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도전, 10년 프로젝트

(6)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2025.11.30)

클리오56 2025. 11. 30. 19:21

 

내용 및 소감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2011년
* 한줄 감상: 친구의 관계는 상호 동경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서로 눈부신 친구를 기대하며 함께 성장한다.
* 기억할 문장: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폴리 4부작의 1부이다. 놀랍게도 1부는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 그것도 1등으로 포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엘레나 페란테인데, 이는 필명이며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으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만이 알려지고 있다. 책은 한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없다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의 스토리가 전개되기 전 에피그래프(Epigraph)에 괴테의 파우스트 한 구절이 인용된다.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아마도 두 친구 릴라와 레누가 서로 선과 악으로 자극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암시하는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1부는 두 소녀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을 이야기 한다. 릴라가 16세의 나이로 결혼하기 까지이다. 소설의 첫부분은 66세의 레누가 릴라의 아들에게서 릴라의 실종 소식을 전해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릴라는 30년 전부터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으며, 지난 60년간의 애정과 증오, 사랑과 질투, 경쟁과 의존으로 가득찬 우정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의 줄거리와 주제를 제미나이에게 문의하니 간단히 정리하여 준다. 이를 첨부했으니 참고할 수 있다. 잔잔히 흐르는 스토리를 줄거리 요약하는 것은 사실 그리 필요하지는 않다. 스토리에 깔린 두 소녀의 감정을 잡아내는게 더 필요하다.

* 핵심주제: 두 소녀의 복잡하고 경쟁적인 우정, 계층 이동을 위한 교육과 지성의 투쟁,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구속.

* 릴라: 타고난 천재성과 비범한 지성을 가졌으나, 극도로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 학교 교육 대신 스스로 독학하며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진다.

* 레누: 성실하고 규범을 따르는 모범생. 릴라의 천재적인 재능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고, 릴라를 능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지성(교육)을 통해 빈민가를 탈출하려는 전형적인 인물. 

* 이 두 친구의 관계는 상호 동경 치열한 경쟁으로 엮여 있다. 둘은 함께 성장하며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눈부신 친구'이자 '지워버리고 싶은 그림자'가 된다.

 

나의 느낀 점을 정리해보겠다. 줄거리가 일부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1. 가난한 동네이지만 여기도 돈을 쥐고 있는 카라치 집안, 마피아 세력의 솔라라 집안, 릴라네는 구두수선공 집안, 레누네는 시청 수위네 집안, 그리고 목수, 미친 과부, 시인이자 철도원, 야채장수, 제빵사, 여러 선생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파시스트, 왕당파, 공산당 등 정치적으로도 얽혀있으며 현재의 돈과 권력은 지난 날 그들의 악행의 전리품이며 그 영향이 지금도 그림자처럼 지배한다. 

 

2.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학생들이 경합에서 일부러 져주거나 하는데 상대 집안의 힘에 굴종해야하는 것을 이미 알고있기 때문이다. 니노(시인이자 철도원의 집안 장남)는 알폰소(돈 많은 카라치 집안의 둘째 아들)가 빛날 수 있도록 대답을 하지 않는 등 무기력한 포기를 택하며, 릴라는 알폰소와의 대결에서 무승부를 내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결국 알폰소는 패배의 씁쓸함에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날 그의 형 스테파노가 학교로 쫒아와 릴라에게 혀를 잡아 빼려는 협박을 하였다. 릴라의 아버지는 알폰소의 아버지를 찾아가 사과까지 한다. 

 

3.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게 드문데 당시 배경이 이탈리아 1960년대임을 감안하면 놀랍다. 릴라는 진학을 못하고 아버지의 구둣방 일을 돕게 된다. 반면 레누는 선생이 적극적으로 부모를 설득하여 중학교로 진학, 릴라를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을 여기서 계속한다. 처음으로 2등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릴라를 앞질렀다는 사실이 레누에게는 큰 자랑이었다. 하지만 릴라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며 라틴어, 그리스어까지 독학으로 공부하며 레누에게 과외하기까지 한다. 

 

4. 당시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난무하며 특히 부모자식간에도 만연하였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폭력, 부모의 자식에 대한 폭력과 폭언, 그리고 오빠의 여동생에 대한 폭력은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표출되었다. 한번은 무슨 연유인지는 밝혀지지는 않지만 릴라의 아버지가 릴라를 물건 던지듯 창문 밖으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하나도 안아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릴라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한쪽 팔이 부러져버린 것이다. 그외 레누가 시인이자 철도원 도나토에게서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5. 사춘기를 겪는 두 소녀는 주변의 남성들로 부터 구애를 받는다. 마음으로 절실히 원하는 상대가 있지만 오히려 빗나기도 한다. 레누는 의식이 깬듯한 니노를 원하지만 그렇게 연결은 잘 되질 못한다. 오히려 미친 과부의 아들이며 자동차 정비공인 안토니오와 사랑이라기 보다는 성적 유희를 경험한다. 릴라는 자신이 경멸하는 마피아 집안의 마르첼로에게서 구혼을 받는다. 아버지와 오빠는 대환영이지만 릴라는 단호히 거부한다. 결국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동네 최고의 부자집 아들 스테파노와 결혼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 부분으로 가면서 레누는 니노를 선택하지 못한 자책을 하며, 안토니오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음을 자각한다. 안토니오가 레누에게 보여주는 헌신은 강아지가 주인에게 보이는 충성심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리노와 이야기하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며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릴라의 결혼식장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수년 전 선생님이 이야기한 천민이 무엇인지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천민이었다. 음식과 와인을 둘러싼 다툼, 더 빨리 음식을 제공받고 더 나은 서비스를 해달라고 벌이는 싸움, 웨이트들이 분주히 오가는 더러운 바닥,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저속한 건배사야말로 비천한 것이었다............... 니노는 우리 동네에 감염되지 않고 들어왔다 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6. 두 소녀는 성장하면서 계급 이동을 꿈꾼다. 그것이 성공의 잣대이다. 처음에는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했다. 하지만 부의 개념은 변했다. 어릴 때 그렇게 경멸하며 괴물이라고 불렀던 카라치 집안의 장남 스테파노에게 끌린다. 대형 식료품점의 주인이며 그 아버지는 예전 권력으로 많은 돈을 착취해 집안에 숨겨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릴라는 스테파노와 결혼하게되면서 신발 제작 계획의 돌파구를 마련해 오빠 리노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마피아 계열의 마르첼로의 끈질긴 구애를 깨끗이 처리했다. 동네에서 가장 촉망받고 부유한 젊은이의 예비신부가 되었다. 이렇게 릴라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릴라는 역광에서 조차 빛이 나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레누에게는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온다. => 릴라가 다시 나를 앞서갔다. 목표를 실현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그녀를 더욱더 아름답게 한데 비해 나는 힘겨운 학교 공부와 니노에 대한 뒤틀린 열정으로 다시 못생겨졌다. 혈색이 돌던 얼굴빛은 어두워졌고, 여드름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는 이 게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웠지만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릴라에게는 손가락으로 딱 소리만 내도 내 안경을 고쳐주는 스테파노가 있는데 내겐 무엇이 있지?' 안경 에피소드가 있은 후 나는 생각했다. 내게는 학교가 있다고 생각했다. 릴라는 평생 누리지 못할 특혜였다. 그것이 나의 재산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해보았다. 

