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의 유튜브 소개를 정리하였다.
최근 알게된 유튜브인데 간결하고 정곡을 찌르는 설명으로 책을 읽기전 전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중요시하며 우리는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점점 병과 노쇠와 통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죠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더 본질적인 삶의 문제로 이끄는 듯합니다 |
내용과 소감
본서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14만 명이 사망하는데 그중 5천 명이 안락사를 거친다고 했다. 그 5천 명 중 90퍼센트는 말기암 환자이고 나머지는 정신적 문제나 중독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안락사 비중이 3.6%인 셈이고 대부분이 말기암 환자이다. 저자의 동생 마르크의 경우 알코올 중독이 심화되어 8년이상 부모와 여동생, 그리고 저자의 조력을 받았고, 아마 그 이전에 이혼당한 듯하다. 그리고 안락사를 신청하여 시행되기 까지 약 1년 6개월이 소요되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기간이 너무 장기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 안타까운 것은 알코올 중독이 되는 과정 중 홀로 그 문제를 해결하여 병이 심화된 문제도 있는데, 그것이 내성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하는 것. 안락사를 시행하는 일자를 잡아두고 그때까지 살아가는 삶도 신기하다.
나이가 칠순을 바라보니 안락사 문제도 남의 일이 아닌듯 하기도 하고, 건강하게 잘 걸어다녀야지 하는 문제도 더욱 절실히 느껴지고.... 안락사 절차도 서술되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19쪽: 지금 부모님이 마르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분들의 41살 먹은 둘째 아들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데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잘해왔던 아들이었다.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고 사업체를 운영했으며 사우나를 갖춘 큰 집도 있었고 매우 고가의 폭스바겐 자동차도 가졌었다. 여름 휴가 때는 스키를 타러 가는 등 중간청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고, 뒷마당에는 고가의 물품들과 트램펄린도 갖추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부모님 건너편 소파에는 유령 같은 아들이 앉아 있었다. 깡마른 남자, 갓 마흔을 넘겼지만 이미 다 살아 버린 모세한 남자였다.
"왜 보자고 했니, 마르크?" 내가 말했다. "충분히 살았기 때문이지, 형씨, 이제 그만 끝내려고."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1쪽: 그간 할만큼 했다고, 다 끝냈다고 했다. 본인도 갖은 애를 써봤고, 모든 사람들이 애를 써봤지만 실패했다고 했다. 이 끔찍한 아파트에서 주정뱅이이자 도박꾼이자 경주용 자전거를 타는 사내와 이렇게 사는 건 사는게 아니라고 했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땀에 젖은 소파를 몇 차례 툭툭 치면서 이 작은 소파 위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밤마다 미지근한 맥주를 수중에 갖 고 있다고 했다. 냉장고에 반 리터짜리 캔맥주를 넣어 두면 욥이 다 마셔 드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 욥이라는 이런 인간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행위가 아닌가?
25쪽: 부모님은 마침내 이해한다고 했다. 안락사를 최악 중에서도 최악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해한다고 했다. 안젤라 역시 벌써 며칠 전에 이해한다고 했다. 그들은 지난 세월 동안 나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으면서 심신이 쇠약해졌다.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겁먹었다.
45쪽: 동생을 길거리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이미 지난 8년간 그를 보살피고 어느 곳에 있던 도움을 주고 여기저기 병원을 끌고 다니면서 입원시켰던 부모님과 함께 둘 수도 없었다. 마르크가 오늘 부모님과 함께 간다면 부모님은 평생 녀석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보내게 될 터였다.
58쪽: 당신 마르크는 침실에 커튼을 치고 매트리스 밑에서 편한 시간에 숨겨 두었던 와인을 한 병 꺼냈다고 했다. 그는 와인을 싹 다 비우고는 잠이 들었다. 술이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가 가졌던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또 아무와도 나눌 수 없었던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는데, 그랬다, 술이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졌고 그 후에 잠도 잘 왔다고 했다. 술이여, 영원하라. 그땐 그랬다고 했다.......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으로 맵시 있게 옷을 입고 비싼 향수를 뿌리고 매일 샤워를 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67쪽: (일기) 나는 언제나 마스크로 나의 본 모습을 감춘다. 내 주변에 벽을 두른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두껍게 둘렀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 자신을 꿰뚫어 보기가 어렵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정말로 모른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가 두렵다. 엇나갈까 봐 두렵다. 불완전한 존재일까 봐 두렵다.
