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및 소감
| 마음: 일본 나쓰메 소세키, 1914년 출간 * 한줄 감상: 나를 포함한 사람의 마음은 이해 앞에서 변하기 쉬우므로, 특히 자신 스스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 기억할 문장: 타인을 불신했던 나는 이제 자신까지 불신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네. * 서울대 추천도서 100선 |
누군가의 소개도 없었는데, 중고서점 알라딘에서 우연히 손에 잡혔다. 그런데 알고보니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의 하나이다. 이교수의 책과 사람, 문학줍줍, 고전책방 등 여러 유튜브에서 요약 내용을 접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요상하여 정지 상태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상황에 따라 부유한다. 소설 속 선생님은 친척의 배신을 통해 사람들이란 믿을 수 없는 나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 자신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사랑 앞에서 친구에게 계략을 사용하였으니 이만한 배신이 어딨을까? 그 친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결국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사랑을 쟁취하고 결혼하였지만 스스로의 배신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 자살이라는 수단을 택하였고.
소설이 전개되면서 인간의 감춰진 마음이 속속 드러나 보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지만 본인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굳세자~~

선생님과 나
17쪽: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때때로 내게 건넨 쌀쌀맞은 말이나 무관심한 듯한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한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자신을 가까이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니 그만두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타인과 친숙해지기를 거부하는 선생님은 타인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했던 것 같다.
20쪽: 安得烈(안덕열) => 안드레
21쪽: "자네는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해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23쪽: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말한 것처럼 선생님은 언제나 말이 없는 차분한 분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얼굴에 야릇한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28쪽: "젊다는 것만큼 외로운 것도 없지. 그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자주 나를 찾아오는 건가? 자네는 나를 만나도 아마 여전히 외롭다고 생각할 걸세. 내게는 자네의 그 외로움을 뿌리째 뽑아줄 만한 힘이 없으니까. 자네는 머잖아 바깥을 향해 팔을 벌려야 할 걸세. 그러면 더는 내집 쪽으로 발길을 향하지 않겠지."
36쪽: 어째서 선생님은 '행복하게 맺어진 한 쌍'이라고 하지 않고, '행복하게 맺어졌어야 할 한 쌍'이라고 했을까? 나로서는 그 점이 의문이었다.
42쪽: "제 말투가 그랬습니까?" "그렇더군. 만족할 만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좀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을테지. 하지만..... 자네, 알고 있나. 사랑은 죄악이야."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43쪽: "자네는 심적으로 뭔가 부족하니까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닌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사랑하고는 다릅니다."
"사랑을 이루는 단계지. 이성을 껴안기 위한 과정에서 먼저 동성인 나를 찾아오는 걸세."
45쪽: ".............. 아무튼 사랑은 죄악이야, 알겠나? 그리고 신성한 것이지."
47쪽: "예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놓게 만든다네. 나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려는 걸세. 훗날 지금보다 더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지금의 외로움을 참으려고 하네. 자유와 독립과 자아로 가득 찬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런 외로움을 맛볼 수밖에 없네."
56쪽: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를 싫어하실 이유가 없는걸요. 하지만 선생님은 세상을 싫어하시잖아요. 아니, 요즘에는 세상보다도 사람을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사람 중 하나인데 선생님이 좋아하실 리 없잖아요."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모님의 말뜻을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87쪽: 처음부터 악인으로 정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네.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막상 다급해지면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야.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걸세.
93쪽: "나는 사람에게 속은 적이 있네. 그것도 피가 섞인 친척한테 말이야. 그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걸세 .....나는 그들에게 당한 모욕과 손실을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줄곧 짊어지고 살아왔네. 나는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복수하지 않았어.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개인에 대한 복수이상의 것을 하고 있는 셈이야. 나는 그들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를 증오하고 있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나는 위로의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95쪽: "....... 나는 보잘것없는 사상가이지만, 내가 연구한 사상을 덮어놓고 숨기지는 않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내 과거를 자네에게 전부 털어놓아야 한다는 얘기라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이지."
