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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저자 마거릿 렌클 (2024.4.6)

클리오56 2024. 4. 6. 20:39

내용 및 소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4년 1월 최고의 책"으로 소개되었다. 믿고보는 이동진 추천의 책을, 그것도 1월 최고의 책을 4월에 읽는다. 금년 1분기는 남미 여행과 준비로 분주했기 때문이다. 늦게라도 읽을 수 있어 반갑고 즐겁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책을 선정함에 있어서 고민이 필요없었다고 한다. 너무나 뛰어난 책이었기에. 그리고 이 책을 보게된 것은 자신의 삶에서 작은 행운이지 않았을까하고 소회를 밝힌다. 

 
2018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그 때 저자의 나이는 57세, 또한 그녀의 첫번째 작품이었다. 시인이자 에세이 저자인데 화려한 이력도 없었다. 다만 미국 테네시주의 한 온라인 문학잡지를 10여년 편집장인게 전부였다. 
문장이 보석같이 빛나는데, 문제는 그 빛이 슬픈 빛이라는거다. 책 제목에서도 느끼듯 슬프고 쓸쓸한 정조가 책에 담겼다.  

짧은 글이지만 정서적인 여운이 길게 남는 문장들이다. 그리고 두 분야 이야기를 교대로 서술하는 방식의 책이다. 저자의 유년기 시절부터 최근까지 겪었던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적었고, 수많은 작은 사건들로 모아낸 자신의 삶의 이야기이다. 중반부 이후의 이야기는 저자가 목격한 자연의 천태만상이다. 사람이 살면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을 예민하게 서술하는 상실의 이야기이다. 나머지 절반인 자연에 관한 이야기도 자신의 개인사에서 드러난 수많은 비극들과 부분집합을 이룬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결국은 거대한 자연의 섭리와 순환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Late Migrations", 부제는 A natural history of love and loss'이다. 늦은 이주, 사랑과 상실의 자연사...


특이하게도 저자의 모계 가계도가 처음에 등장한다. 이야기 전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헷갈리지 않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일까?

 

011쪽: 첫 이야기는 저자의 어머니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를 외할머니가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대비되는 이야기는 파랑새의 부화 예정인 알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마도 생명과 상실의 대비인 듯하다. 하지만 그 상실이 야생의 작동 방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집굴뚝새가 파랑새 알을 전부 깨뜨리기도 하지만, 자신은 집굴뚝새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구애할 때 부르는 노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 중 하나다.

 

023쪽: 오늘 이 갈색 물은 가을 빛 속에서, 빛과 색과 움직임과 함께 불타듯 빛나고 있다. 하지만 이 연못은 죽어가는 중이다.... 수련이 빛과 산소를 차단해 연못을 질식시키고 있다. 오래지 않어 물고기나 개구리, 뱀이나 거북이가 살아갈 공간이 없어질 것이다. 오직 수련만, 연못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온통 수련만 있을 것이다.  

 

031쪽: 그분들은 내가 태양인 양, 그분들이 그때껏 평생 추위를 탔던 양 나를 보고 있다. 나는 태양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행성이 아니다. 그분들은 우주다.  

 

034쪽: 하늘에서는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은 평범한 뒤뜰의 축축한 잡초 속에서, 작년의 바스러진 나뭇잎과 두더지가 파헤쳐서 드러난 향기로운 흙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037쪽: 바로 다음 순간 뱀이 토끼가 낳은 아직 눈도 못뜬 새끼들을 천천히, 거의 기계적으로 삼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이 세상은 죽음을 토대로 번성한다. 그러나 봄 햇살 속에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어 보아라. 그러면 잿빛머리 박새 한 마리가 당신의 머리칼을 거둬 모으러 다가올 것이고, 그것으로 새끼를 위한 부드럽고 따뜻한 둥지를 만들 것이다.  