71쪽: 마르크는 별로 같이 놀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잠시 함께 놀았지만, 얼마 안가 방이나 창고에서 내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기구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가끔은 친구와도 함께였으나 혼자 노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말수도 적었다.
84쪽: (물질적으로 성공하는 사이) 마르크 본인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은 완벽주의자에게는 최악이었다. 그는 공황상태였고, 상황을 어떻게 서로 잘 엮어야 할지 몰랐다. 일주일에 7일을 일했고 집에 있을 때도 여전히 일을 생각했다. 잠이 들면 일하는 꿈을 꾸었다. 이미 수년간 잠복해 있던 우울증과 불안장애 및 기타 정신적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언제나 일관되게 잘 유지해왔던 표면을 뚫고 나왔다.
그는 술을 마시며 문제를 멀리했다. 처음에는 가끔 마시다가 매일 자주 마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몰래 마시다가 이윽고 더 이상 마시는 걸 숨길 수 없을 때까지 마셨다. 그 술이 문제가 되었다.
85쪽: 그는 살 날이 몇 주 안 남았을 때 마침내 툭 터놓고 말했다. "난 일꾼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술꾼이 되어 갔어. 나의 일, 가족, 나 자신까지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지. 그때 자존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어. 맨날 집에 늦게 왔고 툭하면 술을 마셨어. 가끔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이유는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술을 마셔서 고통과 두려움과 수치심을 없앴어."
106쪽: 알코올 중독자를 붙들고 늘어져서 과하게 보호하는 것은 절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함으로써 중독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란다. 본인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바닥을 쳤으니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를 놓아 버렸다. 악마와 단둘이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7개월 후 그는 죽었다.
110쪽: (일기) 오후 4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여태껏 이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경주용 자전거를 타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문제에 관한 또 다른 해결책이 있었으면 하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병자이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모두 다 문제가 있다. 바흐의 성가를 들으면서도 계속 상념에 빠져있다. 끝도 없는 상념들. 다시 온 힘을 다 잃는다. 삶이 아닌데도 살고 있다. 이런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살아보려고 애써 보았다. 재활센터와 병원을 숱하게 들락거린 것이 그 증거이다. 할 건 다 해봤다.
121쪽: (일기) 의사는 매우 상냥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14만 명이 사망하는데 그중 5천 명이 안락사를 거친다고 했다. 그 5천 명 중 90퍼센트는 말기암 환자이고 나머지는 내 경우처럼 정신적 문제나 중독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환자의 경우는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 내가 시도해 본 모든 것과 현재 진행 중인 과정 및 최근 몇 달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항을 검토해봤을 때 그 역시도 내가 말기 환자이고 가망성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미래의 희망도 없고 대단히 심각한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명백해졌다. 그 역시도 동의했기에 걸림돌이 없게 되었다. 나는 7월 14일에 떠날 것이다, 사라질 것이다, 꺼져버릴 것이다. 위안을 주고, 평온을 준다. 의심할 여지 없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는 병자다!
123쪽: (일기) 우리는 얼마 안 가 결국 “불구덩이”로 끝나게 될 나의 편도 여행길을 차를 몰고 갔다. 나는 그 화장터를 알고 있었다. 개장식 동안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기에 화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화장 후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장례절차를 마치겠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125쪽: 마르크는 모르는 자가 아니다. 그는 내일 죽는다. 교통체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 오후 4시경이다. 안락사를 시행할 의사가 암스트레담에 살고 있기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27쪽: 살 시간이 24시간 남아 있다면 무엇을 할까.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으리라. 아버지가 장어를 구해 왔다. 위르크 산의 기름진 장어였다. 위르크는 장어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장어를 다 먹었다. 예네이버도 한잔 마셨다.
129쪽: 까르레인은 울고 있었다. 그녀가 나누었던 전화 통화 중 가장 기이한 통화였다고 말했다. 초현실적이고, 미친 것 같고, 섬뜩하고, 끔찍하고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슬펐던 통화였다고.
131쪽: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마르크는 다시 잠에서 깨어 있었다. 초조하고 우울해 보였다. 죽는 것 때문이 아니라 아들들이 곧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차례였다. 아이들은 아빠가 몹시 아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다음 날이 세상에 더는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마르크의 전처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135쪽: 마르크와 나는 술을 한잔 더 마셨다. 안젤라는 그 사이 자러 들어갔다. 사실은 나도 버틸 수 없었지만 억지로 버텼다. 오늘은 그의 마지막 밤이다. 나의 마지막 밤이 아니다. 나는 내일 밤에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는 아니다. 우리는 담배를 또 한대 피웠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고 그렇게 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138쪽: 2016년 7월 14일, 오늘은 내 동생이 죽는 날이었다.
