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트빌리시~다비드 가레자~보드베수도원~시그나기 | 시그나기 시내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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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탐방을 마치고 예레반을 떠나 마지막 방문국 조지아의 트빌리시로 이동하는 날이다.
예레반 숙소에서 처음으로 누룽지 3봉을 개봉하여 아침식사로 성공적 데뷰를 하였다.
준비해간 밑반찬 2종에 중락님이 가져온 깻잎이 추가되었다.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차량 2대에 분승하였는데 얀덱스로 택시를 콜하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도하지 않으면서 대기요금이 발생하였으며 택시위치에 가보았지만 없는 희한한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서는 카드결제를 하지 않고 현금결제하는게 천만다행이다.
2차콜은 통신 불안으로 잘되지 않아서 숙소로 뛰어가 와이파이를 잡아 콜하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택시가 제대로 도착하였고 공항까지 2400드럼, 잔돈까지 모두 처분하였다.
예레반~트빌리시 항공이동은 또 한번 우리 일행을 긴장시켰으니
과연 항공 티켓이 무사한지, 지난 번 처럼 체크인 차지가 발생하는지, 하지만 무사히 체크인.
도대체 지난 번 온라인 체크인 소동은 왜 발생했을까?
아무튼 잘 통과되어 항공권 발급받았고 출국심사장에서는 한국어 유창한 여성이 질서 정리하고 있었다.
이 여성은 한국인 처음 본다며 굉장히 반가워했는데, 이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르메니아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출입할텐데....
예레반에서 트빌리시는 30분만에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공항을 빠져나온 차량은 트빌리시로 향하지 않고 바로 카헤티 고속도로를 타고 나아갔다.
인터체인지에서 높은 탑 사진을 찍었는데 '인간과 태양'이라는 작품이다.
제작자는 트빌리시 크로니클을 제작하기도 한 즈라브 체레테리였다.
상부를 구글지도에서 캡쳐하였다.
본격적으로 이동 하기전 큰 마을에서 장도 보고 빵 가게에서 뿌리 2종류를 구입 점심식사를 하였다.
빵 만들고 있는 키친을 사진 찍어도 돼냐하니 캐셔가 아주 환환 웃음을 띄며 과장된 제스츄어까지 보여준다.
대평원을 달리는데 좌우에 나무 숲길이 있기도 하고
특히 아르메니아와 달리 대규모 작물, 농사, 가축(소, 양, 말)의 모습이 계속 보여진다.
그만큼 삶의 생기가 느껴지고 윤택한 모습이다.
1. 다비드 가레자 (David Gareja): 동굴수도원
트빌리시 남동쪽 70km 지점, 광활한 황무지 지역에 넓게 펼쳐진 동굴수도원이다.
다비드 가레자는 6세기경 조지아로 들어온 13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었으며
그는 몇몇 수도사들과 이 지역에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13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13 세기말 몽골의 침략, 17세기 페르시아에 의해 훼손되었으며
구 소련 당시에는 폐쇄되고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사격훈련장으로 사용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했다.
암석을 깍아 동굴을 만들었다. 동굴지역은 출입이 되지 않도록 막아두어 접근하지는 않았다.
저런 동굴을 깍고 생활했다니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수도사들의 고행을 알 수 있다.
내부의 프레스코화를 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아마도 동굴지역에 있기에 볼 수 없었다.
황폐한 자연 속에서 동굴을 깍아 고행하는 인간이 만든 위대한 합작품은 감동적이다.
붉은 지붕의 수도원, 무지개 채색의 암석, 넓은 초지, 뒷배경을 이루는 긴 능선, 이 모든게 한 눈에 들어온다.
뒷쪽으로 올라가 큰 암반을 오르면 나타나는 작은 동굴, 여기가 접근 가능한 마지막 지점이다.
수도원은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근처이며 특히 유적의 일부가 아제르바이잔 영역에 있다.
하여 조지아는 영토 교환을 통해 전부 확보하고자 시도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하기를 트레킹을 하는 동안 국경을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순환코스 약 2km, 30분 소요된다며 트레킹 지도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으니 국경수비대원이 더 이상 접근하지 말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차량으로 휙 지나가버린다. 하지만 이런 광활한 초지에 호수가 있으니 목축업에는 아주 좋아보인다.