 

102쪽: 잡초. 때때로,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평소에도 절망적인 세계 뉴스가 더 절망적이 될 때, 이곳에 속해 있다는 무게는 떨쳐 내기 힘든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 나는 어느 봄날 아침의 반짝임을 생각한다. 햇살 속에 서서 나비 정원에 물 주는 것을 생각한다. 정원 대부분에는 심지도 않은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나 있다. 그 잡초들은 손으로 잡아당겨 뽑아도 다시 자라난다. 나는 물을 뿌려도 동요하지 않는 아스클레피아스 위의 애벌레들과 정원에 사는 흉내지빠귀 한 마리, 화가 난 까마귀 세 마리에 쫓겨 머리 위를 활공하는 붉은꼬리말똥가리, 둥지 상자 꼭대기에 서서 자기의 짝인 암컷 파랑새를 보호하는 수컷 파랑새를 생각한다. 암컷 파랑새는 그 안에서 알을 낳고 있다. 나는 그날 아침을 생각한다 - 여느 날 아침도, 여느 시간도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알이 되어라. 흉내지빠귀가 되어라. 잡초가 되어라.

 

140쪽: 내가 본 것과 보려고 준비한 것 사이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까?

163쪽: 필라델피아의 대학원 진학을 위해 앨라배마를 떠났고 처음 겪는 타지 생활로 외롭고 우울한 나날들을 보냈다 => 이때 자연세계가 너무도 그리워 치토스로 기숙사 방에 사는 생쥐를 길들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69쪽: 추수감사절을 고향에서 1600km 떨어진 필라델피아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며 부모에게 통화했다. 아버지는 그냥 집으로 오려무나 말했고 저자는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넌 언제든지 집에 올 수 있어" "설령 네가 개자식과 결혼한다 해도, 넌 언제나 그 녀석을 떠나 집으로 올 수 있어" ... 집에는 언제나 저자가 속할 자리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이상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 아마도 아버지가 가진 딸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26시간의 여행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186쪽: 모두들 알다시피 안개는 소리 없이 낀다. 하지만 시(詩)에서 그러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내려앉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안개는 분주하다. 그것은 귀찮게 쫓아다니는 고양이와 할퀴는 참새를 마찬가지로 감춰 준다. 그것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무디게 만들고, 구부러진 잔가지를 펴 주며, 섬세한 녹색 그늘 속에서 모든 나무를 더 부드러운 모양으로 만들어 준다. 숲 깊은 곳에서 안개는 어린 가지와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보석들을 하나하나 깔아 두면서 숨어 있던 거미줄을 꿈의 풍경 속으로 일깨운다. 하늘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침 해가 타오른다. 하지만 세상은 당분간 안개에 속해 있다. 안개는 감추고 보여 주고 하느라, 우리가 아는 것을 감추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우리 눈에 드러내느라 분주하다.

194쪽: 저자는 출산 후 우울증과 유선염으로 고통을 받음.... 의사 진단을 받음. 아기가 항상, 늘 배고파한다고 말했다... 의사 왈 "가장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 그리고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도록 처방. ... 아기가 너무도 황홀한 사랑의 표정을 지음.. 

 

207쪽: "너도 알겠지만, 난 항상 서커스를 보러 가고 싶었단다." 어느 날 아버지가 느닷없이 나에게 말했다.... 그건 하나의 비유, 후한 할아버지로서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비유였다. 후손에게 기억되려는 하나의 방식, 망각에 대비한 대비책이었다. ... 아빠, 우린 이틀 뒤에 서커스를 보러 버밍햄에 갈 수 없어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 너도 알겠지만너희 아이들도 서커스를 좋아할거야.... 아뇨, 난 서커스에 가고 싶지 않아요....  결국 다음 번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것은 2년 뒤이다. ... 아버지는 작은 영웅으로 손주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303쪽: 늦은 이주. 제왕나비는 멕시코의 전나무 산에서 월동하여 아스클레피아스 잎사귀 위에서 부화한다. 20년전 10억 마리가 지금은 9,300만 마리뿐.... 늦은 이주를 하는 제왕나비 몇 마리가 저자의 정원에서 휴식중. 

 

310쪽: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이야기인 1페이지 분량의 마지막 챕터. 누군가가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머핀 한 바구니, 질 좋은 커피 원두, 그리고 크림 한 병을 가져와 뒷문 앞에 두고 살금살금 달아났다. => 마거릿을 챙겨주는 이웃.  딱 한 방울을 컵 안에 넣자 크림이 온천 속 화산처럼 거품으로 분출했다. => 죽음과 탄생의 연결을 상상하며 마무리. 

