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2017.7.9)

클리오56 2017. 7. 6. 19:19





읽은 소감 및 내용요약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앞두고 네팔, 히말라야에 관한 서적들을 읽어가는 중이지만, 돌아오면 바로 와이프와 오사카 배낭여행이라 일본에 관한 지식도 미리 습득해둬야겠고, 그런 일환으로 일본 역사 서적을 하나 골랐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곤 하지만 사실 일본을 너무 모르고 우리와는 문화도 상당 다르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일본의 섬 땅덩어리가 분명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갈라져 나갔고, 그것도 고작 1만년전이라는데. 벼농사 기술이 전래되어 일본 전역으로 전파되는 것 역시 고작 기원전 3세기라는데. 우리가 일본하면 임진왜란의 7년 침략을 생각하지만, 이 역사서에는 그 침략 언급 조차 없는 것도 충격적이다. 18세기에 네덜란드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학서를 번역하여 일본 의학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부분이 또한 인상적이니, 그만큼 앞선 부분을 수용하고 이를 발전의 토대로 삼는 정신은 우리가 분명 본받을 부분이다. 아무튼 일본을 지배하였던 역사적 사건들이 많은 부분 생소하니 그만큼 일본을 모른다는 반증아니겠는가?      


일본 문화의 시작

1장 죠몬 시대에서 야요이 시대로

문명이 싹트고 국가가 탄생하다


일본열도에 인류의 흔적 50~60만년전: 현재 일본에서 이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석기가 발견

=> 현대 일본인은 죠몬인과 야요이의 혼혈.

. 일본열도가 대륙과 연결된 시대에 한반도와 중국 대륙, 인도차이나, 대만, 연해주, 시베리아 등에서 이주해 피가 섞이면서 형성된 것이 일본인의 원형 죠몬인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에서 이주자가 다수 건너와 죠몬인을 변경으로 몰아내고 주류를 차지

. 1996년 국립유전학연구소에서 모계추적이 가능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연구결과: 일본인 유전자군의 65%가 야요이 시대 이후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건너왔다고 판정


죠몬시대 시작 1만3천년전~: 가장 오래된 토기의 연대. 약 1만년간 계속

일본열도 대륙에서 분리 1만년전: 이 시기 온난화로 일본열도는 대륙에서 분리되고 이후 독자적인 죠몬문화가 꽃핀다

=> 대규모 집단 취락이 출현하며 만기에 이르면 농사도구가 많이 출토되고 시체 매장 형태로 볼때 빈부 차이도 나타났음.

* 네이버 자료: 구석기 시대 이후 약 1만 2천 년 전부터 2천 3백 년 전에 이르는 1만 년 정도의 시대를 조몬 시대(신석기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의 특징으로는 마제 석기의 보급과 토기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조몬 토기(cord warked pottery)는 저온에서 구운 갈색의 토기로, 새끼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많다. 그 모양은 조몬 시대의 주된 탄수화물 공급원인 밤, 호두, 도토리, 상수리 열매 등의 나무 열매가 가진 떫은 맛을 제거하기 위한 심발형()이 많으며, 술 등을 따르는 주구() 토기도 조몬 시대 후기에 등장하였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수렵에 활과 화살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 조몬 시대의 수렵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화살 끝에는 독을 묻히기도 하고, 가벼운 석족()을 달기도 하였다. 또, 함정이나 덫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조몬 시대에는 구석기 시대의 대형 동물들은 사라지고 사슴, 멧돼지 등의 빠른 중형 동물이 수렵의 대상이 되었다. 개는 사냥 또는 가축으로도 이용되었다. 한편, 어로 생활용으로는 작살, 낚싯바늘, 그물 등의 도구가 발달하였다.


