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그래서 나는 히말라야에 빠졌다: 저자 임현담 (2018.1.12)

클리오56 2018. 1. 9. 19:25






 


읽은 소감 및 내용
저자는 자연에 귀의하고 자연과 하나로 융합되어 순응하는 화엄사상이 그의 주된 목소리라고 평하여지지만, 저자는 카톨릭, 힌두교, 티벳불교로 나아가면서 우리같은 범인의 사고 영역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의 히말라야 구도여행은 부러울 따름.
 
16쪽 들개가 돼가고 있다
히말라야 너머 라다크의 수도 레의 아침 풍경. 군인들이 사열을 위해 왕궁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왕궁 뒤편의 설산이 냉기 그득하다. 고지대라 아침이면 해가 어서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22쪽 라다크의 수도 레의 버스터미널. 인도 평원에서 버스로 3일간 히말라야를 넘어서면 이곳에 도착한다.  인도의 다른 도시처럼 제법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개를 포함한 온갖 짐승들이 모여든다.

28쪽 겸손하도록 길들이고 복종하도록 하라
31쪽 나는 설산의 이런 모습과 사랑에 빠졌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풍경과는 깊이 넓이 높이가 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설악산을 다녀온 후 많은 산을 올랐으나 설산은 단번에 나를 압도했다.

34쪽 구름이 걷히자 히말라야 설봉 중의 하나가 마치 금강석처럼 빛난다 .우리의 본성은 구름이라는 번뇌가 걷히면 청정무구라는 불가의 이야기를 긍정하게 만든다. 차가운 각성과 함께 영성을 자극하는 풍광이다. 모든 종교는 이곳에서 하나가 되고 변치 않는 성지로 남는다.

38 쪽 당신은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고 있나이다
40쪽 히말라야에 이르는 과정은 열대우림, 초원, 황량한 산악지대 그러고 나서 눈과 빙하 지대이다. 이런 풀조차 없는 황량한 지역은 설산-천국에 이르기 전에 고행을 거듭해야 하는 수도승을 연상하게 만든다. 아낌없이 드러난 산줄기는 고행승의 뼈대이고 간간이 흐르는 물줄기는 그들의 혈관이다. 이 곳에는 자유가 없고 오로지 복종이다. 그 복종 속에 순응하여 경계를 넘어서면 니르바나에 도달한다.

48쪽 너와 달리기를 한 놈은 마음이야
49쪽 히말라야는 저녁 무렵이면 휴식을 취한다. 종일 펄럭이는 깃발도 잠잠하다. 대기는 투명하고 산은 바람이 불 때 보다 또렷하고 가깝다. 그뿐인가, 마음도 가라앉아 깊은 내면의 세계가 바닥까지 들여다보인다.

52 쪽 물결치는 히말라야 연봉은 장관이다. 이곳에서 인도의 종교들이 성지 선포를 하는 이유는 단순한 표면의 풍경 때문이 아니다. 표면 내부에 존재하는 정신 때문이다.

56 쪽 히말라야 팡포체에 있는 사원이다. 푸른 하늘, 깊은 숲, 맑은 기운, 청정한 대기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시선에 닿는 표면적인 풍경은 손쉽게 맑은 마음으로 이어져 청정구도의 지름길이 된다.

64쪽 새가 날기 위해서는 손을 놓아야
 

69쪽 자유로 향한 행위는 운명

70쪽 히말라야에 앉으면 자유롭다. 산을 지나되 산에 남지 않는 구름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운수납자의 무애심을 체험한다. 탁 트인 전망에 육신은 가벼워져 단 한 걸음이면 우주로 나설 듯하다.


74쪽 자유란 그렇게 내 것이라고 느끼고 내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면, 다가오는 텅 빈 충만이었다. '자유를 좋아하지만 그 자유가 나를 구속하고 있다'던 공초 오상순 선생님의 자유는 불완전한 자유였다. 자유란 '더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와 동일한 뜻이었다.