 

교보문고 책 소개

집굴뚝새는 자기 영역에 들어온 작은 새들을 죽인다. 어치는 다른 새들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렌클이 관찰한 미국 남부의 울창한 자연은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세계다. 하지만 마거릿 렌클은 자신의 정원에서 박새를 죽인 집굴뚝새를 미워하지 않는다. 귀여운 갈색빛 몸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가진 집굴뚝새의 난폭한 본능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작은 몸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특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렌클이 죽은 박새를 발견했던 둥지는 잠시 비워졌다가 다른 박새의 안식처가 되었다.

 

렌클은 아름답고도 무심한 야생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삶에 관한 지혜를 배운다. 미국 남부 지방 대가족 출신인 그녀는 수많은 친척과 함께 성장해 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죽음은 아름답게 찾아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노쇠함은 늙어 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짐을 지운다. 멋진 추억을 함께했던 기억들은 늙고 병든 몸을 가진 오늘 앞에서 쉽게 휘발해 버린다. 렌클은 자신과 남편을 키워 주었던 어른들을 돌보게 될 때마다 그렇게 지쳐 버리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바로 정원에 찾아오는 온갖 생물이었다. 지금껏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기쁨이나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지니지 않은, 오직 지금만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작은 동물들. 어느 청설모는 청설모 방지 새 모이통에 입을 들이대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씨앗을 하나씩 뽑아 먹는다. 그때 지금은 끝을 모른 채 이어진다. 그 작은 동물의 배가 부를 때까지.

 

태어나는 삶도, 저물어 가는 삶도 모두 각각의 기적적인 지금들을 갖고 있다. 치열하게 먹고 먹히면서도 꿋꿋이 번성을 꾀하는 자연의 흥망성쇠는 이 책 속에서 하나로 이어진 흐름처럼 느껴지며, 거기서 탄생과 죽음은 공평하게 존중받는다. 자신의 온 삶과 이 세상을 허허로운 따뜻함으로 둘러싸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익숙하고 포근한 이불 같은 온기를 선사할 것이다.

선정내역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41월 최고의 책" 소개 도서

 

저자(글) 마거릿 렌클

마거릿 렌클(Margaret Renkl, 1961~ )
1961년 미국 앨라배마주 안달루시아 출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프리랜서 작가 일을 시작했다. 테네시주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문학 잡지 「Chapter16」을 창간하고 10년 동안 편집장을 역임했다. 2015년에 「뉴욕 타임스」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얻기 시작했고, 첫 번째 책인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를 출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꾸준히 연재와 책 출간을 이어 가며 미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그림/만화 빌리 렌클

미국에서 순수미술 화가로 활동 중이며, 오스틴 피 주립대에서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친다. 여러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으며, 책 표지, 잡지 등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네가 숨 쉴 때』에 그림을 그렸다.

번역 최정수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오 자히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 『어떤 미소』, 『마음의 파수꾼』, 기 드 모파상의 『오를라』,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이브 생 로랑의 『발칙한 루루』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목차

  • 복숭아
    외할머니가 전하는 내 어머니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 | 부리와 발톱이 붉은 |
    잠시 쉬며 해피엔딩이 실상 어떤 것인지 숙고해 봅시다

    수련
    침입자들 | 외할머니가 전하는 사랑하던 개 이야기 | 울부짖음 |
    외할머니가 전하는 내가 태어나던 날 이야기 | 파랑새들에게 | 당신들이 나를 바라보던 방식 | 항상 하늘에 있는 건 아니다 | 혈연 | 둥지들

    뇌우
    폭풍우 속에서, 폭풍우로부터 안전하게 | 비밀 | 견진성사 |
    여우와 닭의 우화 | 창문 속의 괴물 | 스노문 | 대청소 | 안전하게, 덫에 걸려 |
    여섯 살 때 내가 알던 것들 | 여섯 살 때 내가 알지 못하던 것들 |
    전기 충격 요법 | 안개 속에서 | 내가 사랑하는 늑대

    큰어치
    어치, 집 | 바니 비글이 야구를 하다 | 개울 산책 | 벙커 | 아파치 스노 작전

    파랑새
    국민 방위군 | 나에게 깊은 즐거움의 이야기를 해 줘 | 도토리 시즌 | 믿음


    강의 빛 | 붉은 흙길 | 다름 | 잡초

    토마토
    불완전한 가정의 팔복 | 밤 산책 |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 충영 |
    신혼여행 | 외할머니가 전하는 외외종조부님의 죽음 이야기 |
    청설모 막아 주는 핀치 급식기, 평생 보증 | 항상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
    선로들 | 외할머니가 전하는 외할아버지의 죽음 이야기