“내 마지막 아침이네.” 마르크가 말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면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더 이상은 고통이 없을 거야, 마르크. 이제 더는 없을 거야.”
마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그리고 우리에겐 다행히도 사진이 있잖아.”
141쪽:(일기) 아우디나 폭스바겐 또는 볼보 카탈로그에서 차를 고르는 대신 오늘 밤에는 관을 골랐다.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냥 기본 모델을 골랐다. 멋지고 단순한 것으로 안에 매트리스와 베개가 들어 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보통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기 때문이다. 관 안에서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149쪽: 그녀가 말했다. 더 진행하기 전에 마르크 당신이 정말로 안락사를 바라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정말로 안락사를 하고 싶습니까? 당신이 오늘 오후에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까? 마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 밑으로 거의 창피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마레거 의사는 계속 설명했다. 첫 번째 주사에는 식염수가 함유되어 있으며, 두 번째 주사는 수면제라고 했다. 여러 사례에 비추어 보면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마르크는 심장이 튼튼하기에 그 다음 주사가 그를 죽게 할 터였다. "그 주사는 심장을 멎게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상당히 건조하고 무뚝뚝한 말투였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울고 있었다. 마르크까지 포함하여 사실상 모두가 울고 있었다.
152쪽: 마르크는 울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볼 수 있을만큼 컸다. 살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던 한 남자의 눈빛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애썼어도 질병을 극복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눈빛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르크를 꼭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153쪽: 마레거 의사가 말했다.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마르크. 이제 다 내려놓으세요." 그런 다음 다시 한번 말했다. "이렇게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100% 확신합니까?" 나는 머릿속에서 안 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마르크는 작은 소리로 "네"라고 했다.
154쪽: “진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화장실에 가야 해요.” 마르크가 속삭였다. “오줌이 마려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정말로 그럴 필요 없어요.” 마레거 의사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단다. 아들아.”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죽기 직전의 순간에 있는 동생이 잠시 작고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처럼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던진 그 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을 복받쳐 오르게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것은 내가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던 슬픔, 말문을 막는 슬픔, 육체적으로 아픔을 주는 슬픔이었다. 눈두덩이에서 눈동자를 긁어 파는 슬픔, 머리에서 머리칼을 잡아 뜯는 슬픔이었다.
154쪽: 마르크의 호흡이 진정되었다. 3시 50분이었다. 마레거 의사가 말했다. 이제 첫 번째 주사를 놓겠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주사를 천천히 밀어서 비웠다. 아주 살살 천천히.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사미에게 가고 싶었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벽을 주먹으로 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이 모든 것을 겪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우리는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마르크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요" 그는 간신히 속삭였다. 우리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마르크 진정하세요. 의사가 두 번째 주사를 동생의 몸에 밀어 넣어 비우면서 말했다. 마르크의 눈동자가 즉시 위로 올라갔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면서 온몸을 떨었다. 딱 한 차례였다. 마지막 숨이었다. 마레거 의사는 세 번째 주사를 비웠다. 낯빛이 즉시 변하며 혈색을 잃고 푸르스름해졌다. 마르크는 떠났다. 3시 55분이었다. 내 동생은 죽었다.
161쪽: 모든게 정상적이었다. 마레거 의사는 법적 절차에 따라 올바르게 했다. 검시관이 들어가자 그녀는 거기 있던 모든 사람과 포옹했다. 그녀도 잠시 소리내어 울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그저 싸늘한 의복에 집어넣는 일이 아니다. 분명 아픔이 동반될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힘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171쪽: 사람들은 죽음이 설명되기를 원한다.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어떤 사람은 아주 딱하지만, 원인이 설명이 된다. 비쩍 마른 데도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빨리 달리는 50대가 숲속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 원인을 납득한다. 우울증 및 기타 정신적 증상들로 안락사를 시행한 알코올 중독 문제를 가진 잘생긴 마흔한 살 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남자가 왜 도움을 받지 못할까? 그 증상에 맞는 약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
나와 우리 가족은 그러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우리가 그 문제에 관하여 모든 방법을 다 써봤냐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174쪽: 우리는 단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다면,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참을 수 없다면,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진심으로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죽음이 구원이라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죽는 데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결국엔 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든지 안 주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념이나 신앙 혹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이기적이다. 오만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죽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은 의무가 아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미 여러 규칙도 있다. 안락사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신적 질병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머나먼 길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내 동생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아우성쳤다. 그게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가 간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붕에서 뛰어내리거나 기차 앞에 서 있는 것, 그런 것이 빠른 길이다. 똑같이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안락사를 조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동생의 경우 약 1년 6개월이 걸렸다.
