블란치의 사랑보다 이 여인의 사랑이 더 큰 거죠. 그 여인들도 물론 스트릭랜드를 많이 사랑했어요. 그런데 어떤 한계가 있었다. 아내는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면 계속 사랑해 줄게였어요. 그리고 블란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면 나도 포기하지 않을게. 당신이 나를 사랑해줘야 성립되는 사랑인거다. 로맨틱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원주민 아타의 사랑은 로맨틱함을 넘어서는, 이성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이 사람이 나를 아무리 괴롭혀도, 이 사람이 나를 아무리 궁지에 몰아도, 심지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도 완전하게 사랑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아타의 셀프가 나오는거다. 아타는
강인하고 사랑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트릭랜드에게 그녀는 타히티의 상징이었다. 타히티는 스트릭랜드에게 셀프 진정한 자기를 찾아 주는 공간이었고 그리고 사랑을 찾아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를 낳지 않은 어머니같은 그런 존재, 그가 사랑하지 않아도 그에게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있는 평생의 지기 같은 그런 존재 였어요.
그의 병은 점점 깊어져, 이제 너무 병이 깊어지다 보니까 물감을 사러 나가는 것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마침내 그 역작을 완성했고,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이 그림을 마침내 발견한다.




이미 인간 세상의 경지를 뛰어 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고갱의 후기 작품에서 보는 그런 관능에 대한 완벽한 이해, 야생의 삶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표현한 것이기도 해요. 그리고 어떤 이상적인 그림, 정말 내가 꿈에서는 본 것 같은데 실제로는 못 본 것 같은 그런 그림을 발견한 거죠. 이 사람 드디어 해냈구나, 우리를 그렇게 걱정시키고 우리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었던 스트릭랜드가 인간으로서는 참 나쁜 사람이었는데 예술가로서는 성공한 거죠. 그리고 인간으로서 나빴던,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이 아타의 사랑을 통해서 원주민 처녀의 그 무한한 사랑을 통해서 마침내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찰스가 원래 갖고 있던 재능, 찰스가 원래 갖고 있던 셀프라는 것과 그리고 타히티 섬의 자연이 만나서 그리고 타히티 섬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나서, 전혀 문명의 이기와는 상관없고 현대인의 편리한 물질과는 상관없지만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삶이 만난 거예요. 내가 쓰고 싶은 어떤 정서와 그리고 표현 등이 대상이 맞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타히티에서 찾은거다. 찰스는 그곳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자신의 개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자신의 셀프를 찾아주는 그런 장면을 찾은 거에요.


그러니까 극단적인게 공존하는 거야.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아름답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음란하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한 화면에 공존함으로써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거죠.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스트릭랜드가 위대한 예술 창조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봉인을 해야 되지만 진정한 셀프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봉인 해야 되는건 맞지만 완전히 차단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개성화와 사회화가 같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죠.

그 사회에 있으면서 그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 내가 개성화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찰스는 굉장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했던 거죠. 이 사람의 재능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스트릭랜드가 마지막에 죽기는 하지만 그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않아요. 왜냐하면 진정한 개성화에 성공을 했거든요. 자기 자신이 완전히 되지 못한 채 그냥 에고와 셀프의 중간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그냥 직업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내가 뭔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과연 재능을 인정 받을 수 있을까. 그것때문에 용기가 없어 못한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완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서 달려가고 그것이 완벽하게 경지에 이른 다음에 개성화에 성공을 한 다음에 죽음을 맞기 때문에 그냥 비극적인 최후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행복한 죽음 일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단지 밥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향해 달려 갈 수만 있다면 스트릭랜드처럼 극단적이면 안되겠지만 스트릭랜드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나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제 내 삶은 끝났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 클라이막스가 찾아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성화의 길로 다다를 수 있었던 거죠
여러분들이 만약에 정말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꿈을 향해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스트릭랜드 처럼 위험한 방식으로는 아닐수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저는 재능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 사람은 글을 잘 써, 이 사람은 음악을 잘해 이런식으로 뭔가 딱 들어가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원하는 바로 이 직업이 이 재능이 타인을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뭔가 쓰일 수 있도록 그것을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이 개성화와 사회화의 공존
이에요. 그래서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싶은 몸부림과 그리고 세상 속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사회화, 이것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삶이 진정한 개성화와 사회화가 함께 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는 삶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의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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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책 소개
예술 충동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지독한 이기심과 광기 어린 천재성
세계대전 이후 인간 문명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에게 영혼의 해방구가 된 소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저자(글) 서머싯 몸

저자 서머싯 몸은 1874년 출생. 영국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이다.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의 고문 변호사의 아들로 1874년 태어났다. 8세때 어머니가 죽고, 2년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독일에 유학한 뒤 런던의 의과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작가가 될 뜻을 세웠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다가 첩보 부원이 되었으며, 1917년에는 중요 임무를 띠고 혁명 하의 러시아에 잠입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의 유미주의적 태도는 '달과6펜스'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는데, 이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의 전기에서 암시를 얻어서 쓴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그의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는 긴 생애를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장편 '과자와 맥주(1930)', '극장(1937)', '면도날(1944)' 등과 단편집 '나뭇잎의 하늘거림(1921)'. 희곡 '순환(1921)', '윗사람들(1923)과 자서전적 회상 '써밍업(1938)등이 있다.