    금잔화
    어머니가 잡초를 뽑다 | 날아가 버리다 | 그리스도 교회 | 이주자들 | 초원의 빛

    일식
    불의 고리 | 다시 한번,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 내가 잠을 자던 동안

    얼룩무늬 새끼 사슴
    보기 | 외할머니가 전하는 외외증조할머니의 죽음 이야기 |
    홍관조, 일몰 | 황혼 | 외할머니가 전하는 자신이 총에 맞은 날 이야기 |
    바벨탑 | 베어 루인드 합창단 | 추수감사절

    파랑새
    떠들썩한 왕국 | 행진 | 고요하게 | 향수병 | 드러내다

    무화과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 | 둘씩 | 키스 | 난 선택하지 않았지 |
    이를테면 브뤼헐의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에서처럼 | 새들은 모두?

    인동
    전이 | 죽음을 거스르는 행동 | 뭣같은 세상을 찬양하며 | 초크체리

    토끼
    그는 여기에 없다 | 건강염려증 | 잔해가 취하는 모습 | 빗자루병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 유골, 1부 | 두려워하지 마라 |
    뇌졸중 | 먼지에서 먼지로 | 어휘 | 가뭄

    울새
    불면증 | 생일 케이크 만드는 법 | 귀가 | 내가 간직한 것 |
    꿈속에서 어머니가 내게 돌아왔을 때

    매미
    갑옷 | 부활 | 어둠 속에서 | 출구가 없다 | 깔끔한 도주 같은 건 없다 | 유골, 2부

    단풍나무
    두 번 다시 아니다 | 역사 | 유골, 3부 | 가면을 쓴 |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넌 절대 모를 거야

    개똥지빠귀
    분리 불안 | 작별 | 보상

    제왕나비
    늦은 이주 | 가을 이후 | 거룩, 거룩, 거룩
추천사
  • 네 쪽 미만의 글들이 모여 보석 같은 패치워크를 이룬다. 그 조각보 안에 자연과 문화와 작가 자신의 가족이 다 담겨 있다.
  •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사는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게 무엇이든, 잠시 멈춰서 다시 살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 이 이야기는 자연의 영광과 잔인함을 묘사할 때 특히 빛난다. 렌클은 ‘부패의 광휘’를 생생하게 포착하는 작가다.

책 속으로

모두들 알다시피 안개는 소리 없이 낀다. 하지만 시(詩)에서 그러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내려앉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안개는 분주하다. 그것은 귀찮게 쫓아다니는 고양이와 할퀴는 참새를 마찬가지로 감춰 준다. 그것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무디게 만들고, 구부러진 잔가지를 펴 주며, 섬세한 녹색 그늘 속에서 모든 나무를 더 부드러운 모양으로 만들어 준다. 숲 깊은 곳에서 안개는 어린 가지와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보석들을 하나하나 깔아 두면서 숨어 있던 거미줄을 꿈의 풍경 속으로 일깨운다. 하늘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침 해가 타오른다. 하지만 세상은 당분간 안개에 속해 있다. 안개는 감추고 보여 주고 하느라, 우리가 아는 것을 감추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우리 눈에 드러내느라 분주하다.
-186쪽

어떤 꿈에서 어머니는 우리 집 현관문 옆 옷장 안에서 자신의 옷걸이를 발견하고 짜증을 냈다. “왜 내 훌륭한 나무 옷걸이들을 전부 가져갔니?” 엄마가 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내가 대답했다. “엄만 돌아가셨어요.”
“오.” 엄마가 말했다. “그럼 됐다.”
-252쪽

그 황금빛 가슴 깃털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창백한 갈색이 되었고, 등에 다다르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회색 깃털은 애기여새에게 어떤 빛을, 빌려온 광채를 부여했다. 마치 햇빛을 받아 온종일 빛나는 눈(雪)처럼.
-287쪽