 

릴라는 레누에게 돈 걱정은 하지마라며 지원할테니 학업을 계속하라고 격려한다. =>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 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처음에는 레누가 릴라를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이 상황을 보면 릴라가 레누에게 하는 말이다. 하긴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7. 소설에서 '경계의 해체'라는 언급이 몇 번 나오는데 아직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리노의 잠재된 통제불가능한 폭력성이 불출되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지만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소설이 4부까지 전개되므로 1부만으로 단정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중 그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훗날 '경계의 해체'라고 이름붙인 그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릴라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름달이 뜬 바다 위로 하늘에서 거대한 태풍이 시꺼멓게 몰려오면서 빛이란 빛은 모조리 집어삼키고, 달의 경계를 침식하며 그 빛나는 원반의 형체를 망가뜨려 거칠고 비정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릴라는 리노가 분해되는 모습을 마치 실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보고 느끼고 상상했다. 리노는 릴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언제나 여유 있고, 정직하고, 신뢰가는 유쾌한 모습.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나 릴라를 즐겁게 해주고, 도와주고, 보호해주었던 사랑하는 오빠의 옆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그날 거칠게 폭발하는 폭죽과 얼어붙을 듯한 추위, 매캐한 연기와 독한 유황 냄새 속에서 무엇인가가 리노의 유기적 구조를 훼손했다. 엄청난 압력으로 리노를 짓누른 나머지 그의 윤곽이 산산이 부서지며 그를 구성하는 물질이 화산의 용암처럼 흘러나와 그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리노는 베파나의 선물처럼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릴라는 그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리노의 표정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릴라는 경계심에 가득 찬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불꽃놀이를 하던 그날 밤, 광기와 굉음 속에서 그녀를 그토록 두렵게 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리노는 평상시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릴라는 경계가 해체되어버린 오빠의 내면에서 어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릴라는 리노의 미소와 눈빛에서 참을 수 없이 비천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 느낌을 참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오빠를 사랑했기에 그 옆에 머무르며 그를 돕기를 원했다. 그녀도 예전과 같이 그의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8. 대반전

책의 마지막은 16세가 된 릴라의 성대한 결혼식 피로연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레누는 릴라가 빈민가를 벗어나 부유한 삶을 얻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녀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릴라가 경멸해마지 않는 마르첼로가 등장하고 그가 오빠와 아버지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는 스테파노가 자신의 구두를 마르첼로에게 주는 모욕적 행동 절망적인 좌절감을 느끼며, 레누는 릴라의 눈빛에서 '마을 밖으로의 탈출'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피그래프(Epigraph)

5쪽: 난 너와 같은 무리를 한 번도 미워해본 적이 없노라. 부정을 일삼는 모든 정령 중에서도 너 같은 익살꾼은 내게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괴테 '파우스트'

 

프롤로그: 흔적 지우기

15쪽: 오늘 아침 리노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가 평소처럼 돈을 빌려달라고 할 줄 알고 안된다고 말하려 했다.하지만 리노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았다. 리노는 자기 어머니(릴라)가 사라졌다고 했다. 

 

17쪽: 리노 어머니의 이름은 라파엘라 체룰로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들 그녀를 리나라고 불렀다. 나는 그녀를 라파엘라라고도 리나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갑작스레 리나나 라파엘라라고 부른다면 그녀는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릴라는 30년 전부터 내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18쪽: 릴라와 관련된 물건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랐다. 릴라는 어쩌면 이 오랜 세월 동안 자신과 관련된 물건을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일까. 사실 그녀와 관련된 물건을 간직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20쪽: 언제나 그렇듯이 릴라는 극단적이었다. 릴라는 흔적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그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 나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한 최대한 상세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유년기: 돈 아킬레 이야기

25쪽: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바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26쪽: 돈 아킬레는 동화 속에 나오는 괴물 같아서 다가갈 수도 말을 건넬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는 똑바로 바라보기는커녕 몰래 훔쳐보기조차 두려웠다. 

 

28쪽: 네 번째 난간에 도착했을 때 릴라가 예상치 않은 행동을 했다. 그녀는 내게 멈춰 서서 내가 다가서기를 기다렸다. 내가 다가가자 릴라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이 행동은 이후 우리 둘의 관계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32쪽: 우리가 별다른 말없이 서로의 눈빛과 몸짓만으로 처음 인형을 맞바꾸기로 한 날, 내 인형을 손에 넣자마자 철조망 사이로 밀어 넣어 어둠 속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48쪽: "릴라, 대체 누가 네게 글자를 가르쳐준 거지?"........ 릴라는 올리비에로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요.".......... (49쪽) 경위야 어찌됐든 확실한 것은 릴라가 이미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흐린 날 아침,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52쪽: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나는 릴라의 뒤를 쫓아다니기만 해도 뇌리에 깊이 박혀 떨쳐낼 수 없었던 어머니의 걸음걸이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때부터 나는 릴라를 내 기준으로 삼고 아무리 그녀가 나를 귀찮아하고 쫓아내려 해도 절대 그녀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53쪽: 분명한 것은 릴라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녀가 제멋대로 구는 것도 함께 받아들이도록 나 자신을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54쪽: 나는 끔찍하지만 빛나는 그 아이 곁에 머물러 있기 위해 나와는 거리가 먼 온갖 힘든 일과 공부를 하는데 몰입했다. 하지만 릴라가 빛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른 학급 친구들에게 릴라는 끔찍한 아이일 뿐이었다.

 

59쪽: 이 사건으로 인해서 릴라가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알폰소와 대결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와 시합을 할 때, 릴라는 알폰소에게 이기지도 지지도 않으려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적당히 오답을 섞어가며 균형을 유지했다. => 아이들도 어른 사회의 권력 서열을 눈치채고 있다. 결국 나중 릴라의 아버지가 알폰소의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사태로 진전. 