"별개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과거를 바탕으로 탄생한 사상이기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 두 가지를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저는 혼이 담겨 있지 않은 인형을 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96쪽: "나는 과거의 업보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믿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왠지 자네만큼은 믿고 싶어. 자네는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순수해 보이거든.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사람을 믿어보고 싶네. 자네가 그 한사람이 될 수 있겠나? 되어 주겠나? 자네는 정말 진실한 사람인가?"
"만약 제 생명이 진실한 거라면 지금 제가 드린 말씀 또 진실입니다."
"그럼 됐네."
112쪽: 아버지가 고향에서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데도 자식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인간이 덧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경박함도 덧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부모님과 나
115쪽: ".....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나 죽은 뒤에 졸업하는 것보다는 아직 멀쩡할 때 졸업하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더 기쁘지 않겠니. 큰 뜻을 품고 있는 너의 입장에서야 고작 대학을 졸업한 걸로 장하다, 장하다하는게 듣기 거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또 그게 아니잖니. 그러니까 졸업은 너보다 나한테 더 대단한 일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죄송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132쪽: 나는 부모님 앞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집안 사정을 소상히 적은 편지를 보냈다.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으니 일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편지를 쓰면서도 선생님이 내 부탁을 들어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설령 들어주고 싶어도 활동범위가 좁은 선생님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
164쪽: 자네가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에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걸세. 벌써 죽었을 테지.
165쪽: 나는 정신없이 의사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앞으로 이삼 일쯤 더 버틸 수 있는지 어떤지 의사에게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더 버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의사는 집에 없었다. 내게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만한 시간이 없었다. 마음도 불안했다. 나는 곧바로 인력거를 잡아타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선생님과 유서
169쪽: 나는 비겁했네. 그리고 많은 비겁한 사람들처럼 괴로워헸던 걸세.
173쪽: 내 심장을 갈라, 뜨겁게 흐르는 피를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네. 그때는 나도 아직 살아있었지.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네.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네. 나는 지금 내 스스로 내 신장을 가르고,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끼얹으려고 하는 것이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자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네.
175쪽: 개인의 행동을 윤리적으로 바라보는 성격 때문에 나는 그 뒤로 점점 더 타인의 도덕심을 의심하게 되었던 것 같네. 그것이 나의 번민과 고뇌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자네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네.
178쪽: 언젠간 내가 자네에게 이 세상에 원래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고 했던 말.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다급해지면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방심하면 안된다고 했지....... 평범한 사람이 돈 때문에 악인으로 돌변한 사례로,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깨닫게 한 사례로, 나는 증오심을 느끼며 숙부를 생각하고 있었네......... 숙부가 내 재산을 빼돌린 거라네. 내가 도쿄에 나와있는 3년 동안에 손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 모든 것을 숙부에게 맡긴 채 안심하고 있던 내가 바보였어.
203쪽: 나는 그녀에게 거의 신앙에 가까운 애정을 품고 있었어. ......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눈과 그녀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욕정과는 무관한 순수한 것이었네.
205쪽: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네. 남은 절대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아가씨만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나를 믿고 있는 사모님을 기이하게 여겼으니까.
207쪽: 나는 다시 사모님을 경계하기 시작했네..... 나의 번민은 아가씨도 사모님처럼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거라네.
233쪽: 그(K)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첫 번째 수단으로 우선 이성 옆에 가까이 앉히기로 했네. 그를 그런 분위기에 노출시켜, 녹슬어 가는 그의 혈액을 새로이 바꾸어볼 생각이었지. 차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239쪽: 하지만 나는 K를 남겨두고 혼자 떠나고 싶지 않았네. K와 주인집 식구들이 점점 친해지는 것을 보고있자면,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네. 처음에 바랐던 대로 되는데 왜 마음이 불편한 거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네. 내가 어리삭었기 때문이겠지.
