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행복의 기원: 서은국 (2022.1.25)

클리오56 2022. 1. 25. 23:42

소감 및 내용

- 유튜브 일당백 시즌 3 EP-8 (2021.5월 방송) / Chris Kim님의 댓글 인용                                                              * 1. 행복의 어원: 나카자와 신이치라는 일본인이 happiness를 번역하면서 幸과 福 두 단어를 조합. 매울 신(辛)은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문신하는 도구 모양으로 매운 맛은 고통을 뜻한다. 그 고통 중에 놓여있는 사람이 살리는 힘을 가진 어떤 것을 만나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 happiness(행복)의 본 뜻은 'good fortune'(행운). happiness와 happening(우연한 사건)의 어원인 hap은 우연이라는 의미이므로, happiness라는 말에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뜻을 내포.                                                     
 * 2. 생존을 위해 발현되는 감정: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 행복을 느끼게된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고,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행복감'이 주어진다. 이런 면에서 행복은 고차원적 지성이 필요한 것이라기보다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행복한 거다. 여자와 남자(암컷과 수컷)는 생존, 번식으로 DNA전달하는 지향에서 약간 관점이 다른데, 암컷은 경쟁을 뚫은 수컷과 어차피 교미를 하므로 '안정' 지향적이고, 반면 수컷은 경쟁을 뚫어야 하므로 모 아니면 도 라며 죽기살기로 임할 수밖에 없다. 명리학적으로 여자는 '실리'(물질 지향), 남자는 '기세'(모험 지향). 남자가 야심이 많은 건 진화론적으로 나의 DNA전달 확률이 낮기 때문에 모험을 해야 그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명이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삶이 안정화되어 있으므로 '생존과 번식'에 몰입도가 덜하며 여자는 가정 책임, 남자는 부양의 책임에서 벗어나 제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곤 한다.   
* 3.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길지, 물을 알고 수영을 배워 나아갈지.. ①'인간'도 '자연'의 하나 인간 자체도 자연이 인격적으로 나타난 거다. 인간과 자연이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자연이 인간으로 나타난 거다. 인간이 살아가며 감정을 느끼고 욕망을 느끼는 게 이런 자연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②제 '욕망'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그 컨트롤권을 쥘 때 갖는 자유.. 자유는 필연의 인식이다. '내 맘대로 하늘을 날겠다'는 자유도 아니고 뭣도 아닌 허무맹랑일 뿐이다. 오히려 중력의 법칙을 인식하고 중력을 알 때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다. '본능'도 그것을 인식하고 알 때, 진정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욕망으로부터 해방되고 욕구를 줄여나가면서 내가 진정 자유로워지는 거다. 욕심을 줄여나가는 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③받아들이자.. 인생은 유람선 타는 거다. 여러 사람 만나 즐겁게 떠들다가 때가 되면 내리고, 또다른 승객이 탄다. 슬픔과 좌절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학과 유머가 필요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데,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 4. 현재 편향(보수성) 내게 주어진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건 누구나 가진 편향이다. 나에게 불리한 정보를 애써 안 보려 한다. 정치에서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그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파국을 맞곤 한다. 그래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능력, 교양과 지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교양과 지성을 갖추면 항상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내가 잘났다'는 교만에서 벗어나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기상황에서 오픈마인드로 다른 사람 의견도 잘 받아들여 좀더 탈출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닫혀있는 사람은 스위치전환이 힘들어 줏대없이 군중을 따르다 폭망각에 빠지곤 한다. 여러 가지 감정의 작용들(기)이 일어날 때, 이성(리)이 그 위에 타고 통제한다는 게 기발리승(氣發理乘)!! 그런데 '과연 그게 좋으냐' 라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군집으로 움직이는 걸 따라야 할지, 내가 이성적으로 본 방향(군집과 반대방향)으로 과감히 나아갈지, 항상 고민거리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모든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attention하다 보면 강박환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
* 5. 행복은 '사람'이다 ①외향적 vs 내향적 '내성적'인 사람도 외향적일 수도, 내향적일 수도 있다. 인간의 도덕단계 '저만<저들만<남까지<것까지'에서 '저만<저들만'의 단계에 갇히면 자기 자신, 자기 이익, 자기 얘기에만 몰두하는 '내향적' 경향성을 갖는다. 나를 둘러싼 남들, 공동체, 자연과 우주까지 관심사가 열려 있으면 '외향적' 경향성을 가진 걸로 본다. 전자로 인해 뚜렷한 자기 주장을 갖게 되고, 후자로 인해 남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으므로 내향성(보수성)과 외향성(진보성)은 삶을 살아가는 두 날개라 할 수 있다. ②'사회성'도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결과물 '사회적'인 것은 장단 양면의 얼굴이 있다. 남을 배려하고 집단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괜히 각을 세워 나쁜 소리 듣기 싫어서 대충 무난히 넘어가자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아무리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자고 해도, 남의 시선, 남의 눈치 영향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다. 남들의 인정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 이것 역시 좋은 관계를 만들어놓는 게 '생존'에 유리한 바, DNA 속에 사회성이 각인되어 진화해온 것이다. 창의성, 협력성을 보여주는 것도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나와 짝을 맺으면 이런 창의적 위트, 유머로 즐거울 거야' 를 보여주는 것으로 짝을 잘 맺기 위해 발전시켜온 것... 피카소의 미술, 바하의 음악, 단테나 괴테의 문학, 간디의 도덕성도 근본적으로는 생존 욕구(+mating 확률 높임)의 결과물로 보는 설도 있다. 왜 거부당할 치욕감을 무릅쓰고 이성에게 고백(찝적?)하는가? 혼자 있는 편리함이 있음에도 사회속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시도하고 이어가는가? 이런 '사회성'은 모두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본능의 발현!! ③행복은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우리는 가장 강렬하고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자극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 역치가 있는데, 돈, 마약처럼 자꾸 역치가 높아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극을 갈망하게 되기도 한다. 돈으로 사람 부리는 건 일도 아니어서,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엄마, 아빠보다도 '돈'이 우선이라 여길 정도다. '돈' 생각을 많이 할수록 '사람'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행복에 이르는 일개 수단에 불과해야 할 '돈'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 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사람에 대한 갈망', '사회성'에서 기인한 거다.
* 6. 도파민, 엔돌핀, 세로토닌 뇌 전극으로 쥐의 보상기전을 자극시키면, 새끼도 팽개치고 입에 거품 물며 죽을 때까지 버튼을 누른다. 밥을 먹었을 때, 사랑을 할 때 도파민, 엔돌핀, 세로토닌의 전기적 자극으로 얻는 행복감은 무시해서도 안 되고, 생명체의 생존과 삶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도파민, 엔돌핀, 세로토닌의 전기적 자극만을 '행복'의 잣대로 여긴다면 상기한 실험 쥐는 행복한 삶을 살다 간 건가? '마약에 빠진 사람'은 행복한 건가? No, no.. 그래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행복 판단의 바탕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라는 말에 힌트가 들어있다. '사람'이란 '살려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사람에게 좋냐 나쁘냐를 따질 때는 '살리는 것(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잣대로 삼으면 된다. 사람을 제대로 잘 살리는 것이라면 그건 사람에게 좋은 것, 옳은 것, 맞는 것이다. '살리는 힘'이 행복 판단의 잣대!! '사람을 살리는 힘'을 잣대로 보면, 마약중독자는 '사람을 살리는 힘'으로 보기 어렵다. 마약에서 얻는 행복은 제대로 된 행복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다.
 