벼농사 문화의 전래 기원전 3세기~: 죠몬 말기에 벼농시 기술이 전래되어 일본전역에 전파

=> 야요이 시대에 벼농사가 급격히 보급된 것은 죠몬 시대부터 이미 식물이 재배되었기 때문

벼농사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정착했으며 토지와 수확물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되었고, 빈부 차이가 생겨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었고 각지에 작은 국가가 생겨났음. 지금까지의 사회구조는 벼농사로 완전히 파괴.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사 야요이시대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연오랑 세오녀),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원전 5~4세기로 비정되는 조몬 시대 말엽,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 북부에서 돌연 수도작() 농경이 개시되었다. 단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기원전 3세기 초에는 서일본에 수도작을 기초로 하는 야요이() 문화가 성립되어 퍼져갔다. 이리하여 훗카이도와 남서제도를 제외한 일본열도의 대부분의 지역은 식량채취 단계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로 전환한다.

이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3세기에 걸친 시기를 야요이시대라 한다. 야요이문화는 수도작 농경을 기초로 하여, 철,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 등을 사용한 금속기, 목재를 벌채하여 가공하기 위한 돌도끼류, 벼이삭을 따는 용구인 돌칼 등의 대륙계 마제석기, 그리고 베짜기 기술 등을 포함한 새로운 문화다. 야요이라는 명칭은, 1884년 도쿄제국대학 근처 야요이의 패총에서 아라사카라는 학생이 둥그스름한 토기를 발견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 새로운 형태의 토기는 조몬 토기와는 달랐으므로, ‘주신구라’, ‘야요이식 토기’등의 명칭을 거쳐 ‘야요이 토기’로 불리게 되었다.

보존 가능한 식량으로 쌀이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야요이시대 혁명의 전주곡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상도 크게 변화했다. 규슈 후쿠오카 공항 서남단의 강을 따라 폭이 약 100m 정도의 대지가 있는데, 그 주변이 바로 일본열도 최초의 논농사 유적으로 유명한 이타즈케 유적이다. 논농사 초기부터 고도의 관개, 배수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의 결집이 요구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사회생활이 영위되는 것이다. 농경을 통해 잉여식량을 비축하는 자는 사람들을 부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은 수도작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여전히 나무열매 채취와 수렵, 어로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생계수단이었다.

벼농사의 시작은 곧 집단과 집단간의 투쟁의 시작이었다. 토지분쟁이나 물분쟁이 빈번해졌으며, 이웃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을 빼앗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기도 했다. 수렵도구가 아닌 무기로서의 칼이 등장한 것도 바로 야요이시대이다.
죽은 자는 취락 부근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규슈 북부 등에서는 지상에 큰 돌을 얹은 지석묘와 특제 대형옹관에 주검을 묻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토광묘, 목관묘, 상자식 석관묘 등에 신전장()한 경우가 많다. 흙을 쌓아올린 묘가 두루 출현하는 것도 이 시대의 특징으로, 후기가 되면서 서일본을 중심으로 상당히 대규모의 분구()를 가진 묘가 축조된다. 또 규슈 북부의 옹관묘 중에는 30여 개가 되는 중국 거울과 청동제 무기 등을 부장한 것도 보인다. 이러한 대형 분구묘와 다량의 부장품을 가진 묘의 출현은, 집단 내부에서 신분의 차가 생기고, 각지에 강력한 지배자, 곧 수장()이 출현했음을 말해준다.

한편 수도작 농경과 금속기 생산 등의 여러 새로운 기술은 전부 중국과 한반도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특히 야요이시대를 결정짓는 수도작 농경기술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전해졌다는 것은 농경기술과 공존하는 각종 유물의 유사성만 보더라도 확실하다. 야요이 인의 정체 또한 마찬가지로 한반도계의 도래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골을 살펴보면 조몬 인 성인남자의 평균 신장이 150cm 정도인 것에 비해 야요이 인은 거의 10cm 정도가 더 크다. 얼굴 모양도 현재의 폴리네시아계처럼, 깊이 팬 조몬 인과는 달리 길고 기복이 적은 평면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바로 이점들이 민족의식과 관련하여 야요이시대가 가지는 딜레마다. 즉, ‘옛날부터 일본은 외국에서 문물을 배우지 않으면 진보하지 않는 나라였나’라는 의문이 보통의 일본인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한반도와 대륙을 향한 지배 야욕이 좌절당한 1945년 이후에도 이 의문은 상식적인 민족적 자부심과 결부되어 여전히 남아 있다.