241쪽: K와 나는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네. 나는 오히려 그를 돌봐준 보람을 느끼며 기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만일 그의 자신감이 아가씨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걸세. 희한하게도 그는 내가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네.
242쪽: 나는 아가씨에 대한 내 마음을 K에게 솔직하게 밝히려고 했네. 사실 그것은 한순간에 결정한 일은 아니었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도 잡지 못했고, 그런 기회를 만들어낼 재주도 없었지.
248쪽: 그가 말하는 옛사람이란 물론 영웅도 아니고 호걸도 아니네. 영혼을 위해 육신을 학대하고 도를 위해 몸에 채찍을 가하는 사람, 이른바 고행의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라네. K는 자신이 그 길을 걷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내가 몰라주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했네.
251쪽: 그 뒤로 K를 대하는 아가씨의 태도도 점점 자연스러워졌네. K와 내가 함께 집에 있을 때도 자주 K의 방 앞에 와서 그의 이름을 불렀네. 그리고 그의 방에 들어가 한참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 하지만 아가씨를 독차지 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네.
257쪽: 오랫동안 한 집에 살면서 아가씨에게 직접 내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일부러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네. 일본의 관습상 그런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지. 하지만 나를 속박한 것은 결코 그것만이 아니네. 일본인, 특히 젊은 여자가 상대에게 고백을 받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만큼 용기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네.
261쪽: 과묵한 그의 입에서 아가씨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고백이 나왔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게. 그의 마법의 지팡이가 나를 단번에 돌덩어리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네. 나는 입을 우물거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네................... 나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네. 그리고 곧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네. 내가 한발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264쪽: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을 기대할 수 없었네. 왜 갑자기 내게 그런 얘기를 한 걸까. 또한 어떻게 그렇게 내게 고백할 정도로 그녀에게 깊은 연정을 느끼게 된 걸까.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모든 것이 내게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네.
268쪽: K가 고백한 시점을 전후로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단지 내게만 밝혔을 뿐 당사자인 아가씨에게나 그 보호자인 사모님에게는 아직 밝히지 않은 게 분명했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마음이 놓이더군.
272쪽: 그는 내게 막연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 사랑의 늪에 빠져버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네. ......내가 K에게 무엇 때문에 내 의견을 묻는 거냐고 하자, 그는 평소와는 다른 자신 없는 말투로 나약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했네. 그리고 너무 망설이다 보니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져, 내게 객관적인 의견을 구하는 거라고 하더군.......
273쪽: K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방에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곧바로 그의 허점을 파고들었네.......... 나는 먼저 "정신적으로 발전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어리석은 자." 라고 단언하듯 말했네. 이 말은 보슈지방을 여행할 때 K가 내게 했던 말이네................ 나는 복수보다 더 잔혹한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자네에게 고백하네. 나는 그 한마디로 K의 앞에 펼쳐진 사랑의 행로를 차단하려고 했네............. 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첫 번째 신조였네. 식욕이나 금욕은 물론이고 설령 욕정과는 거리가 먼 사랑일지라도 그 자체가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걸세. ................. "그래, 맞아, 난 어리석은 자야."
276쪽: 그러자 이번에는 "이제 그만해줘." 하고 부탁하듯이 말했네. 그때 나는 그를 잔인하게 몰아붙였네. 빈틈을 노리던 늑대가 양의 숨통을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 그만하자니? 그 얘기는 내가 아니라 네가 먼저 꺼낸 거잖아. 네가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둬도 상관없어. 하지만 진심으로 그만둘 각오가 되어 있어야지. 말로만 그만둔다면 무슨 소용이야. 대체 네가 평소에 주장했던 것들은 어떻게 할 셈이야?".............. 그때 그가 불쑥 "각오?" 하고 내게 되물었네. 그러고는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각오는 어느 정도 돼 있지." 하고 덧붙이더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 같았네 마치 꿈속에서 말하는 것 같았네.