* 7. 두 가지 종류의 행복 '살리는 것'이란 잣대가 나와야, 행복인지 아닌지, 더 행복한지 덜 행복한지를 가를 수 있다. 풀이나 나무는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나를 살리는 힘은 적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나를 살리는 힘은 한시간 전에 먹은 카레라이스가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산에 있는 저 나무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다른 생명체들,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사람을 살릴 거라는 거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나'로 닫혀져 있는 행복이다. 산의 나무, 숨쉬는 공기 등은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사람을 살릴 거라는 거다. 그런 고마움이 들면 행복감이 더 커진다. '나로 닫힌 행복'은 항상 일정 정도 허무하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거잖나.. 더 하고 싶은 것도 있을 텐데, 결국 다 못하잖나.. 손에서 놓기가 되게 힘들잖나.. 내가 사라져도 사람을 살리는 것들에서 오는 행복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쫙 뻗쳐져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은 ①'나'로 닫혀져 있는 행복 ②'사람을 살리는 힘(그 고마움)'에서 기인한, 열려서 확장된 행복, 이렇게 두 가지..
- 차동엽 신부: 영어 행복(happiness)의 어원은 발생하다(happen)이다. 행복은 내가 발생시키는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선언하면 행복해진다.  
- 서문: 예술과 문학은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탁월한 통찰력이나 상상력이 필요 => 본서는 행복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과학적 연구에 바탕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한 국가라는 언론 보도는 학계의 결론과 다름) => 연구의 촛점: 첫째,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가 아니라,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둘째, 행복의 이성적인 면보다는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면에 더 관심(사회적 관습과 가치의 넥타이를 풀게 하고, 그의 발가벗은 모습을 볼 필요), 셋째, 통상은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삶의 이유는 행복을 달성하는 과정이라고 이해. 하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결론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chapter 1. 행복은 생각인가
-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단비를 행복이라고 하자. 이 비가 언제, 왜 내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습도나 풍향 같은 자연 요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주술사의 춤이나 기우제 음식 같은 가시적인 것에 현혹돼서는 행복의 본질을 볼 수 없다.
- 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하며 산다.
chapter 2 인간은 100% 동물이다.
- 우리 조상의 남녀 비율은 1 대 1이 아니라 1 대 2로 여자 비율이 높다. 인간의 경우, 그나마 일부일처제라는 제도 덕분에 남녀 간 불균형이 최근 줄어든 것이다. 다른 포유류들의 경우, 이 비율이 3(수컷) 대 7(암컷) 정도까지도 기운다. 거의 모든 암컷은 자식을 갖지만, 소수의 수컷만이 유전자를 남겼다는 말이다. => 이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녀의 기질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수컷의 경우는 다르다. 어차피 최고가 못되면 짝짓기에서 낙오된다. 매사에 ‘모 아니면 도’ 같은 극단적인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불탄다. 주먹 반만 한 골프공을 김 부장보다 5m 더 날리려고, 연습장에 출근하며 쇠막대를 5천 번 흔드는 게 남자다. 승부욕 있는 수컷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 인간이 침팬지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진 것은 대략 600만년전이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문명을 가진 것은 길게 잡아야 6천년전이다. 지국의 역사를 1년으로 단축한다면 인간의 문명생활은 365일중 고작 2시간 정도다. 문명 이전 동물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는 것,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 => 인간이 동물스러움을 입증하는 연구: 여대생들의 가임기간 및 아닌 기간의 통화내역을 보면 아버지와의 통화가 가임기간에는 빈도와 시간이 줄어들며, 그 시기가 지나면 또 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간다. 가임기에 가까워지면 아버지를 경계하라는 경고 시스템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실험후 당사자들은 믿지 않을 정도이다. 