간절히 죽기를 원한다면 그 시간은 매우 오랜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191쪽: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크로켓을 먹으면서 입천장을 데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 마르크는 언제나 모든 일이 뜻하는 바대로 잘 이루어졌던 사람이지 않은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몇 km 떨어진 화장로 안에서 불길에 탔어야만 했을까?
204쪽: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인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 위해서이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뒷전으로 물러나게 한다. 마르크가 술로 시도한 것과 같다. 술은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뒤죽박죽된 머릿속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신 것이었다.
215쪽: 온라인상에는 여전히 동생에 대한 기사가 몰래 훔친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부모님과 여동생과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가 안락사를 허용했으며 안락사를 시행하고 허용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독자들에게 댓글로 난도질당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적인 종교인들은 종교적인 사랑의 메시지는 제쳐 놓은 채 제어되지 않는 분노를 표출하였다.
216쪽: 더 이상 약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지독히도 파괴적인 형태의 암을 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병이 나서 어떠한 치료법이나 약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갖은 방법을 다 써 봐도, 정신과 의사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 동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몇 가지 복잡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다정하고 매력적이고 착한 남자였다. 다소 자기애성 성격 장애가 있고, 불안장애와 우울증, 공감능력 결핍을 앓는 남자였고, 결과적으로 알코올 문제가 생겼다. 그는 머리가 병들었고 두려움과 우울증을 술로 없애려고 했다.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절대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중독으로 인해 식은땀에 젖은 축축한 손이 자신의 목을 더욱 더 세게 옥죄었다. 자식들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주택과 고급차, 사우나를 갖추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르크는 치료될 수 없었다. 그에게 안락사가 승인되었던 이유다. 그가 죽은 이유다.
222쪽: 내 동생이었지만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짐이기도 했다. 짐이라고 쓰면서 짐처럼 바라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렇게 하면 부모님과 여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짐이 었다. 마르크는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더 이상 과거의 조용하고 착한 녀석이 아니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흑맥주로 가득 찬 얼음처럼 차가운 욕조에서 익사하고 있었다. 마르크는 더 이상 우리의 마르크가 아니었다. 어쩌면 훨씬 더 먼 옛날부터 무수히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생애의 마지막 달인 그 짧은 시간조차도 온갖 고통을 겪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8년 동안 그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이었으며,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에게도 힘든게 사실이었지만, 나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겪은 전 부인이라든가 아이들, 여동생, 부모님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안락사를 마르크처럼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면서 삶의 끝자락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삶의 완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신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인가. 이 책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보문고 책 소개
7, 80대 고령의 나이도 아니고, 말기암 환자도 아니었다.
고급 주택과 고급 차, 사우나를 갖추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선택한 잘생긴 41세의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가 왜 안락사를 택했을까?
안락사를 과연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면서 삶의 끝자락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삶의 완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신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인가.
안락사 찬반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독자들로서는 불안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과
알코올 중독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41세의 나이로 안락사를 시행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 최초로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안락사가 이루어지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글) 마르셀 랑어데이크
Marcel Langedijk(1972)
저널리스트. 「제이에프케이JFK」, 「린다LINDA」, 「리벨르Libelle」, 「폭스크란트 매거진Volkskrant Magazine」, 「엘레강스Elegance」, 「미투위닷컴Me-to-we.com」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고든』, 『맨 맨 맨』, 『시가와 시가를 만든 사람들』 등 다수가 있다.