2. 보드베 수도원
조지아 정교회 수녀원으로 시그나기에서 약 2.5 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여생을 보냈으며
그녀의 유해가 구관에 안치되어 조지아 주요 성지 중의 하나이다.
성당은 9세기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 세기에 복원의 흔적이 남아있다.
제정 러시아의 후원을 받기도 했으나 구소련 당시에는 수도원을 폐쇄하고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구소련 해체 후 다시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했으며, 대성당의 계속된 복원작업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
파스텔 톤의 외관이 멋지다. 내부 성화 촬영은 금지되었다.
산등성이 경사면에 커다란 계단식으로 꾸며 놓은 정원의 모습이
저멀리 알리자니 평원과 코카서스 산맥의 경관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전망대와 성당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니노의 샘이 나온다.
하지만 통과하는 문이 지금은 잠겨있다며 내일 10시에 다시 오란다.
왕복으로 다녀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3. 시그나기 성벽 걷기
차량이 시그나기에 도착했지만 숙소로 바로 가지않고 성벽걷기를 먼저 하기로 하였다.
시그나기는 조지아의 최대 와인 생산지 카헤티 지역의 동쪽 해발 800m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지아의 작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한 곳이다. 시그나기는 튀르키예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풍의 벽돌 지붕을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좁은 자갈길 골목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며 사랑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알라자니 평원은 코카서스 산맥을 병풍 삼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시그나기에서 Must Do는 성벽타기이다. 전체로는 약 5km되지만 실제 성벽걷기로 개발된 코스는 그리 길지 않다.
우리의 한양도성만큼은 폭이 넓지는 않지만 다니기에 부족하지는 않다.
이 성벽은 1770년경 시그나기를 보호하기 위해 카르틀리 카케티 왕 에렉클레 2세 때 건설 되었다.
철저하게 요새화된 이 마을은 방어벽 4.5-5km에 28개(혹은 23개)의 감시탑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성벽의 전체 주변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이 복구되어 방문객들에게 개방 됐다.
풍광이 멋지다. 푸른 하늘, 하얀 설산, 녹색의 평원 그리고 쭉 이어지는 성벽과 망루가 조화롭다.
이곳까지 성벽타기 맛보기를 보았다. 대기중인 차량을 타고 숙소로~~
숙소가 좋은 위치에 괜찮은 외관을 가졌다.
4. 시그나기 산책
전통 뿌리에 요거트, 과일로 저녁을 들곤 중락님과 함께 시그나기 산책에 나섰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성벽을 따라 도로를 내려와 메인 도로인 시그나기-쯔노리를 만나는
한 모퉁이에 Solomon Dodashvili라는 한 철학자의 동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의 한 구석 벽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그나기 국립박물관이라지만 소도시의 박물관이라 소장품은 많지 않다고 한다.
다만 2층 전시실에 가면 조지아의 국민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작품을 다수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은 계단을 내려와 만나는 니코 피로스마니의 흉상이다.
아마도 그의 백만송이 장미의 일화가 이 시그나기 도시를 사랑의 도시로 만들었지 않나 생각든다.
주변과 잘 어울리는 시그나기 시청사 건물
문화예술회관
Vano Sarajishvili라는 오페라 가수
시그나기 분수, 이 일대가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경찰서
당나귀 타고 왕진 가는 의사, 아마도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작품을 동상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든다.
일몰 무렵이라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레스토랑 꿩의 눈물 (Pheasant's Tears Winery)
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이 레스토랑은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
카헤티 지역의 조지아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Restaurant Avantaje
내부 인테리어도 괜찮고 중락님과 함께 바깥 입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음했다.
숙소로 귀환
코카서스 3국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그 주된 목적지는 조지아이고, 그중에서도 트레킹이다.
드디어 조지아로 입국하였다. 예전에는 그루지야로 불렸지만 소련 독립이후 조지아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그루지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늑대의 뜻, 조지아 전사들이 늑대와 같이 용맹하고 빠르며 가족을 잘 지키는 용사와 같다는 의미이다.
코카서스 혈통을 타고 내려온 아주 강인한 체격과 풍채를 지녔다.
