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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3국 여행 기행문 (2025.7.19)

클리오56 2025. 7. 19. 19:42
얼마전 가입한 독서모임에서 코카서스 3국 여행을 기행문으로 발표하였는데,
이렇게 정리해보니 그 또한 의미가 있다. 

, , 물의 나라 코카서스 3국 여행

 

지난 516일부터 613일까지 29일간 코카서스 3국을 여행과 트레킹 다녀왔습니다. 코카서스 3국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및 조지아이며 동쪽으로는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흑해, 북쪽으로는 코카서스 산맥 그리고 남쪽으로는 튀르키예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첫 방문국은 아제르바이잔이었고 수도 바쿠를 중심으로 23일의 짧은 기간 체류하였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로 불리는데, 4천년 전에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지금까지도 절대 꺼지지 않고 불이 타오르고 있는 야나르 다그가 있으며, 그런 환경 속에서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가 탄생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리고 1846년 세계최초의 산업용 석유시추를 했을 정도로 석유와 가스가 많이 생산되어 수도 바쿠는 석유의 도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석유에서 나온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바쿠에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많은데 불꽃을 닮은 3개의 초고층 빌딩인 플레임 타워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마를린 몬로의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는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는 또 다른 명물입니다. 바쿠는 카스피해에 접해있어 새벽 카스피해 일출을 볼 수 있었고, 정말 바다인지 궁금하여 짠맛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국은 아르메니아인데, 아제르바이잔과는 최근에도 전쟁을 겪은 적국이기에 직항이 불가하여 조지아의 트빌리시 공항을 거쳐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입국하여 45일 체류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서 301년 국교로 공인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현 튀르키예)으로부터 인종 청소를 당하여 150만 명이 학살당하였습니다. 그들의 민족적 영산인 아라라트 산은 튀르키예에 빼았겨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처지입니다. 최초의 기독교 국가답게 귀한 유물인 그리스도를 찌른 창이 에치미아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자연유산으로는 가르니 계곡의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높이 50m, 길이 1km 이상 펼쳐진 주상절리가 파이프 오르간을 닮았다하여 돌의 교향악(Symphony of Stones)로 불립니다. 수도 예레반의 캐스케이드라는 계단 500개 이상에 걸쳐 폭포와 분수 조각공원을 설치한 복합문화공간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돌의 나라로 불리는 아르메니아는 이러한 중심 건축물과 교회의 석조가 살구빛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케합니다.

 

마지막 방문국인 조지아는 역시 초기 기독교 국가로서 성녀 니노의 노력으로 337년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조지아는 코카서스 산맥의 설산에서 기원하는 강들이 많아 물의 나라로 불리고 수력발전에 크게 이용됩니다. 흑해 연안의 도시 바투미에서는 흑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최초의 와인 생산국으로 8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지아의 주요 교회와 수도원은 대부분 산악지대의 높은 곳에 요새처럼 위치하는데 끝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불굴의 의지의 산물인 듯합니다. 심수봉이 불렀던 백만송이 장미가사의 실제 주인공이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인데 그의 출생지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로 불립니다. 조지아는 트레킹의 천국으로 이곳에서 8 차례 설산과 빙하를 함께하는 트레킹을 즐겼으며, 특히 유럽에서 최고 높은 마을이라는 우쉬굴리에서 메스티아까지의 23일간의 60km 장거리 트레킹은 야생화와 함께하고, 거대한 빙하를 마주하며, 빙하수 계류를 맨발로 건너기도 하는 감동적 트레킹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나름 다섯 가지 화두를 가졌는데, 여행내내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첫째, 코카서스 3국은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하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배운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합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결국 수긍하였습니다. 우선 그들은 아시안 경기 대신 유러피안 경기에 참가하며, 프로 축구도 유럽 리그에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리스 신화가 연결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서 간을 쪼이면서 바위에 묶여있었다는 산이 조지아의 카즈벡산입니다. 또한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 양털을 찾아 콜키스 왕국에 갔는데 이곳이 흑해 연안의 바투미라는 도시와 그 인근 콜키스 왕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코카서스 지역이 그리스와 교류된다는 게 신기했는데, 고대 그리스는 해양 강국이라 보스포러스 해협과 흑해를 거쳐 조지아와 의외로 쉽게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민족주의가 항상 옳고 좋은가하는 이슈입니다. 강성의 민족주의는 오히려 상이한 민족간의 대결을 조장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지역은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 러시아 제국 등 강국의 침략과 지배가 순환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여 약소민족은 긴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시기를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의 기간은 짧았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지배하에서는 대부분 세금만 잘 내면 그런대로 평화스럽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국의 지배가 끝나면서 민족주의가 강하게 대두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기에 약소민족 상호간에도 전쟁이 발생하여 살육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구소련이 붕괴된 직후 1992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5년 전에도 전쟁을 치렀습니다.