 

64쪽: 나에게 티나는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그런 그녀를 창고 속에 살고 있을 수많은 짐승 사이에 던져 넣었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하게 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나는 이후로 수많은 일을 겪으며 경지에 오르게 될 어떤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을 참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젖어드는 눈가에 절망을 어찌나 잘 숨겨냈는지 릴라는 나에게 사투리로 물었다. "인형을 버렸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니?" 나는 강렬한 고통을 느꼈지만 릴라와 싸워서 얻게 될 고통은 이보다 더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고통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고통, 즉 인형을 잃어버려서 느끼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고통, 즉 릴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행동을 그 순간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인 양 취했다.

 

68쪽: 성장통

성장통은 2~8세 사이의 성장기 어린이들이 종아리나 허벅지의 근육이나 무릎관절, 고관절 등 다리의 관절에 뚜렷한 원인 없이 간헐적으로 근육이 당기거나 관절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질환입니다. 전체 어린이의 약 30%에서 경험하는 비교적 흔한 증상입니다.

* 증상: 주로 저녁이나 밤에 다리 통증이 나타나며, 아침에는 증상이 사라집니다. 통증 부위는 종아리, 허벅지, 무릎, 고관절 등 다양하며, 양쪽 다리에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증은 간헐적으로 발생하며, 수일에서 수개월간 증상이 없다가 다시 재발할 수 있습니다. 

* 원인: 낮 동안의 과도한 활동으로 인한 근육 피로, 성장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근육과 뼈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 정서적 요인이나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한 심리적 요인 

* 진단: 성장통은 전문의의 진찰과 함께 혈액검사나 X-선 촬영 등의 간단한 검사를 통해 다른 질환(화농성 관절염, 골수염,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 등)을 배제하고 진단합니다. 특별한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통증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치료 및 예방: 낮 동안의 과도한 활동을 줄이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기, 통증 부위에 찜질이나 마사지를 하기,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기, 심한 통증의 경우 의사의 지시에 따라 진통제를 사용하기

 

70쪽: (니노의 고백) "우리가 어른이 되면 너와 결혼하고 싶어." 니노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 자신과 사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와 결혼하고 깊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정반대의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니. 그럴 수 없어."..... 불행히도 니노는 고백할 타이밍을 잘못 선택했다. 내 자신이 얼마나 경솔하게 느껴지는지, 티나가 사라져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릴라를 따라다니기 위해 애쓰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니노가 알 리 없었다. 

 

79쪽: 겉모습은 연약해보였지만 릴라 앞에서는 그 어떤 금지사항도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한계를 넘을 줄 아는 아이였다. 모든 사람은 그녀 앞에서 결국 고집을 꺾었고 릴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에 대해 경탄했다. 

 

89쪽: (올리비에로 선생 -> 엘레나)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으면 본인뿐 아니라 자식들도, 자식의 아이들도 천민으로 남는 거란다. 그러니 체룰로는 내버려두고 네 생각이나 하렴."

 

99쪽: 그날 밤 나는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바다로 가야 했는데 가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얻어맞았다. 그 과정에서 릴라와 나의 사고방식이 뒤바뀌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반면 릴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후회했으며 바다를 포기하고 우리동네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나는 도무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그런 걸까? 릴라는 부모님이 벌로 내 중학교 진학을 취소하게 하려고 나를 꼬드긴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할까봐 그렇게 서둘러서 나를 다시 데려온 걸까? 세월이 흘러 오늘에 와서야 나는 생각해본다. 사실 릴라는 때에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102쪽: 그녀의 약한 면을 감지함으로써 생긴 불편한 감정은 나의 우울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비밀스럽게 변질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히 카르멜라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를 골라 나는 조심스레 내 성적이 릴라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곤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나는 중학교에 진급하지만 릴라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처음으로 2등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릴라를 앞질렀다는 사실은 내게 큰 자랑이었다.

 

104쪽: 아저씨는 릴라를 물건 던지듯 창문 밖으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릴라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하나도 안아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릴라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한쪽 팔이 부러져버린 것이다. 

 

106쪽: 그해 긴 여름이 가기 전에 동네 사람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릴라는 그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다. 사건은 바로 돈 아킬레가, 그 악명 높은 돈 아킬레가 비가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오후 자신의 집에서 살해를 당한 것이다.

 

108쪽: 카르멜라는 절망에 빠져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울고 있었다. 나도 울기 시작했다. 단 한 명, 릴라만은 울지 않았다. 릴라는 몇 년 전 멜리나를 바라볼 때와 같은 시선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는데도 쉰 목소리로 악에 받친 소리를 질러대는 알프레도 아저씨와 함께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사춘기: 구두 이야기

113쪽: 1958년 12월31일 릴라는 처음으로 경계의 해체를 경험한다. .... 릴라는 사람이나 사물을 구성하는 윤곽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114쪽: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철저히 물질적인 그 무엇인가가 사람과 사물의 테두리를 잘게 부수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움직이는 모든 육체와 그 육체를 구성하는 골격, 그것들을 사로잡은 광기에 대해서 혐오감이 느껴졌다. '볼품없는 존재들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릴라를 가장 몸서리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오빠 리노의 육체였다.

 

115쪽: 누군가가 폭죽과 딱총을 쏘아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진짜 총을 쏜 것이다. 리노는 노란색 불빛쪽을 향해 들어주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의 석달 그믐날 밤,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미지의 존재가 세계의 윤곽을 잘게 부수어 그 끔찍한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목격했고 이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125쪽: 릴라는 언제나 바빴다. 그해 리노는 릴라를 억지로 학교에 재등록 시켰지만 릴라는 계속 수업을 빼먹었고 결국 또 의도적으로 낙제헸다. 릴라의 어머니는 릴라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했고 아버지는 릴라에게 가게를 봐달라고 했다. 릴라는 의외로 거부하지 않았다. .... 그때마다 릴라는 내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호기심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 아버지와 오빠일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129쪽: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이제는 새 신발, 낡은 신발 할 것 없이 신발에만 열정을 쏟으면서 왜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책을 빌리러 학교에 왔던 걸까. 

 

139쪽: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마을은 마치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과거의 증오나 대립관계, 추악한 면으로 이뤄진 본연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150쪽: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어." 여기서 변화란 단 한 가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151쪽: 릴라는 체룰로 컬렉션 전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체룰로 상표를 새긴 신발은 그녀의 그림처럼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세련되었을 것이다. 