282쪽: 유감스럽게도 나는 애꾸눈이었어. 나는 그의 말을 단지 아가씨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로만 해석했네. 과감하게 행동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네. 나 역시 마지막 결단이 필요하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네. 그 목소리를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네. 나는 K보다 먼저, 그리고 K가 모르게 은밀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네. 나는 조용히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
284쪽: 나는 대뜸 "사모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말했지. 사모님은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놀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네...................... 사모님은 "좋아요, 내 딸을 드리죠." 하고 말했네. 그리고 나중에는 사모님 쪽에서 "사실 그렇게 선심쓰듯 말할 처지도 아녜요.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아시다시피 아버지 없이 자란 가엾은 아이에요." 하고 오히려 내게 부탁했네. 그 이야기는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었네. 얘기를 나눈 시간은 아마 15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걸세.
287쪽: 그는 "몸은 좀 괜찮아? 병원에는 다녀온 거야?" 하고 물었네.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네. 내가 느낀 그때의 충동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네. 만약 K와 내가 단 둘이 광야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면 나는 분명 양심에 따라 그 자리에서 사죄했을 걸세. 하지만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네. 결국 내 양심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안에서 머물고 말았지. 그리고 슬프게도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네.
288쪽:
. 나는 K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네.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변명들을 생각해 보았네. 하지만 어떤 변명도 K를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했지. 비겁한다는 급기야 K에게 자신을 변명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네.
290쪽: 나는 정직한 길을 걷는 답시고 잘못된 길로 발을 내디딘 어리석은 인간이었네. 교활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하늘과 나 자신뿐이었네................ 나는 어떻게든 내 잘못을 숨기고 싶었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지.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네.
290쪽: 그때 사모님이 나를 놀라게 한 말은 지금도 잊지 못하네. " 어쩐지 내가 얘기하니까 표정이 이상해지더라고요. 학생도 너무하네요. 평소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 말없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니." 나는 사모님에게 K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지. 사모님은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 했네.
292쪽: 계략을 써서 이기긴 했지만 인간으로서는 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네. 나는 K가 나를 경멸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지. 하지만 이제 와서 K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네.
내가 그대로 나아갈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고민하다가 일단 다음날까지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토요일 밤이었네. 그런데 그날 밤 K가 자살하고 말았네. 나는 지금도 그 광경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네.
293쪽: 그때 내가 받은 첫 느낌은 갑자기 K에게 사랑 고백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거의 비슷한 것이었네. 그의 방을 둘러본 순간 내 눈은 유리로 만든 의안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지. 한순간 그런 느낌에 휩싸이고 난 뒤에야 겨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순식간에 앞에 펼쳐진 인생을 뒤덮으며 뻗어 나가고 있었네. 그리고 나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지.
그래도 나는 끝까지 나를 포기할 수 없었네. 나는 곧 책상 위에 놓인 편지로 시선을 옮겼네 .그것은 예상했던 대로 내 앞으로 쓴 유서였네. 나는 지체 없이 봉투를 뜯었지.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전혀 씌어 있지 않았네. 나는 그 유서에 나를 원망하는 글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네. 그리고 만약 사모님과 아가씨가 그 유서를 보면 나를 경멸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갖고 있었지. 나는 대충 내용을 훑어보고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네. 물론 체면상 다행이라는 뜻으로, 그때는 그 체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네.
유서의 내용은 간단했네. 그리고 약간 추상적이었지. 자기는 의지가 약해 어려움을 이겨낼 자신도 없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네..................... 필요한 말은 한 마디씩 전부 씌어 있는데 아가씨의 이름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네. 유서를 다 읽고 나니, K가 일부러 아가씨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네. 하지만 가장 내 가슴을 울렸던 부분은, 먹물이 남아서 마지막에 한 줄 덧붙여 쓴 것 같은, 좀 더 일찍 죽었어야 하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것일까 하는 대목이었네.