연구의 진전에 따라 야요이문화는 다음의 세 요소가 합쳐진 문화로 설명된다. 수도작과 청동기, 철기에 관한 기술과 같이 대륙에서 전래된 요소, 토기와 타제석기처럼 조몬 문화로부터의 전통으로서의 승계된 요소, 동택, 무기형 제기, 타제 돌창과 같이 야요이 고유의 문화로 발전한 요소 등의 세 가지이다. 이에 다라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야요이문화는 이미 금속기와 농경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한반도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지니고 일본열도에 오게 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토착 조몬 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판 야마카와 출판사 <상설 일본사>).




왜, 소국으로 분립 기원전후: 한서지리지 기록, 일본은 100여국으로 분리되어있고 정기적으로 한의 낙랑군에 사신 파견

왜의 노국왕, 후한에 사신 파견 57년: 후한서 동이전 기록, 노국왕의 사신이 후한 낙양을 방문, 광무제에게 인수를 받음

왜의 국왕 스이쇼 후한에 사신파견 107년: 동이전 기록, 스이쇼가 후한에 노예 160명 바쳤다

왜에 대란이 일어나다 147년: 동이전 기록, 소국간의 다툼이 격화되어 전국적인 동란 상태에 빠졌다

=> 위지 왜인전 기록: 야요이인의 생활과 풍속에 대하여 일본 남자는 모두 문신을 하고 머리를 묶어 천으로 감쌌으며 폭이 넓은 천을 교모히 몸에 감아 옷으로 삼았다. ~~~~ 성격에 대하여 권력자에게 순종하고 도둑질하거나 다투지 않았으며 여성을 범하는 사건도 적어 치안은 안정된 편이었다.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 위에 사신 파견 239년: 왜의 대란에서 살아남아 30여국을 지배하는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가 위에 사신을 파견하고 다수의 구리거울은 물론 친위왜왕의 칭호를 얻는다.

=> 야마타이국의 소재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규슈 혹은 야마토?


왜의 여왕 이요, 진에 사신 파견 266년: 히미코 사후 야마타이국은 혼란에 빠지나 여왕 이요가 황위에 오른 후 안정을 찾는다. 이요는 진에 사신을 파견





율령국가의 탄생

2장 야마토 정권에서 나라, 헤이안 시대로

통일국가의 등장과 권력투쟁


야마토 정권, 일본 통일 4세기: 기나이의 호족연합정권인 야먀토 정권이 일본 통일

쇼토쿠 태자, 셋쇼가 되다 593년: 쇼토쿠 태자가 스이코 천황의 셋쇼가 되어 소가씨를 견제하고 천황중심의 중앙집권화를 추진

다이카 개신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 등이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하고 중앙집권국가를 수립. 改新의 조서를 공포. 나니와로 천도

헤이조쿄 천도 710년: 겐메이 천황, 후지와라쿄에서 나라의 헤이조쿄로 천도

간전영년사재법 743년: 조정은 공지공민제를 폐지하고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 장원제도의 시작

헤이안쿄 천도 794년: 간무 천황, 헤이조쿄에서 교토의 헤이안쿄로 천도

후지와라 마치나가, 태정대신에 임명 1017년: 솃칸정치의 전성기

시라카와 상황, 원정개시 1086년: 시라카와 상황은 아들 호리카와 천황에게 양위한 후에도 실권을 놓지 않고 원청을 개설하여 원정 시작

타이라노 키요모리, 타이라씨 정권 수립 1179년: 1178년, 손자인 닌토쿠를 황위에 앉혀 외척이 됨. 이해에 고시라카와 법황을 유폐하고 드디어 타이라씨 정권을 세움 



무사가 주도하는 시대

3장 가마쿠라 바쿠후 탄생에서 무로마치 시대로

무사가 주도하고 서민이 대두하다


이전 시대의 주인공이 공가나 귀족이라면 중세의 주역은 무사이다. 후기에 들어 농민과 상공업자 등 서민들이 힘이 확대되지만 무사의 힘 앞에 굴복하였고 좀 더 시간의 흐름을 기다려야했다.