76쪽 자유로 향한 행위는 까르마(운명)인 셈이고, 히말라야를 방문하는 행위는 운명에 기록된 자유를 찾는 업이다.


77쪽 히말라야의 풍경은 자유의 상징이다. 계곡을 따라 지나가는 바람이 그렇고 하늘에 흩날리는 눈조각이 그러하다. 자유자재로 그려진 스카이라인하며 거침없이 솟아오른 봉우리를 보라. 지상에서 자유의 최전방이다.


78쪽 침묵과 고독은 신에게 이르는 지름길
82쪽 히말라야 산길에서 흔히 만나는 마니석, 기도문이 적혀있어 순례객에게 힘을 준다. 인생은 홀로 가고, 죽을 때도 혼자 죽으며, 사후 세계에도 외로이 가기 때문에 이 기도문은 살아 생전 물론 사후에도 중요시 되고 있다.

86쪽 가끔 이렇게 혼자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나면 붓다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가 생각난다. 홀로 가는 행보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혹은 남에게 구속 되지 않는 독립처럼, 내게는 유아독존의 상징이다.

89쪽 돌로 벽을 쌓고 얇은 석판으로 지붕을 이은 허술한 집이라도 찬란한빛 설산이 함께 한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고 밖으로 나오면 세속을 초월한 평화가 여여하여 떠나온 고향을 잊는다.

93쪽 풍경 안에 침묵이 있고 정적이 함께한다. 아무 소리도 없기에 더욱 잘 보인다. 산의 굴곡은 손금 보다 선명하고 색채는 깊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사라지고 이런 풍경만 남는다. 그러다가 풍경 마저 사라지면 아뜨만이 남아 브라흐만의 세계와 결합한다.

95 쪽 가람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다. 그곳은 침묵이 소음을 지배하며, 직관이 감각을 통제하는 장소다. 대부분의 사원이 고립된 산에 있는 것은 같은 이치다.

97쪽 춤추는 나따라자
101쪽 설산과 설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있다. 조상 대대로 만년설이 녹은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순박하게 살아왔다. 세상과 고립되어 있기에 경제적 발전에 뒤쳐졌지만 자연을 존중하고 순응하는 종교적인 심성은 그만큼 순수하고 깊다.

103쪽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109쪽 온갖 기원을 써넣은 깃발들이 바람에 저항없이 흩날린다. 이 깃발들이 빨리 퇴색되고 찢어져 공기 속에 녹아 들면 자신들의 서원이 이루어 진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도 그렇다. 최상의 목표는 신과의 합일이거나 붓다의 길에 올라 붓다가 되는 것이다.

117쪽 시간 속의 우주
118쪽 진화를 믿는 달라이 라마는 무신론자들에게 이 땅을 빼앗겼다. 1949년 중국이 침략을 시작했고 1959년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으며, 이 땅은 아직 수탈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인 역시 히말라야만큼한 성산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힘사(비폭력)을 따르며 보다 평화로운 공존을 선택 했을 것이다. 티벳은 독립 되어야 한다.

124쪽 인도 북서쪽 캐시미르 지방의 호수. 물은 낮은 곳에 이럴수록 그 당당함으로 넓기만 하다. 그러나 인간의 시야로는 그 바닥을 헤아릴 수 없다.

133쪽 타고남 nature과 길러짐 nurture
135쪽 바드리나트 구루가 양손에 야크 털을 들고 서서히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있다. 춤이 끝나면 순례객 사이로 들어가 신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142쪽 내가 표현하는 히말라야 사진이나 글은 내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히말라야가 문자로 표현 되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다. 세상의 존재들은 모두 그렇다. 커다란 카페트의 한 올이 무늬를 만들고,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집단 무의식도 이런 범주다.

147쪽 그들이 먼저 속삭여 올 때까지
148쪽 히말라야가 연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침에는 하얗게 빛나는 백련, 낮에는 푸른 하늘에 물드는 청련, 석양에는 붉게 변화하는 홍련이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연꽃이 나를 응시한다.