 

152쪽: "아다는 아버지도 없고 오빠인 안토니오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인데다가 엄마인 멜리나와 건물청소나 하고 다니는 신세이기 때문이야." 결론은 솔라라 형제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부자가 되든지 아니면 먼저 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릴라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가지고 온 날카로운 가죽용 칼을 보여주며 말했다. "난 못 생긴데다 생리도 안 하기 때문에 나를 건드리지는 않을거야." 릴라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네겐 치근덕거릴 수도 있어. 그런 수작을 부리면 알려줘." 

 

154쪽: 나는 진정한 1등이 없는 상태에서 1등을 했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167쪽: 순간 내가 잘못 짚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벽돌공이자 공산당이며 살인자의 아들인 파스콸레는 내가 좋아서 구둣방까지 나를 데려다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릴라였던 것이다.  

 

182쪽: 릴라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건가? 나는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름 방학 동안에 혼자서 공부했단 말인가?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보다 빨리, 나보다 더 잘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 나가려 하는 걸까............ 내 자신이 연약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녀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189쪽: "자네들은 정말 행운아네.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오는 비너스보다 더 아름다워질 여인이 여기 있으니 말이야."

 

197쪽: 솔라라네 주점은 과거부터 고리대금을 하는 마피아 집단과 밀수꾼들의 소굴이었고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자금 모집 수단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돈 아킬레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스파이 노릇을 했고 스테파노는 그 애비가 검은색 가방에 모은 돈으로 식료품점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200쪽: 릴라는 파스콸레에게서 얻은 빈약한 정보를 도서 방에서 빌린 책을 읽으며 체계화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추상적인 긴장감에 구체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익숙한 얼굴을 접합시켰다. 파시즘, 나치즘, 전쟁, 연합군, 왕정과 공화정 같은 개념들을 동네의 길, 건물,, 사람들 돈파킬레와 검은 가방으로 상징되는 암시장, 공산당 알프레도 펠루소, 마피아 출신의 솔라라네 증조부, 마르첼로와 미켈레 형제보다도 뼛속까지 파시스트인 그들의 아버지 실비오 솔라라, 그녀의 아버지인 구두수선공 페르난도 그리고 내 아버지와 결부시켰다. 어두운 죄악으로 골수까지 오염된 이들은 모두 그녀의 눈에 냉혹한 범죄자나 아니면 고작 빵 부스러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협조한 공범자들로 비춰졌다. 릴라와 파스콸레는 나를 그 끔찍한 세계로 이끌고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203쪽: 릴라 주위에서 맴도는 남자들은 자부심이 충만한 거의 다 자란 성인이었다.. 그녀에게 신발 제작 계획과 우리가 태어난 끔직한 이 세계에 대한 통찰 말고도 남자친구까지 생긴다면 나를 위해 할애할 시간이 더는 없을 것이다. 

 

207쪽: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 나는 이 개념을 우리 동네의 더러운 길 , 먼지가 이는 공원, 새로 들어선 건물들로 망가진 들판, 가정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연과시켰다. 

 

210쪽: 우리 이전

 

211쪽: 그들은 분명 돈 아킬레를 증오하고 솔라라 집안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돈 아킬레 자식의 가게나 솔라라네 가게에서 자신들이 번 돈을 쓰고 때로는 우리를 그곳으로 심부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고는 솔라라네 가족이 원하는 것처럼 파시스트나 왕정복고주의자들에게 투표를 한다. 그들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과거일 뿐이니 조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냥 덮어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직도 과거의 일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우리까지 그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212쪽: 그런데 릴라 남매가 내게 보여준 신발 한 켤레는 정말이지 범상치 않았다. 리노와 페르난도 아저씨의 치수인 43사이즈의 갈색 신발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에 릴라가 보여준 그림과 똑같았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해 보였다. 

 

223쪽: 스테파노는 우리 이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고 우리의 아버지들은 각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나서서 그들의 자식들인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해보이자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 224쪽:............ 많은 가족들이 다가오는 새해를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 그 옛날 증오의 대상이었던 돈 아킬레의 집이 있는 오래된 건물의 5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229쪽: 바로 그 순간 훗날 '경계의 해체'라고 이름붙인 그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릴라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름달이 뜬 바다 위로 하늘에서 거대한 태풍이 시꺼멓게 몰려오면서 빛이란 빛은 모조리 집어삼키고, 달의 경계를 침식하며 그 빛나는 원반의 형체를 망가뜨려 거칠고 비정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릴라는 리노가 분해되는 모습을 마치 실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보고 느끼고 상상했다. 리노는 릴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언제나 여유 있고, 정직하고, 신뢰가는 유쾌한 모습.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나 릴라를 즐겁게 해주고, 도와주고, 보호해주었던 사랑하는 오빠의 옆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그날 거칠게 폭발하는 폭죽과 얼어붙을 듯한 추위, 매캐한 연기와 독한 유황 냄새 속에서 무엇인가가 리노의 유기적 구조를 훼손했다. 엄청난 압력으로 리노를 짓누른 나머지 그의 윤곽이 산산이 부서지며 그를 구성하는 물질이 화산의 용암처럼 흘러나와 그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232쪽: 솔라라네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이기려고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235쪽: 리노는 베파나의 선물처럼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릴라는 그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리노의 표정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릴라는 경계심에 가득 찬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불꽃놀이를 하던 그날 밤, 광기와 굉음 속에서 그녀를 그토록 두렵게 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리노는 평상시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릴라는 경계가 해체되어버린 오빠의 내면에서 어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릴라는 리노의 미소와 눈빛에서 참을 수 없이 비천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 느낌을 참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오빠를 사랑했기에 그 옆에 머무르며 그를 돕기를 원했다. 그녀도 예전과 같이 그의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246쪽: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릴라와 공부하고 릴라와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를 의미한다. 동네의 범주를 벗어난 외부 세계의 사물과 사람, 풍경과 책에 쓰인 사상을 대하면서도 릴라를 일종의 정신적인 지지대이자 자극제로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의미한다.

 

250쪽: 나는 다른 감정보다 씁쓸함이 더 컸다. 자동차를 탄 네 젊은이에게서 본 권력의 이미지가 번개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네에서 나와 시내로 즐기러 가기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행색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차도 없었고 옷차림도 남루한 데다 땡전 한 푼 없었으니까.

 

256쪽: 무뤂을 꿇은 채 그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파스콸레의 모습과 팔로 몽둥이 세례를 막아내고 있는 리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솔라라 형제의 밀레첸토였다..................... 리노와 파스콸레도 일어나 솔라라 형제와 함께 주먹을 날리고, 목을 조르고, 상대방의 옷을 찢어버렸다. 증오에 불타는 얼굴에 모습이 변해 못 알아볼 정도였다.