chapter 3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 => 행복이 최고의 선. 하지만 이는 철학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즉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에 지동설이 한 방을 날렸고, 여기에 KO펀치를 날린 것이 진화론. 진화론은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모든 과학적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검증한 사실이다.                                       - 어떤 섬의 씨앗이 모두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기에 후손은 참새에서 큰부리 참새로 진화, 공작새 꼬리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숫컷이 암컷에 과시하는 상징물 =>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 인간에게 확대 적용: 피카소의 그림(새로운 여인이 등장할 때 광적인 광기로 다작), 인간의 유머는 창의성의 표현이며 그 창의성은 공작의 꼬리 역할. 즉, 신체적 특성 뿐만 아니라, 고차원적인 정신적인 특성(행복도 포함)도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  
chapter 4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 서핑하는 개의 이 놀라운 묘기는 새우깡 하나에서 시작. 새우깡이라는 이 강력한 심리적 강화물이 없다면 개의 셔핑 묘기는 탄생할 수 없다., 개는 셔핑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왜 새우깡을 먹으려고 했는가? => 새우깡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먹을 때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혹은 즐거움 때문이다. 
-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 => 생존과 번식.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선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했다. => 동전탐지기의 주인이 찾는 것은 동전(목표)이고, 신호음은 그것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를 인간에 적용한다면, 뇌가 꾸준히 찾는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고, 그것에 근접하면 쾌감 및 불쾌의 감정은 그 신호등이다. 쾌감 신호에는 접근하고, 불쾌 신호에는 물러나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몇 번은 운좋게 살 수 있어도 결국에는 비극적 종말 초래
chapter 5 결국은 사람이다. 