일본 스모계에 조지아 출신 스모선수 토치노신 츠요시의 인기가 대단하다.
190cm가 넘는 큰 키와 우람한 몸으로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혹독한 연습과 노력으로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국민영웅의 자리를 차지했다.
조지아는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말했던 '문명의 단층선'에 위치하여 끊임없는 침입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 문명의 접점, 러시아가 지중해로 내려가기 위한 최단거리, 지중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통로이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를 엔터테인먼트용으로 피울 수 있도록 합법화하였다니 성골 기독교 국가로 이해되지 않는다.
조지아의 역사를 개관하는데 트래블 북스 조지아+아르메니아의 소개를 축약하였다.
기원전 6세기 흑해 동부연안의 콜키스 왕국이 고대 초기 조지아라고 여겨지며,
로마의 속주로 지배를 받다가 4세기 초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수세기에 걸쳐 페르시아, 비잔티움,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10세기경 통일 왕조인 조지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터키 세력으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으로 주변 국가중 가장 강력한 기독교 왕국으로 군림했고,
타마르 여왕(1184~1213) 시절이 황금시대로 불리운다.
13~15세기는 몽골의 침략으로 경제와 도심은 황폐화되었고,
15~17세기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패권다툼의 장이되었다.
1801년부터 왕국들이 러시아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혼란한 시기에
짧은 독립(1918~1921)을 이루지만 결국 소비에트 연방에 귀속되었다.
1991년 독립하여 그루지야로 불렸지만 조지아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분쟁지역이 있는데 북서부 압하지아 공화국은 별도 독립선언하였지만 조지아가 인정하지 않아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남오세티아는 분리독립을 선언하여 2008년 조지아가 침공하였지만 러시아가 자국 보호를 명목으로 충돌하여
조지아가 항복, 사실상 러시아가 지배중이다.
조지아 대표 키워드 7가지를 "트래블 북스 조지아+아르메니아"에서 인용한다.
그리고 다른 많은 부분들은 이곳저곳에서 모아본 것이다.
1. 천혜의 자연경관 / 코카서스 산맥
조지아 북서쪽 스바네티 지역을 시작으로 중부의 카즈벡산을 지나
카스피해까지 이어지는 코카서스 산맥 아래 위치한 이곳은 천혜의 지연경관을 자랑한다.
조지아를 말할 때 코카서스 산맥을 빼놓을 수 없다. 조지아 북쪽에는 대코카서스 산맥이 있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해발 4~5천미터의 이 산맥은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소코카서스 산맥은 조지아 남부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이 두 산맥 사이에는 드넓은 평원이 있어 흑해로 연결된다.
조지아는 국토의 2/3가 산악 지형이다.
우쉬굴리에 있는 쉬카라 산(5193m)은 코카서스 산맥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자 조지아 최고봉이다.
조지아는 이처럼 높은 산들이 있어 유럽의 알프스가 부럽지 않다.
드넓은 평원을 배경으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코카서스의 연봉의 아름다운 자태가 조지아를 말해준다.
또한 순수한 자연이 살아있는 고산은 트레킹의 즐거움을 주고 이곳에 기대어 살던 조지아인들의 오랜 역사도 알려준다.
2. 조지아 정교
수많은 외세 침력으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초기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인만큼
조지아 증교는 지금까지도 그들에게는 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이자 삶의 운동력이다.
조지아 인에게 종교는 삶에 깃든 생활 그 자체이다. 조지아인들은 정교회를 국교로 지켜낸 조상에게 항상 감사해 한다.
이들은 하루 중 언제라도 십자가를 마주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성호를 긋는다.
조지아의 작은 성당만 가더라도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다.
결혼을 비롯한 가족의 중요한 행사도 교회에서 치른다. 조지아 정교회는 기독교의 일종이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 개신교 등 서방 교회가 변화를 겪을 때
동방의 교회들은 자신들의 정통을 지키고 있다는 뜻으로 정교회라 불렀다.
이처럼 강직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지아에는 정교회 관련 조직이 많이 남아있다.
트빌리시에 있는 성삼위일체 대성당과 시오니 대성당, 시그나기 보드베 수도원, 므츠헤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조지아인들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곳이다.