 

271쪽: 하지만 마르첼로는 리노를 본체만체하고 곧바로 페르난도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단숨에 말했다. "페르난도 아저씨, 전 지금 진지해요.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271쪽: 릴라는 아버지 못지 않게 침착한 태도로 마르첼로와 약혼하거나 결혼하느니 저수지에 빠져 죽는 편이 낫다고 했다. 둘 사이에는 큰 다툼이 벌어졌지만 결국 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마르첼로가 릴라와 사귀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 나이에 청혼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릴라는 열다섯도 안되어청혼을 받은 것이다. 부모님 몰래 누구와 사귀어본 적도, 그때까지 키스조차 한 번 못 해본 릴라가 말이다. 

 

277쪽: 7월의 마지막 열흘간,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훗날 인생을 살아가며 종종 느끼게 될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289쪽: "정말 뛰어난 아이였는데.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 애를 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어." 그렇다. 니노는 그렇게 말했다.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고. 어린 시절 그가 내게 고백한 것이 실은 우리 둘의 관계에 끼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약간 상해 있었는데 그가 다음에 던진 말은 내게 확실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나는 실제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젠 그렇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 애는 변했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괴로웠고 그가 다시 돌아오면 행복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291쪽: "아버지는 멜리나의 정부였어. 그녀가 얼마나 연역한 사람인지 알면서도 허영심 때문에 그녀를 받아들인거야.......어머니에 대한 배려심도 넘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어머니를 배신하고 있어. 아버지는 위선자야. 역겨워."

 

294쪽: 니노는 릴라처럼 내면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아이였다. 이것은 축복이자 고통이었다. 이들은 만족하는 일이 없고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도나토 아저씨는 이들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매 순간을 밝게 살았다...... 릴라와 니노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친하게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비슷한 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둘 다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으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언제나 명확했다.  

 

307쪽: 도나토 아저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내 육체에 남은 그 기분 좋은 느낌 때문에 내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기억하는 한 그때까지 한 번도 육체적 쾌락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느낌을 알지 못했기에 막상 경험하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 나는 드디어 릴라에게 이야기를 해줄 만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번만은 그녀도 이보다 더 강렬한 체험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나토 아저씨에 대한 혐오감과 자신에 대한 경멸감이 너무나 커서 릴라에게 차마 이야기를 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예기치 않게 끝난 그해의 여름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322쪽: "마르첼로는 나를 돈으로 사려고 그 난리를 쳤지만 누구도 나를 돈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둬." 스테파노는 몇 초간 릴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이득이 되지 않는 곳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아."

 

324쪽: "그럼 마르첼로를 집에서 쫓아버리기 위해 스테파노와 약혼 할 수도 있단 말이야?" 릴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다고 했다. 

 

324쪽: 구두 가격 2만5천 리라 + 그림 가격 2만 리라

 

330쪽: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시 한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331쪽: 이제 릴라와 내가 둘이서만 오붓하게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성과 보물상자는 이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부는 스테파노로 형상화되어 기름에 찌든 가운을 입은 젊은 청년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부는 스테파노의 용모와 체취와 목소리를 취하여 성격 좋고 호감가는, 예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돈 아킬레의 장남 모습을 갖추었다.

 

332쪽: 구둣방 집 부자와만 남게 된 스테파노는 릴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선포했다. => 333쪽: "아버님 앞에서 물을게. 너를 아주 좋아해. 내 목숨보다 더. 나와 결혼해줄래?" 릴라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응."

 

336쪽: 이 모든 일이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이 일어났고 결국 릴라는 결과에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신발 제작 계획의 돌파구를 마련해 리노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마르첼로를 깨끗이 처리했다. 동네에서 가장 촉망받고 부유한 젊은이의 예비신부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무엇을 더 원하겠는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341쪽: 그런데 지금은 릴라가 다시 나를 앞서갔다. 목표를 실현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그녀를 더욱더 아름답게 한데 비해 나는 힘겨운 학교 공부와 니노에 대한 뒤틀린 열정으로 다시 못생겨졌다. 혈색이 돌던 얼굴빛은 어두워졌고, 여드름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344쪽: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는 이 게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웠지만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릴라에게는 손가락으로 딱 소리만 내도 내 안경을 고쳐주는 스테파노가 있는데 내겐 무엇이 있지?' 안경 에피소드가 있은 후 나는 생각했다. 내게는 학교가 있다고 생각했다. 릴라는 평생 누리지 못할 특혜였다. 그것이 나의 재산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해보았다. 

 

349쪽: 릴라는 역광에서 조차 빛이 나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351쪽: 빛나는 광채를 내뿜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동네의 빈곤을 정면으로 강타하는 것 같았다. 스테파노와 약혼 계획을 함께 짤 때만 해도 아직 어린 소녀의 흔적이 남아있던 육체는 이제 어둠 속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밝은 태양 아래 젊은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351쪽: 스테파노는 릴라를 미래의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삼고자 했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채우는 족쇄를 어린 시절부터 힘겹게 맞서고 이겨낸 모든 것에서 자신을 포함한 오빠와 부모님과 다른 친척들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352쪽: 우리는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함께 유년기를 보냈고, 함께 열다섯 살이 된 해를 보내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너들너들한 책을 구부정한 자세로 읽는 단정치 못하고 꾀죄죄한 안경잡이 소녀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릴라는 무대의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빗어 넘기고, 영화배우나 공주같은 옷을 입고 스테파노의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했다.

 

366쪽: 결혼 날짜가 정해짐으로써 우리들의 삶이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될 분기점이 명확해졌다. 최악인 것은 릴라의 삶이 내 삶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면학의 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토록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수년 전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오직 릴라의 부러움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지금 릴라에게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릴라는 아들을 낳고, 또 아들을 낳고, 그 후로도 줄줄이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내 자신이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절망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368쪽: "어린 시절 첼룰로가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은 피어나지 못했단다. 그 아름다움이 모두 얼굴과 가슴, 허벅지와 궁둥이로 가버렸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곳들로 말이야."

 

369쪽: "그래서가 아니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데 그 조그만 여자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던거야."

 

371쪽: 내가 고백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상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안토니오가 자기와 사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읺고 좋다고 했다. 비록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고, 안토니오에 대한 내 감정은 호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376쪽: 나는 안토니오에게 화를 냈다. 멜리나와 아다는 건물 계단 청소를 하고 그는 정비소에서 눈곱만한 급여를 받고 있었다. "왜 네가 계산을 한 거야?"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 지르다시피 사투리로 말했다. "우리가 더 멋지고 더 고상한 사람들이니까." 그가 대답했다. 