- 왜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바로 생존.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들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 짝짓기라는 궁극적인 생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타인이 필요. => 인간의 사회성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다’ 남을 설득하고, 속이고, 속마음을 이해하고…. 뇌의 최우선적 과제는 사람 간의 이런 복잡 미묘한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 오랜 진화 과정 중 어떤 큰 변화가 호모사피엔스의 뇌 발달에 기여했을까? =>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 약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약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 사회적 생존 패키지에서 첫째, 고통인데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고통은 신체적 고통(못에 박힘)과 사회적 고통(외로움, 배신감)으로 나뉘는데, 원인을 달라도 기능은 같다. 즉, 둘 다 생존을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쾌감인데, 이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며칠 굶주린 배를 채우거나, 꽁꽁 언몸을 온천물에 담그는 것 처럼 몸을 보존하는 경험을 할 때 강력한 쾌감이 생긴다. 또 하나 절대적 자원은 바로 사람인데,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chapter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즉,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는 돈은 더 이상의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다. 예외: 스칸디나비아의 행복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에 대한 존중.                  - 복권당첨과 행복을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경우를 보면 이것이 답이 아니다. 왜 그럴까? =>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 => 행복은 한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자.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chapter 7 사람쟁이 성격

-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맨해튼의 무역센터 북타워로 돌진했다. 17분 뒤 또 다른 여객기가 남타워를 덮쳤다. 첫 테러기가 북타워에 충돌하며 생긴 여진이 남타워를 강타하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비상계단으로 달려갔다. 이 아비규환의 혼란 중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고 지점은 그들이 있던 남타워가 아닌 북타워이니, 안심하고 사무실로 되돌아가라는 메시지였다. 당신이 만약 그 비상계단에 서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 순간의 결정이 생사를 갈랐다. 누가 살고 누가 죽었나?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그들의 평소 ‘성격’이었다. 매사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김 과장은 “별일 아니야!” 소리치며 사무실로 올라갔을 것이다. 밥값 낼 때 항상 손을 바르르 떨던 최 과장은 일등으로 건물을 탈출했을 것이다. 이 17분짜리 드라마에서 평소 낙관적인 사람들은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소심하고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던 이들은 생존했을 확률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 행복의 원인 중 과대평가하는 것이 돈과 같은 외적 조건이다. 반대로 행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않는, 하지만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한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다.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50% 정도는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 유전과 행복을 각각 하나의 대륙이라고 한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다리가 있다.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수치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가 빠르고, 상대도 많다.                                    - 내향적인 사람은 타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그래서 중턱쯤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정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다. 행복의 관점에서 이 가벼운 짐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난 큰 유전자적 혜택이다.                                                                                                         -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행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다. 
chapter 8 한국인의 행복

- 개인의 행복수준은 외향성 같은 성격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문화도 추가 요인으로 작용. 사례: 2006년 월드컵 결승전의 연장 후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기 도중 지단이 갑자기 이탈리아 수비수를 박치기 한방으로 쓰러뜨렸고, 지단은 퇴장, 프랑스는 결국 이탈리아에 패배, 지단에 인종차별 발언하는 심리전의 희생. 로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맨해튼의 무역센터 북타워로 돌진했다. 17분 뒤 또 다른 여객기가 남타워를 덮쳤다. 첫  => 프랑스는 이 사건 후 지단을 영웅 대접, 시라크 대통령 "당신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프랑스가 당신을 사랑하네" 즉, 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회 => 박치기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를 카타르에서 구입하여 2022년 월드컵 분위기 뛰오는 용도로 사용 계획, 하지만 곧 철거. 이유는 한 개인을 영웅시하는 서구의 상징물이 전통적인 이슬람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                                                                                                                              - 한국, 일본, 싱가포르는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행복도는 낮다 =>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차이에 연유. 개인주의는 심리적 자유감을 제공, 집단주의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응집력과 추진력을 발휘하지만,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가 수반된다. 서열에 의해 위아래로 세워져있는 식(팀장과 부하 직원, 선배와 후배, 정규직과 비정규직) => 선수들 혹은 결혼 카플들이 "열심히 할테니 잘 지켜봐주세요" 우리는 늘 나를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과도한 타인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람은 행복의 절대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chapter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 오컴의 면도날: 14게기 영국의 논리학자였던 오컴의 이름에서 탄생한 개념,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과 개념들은 면도날로 베어낼 필요가 있다는 권고. => 사고의 절약을 요구                                                              -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        - 결론:                                                                                                                                                 *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 쇼팽과 셰익스피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이에게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를 조사하니 먹을 때와 대화할 때.                                                                                              *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 => 행복은 거창한게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The rest are details.) 