295쪽: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네. 단지 두려웠을 뿐이네. 그것은 눈앞의 광경이 감각을 자극해서 생겨난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네.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암시하는 내 운명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네.
303쪽: 나는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네. 하지만 막상 그러려고 하면 갑자기 외부의 어떤 힘이 나를 가로막곤 했네..................... 그때 나는 아내를 상대로 나 자신을 치장할 생각은 전혀 없었네. 만약 내가 죽은 K를 대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진실을 밝혔다면, 아내는 내 고백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용서해주었을 걸세.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나 개인의 이해타산 때문이 아니네. 나는 단지 아내의 기억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까 두려워,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네. 순백한 그녀의 마음에 잉크를 뿌린다는 게 나로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이해해주게.
304쪽: 숙부에게 속았을 당시 내 마음은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네. 그러면서도 나 자신만은 정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세상이야 어찌되었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믿음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던 걸세. 그 믿음이 K의 일로 맥없이 무너져버리면서 나 역시 숙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 타인을 불신했던 나는 이제 자신까지 불신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네.
306쪽: 술은 끊었지만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은 없었네.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었지. 하지만 단지 읽는 것에 그칠 뿐이었네.
아내는 내게 무엇 때문에 공부하느냐고 여러번 물었네. 나는 그저 웃기만 했지. 하지만 속으로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펐네. 이해시킬 방법이 있어도 이해시킬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서글퍼졌네. 나는 외로웠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나 혼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자주 들었지.
307쪽: K는 실연 때문에 죽은 거라고 간단히 결론을 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상황을 돌이켜보니,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네. 현실과 이상의 충돌로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네. 나는 결국 K도 나처럼 혼자 외로워하다가 끝내 자살하기로 결심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섬뜩해졌네. 나도 K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걸어갈 거라는 예감이 문득 바람처럼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일세.
309쪽: 나는 단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뿐이네. 내가 매달 K의 묘에 찾아간 것도 그 죄책감 때문이지. 장모님을 정성껏 간호한 것도, 아내에게 자상하게 대한 것도 그 때문이네. 나는 그 죄책감 때문에 길 가는 낯선 사람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싶어하기도 했네. 그런 단계를 거치다보니 남에게 채찍질을 당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나중에는 채찍질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네.
310쪽: 우여곡절도 없이 단조롭게 살아가는 것 같은 나의 내면에서는 항상 그런 고통스러운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게. 나는 아내가 나를 보고 답답해 하는 것보다 몇배나 답답해하며 살아왔네. 그리고 그런 감옥에서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자, 내가 거기서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네................. 내 마음을 무섭게 옥죄어오는 그 불가사의한 힘을 나의 모든 활동을 가로막으면서도 죽음의 길만은 자유롭게 터놓았네. .................내가 떠난 뒤에 혼자 남을 아내를 상상해보니, 애처롭기 그지없었네. .............. 나는 매번 그것 때문에 주저했네. 아내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두길 잘 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 그러고는 또 한동안 움츠러들었네. 그러면 이따금 아내는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네. 기억해주게. 나는 그렇게 살아왔네.
312쪽: 내 뒤에는 늘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있었지. 나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연장하며 살고 있었던 셈이네............. 그런데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메이지 천황이 승하했네. 그때 나는 메이지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해 천황으로 끝난 듯한 느낌이었지. 메이지 정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가 계속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시대적 추세를 거스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네. 나는 아내에게 내 느낌을 솔직히 얘기했네.......... 그럼 순사라도 하지 그러느냐며 나를 놀렸네.
313쪽: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글을 읽었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책임을 통감하고,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는데 그만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더군............. 노기 대장은 35년 동안이나 죽음을 생각하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네. 나는 그렇게 살아온 35년과 칼로 배를 찌르는 한 순간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지 생각을 해보았네. 그로부터 이삼 일 후, 나는 드디어 자살을 결심했네.