번역 송무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영문학에 대한 반성》, 옮긴 책으로 《국어시간에 세계단편소설읽기 1, 2》, 《국어시간에 세계시읽기》, 《달과 6펜스》, 《소돔과 고모라》, 《위대한 개츠비》 등이 있으며, 현재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 1. 달과 6펜스
2. 작품 해설 / 송무
3. 작가 연보
출판사 서평
‘어엿한 우리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근 15종에 이르는 번역본이 이미 소개되어 있을 만큼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는 작품이다. 민음사는 The Royal Literary Fund와 독점 계약을 맺고, 꼼꼼하고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높이 평가받는 송무 교수의 번역으로 『달과 6펜스』를 선보인다. 송무 교수는 일찍이 『영문학에 대한 반성』이라는 저술을 통해 기존의 영문학 정전들을 반성적으로 살피고 한국 내 영문학의 전망을 제시한 영문학자이다. 그는 번역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말과 우리 감수성에 대한 엄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달과 6펜스』를 번역했다. 작가적 수준에 도달한 송무 교수의 탁월한 산문 구사력이나 문학적 감수성은 『인간의 굴레에서』(세계문학전집 11, 12)의 번역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생경한 번역투나 무책임한 기계 해석을 완전히 극복한 이번 『달과 6펜스』는 단순한 번역문학의 차원을 넘어 ‘어엿한 우리 문학’으로 읽히기에 손색이 없다. 신중한 어휘 선택, 촘촘하고 정확한 해석, 친절하고 상세한 각주 달기 등 한국 독자의 감수성을 섬세히 배려하는 번역자 자신의 각별한 노력이 돋보인다.
폴 고갱의 신화를 되살린 서머싯 몸의 최대 걸작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이란 일개 작가를 전 세계에 알린 결정적 작품이다.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광기 어린 예술 편력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출판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곧 유럽의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 인기 덕분에 그보다 4년 전에 나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인간의 굴레에서』도 재평가를 받게 된다. 작가로서의 몸의 위치는 이 작품에 의해 확고해진 셈이다. 『달과 6펜스』는 출간 10년 만에 일군의 비평가들에 의해 ‘고전’으로 일컬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는 현대인들의 주목을 받는 가장 인기 있는 도서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았다.
『달과 6펜스』는 20세기 세계 문단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큼 주인공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예술을 위해 예사로운 인정이라든가 정상적 인간성을 기꺼이 내팽개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괴팍한 편력은 거의 악마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다. “내 생각에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는 작품 초반 내레이터의 언급과 더불어 스트릭랜드의 악마적 예술혼과 비범한 천재성이 강하고 굵게 작품 전편을 관류한다. 여타의 부주제들을 압도하는 이 강렬한 인물 묘사는 수십편의 단편 습작을 통해 작가 자신이 닦아 올린 성격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모파상’으로 불릴 정도로 서머싯 몸은 인간의 성격과 심리를 치밀하고 적나라하게 쫓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달과 6펜스』는 저 유명한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하고 있다. 몸은 한때 파리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보헤미안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타히티에서 비참하게 죽은 고갱에 대해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달과 6펜스』보다 앞서 발표된 『인간의 굴레에서』에서도 분명 고갱이라 추정되는 화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몸이 고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세계대전 중이었다. 대전이 터지면서 정보국의 밀명을 받아 스위스에서 활동하다 병이 나는 바람에 미국에서 정양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타히티를 비롯한 남태평양들의 섬들을 여행하게 된다. 몸은 고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타히티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고갱의 집에 들르기도 하고, 고갱과 동거했다는 여자와 인터뷰도 했으며, 고갱이 남긴 그림을 구입하기도 했다. 1917년에 다시 정보원의 신분으로 러시아에 파견되는데 이때 과로로 병이 악화되어 북스코틀랜드 병원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달과 6펜스』는 이 요양 기간에 쓴 작품이다.