책소개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일 뿐

열렬히 사랑한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결국 헤어졌고, 남은 것은 실연의 아픔이었다. 울며 지새는 밤이 얼마나 흘러야 가슴속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이별에는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보다 빠른 약이 있다. ‘타이레놀’이다. 돌팔이 처방 같겠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다.
진통제로 마음의 아픔을 줄일 수 있다는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심리학자 네이든 드왈은 심적 고통을 겪는 62명을 대상으로 21일간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게는 매일 타이레놀을 2알씩 복용하도록 했고, 또 한 그룹에게는 아무 약효가 없는 약을 처방했다(물론 양쪽의 약 성분은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타이레놀 그룹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아픔을 느끼는 정도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저자 :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에서 행복 분야 권위자인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의 지도를 받고,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4년 뒤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 심리학자 중 한 명으로, 특히 행복과 문화 차가 전문 분야다. 그의 논문들은 OECD 행복 측정 보고서에 참고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세계 100인의 행복 학자’에 선정되어 『세상의 모든 행복World Book of Happiness』에 기고했다.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돌아와 느끼는 큰 보람은 바로 강의다. ‘행복의 과학’이라는 저자의 강의는 “이 수업을 들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강 대기자가 700명을 넘는다. 최근에는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 강연 등을 통해 행복에 대한 ‘차가운’ 사실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목차

서문
chapter 1. 행복은 생각인가
chapter 2. 인간은 100% 동물이다
chapter 3.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chapter 4.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chapter 5. 결국은 사람이다
chapter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chapter 7. ‘사람쟁이’ 성격
chapter 8. 한국인의 행복
chapter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참고문헌

추천사

장대익(진화학자, 서울대 교수, 『다윈의 식탁』저자)

이 시대 최고의 행복심리학자가 다윈을 만났다. 결국 그의 위험한 생각에 세례를 받았고, 급기야 행복 연구의 방향을 180도 틀었다. 이 변곡점에서 저자는 외친다. ‘행복이 목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고,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라는 다윈이 옳았다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생존하기 위해 행복한 거라고. 이 책은 온갖 행복 테크닉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향한 광야의 외침이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위험한 진실을 말하는 저자의 방식은 세례 요한의 비장함보다는 우디 앨런의 지적 익살에 가깝다. 학자의 지적 성실함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심지어 너무 재밌다. 이제 행복에 대해서도 ‘왜?’를 물을 때! 

허태균(사회심리학자, 고려대 교수, 『가끔은 제정신』저자)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행복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을 외워도, 이해해도, 따라 해도 전혀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 답이 바로 이 책에 있다. 뻔한 교훈들로 채워진 행복에 대한 오해와 착각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행복에 대한 가슴 아픈 진실이다. 이 책으로 우리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왜 행복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행복이라는 전설의 용을 멋지게 그린 동화를 원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동물을 조각조각 해부한 과학적 보고서가 필요한 지성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책이다. 

책 속으로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단비를 행복이라고 하자. 이 비가 언제, 왜 내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습도나 풍향 같은 자연 요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주술사의 춤이나 기우제 음식 같은 가시적인 것에 현혹돼서는 행복의 본질을 볼 수 없다.
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하며 산다.
- ‘행복은 생각인가’ 중에서(27~28쪽)
 
우리 조상의 남녀 비율은 1 대 1이 아니라 1 대 2로 여자 비율이 높다. 인간의 경우, 그나마 일부일처제라는 제도 덕분에 남녀 간 불균형이 최근 줄어든 것이다. 다른 포유류들의 경우, 이 비율이 3(수컷) 대 7(암컷) 정도까지도 기운다. 거의 모든 암컷은 자식을 갖지만, 소수의 수컷만이 유전자를 남겼다는 말이다.
이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녀의 기질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수컷의 경우는 다르다. 어차피 최고가 못되면 짝짓기에서 낙오된다. 매사에 ‘모 아니면 도’ 같은 극단적인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불탄다. 주먹 반만 한 골프공을 김 부장보다 5m 더 날리려고, 연습장에 출근하며 쇠막대를 5천 번 흔드는 게 남자다. 승부욕 있는 수컷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 ‘인간은 100% 동물이다’ 중에서(34~35쪽)