314쪽: 나는 아내를 남겨두고 떠나네. 내가 떠나도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 나는 아내에게 참혹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네. 그래서 피를 보이지 않고 죽을 생각이네. 아내 모르게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려고 하네. 아내가 내 죽음에 대해 단순한 급사로 생각했으면 좋겠네.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살한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314쪽: 나는 글쓰기를 좋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네. 내가 지닌 과거는 인간의 경험 중 일부분으로서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지. 그것을 거짓없이 써서 남겨 두려는 내 노력은 자네나 다른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네.
315쪽: 나는 남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내 과거의 좋고 나쁜 모든 경험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네. 하지만 아내만큼은 예외라는 것을 알아주게.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네. 내 과거에 대한 아내의 기억은 가능한 한 순백의 상태로 남겨주고 싶은 게 내 유일한 희망이라네. 그러니 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자네에게만 밝힌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가슴속에 묻어 두기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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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세세한 욕망으로 의도하는 기미 속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줬을 수도 있음
정신적, 사회적 죽음으로 이끈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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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책 소개
소세키는『마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괴감, 근대를 지탱하던 ‘시대의 윤리’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연을 묘사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심연을, 즉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 타인과 마주하기 위해 함께 끌어안아야만 하는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저자(글) 나쓰메소세키

저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회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 동안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 1903년 귀국 후 제1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호평을 받으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1907년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속 작가로 활동한다. 1916년 지병인 위궤양이 악화되어 내출혈로 49세에 사망한다.
목차
- 마음
상. 선생님과 나 16
중. 부모님과 나 104
하. 선생님과 유서 148
해설 _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강유정 275
나쓰메 소세키 연보 283
출판사 서평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
일본의 셰익스피어이자 천년의 문학가
나쓰메 소세키가 꿰뚫어 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장편소설 전집(전 14권) 완간
《 아사히 신문 》, ‘지난 천 년간의 일본 문학자’ 투표 1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강상중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최종 후보’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자유를 구가하고 독립을 주장하며 자아를 내세우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이렇게 다들 고독한가. 부모자식, 부부, 친척, 친구, 연인, 사제……인간관계 안에 숨어 있는 에고이즘과 고독,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 봐도 선구적인 작가임이 틀림없다.
_ 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 국내 최초 완역 출간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을 차례로 펴냅니다. 단단한 번역, 꼼꼼한 편집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은 깊숙한 재미와 진진한 삶의 관찰로 가득합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까닭을 기껍게 체험하게 할 ‘고민하는 힘’ 속으로,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 2013년 9월 전집 출간사
2013년 9월부터 출간하기 시작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이 4차분『마음』,『한눈팔기』,『명암』 출간으로 마침내 완간되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 ‘소설이 없던 시절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의 대문호, 일본의 셰익스피어 등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00엔권 지폐에 가장 오랫동안 그의 초상이 실려 있었고,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작가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일본의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사후 100주년을 맞아 현암사에서 국내 최초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완역 출간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를 통해 대표작에 치우쳐 중복 출간되어 왔으나 현암사에서 출간하는 소세키 소설 전집은 나쓰메 소세키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장편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산시로』,『문』,『마음』,『명암』 등 우리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작품뿐 아니라 소세키의 연보에서도 가끔 빠져 있는 숨어 있던 소설까지 온전히 담았다. 소세키는 길지 않은 창작 기간 동안 한시, 하이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 작품 각각이 개성 있게 분출하는 분위기, 내용에 따른 문체 변주의 독특함 등 소세키의 작품을 고전이라 일컬음에 이론은 없을 것이다.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소세키의 문체를 생생한 우리말로 잘 살린 송태욱의 꼼꼼한 번역에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완역한 노재명의 소세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져, ‘우리 시대 소세키 번역’으로 거듭났다. 또한 소세키의 작품을 온전히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것은 송태욱(『고양이』 외 11권)ㆍ노재명(작고,『태풍』 및 『그 후』)의 필생 작업이기도 하다.