왜구: 14세기 조선이나 중국의 해안을 배를 타고 약탈하는 일본인 해적

조선은 진압정챡과 회유정책을 동시에 폈으며, 투항에 응하면 의식주 제공하고 관직까지 하사하여 많은 왜구가 조선에 투항  


차: 9세기 중국에서 처음 수입 => 임제종 개조 본격적 보급(12세기) => 차노유의 성립(15~16세기) 차 + 선

=> 다도(17~18세기) 차노유 + 유교사상의 결합으로 예술의 경지인 다도로 발전 



일본의 통일과 태평시대

4장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 바쿠후로

전란시대에서 평화시대로


1500년대말에서 1900년대중반까지의 근세10대뉴스에 일본의 조선침략이 포함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사실의 언급조차없다. 오다 노부가라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권력 이동은 장황히 언급되지만.


오다 노부가라가 무력으로 일본통일에 접근 가능하였던 원인

=> 혁신성: 신병기 총포를 중시 + 합리주의: 신분에 관계없이 발탁 (히데요시: 농민출신) 


16세기 후반에 일본에 전래된 기독교는 몇 차례 금지되다가 메이지 시대에 비로소 허가, 300년고난의 길

=> 이런 금지는 조선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본에는 기독교가 약세인데 한국은 초강세인 이유가 뭘까?


공중변소에 관한 기독교 선교사의 언급: ㅂ로 가까이에 공중변소가 몇개 있으나 악취때문에 거의 참지 못했다

일본에는 분뇨를 퍼내는 사람들이 쌀과 돈을 지불했다는데 분뇨가 비료이기 때문, 당시 비료가 심각하게 부족


바쿠후가 힘을 유지한 방법: 다이묘를 통제하여 힘릏 약화시킴 + 농민 세력을 유지시켜 연공을 확보(토지매매 금지 등)


일본의 쇄국은 완전한 쇄국이 아니었고 국제교류를 활발히 추진

=> 네덜란드 음모론. 일본에 먼저 들어온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포교와 무역을 앞세웠지만 네덜란드는 포교의 위험을 바쿠후에 주입시켜 위기의식을 자극하였으며 오직 무역에 치중하여 215년간(1639-1853년) 독점적 지위 누림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바쿠후 시대: 1603~1867년 쇼군 15대


국학: 에도 중기에 등장한 국수주의적인 학문

일본의 고전과 고대사를 연구해 유교와 불교가 도입되기 전 일본인의 정신을 밝히고 일본 독자의 사상을 구명하고자 하는 학문

=> 이런 점에서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 그래서 일본에는 기독교가 세를 확보하지 못한 것일까? 


난학의 발전: 

네덜란드 의학 해부서를 4년에 걸쳐 해체신서라는 책으로 번역(1774년)되면서 일본의 의학기술이 급속 발전

=> 이런 실용적 노력들이 일본의 신속한 근대화에 기여했을 것 



<근대화하는 일본>

5장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급속한 근대화와 파멸 그리고 부흥으로


1853년 페리 내항: 페리의 강력한 요구로 바쿠후는 쇄국정책을 폐지 => 1854년 미일화친조약체결하여 개국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 천황의 칙허 얻지 않고 체결, 이를 계기로 존왕양이운동, 토막운동 발생

 =>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재판하지 못하고, 관세를 자유로이 결정하지 못하는 등 불리한 조항이 많았지만 1911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해소

=> 대외무역으로 일본 국내 물가 상승 (생사와 차를 모두 수출하면서 국내 품귀현상), 이는 바쿠후 붕괴를 앞당겼다고 평가

=> 개국에서 바쿠후 붕괴까지 15년

* 미국의 초대 주일총영사 해리스: 기독교인으로서 야만국인 일본을 기독교로 개화시키겠다는 개인적 종교적 사명감을 갖고있었는데, 실제 일본에와서 지내보니 오히려 지상낙원을 보았고 과연 이러한 조약과 개국이 적절한지 고민을 하였다함. 그가 본 일본사람들이 살집, 옷차림이 좋고, 행복해 보였으며 진실함 행복의 모습을 보았다고 함. 