재미있는 남자. 전 세계 여자들이 꼽는 남자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위트다. 그러나 유머러스한 남편이 생존에 무슨 직접적인 도움이 되겠는가? 정신없이 웃느라 굶주린 사자가 나타나도 모를 텐데. 위트 자체가 생존 필수품은 아니다. 그러나 위트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수준’을 나타낸다.
피카소를 예로 들어보자. 약 5만여 점의 다양한 미술 작품을 남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단지 예술가의 작품만을 아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가 언제, 왜, 어떤 이유로 그 작품을 남겼는지 이해해야 한다.” 좋소, 피카소 선생. 당신은 왜 그토록 많은 그림을 남겼소? 그의 개인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는 한결같은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붓을 한참 내려놓고 있다가 갑자기 예술적 창의력이 폭발하곤 했다. 이 광적인 시기는 그의 삶에 새로운 여인이 등장하는 시점들과 일치한다. 창의성과 로맨스의 궁합. 피카소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 연구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만화 한 장면을 보여주고, 그 밑에 최대한 재미있는 캡션을 붙이도록 했다. 동기유발을 위해 한 쪽에는 재미있을수록 더 큰 상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돈 조건). 다른 쪽에는 그냥 멋진 여인과 해변을 걷는 상상만을 하게 했다(연애 조건). 각 조건에서 참가자들이 쓴 캡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 뒤, 그것이 얼마나 재치 있는지 채점하도록 했다. 돈을 통해 동기유발을 시킨 쪽보다 연애 조건에서 나온 생각들이 더 재미있었다. 심리학자들이 이 현상에 붙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피카소 효과Picasso Effect.’ 여성들이여, 남자가 왜 그렇게 애써 썰렁한 농담을 하는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중에서(57~59쪽)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먼 옛날 어떤 남자가 고기나 여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나무의 나이테를 셀 때만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치자. 눈만 뜨면 밥도 안 먹고 나가서 나무를 자른다. 그는 성인기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살아남는다 해도 ‘나이테 동호회’에서 어느 정신 빠진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유전자를 남길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자들의 후손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중에서(68~69쪽)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그는 인간이 ‘뼛속까지 사회적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남을 설득하고, 속이고, 속마음을 이해하고…. 뇌의 최우선적 과제는 사람 간의 이런 복잡 미묘한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옥스포드 대학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오랜 진화 과정 중 어떤 큰 변화가 호모사피엔스의 뇌 발달에 기여했을까?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과 유골의 크기 변화를 비교해보면 결론이 나온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
약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약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 ‘결국은 사람이다’ 중에서(85~86쪽)

나는 대학에서 행복에 대한 강의를 15년째 하고 있다. 매학기 학생들에게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사건을 적어보라 한다. 독보적인 1위는 복권 당첨이다. 대학생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도 복권 당첨과 행복을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경우를 보면 이것이 답이 아니다. 왜 그럴까?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계속 반응을 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어쨌든 이 ‘적응’이라는 강력한 현상 때문에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되어 희미해진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이런 빠른 적응 과정 때문에 비교적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최근?
이를 알아보기 위해 수년 전 나는 대학생들의 행복감을 2년 동안 추적해보았다.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다시 말해, 작년에 벌어진 이런저런 사건들은 그들이 4월 1일에 느끼는 행복감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시간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운다.
-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중에서(108~110쪽)