몸은 고갱의 생애가 지닌 낭만적 요소를 최대한 부각시키며 『달과 6펜스』라는 강렬하고 극적인 이야기를 창조해 낸다. 책 제목처럼 고갱은 ‘6펜스’로 대변되는 천박한 문명(이기적인 세속)을 거부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광적 열정을 상징하는 ‘달’의 세계로 투신하였다. 스트릭랜드와 마찬가지로 고갱도 증권 브로커였으며, 증권 일을 하던 20대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30대 초반부터는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기 시작했고, 35세가 되던 해에 증권 시장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고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심해지자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떠나 버리는데 이것은 처자식을 내팽개친 스트릭랜드의 경우와 좀 다르다. 파나마 운하에서 공사장 인부로도 일한 적이 있는 고갱은 결국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에 정착한다. 그는 『달과 6펜스』의 아타를 연상시키는 13세의 혼혈 창녀와 동거하며 그림을 그린다. 그 뒤 그는 심장병과 매독 등의 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절망감으로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림을 왕성하게 그렸으나 건강은 계속 악화되어 나중에는 걸을 수 없는 정도가 된다. 1903년 고갱은 55세의 나이에 심장 마비로 사망한다.
한편 『달과 6펜스』를 비정상적인 예술 충동에 사로잡힌 한 예외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세속의 삶과 인간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몸은 런던의 문단과 사교계의 속물들, 마음은 순진해도 고뇌하는 예술 정신은 없고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화가 스트로브,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가정을 떠났을 때 저주를 퍼부었던 남편이 천재로 알려지자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스트릭랜드 부인 같은 인물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20세기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풍자적인 소설가로 분류되는 서머싯 몸은 영국인이 빠져들기 쉬운 속물근성이나 위선적 경향을 냉철하고 비정한 필치로 파헤친다.
현대판 셰익스피어-20세기 대중의 고귀한 정전(正典)
『달과 6펜스』는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작가 자신의 지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달과 6펜스』가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의 문체적 특성에도 있다. 회화체가 주를 이루는 그의 문체는 명쾌하고 간결하며 논리가 선명하여 지극히 자연스럽게 읽히고 이해하기 쉽다. 평이하고 재치에 넘치는 문장들이 평범한 어순을 따라 부드럽게 연속되면서 기막힌 솜씨로 인정을 꿰뚫고 있다.
서머싯 몸은 반세기 이상을 글쓰기에 매진해 온 작가로서 시 이외의 거의 모든 문학 장르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단지 다양한 문학 형식을 두루 섭렵해 내는 작가적 능란함에 있지 않고, 그가 쓴 작품들이 어김없이 독자의 흥미를 끌어낸다는 데 있다. 그는 대중들이 읽기에 재미있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대중들을 자신의 애독자로 흡수하여 그들의 문학 수준을 고양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문학의 귀중한 보급자’ 역할을 담당했으며, 현대판 셰익스피어에 비견될 만하다.
몸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이야기꾼임을 자처한다고 해서 그를 한갓 통속적인 대중 작가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그의 글들은 적어도 많은 교양인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었다. 특히 『달과 6펜스』는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과 인간 문명에 깊은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에게 영혼의 세계와 순수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가까운 현실 문제를 떠나 모든 이에게 내재해 있는 보편적인 욕망, 즉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 본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강렬한 작품으로 남았다.
비평가 고어 비달의 언급은 서머싯 몸의 작가적 위치를 적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20세기의 작가들 치고 서머싯 몸을 모른 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몸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나는 열일곱 살 때까지 저 위대한 셰익스피어와 몸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읽어 냈다.” 그를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은 많지 않지만 그가 이제 20세기 대중의 정전 작가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후대에 걸쳐 두고두고 평가받을 수작. 빈틈없는 구성,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가 고루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 ─《뉴욕 타임스》
기지 넘치고 몰입도 높은 실화 소설로, 종종 최고의 예술가로 불리는 기인을 세상이 성자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을 조롱한다. ─《보스턴 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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