1868년 메이지유신: 전년 바쿠후 붕괴, 중앙집권화

=> 특권을 박탈당한 무사들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정한론 추진 => 임진왜란 과 똑같은 패턴 

=> 국회 개설을 앞두고 정당 출현(1881년)


1889년 헌법공포: 근대국가의 체제


1894년 청일전쟁: 한반도 주도권 전쟁, 막대한 배상금과 조차지 획득

1904년 러일전쟁: 한반도 주도권 전쟁. 전쟁 승리했으나 배상금 얻지는 못하여 서민들이 방화곡격 사건 발생

=>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불안을 느껴 조선이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않도록 러시아의 요동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러시아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라고 교섭했으나 실패, 결국 러일 전쟁으로 연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영일동맹의 인연으로 3국협상 측에 가담하였고 독일에 선전포고, 결국 중국의 독일조차지인 칭다오와 독일렬 남양군도를 침략하였다. 이는 중국침략의 발판이 되었고, 이후 계속 중국을 자극 침략의 수위를 높여갔지만 열강은 전쟁중이라 중국은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1915년5월9일 중국은 일본의 요구를 수락하였으니 중국의 국치일이다. 일본은 전쟁 특수로 졸부가 되었고 전반적인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제국주의국, 선진국이 되었다.


1923년 간토대지진: 수도권 대지진 발생하여 고쿄 쉐멸상태

1931년 만주사변: 중국 동북부 침공하고 만주국 괴뢰정권 수립, 1937년 중일전쟁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는데 일본정부는 확대를 원하지 않았지만 군부는 만주국 괴뢰정부까지 만들어갔다. 기존의 정당들이 신뢰를 잃어가면서 군부가 득세를 하였고 국민의 지지를 받게된 결과이다. 1936년 군인들이 군사정부수립을 주장하며 대신들을 살해하였고 곧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중일전쟁을 발발시켰다. 이후 국제연맹 탈퇴, 대미전쟁 등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돌입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 경제봉쇄를 타파하기 위하여 미국과 무모한 전쟁, 1945년 무조건 항복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비군사화, 민주화 달성하고 국제사회 복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4년간 특수 호황을 누렸으며 1970년대 초까지 고도 경제성장을 계속하여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 1980년대 후반 일본은 거품경제에 따른 호경기를 누렸지만 1990년대에 불경기로 돌아선 후 20년 이상의 불경기를 지속. 


교보문고 책소개

2천 년 일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일본 역사의 전 시기를 112컷의 지도와 약도, 흐름도 등을 통해 흥미롭게 서술한 역사서이다. 일본사를 개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엄선하고 간략화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죠몬과 야오이 시대의 식생활 및 원시 신화, 야마토 정권에서 나라 ㆍ헤이안 시대로의 정치, 일본의 통일과정에서 근대화하는 일본의 모습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 : 카와이 아츠시            

목차

제1장 일본 문화의 시작 -죠몬(繩文)에서 야요이(彌生)시대로

-문명이 싹트고 국가가 탄생하다
-원시시대의 10대 뉴스

1. 일본인의 기원 : 일본인은 대륙에서 건너왔는가
2. 죠몬인의 생활 : 기나긴 죠몬 시대, 사람들은 정착하기 시작하다
3. 토우(土偶)의 용도 : 토우는 깨지기 위해 태어났다
4. 죠몬 시대의 식생활 : 호두에 돼지고기에 전갱이, 죠몬인은 미식가였다
5. 도구의 탄생 : 고대인이 사용한 도구의 변천
6. 농경의 발달 : 농경의 발달로 다툼이 시작하다
7. 야요이인의 생활 : 우아하고 안전한 야요이의 생활
8. 야마타이 국 논쟁 : 야마타이 국의 위치로 일본사가 바뀐다!
9. 일본의 신화 : 신화가 전해주는 또 하나의 원시 일본
10. 원시의 장례식 : 지역마다 다른 무덤의 형태

-COLLUM
1)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으로 바뀐 죠몬의 풍경
2)호류사는 죠몬 시대에 벌써 있었다?
3)이즈모에 정말로 대왕조가 있었을까?