* 정교회의 예배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성당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이콘과 프레스코,
성당을 밝히는 촛불과 그 주위로 퍼지는 향냄새, 열린 문틈으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 화려한 종교 의상과 도구들,
조화롭게 울려 퍼지는 찬송가는 경이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조지아 교회에는 의자가 없다. 신자들은 선 채로 예배한다.
조지아 교회에 들어서면 신자들은 촛불에 불을 붙인 뒤 이콘을 향해 입맞추고 십자 성호를 그리며 진심 어린 경외를 표시한다.
* 지아레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는 성사를 의미한다.
예배가 시작되자 교회의 사제는 차례로 줄서있는 신도들에게 포도주를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었다.
성혈 성사가 끝나고 난 뒤 신도들은 세피스끄베리라고 불리는 성체용 빵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 니노: 조지아 사람들은 성녀 니노를 신성하게 여긴다. 조지아의 교회 어느 곳에서나 니노의 이콘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성녀 니노가 들고 있는 십자가의 모양이 우리가 흔히 알던 십자가 모양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노가 들고 있는 십자가는 포도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든 포도나무 십자가이다.
정교회를 대표하는 십자가인데 니노가 성모 마리아로부터 이 십자가를 직접 받았다는 설과
니노가 조지아로 기독교를 전파하러 오면서 직접 포도나무와 자기 머리카락으로 이 십자가를 창조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 내려온다.
3. 와인의 원산지
8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최초의 와인 생산지로
조지아인들은 와인 담그는 일을 신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신성한 의무로 여겨왔다고 한다.
독특한 와인 제조법인 크베브리 양조 방식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와인을 하루 28잔 정도 마신다니 믈에 빠져 죽는 사람 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포도 만이 아니라 가지, 잎 심지어 뿌리까지 넣어 만들기에 여러가지 향이 난다.
그리고 오크통이 아니라 항아리를 땅에 묻어 숙성시킨다. (수길따라)
=> 사페라비 레드와인
4. 트레킹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트레킹 코스 중 전문 트레커가 아닌
일반 여행객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 많아 이제는 조지아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5. 러시아의 흔적
제정 러시아 당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군사도로를 비롯해
러시아 귀족과 문화예술인들의 휴양지였던 보르조미, 트빌리시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6. 문명교차로의 명암과 코쉬키
조지아는 지정학적으로 동서지역의 교차로에 있다.
흑해와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중세까지 실크로드의 길목이 되었다.
조지아 동부에 자리한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은 중세까지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큰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지리적 요충지에 있다는 것은 동서양 문물이 교류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려야 하는 아픔도 안겨 주었다.
조지아는 고대 그리스부터 새로운 강대국이 출몰할 때마다 침략을 당했다.
로마와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튀르크를 거쳐 근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조지아의 역사 자체가 외침의 역사가 되었다.
조지아는 외침이 있을 때마다 수도가 폐허로 변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다시 기독교로 종교가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조지아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 높은 것도 이런 오랜 외침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조지아는 독립을 했지만 아직도 러시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코쉬키는 돌로 쌓아 올린 탑형주택으로 1,000년전 외세 침입으로부터 방어의 목적으로 지어진 것으로
북서부 스바네티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퍼 스바네티 우쉬굴리의 한 코쉬키 마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7. 그리스 신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조지아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무대다.
과거 그리스와 로마전성기에 조지아는 두 나라의 손길이 미치는 마지막 동쪽이었다.
이런 연유로 조지아에는 신화 속 인물과 장소가 많다.
조지아 제1경이라 할 수 있는 스테판츠민다의 카즈벡 산은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금지된 불을 건네준 죄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가 3000년 동안 묶여 있던 산이 바로 카즈벡산이다.
흑해와 접한 조지아의 제2 도시 바투미는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양털을 찾아 흑해 건너 미지의 땅으로 찾아간 콜키스다.
쿠타이시 근교의 석회동굴 프로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잡히기 전 몸을 숨긴 곳이라 한다.