 

392쪽: "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얘기는 아니었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에겐 사람들이 널 좋아하게끔 만드는 재능이 있다는 거야. 너와 나의 차이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는 두려움을 느끼는데 너에겐 그렇지 않다는 거야."

 

403쪽: 나는 안토니오에게 나를 릴라의 결혼식에 데려다 줄 것과 절대로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나랑만 대화하고 나랑만 춤춰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날이 몹시 두려웠다. 그날이야말로 릴라와 내가 완전히 헤어지는 날이라 생각했기에 의지가 되어줄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랐다............ 404쪽: 결과적으로 안토니오는 내 요청을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관계를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으로 받아들였다. 

 

405쪽: 릴라는 수년 전 자신이 그린 그림이 현실화된 것을 보고 격한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요정이 나타나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준 것 같았다고 했다. 

 

412쪽: 결혼식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스테파노는 이미 결정된 일인 양, 한 마디 변명도 없이 마르첼로와 미켈레의 아버지인 실비오 솔라라가 결혼식 증인을 맡게 되었다고 통보했다.

 

414쪽: 실비오는 결혼식 증인을 서주고 리노와 스테파노가 신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그것뿐이라고. 네 인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거야.

 

416쪽: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 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418쪽: 그의 거친 살은 와인 병에 코르크 마개를 강하게 밀어 넣는 것처럼 단호하게 그녀의 몸을 범할 것이다. 내가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딴 곳으로 찾아가 같은 시각에 안토니오가 내게도 똑같은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418쪽: 릴라는 자신이 디자인한 구두를 신었다. 리노가 손수 마무리한 구두였다. 릴라가 이 구두를 신지 않았다면 리노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긴. 이것 좀 봐. 머리에서 태어난 꿈이 발밑으로 추락했잖아."

 

419쪽: 나는 그날 내가 학교에서 거둔 성공이 내 부모님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짜증이 났다. 특히 어머니는 학교 공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426쪽: 나는 6년 동안 매일같이 이들이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훌륭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429쪽: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치 않았지만 이미 공부를 계속한 마당에 이제 자신의 딸이 나와 함께 자란 다른 아이들보다는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이 있는 곳은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430쪽: 이제는 복종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내 부모님에게 강요했을 때처럼, 나도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내 한쪽 팔을 붙잡고 있는 어머니를 무시해야 한다................... 그 순간 리노가 홀에 들어왔다. 알폰소나 마리사보다 그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433쪽: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이렇게 수준 높은 청년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노를 만난 후 얼마나 많은 잘못된 선택을 했던가. 그를 원했던 것도 사랑했던 것도 영원히 떠나려 했던 것도 모두 바보같은 일이었다. 다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이기도 했다.

 

434쪽: 그(안토니오)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물론 그는 나를 존중하고 내게 너무나 헌신적이다. 하지만 그의 헌신은 강아지가 주인에게 보이는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리노가 내게 말하는 태도 때문에 속상했다. 그는 내게 잘 보이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와 미래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예전에 릴라의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내게 헌신하면 나는 성장할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그라면 나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440쪽: 천민이 무엇인지 그 순간 깨달았다. 수년 전 선생님이 내게 물었을 때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우리 모두가 천민이었다. 음식과 와인을 둘러싼 다툼, 더 빨리 음식을 제공받고 더 나은 서비스를 해달라고 벌이는 싸움, 웨이트들이 분주히 오가는 더러운 바닥,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저속한 건배사야말로 비천한 것이었다............... 니노는 우리 동네에 감염되지 않고 들어왔다 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442쪽: 그녀의 시선은 더 먼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제미나이가 요약한 줄거리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그 시작인 『나의 눈부신 친구』의 줄거리를 깊이 있는 문학적 맥락과 함께 요약해 드립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두 여성의 우정 이야기를 넘어, 1950~6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의 사회적 배경과 계급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낸 성장 소설이자 시대의 기록입니다.

1. 작품 개요 및 배경

  • 배경: 1950년대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나폴리 외곽, 가난하고 폭력적인 빈민가(보르골리).
  • 화자: 60대 노년의 엘레나 그레코(레누)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 라파엘라 체룰로(릴라)의 삶과 우정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릴라가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자, 이에 대한 복수심과 강렬한 애증으로 레누가 기록을 시작합니다.
  • 핵심 주제: 두 소녀의 복잡하고 경쟁적인 우정, 계층 이동을 위한 교육과 지성의 투쟁,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구속.

2. 주요 줄거리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① 레누와 릴라의 만남과 경쟁

  • 레누(엘레나 그레코): 성실하고 규범을 따르는 모범생. 릴라의 천재적인 재능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고, 릴라를 능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지성(교육)을 통해 빈민가를 탈출하려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 릴라(라파엘라 체룰로): 타고난 천재성과 비범한 지성을 가졌으나, 극도로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입니다. 학교 교육 대신 스스로 독학하며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집니다.

이들의 관계는 상호 동경치열한 경쟁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엮여 있습니다. 둘은 함께 성장하며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눈부신 친구'이자 '지워버리고 싶은 그림자'가 됩니다.

② 교육과 계급의 경계

  • 릴라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이 좌절됩니다. 반면 레누는 릴라를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을 계속하여 마을의 희망으로 떠오릅니다.
  • 학업을 그만둔 릴라는 아버지의 구둣방 일을 도우며 현실적인 제약에 갇히지만, 독학을 통해 깊은 지식을 쌓고 혁신적인 구두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③ 첫사랑과 청춘의 방황

  • 두 소녀는 사춘기를 겪으며 주변의 남성들(마르첼로 소라, 스테파노 카라치, 니노 사라토레 등)과 얽히기 시작합니다.
  • 레누가 부유하고 지식인 계층의 아들인 니노 사로토레를 짝사랑하며 자신이 사는 마을 밖의 세계를 꿈꾸는 동안, 릴라는 동네 폭력배 형제인 솔라라 형제에게 관심을 받습니다.