152쪽 라다크의 헤미스 곤파는 험한 산지에 위치한다. 척박한 환경과 단순한 풍경 안에서 수행자들은 남다른 감각을 지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는 물론 모습까지 보고 있다.

159쪽 보통 사람은 듣기조차 어려운, 길이 2m 정도의 악기를 힘차게 불고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시작해서 히말라야 계곡의 지축을 흔드는 코끼리 울음소리까지 올라간다. 능력이 남다르다.

160쪽 그 어느 곳에 속하지 않는 우주유파
165쪽 이런 풍경은 이제 수 없이 보았다. 보편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고, 이런 지역을 자주 다니던 일은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규칙성과 항상성이 자유인가, 대중의 행동규범 안에 안주하며 안도 하는 것이 자유인가, 밖으로 나와 대자연과 마주서면 질문조차 사라진다.

172쪽 시바신은 카오스처럼 변덕쟁이다. 우리는 그의 행동을 얘기할 수 없다. 히말라야 곳곳에 이렇게 시바를 상징하는 삼지창을 모셔놓고 파괴의 신 시바에게 안녕을 빈다. 운해가 넓게 퍼져 있다.

177쪽 강물은 흘러간다. 시간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이 순리라면 그것은 신의 뜻과 일치한다. 하여 강은 신의 말씀을 무음으로 전하고, 인간은 강에 몸을 적심으로써 신에게 귀의한다. 그래서 갠지스는 신성하다.
180쪽 밀가루는 밀의 가루다
182쪽 삼지창을 들고 몸에 하얀 재를 바르고서 시바신을 따르는 수행자. 등에는 담요 한 장, 물통, 그리고 신을 찬양하는 몇 가지 도구를 가지고 갠지스 물줄기를 따라 히말라야까지 순례한다. 히말라야는 그들의 성지이자 천국이다.

186쪽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야크, 숲, 집, 설산,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 풍경이 전부인가. 저 산너머에는 미지의 무엇이 있다. 그곳에는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인종도 있고 또 다른 종교도 있으며 색다른 짐승도 살 수 있다.

191쪽 그 또한 꿈속의 사람
205 쪽 고산 마을 사람들은 여유롭고 넉넉하다. 그것은 바로 산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 무엇을 배운다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고산 주민들도 내게는 커다란 스승이다.

208쪽 히말라야를 찾는 것이 바로 타파스적인 행위
209쪽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호지

216쪽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다양하다. 무거운 짐을지고 험한 산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락한 가운데 편하게 앉아 즐기는 부류도 있다. 누가 더 중요한가.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그릇 안에 있으니 옳고 그름은 없다.

218쪽 히말라야 고산족들.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 하고 있다. 등에는 집에서 키우는 야크와 소에게 먹일 풀을 한 짐 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자신은 물론 함께 사는 짐승을 위해 다나를 따르고 있다.

224쪽 거지의 진정한 의미
228쪽 히말라야 케다리나트 사원. 한낮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버린 수행자와 가진 것이 없는 거지들은 이곳에서 닮은 꼴이다.

235쪽 히말라야, 잠 못 이루는 밤
244쪽 열반에 이르기까지 삶은 구름안개 속이다. 그 구름 속에서의 가르침은 내일을 생각치 말 것과 오늘의 용맹정진을 주문한다.

248쪽 네팔 소년 꿀리와 잃어버린 신발
255쪽 셀파족의 본거지 남체 바자르, 셀파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일부는 인도 히말라야까지 진출해서 짐을 나르기도한다. 소년 꿀리도 이 지역 출신이다.

259 쪽 아이가 피리를 분다. 짐을 메고 함께 산을 내려온 소년과 얼굴도 닮았고 나이도 비슷했다. 순박한 네팔 소년의 얼굴에서 잊어버린 우리의 과거를 읽는다.