제2장 율령국가의 탄생 -야마토 정권에서 나라(奈良), 헤이안(平安) 시대로

-통일국가의 등장과 권력투쟁의 시대
-고대의 10대 뉴스

1. 고분에 대하여 : 고분이 전해주는 시대의 변화
2. 고대의 문화 : 귀족적 불교문화에서 일본 독자적인 문화로
3. 불교 전래 : 불교가 중앙집권화를 촉진했다?
4. 쇼토쿠 태자의 진실 : 쇼토쿠 태자가 꿈꾸던 국가
5.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 다이카 개신이 시행된 이유
6. 율령격식이란 : 율령국가의 구조
7. 진신(壬申)의 난 : '진신의 난'은 나카노 오에 황자의 규칙 위반이 원인
8. 토지제도 1 : 토지 사유는 8세기가 되어서야
9. 토지제도 2 : 토지는 무사에서 농민의 것으로
10. 대 중국 외교의 변천 : 고대에 일본과 중국은 활발히 교류했다
11. <고사기>와 <일본서기> :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숨겨진 목적
12. 나라(奈良) 시대의 정치 : 나라 시대는 처절한 권력투쟁의 시대
13. 헤이안쿄 천도 : 간무 천황이 헤이안쿄로 수도를 옮긴 진짜 이유
14.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 귀족을 떨게 한 최초의 무사 반란
15. 셋쇼(攝政) 정치의 구조 :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번영한 비밀
16. 원정의 구조 : 원정은 무사가 지탱했다
17. 호겐의 난 : 불륜이 초래한 귀족 사회의 붕괴
18. 타이라씨 정권의 탄생 : 타이라씨 정권 탄생은 기요모리 출생에 비밀이 있었다
19. 겐페이(源平) 전쟁
20. 히라이즈미(平泉) 문화

-COLUMN
1)가장 오래된 문자는?
2)일본 독자의 승마법은 고분 시대에 뿌리가 있다
3)유형을 당할 뻔한 오노노 이모코의 대실책이란
4)일본에서는 모르는 간진 화상의 공적
5)후지와라쿄는 책을 보고 만든 대실패작?

제3장 무사가 주도하는 시대 -가마쿠라(鎌倉) 바쿠후의 탄생에서 모로마치(室町) 시대로

-무사가 주도하고 서민이 대두하다
-중세의 10대 뉴스

1. 가마쿠라 바쿠후 : 가마쿠라 바쿠후 탄생은 1192년이 아니다?
2. 가마쿠라 시대의 권력자 추이 : 권력은 미나모토씨로부터 싯켄(집권) 호죠씨에게
3. 중세 문화의 변천 : 공가(공가) 중심의 문화에서 무사의 히가시야마 문화로
4. 가마쿠라 6불교의 이해 1 : 염불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세 종파
5. 가마쿠라 6불교의 이해 2 : 일본의 '선'은 가마쿠라 시대에 개화했다!
6. 가마쿠라 시대의 건축 : 도다이사 재건에 사용된 새로운 건축양식
7. 가마쿠라 시대의 조각 : 조각의 황금기를 맞이하다
8. 죠쿠의 난 : 고토바 상황의 고집이 무사 정권을 확립시켰다
9. 고세바이시키모쿠(御성敗式目) : 무사에 의한 무사를 위한 법
10. 원구(元寇) : 일본이 처음 경험한 외세의 침략, '원구'
11. 겐무 정부의 성립 1 : 가마쿠라 바쿠후는 왜 무너졌는가
12. 겐무 정부의 성립 2 : 두 무장의 배반으로 멸망한 바쿠후
13. 겐무 신정(建武新政) : 겨우 2년만에 끝난 겐무 신정
14. 남북조 시대 : 남북조 동란은 왜 6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15. 무로마치 바쿠후의 15대 쇼군상 1 : 기타야마 문화를 낳은 아시카가 요시미츠
16. 무로마치 바쿠후의 15대 쇼군상 2 : 총명하고 검술이 뛰어났던 아시카가 요시테루
17. 간토의 지배 : 간토인의 바람 - 간사이로부터의 독립
18. 소손이란 무엇인가 : 잇키의 배경이 된 소손(홀촌)이라는 시스템
19. 잇키의 역사 : 서민의 저력을 드러낸 쓰치잇키
20. 왜구 : 왜구라 불리던 사람들의 정체
21. 중세의 도시 : 자유도시 '사카이(堺)'는 왜 번영했는가
22. 류큐(琉球)의 역사 : 일본에 편입된 독립국, '류큐'
23. 오닌(應仁)의 난 :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초래한 난
24. 차의 역사 : 차는 '투차(鬪茶)'로 보급되었다!
25. 군사(軍師)란 : 군사의 본업은?
26. 성(城)의 역사 : 성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COLUMN
1)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죽음에 얽힌 진기한 이야기들
2)무사의 전성기였던 중세라는 시대
3)싯켄 호죠 일가가 집단자살한 저택의 흔적
4)남북조 통일 후에도 교토로 돌아가지 않은 천황
5)다케다 신켄이 쓴 러브 레터의 상대는?