3. 결말 (『나의 눈부신 친구』의 끝)

  • 릴라는 니노에게 실망하고, 부유한 식료품 가게 아들인 스테파노 카라치의 구애를 받아들입니다. 스테파노는 릴라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릴라의 혁신적인 구두 사업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 책의 마지막은 16세가 된 릴라의 성대한 결혼식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레누는 릴라가 빈민가를 벗어나 부유한 삶을 얻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녀를 부러워합니다.
  • 그러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릴라는 스테파노가 자신의 구두를 모욕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고 절망적인 좌절감을 느끼며, 레누는 릴라의 눈빛에서 '마을 밖으로의 탈출'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이야기는 릴라가 현실에 갇히고 레누가 지성인의 길을 걸으며 나폴리 4부작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는 자와 머무는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

 

============================================================================================

소설의 배경 나폴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

교보문고 책 소개

보편적이지만 특별한 두 여인의 우정, 그리고 삶!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나폴리 4부작」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 서로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 평생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인 두 여자의 빛나는 우정을 담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은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춰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들, 특히 자신만이 느끼는 은밀한 감정들을 묘사해냈다.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릴라를 회상하는 레누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릴라와 레누는 서로의 마음을 간파하는 특별한 사이지만 그들의 우정 안에서도 미묘한 감정은 존재한다. 릴라는 명석함을 타고났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한다. 모범생이고 노력형인 레누는 이런 릴라를 보고 자극을 받아 공부하지만 릴라의 영특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학교에서 인정받은 과제조차도 결국 릴라의 아이디어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공부뿐만이 아니다. 릴라는 커갈수록 아름다워지고 모든 남성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릴라보다 무엇 하나 잘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레누와 외부 환경 때문에 꿈이 좌절되는 릴라.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들의 감정은 요동친다. 그들의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경제적 빈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폭력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두 주인공의 우정과 삶이 사회에 의해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소한 역사적 사실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우리의 일상도 역사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현재 세계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지만 베일에 싸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 오직 작품으로만 자신을 말하는 페란테는 1992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런 저자가 자신의 우정에서 비롯된 작품임을 밝히고, 나폴리를 배경으로 매우 격렬하게 또 망설임 없이 써내려간 「나폴리 4부작」을 통해 저자의 진실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글) 엘레나 페란테

저자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출생한 작가로, 나폴리를 떠나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도 필명이다. 작품만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페란테는 어떤 미디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서면으로만 인터뷰를 허락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작가의 정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문이 떠돌지만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1992년 첫 작품 『성가신 사랑』을 출간해 이탈리아 평단을 놀라게 한 페란테는 2002년 『홀로서기』를 출간한다. 에세이집 『라 프란투말리아』(2003)와 소설 『어둠의 딸』(2006), 『밤의 바다』(2007)를 출간한 뒤 2011년 ‘페란테 열병’(#FerranteFever)을 일으킨 ‘나폴리 4부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출간한다. 이어서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까지 총 네 권을 출간해 세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목차

  • 등장인물

    프롤로그
    흔적 지우기

    유년기
    돈 아킬레 이야기

    사춘기
    구두 이야기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베일에 싸인 엘레나 페란테의 진실한 삶을 담다
‘나폴리 4부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


* 전 세계 43개국 출간 예정
*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노미네이트
* 2016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 2015 이탈리아 스트레가상 노미네이트
* 2015 타임지 선정 ‘올해 최고의 소설 1위’
* 2015 가디언지 ‘작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
* 2015 BBC 선정 ‘올해 최고의 소설’

전 세계를 홀린 ‘나폴리 4부작’의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탈리아 나폴리 폐허에서도 빛나는 두 여자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우정을 다룬 이야기는 진부하다. 그러나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아름답지만 냉혹하고 그들의 삶은 맹렬하다. 감정선은 강렬하고 인물들은 욕망과 분노에 차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지만 소설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들어 있는 광활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페란테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단도직입적이다. 두 주인공도 회귀하지 않는다. 모순으로 가득한 감정 속에서 주인공은 앞만 보고 나간다. 그들은 순차적으로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아갈 뿐이다.
굶주린 듯 다음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 바로 『나의 눈부신 친구』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
정체를 감추다


엘레나 페란테. 현재 세계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지만 베일에 싸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다. 오직 작품으로만 자신을 말하는 페란테는 1992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녀에 관해서는 나폴리 태생의 작가로 고전 문학을 전공한 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 필명이다.
은둔을 선택한 페란테는 이탈리아의 『코리에레 델라 세라』를 통해 1,600페이지 분량의 ‘나폴리 4부작’은 자신의 우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나폴리를 배경으로 두 여자의 우정과 삶을 매우 격렬하게 또 망설임 없이 써냈다.
페란테는 ‘나폴리 4부작’ 중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5년에는 이탈리아의 최고 문학상 스트레가상의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페란테는 모든 행사에 불참했으며 서면으로만 수상 소감을 밝혔다. 페란테가 스트레가상의 후보에 올랐을 당시 이탈리아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시상식에 참석해줄 것을 『라 리퍼블리카』를 통해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나 페란테는 감사의 인사만 전했을 뿐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페란테는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은 소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TV 출연이나 강연으로 작가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페란테는 『더 패리스 리뷰』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서도, 미디어가 작가의 명성만을 따를 뿐 책 자체나 작품의 가치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문학적 전통과 기법 등 오랜 시간 동안 집약되어 문학 안에 포함된 집단 지성이 작가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 약화된다는 것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나서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레나 페란테

페란테는 25년 동안 은둔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부재가 만들어낸 창작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작가를 지우는 순간 작품은 그 전에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가의 부재 때문에 생긴 텅 빈 공간을 작품이 채운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해리 포터가 있다면
성인에게는 엘레나 페란테가 있다


‘나폴리 4부작’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영미권 독자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발표된 영국 닐슨 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 내 전체 소설 판매량은 감소했으나 해외 번역 소설 판매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례적 현상을 이끈 주요 요인이 바로 ‘나폴리 4부작’이라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나폴리 4부작’은 특별한 광고도 없이 1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독자들은 ‘#ferrantefever’(페란테 열병)라는 태그를 달고 그녀를 예찬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도 작가 줌파 라히리는 “나는 ‘나폴리 4부작’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말했으며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고 찬사를 보냈다. 배우 기네스 팰트로도 “소녀 시절의 우정을 말한 페란테의 놀라운 능력”을 극찬했으며, 아마존 편집장 사라 넬슨은 “미국의 여성에게 페란테의 존재는 마치 어린이들에게 해리 포터 정도의 존재”라며 현재 세계 문단 내 페란테의 위상을 증명했다.

· 우리는 명작을 읽고 있다. _ 미국,『타임』
· 모험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우정을 다룬 놀라운 서사시. _ 프랑스,『르몽드』
· 페란테의 산문은 크리스털 같고 스토리텔링은 본능적이다. _ 영국,『이코노미스트』

작가와 미디어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독자들도 ‘페란테 열병’을 앓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헌책방 주인은 페란테의 소설이 헌책방에까지 나오지 않아 책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콜롬비아 대학교의 회의실에서는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페란테’라는 이름을 걸고 독자 토론을 진행한다. 올해 5월 호주 시드니홀에서 개최된 페란테 관련 행사에는 3천여 명의 독자와 영미권 번역가인 앤 골드스타인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RAI 국영방송은 ‘나폴리 4부작’으로 총 32부작의 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놀라운 일이다. 정체도 모르는 이 작가의 소설에 전 세계 독자들은 왜 이리 열광하는 것일까?