번역 유동익
목차
- 제1화 _011
제2화 _029
제3화 _049
제4화 _067
제5화 _081
제6화_095
제7화_101
제8화_109
제9화_121
제10화_141
제11화_157
제12화_169
제13화_175
제14화_189
제15화_193
제16화_213
제17화_219
옮긴이의 말_229
나는 언제나 마스크로 나의 본 모습을 감춘다. 내 주변에 벽을 두른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두껍게 둘렀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 자신을 꿰뚫어 보기가 어렵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정말로 모른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가 두렵다. 엇나갈까 봐 두렵다. 불완전한 존재일까 봐 두렵다. -67페이지, 동생의 일기 중에서
마르크 본인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은 완벽주의자에게는 최악이었다. 그는 공황상태였고, 상황을 어떻게 서로 잘 엮어야 할지 몰랐다. 일주일에 7일을 일했고 집에 있을 때도 여전히 일을 생각했다. 잠이 들면 일하는 꿈을 꾸었다. 이미 수년간 잠복해 있던 우울증과 불안장애 및 기타 정신적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언제나 일관되게 잘 유지해왔던 표면을 뚫고 나왔다. -84페이지
오후 4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여태껏 이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경주용 자전거를 타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문제에 관한 또 다른 해결책이 있었으면 하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병자이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모두 다 문제가 있다. 바흐의 성가를 들으면서도 계속 상념에 빠져있다. 끝도 없는 상념들. 다시 온 힘을 다 잃는다. 삶이 아닌데도 살고 있다. 이런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살아보려고 애써 보았다. 재활센터와 병원을 숱하게 들락거린 것이 그 증거이다. 할 건 다 해봤다. -110페이지, 동생의 일기 중에서
의사는 매우 상냥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14만 명이 사망하는데 그중 5천 명이 안락사를 거친다고 했다. 그 5천 명 중 90퍼센트는 말기암 환자이고 나머지는 내 경우처럼 정신적 문제나 중독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환자의 경우는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 내가 시도해 본 모든 것과 현재 진행 중인 과정 및 최근 몇 달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항을 검토해봤을 때 그 역시도 내가 말기 환자이고 가망성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미래의 희망도 없고 대단히 심각한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명백해졌다. 그 역시도 동의했기에 걸림돌이 없게 되었다. 나는 7월 14일에 떠날 것이다, 사라질 것이다, 꺼져버릴 것이다. 위안을 주고, 평온을 준다. 의심할 여지 없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는 병자다! -121페이지, 동생의 일기 중에서
우리는 얼마 안 가 결국 “불구덩이”로 끝나게 될 나의 편도 여행길을 차를 몰고 갔다. 나는 그 화장터를 알고 있었다. 개장식 동안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기에 화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화장 후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장례절차를 마치겠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123페이지, 동생의 일기 중에서
2016년 7월 14일, 오늘은 내 동생이 죽는 날이었다.
“내 마지막 아침이네.” 마르크가 말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면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더 이상은 고통이 없을 거야, 마르크. 이제 더는 없을 거야.”
마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그리고 우리에겐 다행히도 사진이 있잖아.” -138페이지
“진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화장실에 가야 해요.” 마르크가 속삭였다. “오줌이 마려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정말로 그럴 필요 없어요.” 마레거 의사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단다. 아들아.”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죽기 직전의 순간에 있는 동생이 잠시 작고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처럼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던진 그 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을 복받쳐 오르게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것은 내가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던 슬픔, 말문을 막는 슬픔, 육체적으로 아픔을 주는 슬픔이었다. 눈두덩이에서 눈동자를 긁어 파는 슬픔, 머리에서 머리칼을 잡아 뜯는 슬픔이었다. -154페이지
사람들은 죽음이 설명되기를 원한다.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어떤 사람은 아주 딱하지만, 원인이 설명이 된다. 비쩍 마른 데도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빨리 달리는 50대가 숲속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 원인을 납득한다. 우울증 및 기타 정신적 증상들로 안락사를 시행한 알코올 중독 문제를 가진 잘생긴 마흔한 살 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남자가 왜 도움을 받지 못할까? 그 증상에 맞는 약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
나와 우리 가족은 그러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우리가 그 문제에 관하여 모든 방법을 다 써봤냐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171페이지
우리는 단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다면,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참을 수 없다면,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진심으로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죽음이 구원이라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죽는 데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결국엔 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든지 안 주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념이나 신앙 혹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이기적이다. 오만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죽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은 의무가 아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미 여러 규칙도 있다. 안락사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신적 질병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머나먼 길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내 동생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아우성쳤다. 그게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가 간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붕에서 뛰어내리거나 기차 앞에 서 있는 것, 그런 것이 빠른 길이다. 똑같이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안락사를 조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동생의 경우 약 1년 6개월이 걸렸다.