263쪽 섹스를 하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268쪽 보통 사람들이 일원적 무아지경에 즉각적으로 들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섹스를 통한 합일 이외는 전무했다..... 성행위는 이미 기우너전에 일종의 경건한 초월적 의식이 되어 경전 안으로 들어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의미로 성행위를 헌신적인 쌍방의 종교 수행방법으로 채택한 분파가 좌파밀교였다. => 성행위를 통한 수행은 잘못하면 영혼 황량, 육체 황폐  

275쪽 한 도시에 이르는 여섯 가지의 길
"우주는 아그니(불의 신)에 의해 끊임없이 불타고 있다. 이 전체 우주의 순수성은 재로 인해 완성된다.(중략) 나의 씨앗이 담겨 있는 재는 경건하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부호되며 여성들에게는 아이를 출산하게 만든다. 영혼이 순수한 자는 재 속에서 목욕을 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극복한다."

279쪽 수행자들과 함깨 앉아서 이제는 어떤 약물을 통해 진리를 보고자 노력하는 부류를 폄훼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현실도피를 목표로 하거나, 쾌락적 흡연을 통한 중독에 빠져 원래 목적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같은 도시를 향해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한 도시에 이르는 길은 여섯 가지나 된다(One town, six ways). 각자의 이름으로 흐르는 강은 모두 하나의 바다에 이른다. 

286쪽 내가 가는 길은 양탄자 신발을 신고
287쪽 세상은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착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더구나 세속적인 인간사회를 지배하며 법과 질서를 만들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아도 착한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남을 짓밟고 위로 위로 상승하여 그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니, 그들이 설혹 성당, 교회, 사찰에 열심히 나간다 해도 자신을 위한 기복신앙일 뿐 평소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

294쪽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길에 나서서 외치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했다면, 우리는 보다 좋은 사회에서 살 수 있었을테니.

295쪽 후문
296쪽 전문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은 짐을 지고 정상을 향한다. 그러나 고도보다 자연이 좋은 부류는 높지 않은 히말라야에서 높이 되신 풍경과 인연을 읽는다.

299쪽 "너무나, 아름다워.... 저걸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그것이 문제였다. 글을 쓰고 인도 히말라야에 대해 책을 몇권 만들다보니 나의 종교이자 사랑인 히말랑야를 문자로 표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가슴이나 마음이 열리지 않고 알량한 머리가 열리는 꼴이었으니, 말하자면 산은 이미 산이 아닌 문자였다. 그동안 히말라야에서 묵언하는 수행자들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받고도 겨우 그 지경이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303 쪽 히말라야를 지키는 사람은 힌두와 불교도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축제를 통해 설산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주민은 주민대로 무의식에 히말라야를 심어넣고, 설산은 설산대로 대대로 이 땅이 그들의 것임을 선포한다.



교보문고 책소개

진단방사선과 의사이면서도 끝없는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저자의 히말라야 구도 기행기. 해마다 인도를 포함한 히말라야 주변 국가를 여행하면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일상을 만나온 저자는 풍경과 인연 속에서 삶 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10년의 세월 동안 떠난 히말라야를 찾은 한 의사의 방황과 순례 기록. 자연주의자들의 책에 방대한 주석서로도 가치를 가질 만큼 저자의 다양한 지적 편력을 보여주는 이 책은, 마르틴 부버, 막스 피가르, 우파니샤드, 소로, 제이콥 노이스너 등의 책에서 부터 불교, 힌두교 경전까지를 종횡으로 누비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독백을 이끌어낸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의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그의 책이 전하고 있는 핵심 주제는 '자유와 침묵'이다. 그는 '운명과 자유는 서로 서약하고 있다는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하며 스스로 "자유로 향한 행위는 운명인 심이고 히말라야를 방문하는 행위는 운명에 기록된 자유를 찾는 업이다"라고 정리한다. 이를테면 그에게 히말라야는 지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자유의 최전방인 셈이다. 이런 완벽한 자유 그에게 '그대를 처음 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망설이 없이 그대를 알아보았노라고'하고 말하게 한 상태를 그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깨닫는다. 침묵은 자유의 최전선이 펼치고 있는 조건인 셈이다. 모두 서울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조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