2001년 가을의 한 장면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보스턴에서 이륙한 아메리칸 항공사 여객기가 맨해튼의 무역센터 북타워로 돌진했다. 17분 뒤 또 다른 여객기가 남타워를 덮쳤다. 첫 테러기가 북타워에 충돌하며 생긴 여진이 남타워를 강타하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비상계단으로 달려갔다. 이 아비규환의 혼란 중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고 지점은 그들이 있던 남타워가 아닌 북타워이니, 안심하고 사무실로 되돌아가라는 메시지였다. 당신이 만약 그 비상계단에 서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그날 비상계단에 서 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런 갈등에 빠졌다. 그냥 올라갈 것인가, 끝까지 내려갈 것인가.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부는 정말 사무실로 되돌아갔고, 일부는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뛰쳐나오기가 무섭게 두 번째 테러 여객기가 남타워를 덮쳤다. 62분 만에 건물은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다.
순간의 결정이 생사를 갈랐다. 누가 살고 누가 죽었나? 명함에 무엇이 적혀 있고, 나이가 몇 살이고, 얼마나 고상한 취미를 가졌는지, 그날 그들의 생사를 좌우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그들의 평소 ‘성격’이었다. 매사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김 과장은 “별일 아니야!” 소리치며 사무실로 올라갔을 것이다. 밥값 낼 때 항상 손을 바르르 떨던 최 과장은 일등으로 건물을 탈출했을 것이다. 이 17분짜리 드라마에서 평소 낙관적인 사람들은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소심하고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던 이들은 생존했을 확률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 ‘사람
출판사 서평
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는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우리 뇌는 심리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똑같이 받아들인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생존, 그리고 번식.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인간 역시 이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별의 고통을 알지만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인생은 계속된다. 꿈을 위해, 사랑을 위해, 결국 행복을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삶의 최종 목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은 정말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이 확고한 신념이 만약 허상에 불과하다면?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서문 발췌)

행복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기존의 통념을 전복시키는, 행복의 진실에 대한 역설이자 반기다. 저자가 그 근거로 삼은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행복 분야의 권위자 에드 디너 교수(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지도 아래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 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저자 역시 ‘인간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고차원적인 존재’라는 철학적 관점에서 20년을 연구해왔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다.
깊은 고민과 연구 끝에 얻은 결론은,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 타조나 숭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 동물이라는 것. 이 새로운 시각은 행복에 대한 근본적 생각을 뒤흔들어놓는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힌다. ‘인간도 동물인데, 이 동물은 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행복의 기원』은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결론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수단
왜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가? 저자는 난데없이 개 한 마리를 등장시킨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개. 인간은 야생의 개를 집안으로 들이면서 교육과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무척 이기적이다. 눈썰매를 끌라 하고, 마약 탐지를 시키고, 집 지키는 것도 모자라 온갖 쓸데없는 개인기까지 보여달라고 조른다. 캘리포니아 해변에 사는 주인을 만나면 서핑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이건 뭐, 끝이 없다.
하지만 이 철없는 개 주인의 입장은 이렇다. 공놀이도 하루 이틀이고, 뭔가 기막힌 재주를 가르치고 싶다. 미개척 분야인 서핑을 택한다. 문제는, 어떻게?
서핑은 커녕 바다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리는 개를 어떻게 서퍼로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 주인은 자기 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것은 새우깡이다. 갑자기 희망이 생긴다. (본문 65~67쪽)

자, 이제부터는 조련이 시작된다. 개가 물가로 오면 새우깡을 하나 준다. 그리고 물에 발을 담그면, 서핑보드에 한 발짝 올라오면, 또 새우깡을 준다. 한 단계씩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상을 주는 것이다. 결국 개는 서핑을 하게 된다. 서핑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서핑을 하고 있다. 개는 단지 새우깡이 먹고 싶었을 뿐이다.
저자는 개가 서핑에 성공한 이유가 ‘새우깡을 먹을 때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쾌감을 계속 느끼기 위해 새우깡을 자꾸 먹으려 했던 것이며, 그 결과가 서핑의 성공이라고 말이다.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본문 68~69쪽)

먹고 자고 사랑할 때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다. 행복, 즉 쾌감을 느껴야만, 혹은 쾌감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먹고 자고 사랑하는 데 집중한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행복은 삶의 최종 이유도 목적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게 우리의 현실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쨌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대학 간판을 위해, 연봉을 위해, 집 평수를 위해 분투한다. 아마 많은 이들의 소원이 ‘로또 1등’일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실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1년 뒤 느끼는 행복감이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인간의 감정은 어떤 자극이나 변화에도 ‘적응’을 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저자의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이라고 강조한다.
살아가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민이 ‘어떻게?’에 그치는 삶과 ‘왜?’를 고민하는 삶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책에 대해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가 쓴 추천의 말이 그 의미를 요약한다. “이 책으로 우리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왜 행복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