간절히 죽기를 원한다면 그 시간은 매우 오랜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174페이지
출판사 서평
네덜란드 안락사법에 관하여 전 세계적으로 무수한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다
이 책은 언론인인 형 마르셀 랑어데이크가 동생인 마르크 랑어데이크의 안락사를 지켜보며 쓴 에세이다. 41세의 나이에 안락사를 택한 마르크는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동생은 잘생겼고, 아들 둘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사업가로도 성공해 고급 주택과 고급 차, 사우나까지 갖추고 살았다. 나이는 불과 마흔한 살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안락사를 택했을까?
과연 네덜란드는 “정신적 질환을 앓는 사람”,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것을 위해 싸우거나 다른 삶을 살려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미끄러운 얼음장”이고 “극도로 위험한 곳”일까?
각 장마다 맨 앞에 배치한 동생의 일기를 통해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과 아픔, 또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형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 이상 약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지독히도 파괴적인 형태의 암을 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병이 나서 어떠한 치료법이나 약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갖은 방법을 다 써 봐도, 정신과 의사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 동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네덜란드의 안락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동생은 몇 가지 복잡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다정하고 매력적이고 착한 남자였다. 다소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고, 불안장애와 우울증, 공감능력 결핍을 가졌으며 결과적으로 알코올 문제가 생겼다. 그는 머리가 병들었고, 두려움과 우울증을 술로 없애려고 했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치료될 수 없었다. 그에게 안락사가 승인되었던 이유다.”
안락사의 요건은 아주 엄격하고 최소 두 명의 의사가 요청을 승인해야 한다. 환자가 자발적으로 요청을 해야 하고, 그 요청은 지속적이고 일괄되어야 하며, 환자에게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 그리고 더 이상 치료의 대안이 없을 때 의사에 의해서 의학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주로 약물 투여) 이루어진다. 환자의 사례에 따라 기간은 다양하지만 마르크의 경우 1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시행되었으며(“간절히 죽기를 원한다면 그 시간은 매우 오랜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한 뒤에는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또 모든 서류가 정상적으로 작성되었는지 검시관이 이중으로 점검하며, 검시관은 다시 검사에게 통보하고” 그런 다음에야 시신을 옮겨서 장례절차를 밟을 수 있다.
소리 없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안락사법
2018년 3월 현재 안락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캐나다이며, 다른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를 말하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호주 빅토리아주 및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메인(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 등 몇몇 주이다.
네덜란드는이미 1973년부터 안락사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며, 1981년부터 개선의 전망이 없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발적 안락사와 의사에 의한 조력자살이 이루어졌다. 법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4월 1일, “안락사 및 안락사협조 심의법(Toetsing levensbeeindiging op verzoek en hulp bij zelfdoding)”이 발효된 이후부터이다. 네덜란드 왕립의학협회는 안락사(조력자살 포함)를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환자의 자발적 요청에 의한 적극적 삶의 종결”로 정의한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안락사의 근거로 인정했다. 12세에서 16세까지는 요청할 수는 있지만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16세와 17세는 요청할 수는 있지만 부모에게 고지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 안락사는 전체 안락사의 1% 남짓이다.
수십 년을 거치면서 네덜란드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안락사를 수용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으며, 해마다 안락사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역안락사위원회(Regionale Toetsingscommissies Euthanasie)에 따르면 2017년 6,685건, 2018년 6,126건으로 전체 사망자의 4% 정도가 안락사를 선택했으며, 안락사를 요청하는 주된사유로는 암이 가장 많고 그 외에 치매 초기 144명, 정신 질환 67명, 다수의 질병이 있는 환자가 205명이었다. 6,126건의 안락사 사례 중 6건과 관련하여 안락사위원회는 의사가 의무 규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판결했으며, 처음으로 이 중 한 명이 기소되었다. 네덜란드의사협회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일부 종교단체들도 안락사는 신의 결정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여전히 안락사 집행을 거부하는 의사들도 많이 있기에 합법적으로 행해진다고는 하지만 안락사 문제는 소리 없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삶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람들과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다툼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안락사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최근 3년간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조력자살 기관의 도움을 받아 ‘원정 안락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2018년 2월부터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법’은 시행 중이다. 존엄사법은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지 않고 자연사의 범주 내에서 연명 치료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다르다.
이 책은 죽음과 안락사라는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지만 앉은 자리에서 페이지를 휙휙 넘겨가며 읽을 수 있다. 가볍게 넘어가는 페이지와는 반대로 행간은 치열하고 격렬하다.
안락사를 마르크처럼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면서 삶의 끝자락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삶의 완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신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인가. 이 책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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