제4장 일본의 통일과 태평의 시대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江戶) 바쿠후로

-전국의 시대에서 기나긴 평화의 시대로
-근세의 10대 뉴스

1.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통일 :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간의 혁신성
2.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 : 히데요시가 단기간에 일본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3. 그리스도교가 걸어온 길 : 참고 또 참은 그리스도교의 300년 고난의 길
4. 세키가하라 전투 :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패는 '운'에 좌우되었다!?
5. 에도 바쿠후의 탄생 : 이에야스는 쇼군이 될 수 없었다?
6. 오사카 성의 겨울과 여름 전투 : 오사카 성의 여름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자살하려 했다
7. 에도 바쿠후의 통제정책 : 바쿠후의 힘을 유지하는 절묘한 통치방법
8. 쇄국의 역사: 쇄국 아닌 쇄국제도의 모호함
9. 근세의 4대 문화 : 문화의 담당자는 무사에서 죠닌으로
10. 에도 시대의 회화 : 수수께끼의 풍속화가 샤리쿠의 정체
11. 에도 시대의 문학 : 인기 작가도 글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
12. 에도 시대의 정치사 : 부침이 격심한 바쿠후의 재정


출판사 서평

작품 소개

사람들은 언제 역사책을 읽을까? 지금 일본 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와 스며들고 있다. 반면 우리가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인가? 이 책은 일본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일본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교과서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재미있게 써낸 대중적 일본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전체상을 한 권에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흥미롭고 간결하고 알기 쉽게 기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일본사를 개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엄선하고 간략화하여 2페이지 단위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내용을 정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112컷에 이르는 지도, 약도, 흐름도를 첨부했다. 한마디로 일본사의 간결하고 밍확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책이다. 또한 교과서라는 골방에 갇혀 버린 위대한 인물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에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점만을 추출하고, 그 주변의 에피소드나 일화를 곁들여 살아 있는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는 "흐름"으로 역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가 전달하지 못한 역사의 근저를 흐르고 있는 커다란 흐름을 끊기지 않도록 하여 일본의 역사를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두 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했고 에피소드나 일화를 곁들이고 그림을 넣어 역사의 흐름을 가능한 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륵 고려했다. 어디라도 마음에 드는 페이지부터 펼쳐 읽기 시작하면 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기순으로 서술했으므로 굳이 역사 서술 방식을 따진다면 편년체 서술방식이지만 이를 단순한 시기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분류한 기사본말체 방식을 취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편년체적 기사본말체 서술방식을 택해 전체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 했다. 이로써 일본사의 이미지를 단번에 뗘올리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카와이 아츠시(河合 敦) 1965년 도쿄에서 태어나, 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 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리츠(都立) 고교에서 일본사를 가르치고 있다. 1992년부터 '역사와 여행', '별책 역사독본' 등의 역사 잡지를 중심으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근대사 전공이지만 센고쿠(戰國) 시대, 바쿠마츠(幕末) 분야도 다루며, 잊혀진 인물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안다.제 17회 향토사 연구상 우수상, 제6회 NTT 토크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저서에 [일본사 인물사전], [일본사 인물 그 후의 이야기(상,하)], [일본인의 법칙], [도쿠가와 쇼군가 재미있는 의외 사실 99가지의 수수께끼] 등이 있다(전부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