100년 전의 나쓰메 소세키에게 묻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닿아 있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고, 인간 마음속 심연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고독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탐구로 생생한 보편성을 확보했다.
소세키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썼고, 그의 생애가 작품처럼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었다. 그는 후처의 아들로 태어나 두 번이나 양자로 보내졌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잃고, 큰형과 둘째형을 폐결핵으로 잃었으며 결혼한 뒤에는 아내가 유산의 충격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 자신은 평생 위통을 앓았고 신경쇠약,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이러한 무수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불행, 궁핍의 연속이고 반복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삶을 믿을 수 있기를, 불안하지 않기를 갈구했다. 성장 제일주의 사회, 군국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꿰뚫어 보고 타인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롭고도 윤리적인 ‘개인’이 되고자 한 나쓰메 소세키. 그는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강상중) 길을 모색했고, 불안하고 나약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끈질긴 희망을 놓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인간을 연구했다.
『마음』
사모님은, 선생님이 K를 이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만 게 아닐까. K가 자살하자 선생님은 영원히 자신의 승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사모님이 옆에 있는 한 선생님의 마음은 K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선생님은 사모님을 버릴 수도 없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K를 속이면서까지 결혼했다는 자신의 정당성까지 버려야 할 테니까. K에게 감정이입하여 읽으면 선생님의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_옮긴이의 말에서
내 눈은 그의 방 안을 한번 둘러보자마자 마치 유리로 만든 의안처럼 움직이는 능력을 상실했지. 그 자리에 못 박히고 말았네. 그런 상태가 질풍처럼 나를 통과한 뒤 나는 다시 아, 큰일 났다, 하고 생각했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검은빛이 내 미래를 관통하고 한순간에 내 앞에 놓인 전 생애를 무섭게 비추었네. 그리고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지.
_ 본문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그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체감되며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는지 그 마음의 서사를 발명해냈다. 그를 일컬어 일본 근대 소설의 시작이자 그 핵심의 정서라고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불화하는 개인 그리고 그 불화 가운데서 뜨겁고도 분명한 ‘진실’의 기미를 전달해주는 갈등, 그 갈등 가운데서 또렷해지는 어떤 개인,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소설에서 찾고자 하는 무엇이다.
_ 강유정(문학평론가)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나’는 가마쿠라의 한 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한눈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선생은 타인과 거리감을 두고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나’의 적극적인 태도로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지만 ‘나’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있는 사이 선생은 ‘나’에게 유서를 보내고 목숨을 끊는다. 선생의 유서에는 왜 그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되었는지가 담겨 있었다. 선생은 학생이었을 때 친구인 K와 둘이서 하숙집의 딸을 좋아했는데 친구를 속이고 그녀를 가로채었다. 이를 알게 된 K가 자살하자 이후 선생은 줄곧 절망에 빠져 살게 되었다. 소세키는『마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괴감, 근대를 지탱하던 ‘시대의 윤리’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연을 묘사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심연을, 즉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 타인과 마주하기 위해 함께 끌어안아야만 하는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발견된 자아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외로운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닌 고독의 괴로움, 변화를 감내하는 불안감. 이는 근대의 막이 열리던 시기에 급속하게 사람들에게 찾아온 인식 변화이며,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기조이기도 하다. 소세키는『마음』에서 스스로를 포함하여 인간 존재 일반을 증오하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의 우리 모습을 투영했고,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인생의 의미, 그리고 ‘개인’이라는 큰 문제의 해답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마음』은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나’와 선생님이 처음 만나 관계가 발전되는 과정을, 두 번째 장에서는 아버지가 위독하여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그렸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찍힌 과거의 낙인과 그것이 스스로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고백하는 ‘유서’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1914년, 도쿄와 오사카의《아사히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 중에 하나이며, 판매 부수가 1,7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근대소설의 규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본 근대문학 최고의 정전(正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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