때때로,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평소에도 절망적인 세계 뉴스가 더 절망적이 될 때, 이곳에 속해 있다는 무게는 떨쳐 내기 힘든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 나는 어느 봄날 아침의 반짝임을 생각한다. 햇살 속에 서서 나비 정원에 물 주는 것을 생각한다. 정원 대부분에는 심지도 않은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나 있다. 그 잡초들은 손으로 잡아당겨 뽑아도 다시 자라난다. 나는 물을 뿌려도 동요하지 않는 아스클레피아스 위의 애벌레들과 정원에 사는 흉내지빠귀 한 마리, 화가 난 까마귀 세 마리에 쫓겨 머리 위를 활공하는 붉은꼬리말똥가리, 둥지 상자 꼭대기에 서서 자기의 짝인 암컷 파랑새를 보호하는 수컷 파랑새를 생각한다. 암컷 파랑새는 그 안에서 알을 낳고 있다. 나는 그날 아침을 생각한다-여느 날 아침도, 여느 시간도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알이 되어라. 흉내지빠귀가 되어라. 잡초가 되어라.
-102쪽

 

출판사 서평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상실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집굴뚝새는 자기 영역에 들어온 작은 새들을 죽인다. 어치는 다른 새들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마거릿 렌클이 관찰한 미국 남부의 울창한 자연은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세계다. 하지만 마거릿 렌클은 자신의 정원에서 박새를 죽인 집굴뚝새를 미워하지 않는다. 렌클에 따르면 집굴뚝새가 구애할 때 부르는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며, 갈색빛을 띤 작은 몸은 무척 귀엽게 생겼다. 집굴뚝새의 난폭한 본능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작은 몸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특성일 뿐이다. 자연은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렌클이 죽은 박새를 발견했던 둥지는 잠시 비워졌다가 다른 박새의 안식처가 되었다.

렌클은 아름답고도 무심한 야생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삶에 관한 지혜를 배운다. 미국 남부 지방 대가족 출신인 그녀는 수많은 친척과 함께 성장해 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죽음은 아름답게 찾아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노쇠함은 늙어 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짐을 지운다. 멋진 추억을 함께했던 기억들은 늙고 병든 몸을 가진 오늘 앞에서 쉽게 휘발해 버린다. 렌클은 자신과 남편을 키워 주었던 어른들을 돌보게 될 때마다 그렇게 지쳐 버리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바로 정원에 찾아오는 온갖 생물이었다. 지금껏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기쁨이나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지니지 않은, 오직 ‘지금’만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작은 동물들. 어느 청설모는 ‘청설모 방지 새 모이통’에 입을 들이대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씨앗을 하나씩 뽑아 먹는다. 그때 ‘지금’은 끝을 모른 채 이어진다. 그 작은 동물의 배가 부를 때까지.

성장과 쇠락 속에 공평히 깃든
아름다움을 꼼꼼히 포착하다

렌클은 이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담고 있는 교훈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다. 이 책 속의 자연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는 마치 서로를 비유하듯 마주 보고 있는데, 독자는 그 비유를 통해 인간이 이 자연 세계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먹고 먹히는 새들의 먹이사슬에 관한 이야기는 베트남전에 얽힌 저자 가족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자연이 때로 소박하지만 기적적인 순간들을 선보일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 역시 작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기억을 남긴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할머니의 손등을 주물렀던 기억은 이 책에서 가장 덧없이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나는 올리 할머니의 손을 내 손안에 잡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손가락을 가로질러 움직이게 하면서, 할머니의 손이 내 손가락 밑에서 물처럼 유연하게 잔물결을 일으키는 방식에 놀라면서 부드럽게 토닥인다. 올리 할머니의 피부는 할머니의 오래된 성경책과 비슷하다. 그 성경책은 종이가 얇고 모서리가 닳아서 부드럽게 느껴진다. 나는 외외증조할머니의 가운뎃손가락 관절 위 피부를 살짝 꼬집는다. 그런 다음 놓아준다. 그 피부가 몇 초 동안 내가 사는 시대보다 훨씬 전 시대 빙산의 능선처럼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지 확인하며 수를 헤아린다. 그것은 천천히, 천천히 내려앉는다. 천천히, 천천히 자신을 바닷속에 던진다.”

태어나는 삶도, 저물어 가는 삶도 모두 각각의 기적적인 순간들을 갖고 있다. 치열하게 먹고 먹히면서도 꿋꿋이 번성을 꾀하는 자연의 흥망성쇠는 이 책 속에서 하나로 이어진 흐름처럼 느껴지며, 거기서 탄생과 죽음은 공평하게 존중받는다. 자신의 온 삶과 이 세상을 허허로운 따뜻함으로 둘러싸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익숙하고 포근한 이불 같은 온기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