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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 무섬마을 (2016.12.22)

클리오56 2016. 12. 24. 15:17

영주 소수서원 & 무섬마을 (2016.12.22)




경북 북부지방 2박3일 여행의 이틀째는 영주이고 부석사, 소수서원 그리고 무섬마을을 답사하였고

일기는 눈비를 예보하였지만 아침 식사때까진 눈발이 날렸고 실제 답사 도중에는 제법 비를 피하는 행운을 수반하였다.

부석사는 별도로 관광 100선에 기록을 남기고 여기는 소수서원과 무섬마을 답사만 기록하였다.


소수서원 입구에는 매표소가 있는데 마침 찾아오는 손님이 드문 때라 그런지 부재중이라

무료입장하는 작은 행운을 누렸는데 사실 여행 도중 이런 맛도 좀 있어야~~


서원의 입구부터 시원한 소나무 숲이 전개되는데 적송나무 수백그루가 서원 주변을 뒤덥고 있으며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이 소나무 숲을 학자수라고 부른다.

  


다음의 소수서원 설명은 네이버 지식의 한국 미의 재발견에서 편집 정리하였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3년(중종 38년)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설립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려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명종은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 )"는

뜻을 담은 '소수'로 결정하고 1550년(명종 5) 소수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서원 출입문인 사주문으로 통하는 길 왼쪽으로는 향사에 쓸 희생을 검사하는 성생단()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죽계수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이 있다.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이다.


경렴정 동쪽에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죽계 건너편에는 물가로 튀어나온 경자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경'자는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쓴 글씨이다.

'경'은 성리학에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으로, 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

퇴계는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 이곳에 송백과 죽을 심어 취한대()라고 이름짓고,

또 '경'자 위에 '백운동' 석 자를 써서 음각하고 이곳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소수서원에는 사당인 문성공묘(), 강당인 명륜당(), 교수의 숙소인 일신재()·직방재(),

유생들이 공부하며 기거한 학구재()·지락재()를 비롯하여 서책을 보관하던 장서각(),

제수를 차리던 전사청() 등이 있고, 최근에 세워진 건물로 유물관, 충효사료관 등이 있다.


소수서원에서 죽계교를 건너면 선비촌인데 영주가 유교문화 발상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선비촌은 소수박물관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과도 연결되지만

시간 제약상 선비촌만 가볍게 지나면서 잠깐 구경하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은 무섬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만 머물렀는데 동짓날 전후라 해가 짧아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시골 좁은 도로를 어두운 밤에 운전한다는게 아무리 네비가 있다하더라도 익숙하기엔 무리였다.


내성천과 모래밭 위를 S자 굴곡을 그리며 놓여진 좁은 폭의 나무다리가 아주 이색적이며

겨울이라 수량이 줄었겠지만 호기심 넘친다지만 그래도 조마조마한 마음은 숨길수 없었고

바람 부는 날 위를 걷는 이는 오직 홀로라 다리위를 걷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뿐만 아니라 마을의 고택이 밀집하여 아주 오픈된 상태에서 외부에 보여주므로

골목골목 천천히 다니며 옛가옥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무섬마을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정리해 보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로 불리는데 

마을 주변을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휘돌아 흐르는 대표적인 물동이마을이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남(潘南) 박씨인 휘(諱) 수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선성(宣城)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으며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마을 내 고택과 정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고풍스런 옛 향취를 풍기고,

30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 외나무다리가 마을의 대표 상징물로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소수서원 입구

숙수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 59호)

죽계천 건너 취한대

백운동 경자 바위

학자수림 솔밭



은행나무 보호수

경렴정


성생단 & 지도문

강학당 (보물 1403호)


문성공묘 (보물 1402호)

관세대 & 정료대


직방재 & 일신재

일영대

영정각


학구재 & 지락재

숙수사지 출토유물

탁청지

죽계교 (선비촌 입구)

선비촌

우금촌 두암고택 (1590년)



무섬마을

제방에서 바라 본 마을

내성천 외나무 다리







청퇴정




영주제일교회


눈 내리는 아침: 연화정 아침 식사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