 

셋째, 인간의 선과 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요? 그릇된 사상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조지아는 훌륭한 자연환경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신앙심 깊은 정교회를 믿음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등장하여 수천만 명이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을까요.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나도, 공산주의라든지 그런 그릇된 사상에 빠지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잊어버리는 듯합니다. 인간을 개조시키겠다는 아주 일방적이고도 그릇된 사상이 문제라고 결론을 내려봅니다.

 

넷째, 코카서스 3국은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정교회,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을 신봉합니다. 종교가 같아도 파가 다르다고 전쟁하는 세상이니, 종교가 상이하면 그렇게 싸우는 것은 대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간 화합의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남녀 사랑의 힘이 종교보다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조지아의 서쪽 흑해 연안에 바투미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에 알리와 니노라는 움직이는 조각상이 있는데, 짧은 키스와 긴 이별을 연출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리는 아제르바이잔의 이슬람교 남성이고, 니노는 조지아의 정교회 여성입니다. 두 사람이 상이한 종교의 벽을 깨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도 두었습니다. 하지만 알리는 아제르바이잔의 독립전쟁에 참전하여 러시아와 전쟁 중 사망하게 되지요. 결국 이유야 어째든 아쉽게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래도 비록 소설에서이지만 이런 스토리가 전개될 수 있고 조각상이 있다는 것만도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아마도 바투미라는 도시의 특성상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바투미의 일부 조지아인들이 이슬람을 믿는데, 오스만 제국 시절의 이슬람화 영향으로 그렇게 개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알리와 니노라는 조각에서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의 힘을 느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는 러시아 혹은 미국과 유럽연합, 어느 편에 설까요?

조지아는 1992년 구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카길 문자를 버리고 영어 알파벳을 택합니다. 물론 지금도 러시아 관광객들이 많아 일부 간판들은 카길 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지아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협상하는 도중, 대통령 선거에서 친 러시아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 협상이 중단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우고, 얼마 전 러시아의 침략까지 당하면서 반 러시아 성향은 분명 강합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 만약 조지아가 친서방으로 완전히 돌아서면 러시아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강한 국가 옆의 약소국가들은 참으로 입장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속 검은 곰같은 러시아 편에 서고 싶을까요? 하지만 폭력적 주먹은 바로 곁에 있습니다. 조지아는 1992년 독립이후 2개 지역, 즉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지역을 러시아에 빼았긴거나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조지아 여행 중 구다우리를 갔을 때 큰 전망대가 있는데 대형 벽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조지아-러시아간 서명한 조약의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만든 우호기념탑입니다. 무슨 조약일까요? 이 조약은 조지아가 외교권을 양도한 불평등 조약인데, 한일 관계에서 본다면 1905년 을사늑약과 같은 성격입니다. 지금 조지아가 독립했으니 이런 우호기념탑은 파괴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이게 버젓이 남아있다는게 주는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는거지요.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평생 지속되며,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하며, 자연 속의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행히 이번 여행 중 그런 시간의 점을 두셋 느낄 수 있었으니 참으로 복받은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크지 않은 코카서스 3국에서도 구소련에서 독립한 1992년 이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간의 두 차례 전쟁, 그리고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의 전쟁, 그리고 최근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새로운 긴장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귀국하여 저 멀리 코카서스의 상황을 우리가 처한 위치에 대비시켜보면 머리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지난 70년간 전쟁없이 비교적 평화스럽게 지냈다는게 우리 세대의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경제적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일원인 우리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의 시대에도 그런 평화가 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