현재 프로메테우스 동굴 내부는 그리스 신화와 연관된 이름인 아르고너스, 콜헤티, 메디아, 프로메테우스라 이름 붙였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작가 박민우의 코카서스 3국 여행 에세이 '가지마, 제발'
가난과 불친절, 누더기 주택가, 오해겠지. 뭔가가 더 있겠지. 그렇게 24일을 머물렀다. 24일 내내 볼품 없지 않았다.
유명한 호텔과 가페는 밝고 아름다웠다. 한 나라의 수도다. 건질게 아예 없을 수는 없다.
물가가 싸다지만 맛집은 만원 이상 써야 했고,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지는 군것질거리도 딱히 없었다.
조지아는 길거리 음식 천국은 아니었다 그놈의 미련이 사람을 미련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조지아를 떠났어야 했다. 조지아는 내 여행 인생 최악의 나라가 됐다.
조지아 정보 ( 출처 위키백과 + 나무위키 + 기타 통계)
면적은 약 7만 ㎢ 이며, 조지아 인구는 2024년 UN통계로 372만명이다.
그리고 조지아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조지아 수도는 트빌리시다. 현재 조지아 영역 안에는 친러 성향으로 조지아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압하스와 남오세티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지역들은 러시아에서 독립을 승인받았을 뿐 대다수 국가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다.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으로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약 30년간 국가 원수였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또한 흑해에 면한 서부는 습윤한 아열대 기후 지역, 동부는 건조한 스텝 기후 지역이다.
주민은 조지아인이 70%, 아르메니아인이 8%, 러시아인이 6%, 아제리인이 6%, 오세트인이 3% 등이다.
아열대 농업지대에서는 차·귤·레몬·담배·올리브 재배와 양잠을 하며, 동부에서는 양 이목(移牧)이 성하다.
광물자원(망간·철)과 수력자원이 풍부하여 제철, 기계, 트럭 등 공업이 발달해 있다.
현지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부를 때는 사카르트벨로라고 한다. 대외적으로 러시아식 표기인 그루지야로 통용했나
2008년 러시아의 자국 침공 이후 중앙정부는 자국어 표기인 사카르트벨로나 영어식으로 조지아(Georgia)로 수정 요구했다.
2010년에 조지아 정부에서 대한민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자국 국명을
러시아어식 표기를 대체해 표기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였으며, 대한민국은 조지아로 한국어 표기를 수정했다.
현행 국기는 다섯 십자기라는 의미의 후트지브리아니 드로샤(khutjvriani drosha)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장미 혁명 이후인 2004년 1월 25일에 지정됐으며 1991년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운동에서 조지아 왕국 상징으로 유명했다.
잉글랜드 깃발처럼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에서 따왔으며 4개의 십자는 예루살렘 십자가이다.
그 정확한 연원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1세기의 왕 다비트 4세의 시기에도 상징으로 쓰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5세기에도 이미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를 사용하는 상징이 있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지아의 국장에 그려진 인물은 성 게오르기우스다. 지금 사용하는 조지아의 국장은 2004년에 제정되었으며
국장의 원형은 중세 조지아의 왕가였던 바그라티오니 왕가의 문양이다.
국장 아래쪽에 쓰인 문장은 조지아의 표어인 "단결은 힘이다(ძალა ერთობაშია / dzala ertobashia)"를 조지아어로 표기한 것이다.

조지아의 요리와 와인은 수세기에 걸쳐 각 시대의 전통을 적용하여 발전해 왔다.
식사의 가장 일반적인 전통 중 하나는 위 또는 조지 왕조 식탁이며, 이는 또한 친구 및 가족과 사교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조지아의 음식은 모두가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시한다.
조지아의 여러 역사적인 지역은 그들만의 특색 있는 요리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동부 산악지대 조지아의 힌칼리(고기 만두), 주로 이메레티, 사메그렐로 및 아드자라의 하차푸리 등이 유명한 음식이며 조지아 전통 요리 이외에도 러시아, 그리스 및 최근 중국의 이민자들에 의해 다른 나라의 음식이 최근에 전해졌다.

위쪽의 우측에서 좌측 순으로 조지아의 유명한 음식 종류별 소개: 아드리안 하차푸리, 므츠바디, 힌칼리, 임머리티안등 하차푸리, 프할리, 추르치헬라, 쇼티스 푸리, 엘아르지, 므차디, 사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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