너와의 우정은
곧 나의 삶이었다


‘나폴리 4부작’의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릴라를 회상하는 레누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는 서로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간파하는 특별한 사이지만 그들의 우정 안에서도 미묘한 감정은 존재한다. 그들에게 서로의 존재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다.
릴라는 명석함을 타고났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한다. 모범생이고 노력형인 레누는 이런 릴라를 보고 자극을 받아 공부하지만 릴라의 영특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학교에서 인정받은 과제조차도 결국 릴라의 아이디어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공부뿐만이 아니다. 릴라는 커갈수록 아름다워지고 모든 남성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릴라보다 무엇 하나 잘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레누와 외부 환경 때문에 꿈이 좌절되는 릴라.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들의 감정은 요동친다. 그들의 우정은 사랑과 미움, 질투와 동정 같은 감정이 뒤섞인 흙탕물 같다.
소설 전반을 끌고 나가는 가장 큰 감정은 릴라와 레누의 애정이다. 레누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다가도 릴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한다. 릴라도 레누가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_ 416쪽

진정한 우정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 없는 사람도 없지만 평생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두 주인공의 우정은 보편적이지만 특별하다. 페란테는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 우정을 그린다. 스토리텔링은 본능적이지만 문장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그들의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경제적 빈곤’이다. 구두수선공의 딸인 릴라와 시청 수위의 딸인 레누는 모두 빈곤층이다. 릴라와 레누가 사는 동네의 경제는 고리대금업자인 돈 아킬레와 마피아인 실비오 솔라라에 의해 움직인다. 그들은 식료품점과 주점 겸 제과점을 차리고 동네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준다. 야채장수를 하는 스칸노네도 그들의 재력에 도움을 얻고 릴라의 구두 사업마저도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솔라라네 주점은 과거부터 고리대금을 하는 마피아 집단과 밀수꾼들의 소굴이었고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자금 모집 수단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돈 아킬레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스파이 노릇을 했고 스테파노는 그 애비가 검은색 가방에 모은 돈으로 식료품점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_ 197쪽

‘경제적 빈곤’과 ‘마피아’는 『나의 눈부신 친구』뿐만 아니라 ‘나폴리 4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릴라와 레누가 자란 1950년대의 이탈리아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매우 가난했으며 ‘가난한’ 남부와 ‘부유한’ 북부의 경제 격차는 특히 심했다. 이에 정부는 ‘남부지역개발법’을 제정해 남부의 경제성장을 도모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가난한 남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건 마피아였고 나폴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피아는 행정력이 미비하던 1950년대 이탈리아 남부에서 절대 권력이자 질서였다. 마피아는 보통 ‘M’ 또는 ‘m’으로 쓰는데 ‘M’은 ‘국제 범죄 조직’으로서의 마피아를 의미하지만 ‘m’은 일종의 정신 체계, 즉 망탈리테(mentalit?)를 뜻한다. 치안력과 행정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마피아를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 조직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의 눈부신 친구』속 상황처럼 마피아라는 존재가 나폴리인들의 평범한 삶에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도 지금도
폭력으로 가득하다


두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폭력이다. ‘나폴리 4부작’은 우정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릴라와 레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인물은 사회적 소수자다. 그들의 삶에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릴라의 아버지와 오빠는 릴라를 사랑하지만 릴라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한다. 레누의 아버지도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와 레누를 때린다. 레누와 릴라뿐 아니라 동네의 모든 사람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분노하는 여성들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레누는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레누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남성과는 달리 지적이고 친절했던 도나토 사라토레를 존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방어할 틈도 없이 도나토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레누는 다음과 같이 그날을 회상한다.

도나토 아저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내 육체에 남은 그 기분 좋은 느낌 때문에 내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기억하는 한 그때까지 한 번도 육체적 쾌락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느낌을 알지 못했기에 막상 경험하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 나는 드디어 릴라에게 이야기를 해줄 만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번만은 그녀도 이보다 더 강렬한 체험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나토 아저씨에 대한 혐오감과 자신에 대한 경멸감이 너무나 커서 릴라에게 차마 이야기를 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예기치 않게 끝난 그해의 여름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_ 309~310쪽

페란테는 “현실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며 “소설 속 여성들은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진다”고 말한다. 레누도 교육을 받은 여성이지만 당시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직설적인 내용의 이 소설에 당황하게 된다. 성폭행을 당한 뒤 쾌락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페란테의 지나친 솔직함에는 거부감마저 생긴다. 『마가진 리테레르』가 “이야기는 매우 폭력적이지만 그녀의 언어는 절제되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페란테의 글쓰기는 폭력성과 잔혹함을 더욱 극대화한다.
얼마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전 여자친구를 불에 태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 2주 전 한국에서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일 미디어에서는 살인과 폭력사건을 다루고 우리는 공공연하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폭력을 묘사하는 페란테의 글을 읽으며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정말로 거북한 점은 1950년대 나폴리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오늘날 한국 사회와 비교해봐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아닐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비평가 제임스 우드가 말했듯, “강렬하게 또 격렬하게 사적이다.”자신을 그렇게나 감추려고 했던 페란테가 이토록 사적인 소설을 쓴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우정은 곧 일상이다. 일상 안에서 만들어지는 평범하고 사적인 관계다. 그러나 우리는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을 내보이길 꺼린다. 자신만이 느끼는 가장 은밀한 감정들은 담아둔 채 지낸다. 페란테는 바로 그 지점을 소설에 담는다. 친구 간의 관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한 부분.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공격적이고 불안하지만 우리의 우정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단숨에 그들의 삶을 읽어 내려간다. 페란테가 ‘나폴리 4부작’이라는 자전 소설의 큰 얼개를 우정으로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페란테는 두 주인공의 우정과 삶이 사회에 의해 변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페란테가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깝고 사적인 근심들은 정치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듯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우정은 여러 세대의 삶과 관련되고 얽혀 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갈등하고 선택하며 변화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일상은 모두 역사의 일부가 된다. 그들은 사소한 역사적 사실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우리의 일상도 역사의 일부다.
우정은 인생 최초의 갈등이자 연대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통해서만 세상은 바로 설 수 있다.
따라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속도에 우리는 어느새 우정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우리의 우정은 안녕한가. 우리의 일상은 안녕한가.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물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