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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2023.7.10)

클리오56 2023. 7. 23. 15:30

 

1967년 저술,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고상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도 결국 동물의 하나이고 왔다가는 존재이다. one of them이라는 것. 왜 인간은 털을 벗어버렸을까에서 출발, 인간의 업적에 경이를 표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털없는 원숭이를 읽게 된 출발은 정박님이 주도하는 유튜버 '일당백'이었고, '다석 아카데미'의 서론 정리, 그리고 유튜버 'ONE STAR'에게서 전체를 잘 정리된 요약을 참고할 수 있었다. 이 세 코너에 깊은 감사드린다. 항상 이런 분들의 노고를 바탕해야만 미약한 나로서는 이 어려운 책들에 도전할 수 있었다.

 

저자 모리스는 미술에도 해박한데 동물학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 그림을 맡기도 했으며 개인전을 60회나 열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와 사피엔스를 읽고 감동한 독자라면 그 원조인 이 책 '털없는 원숭이'를 읽어야 한다고 최재천 박사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다. 

 

나는 동물학자이고, 털 없는 원숭이는 동물이다. 따라서 털 없는 원숭이는 내 글감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그의 행동양식이 약간 복잡하고 인상적이라 해서, 그를 연구대상으로 다루는 것을 더 이상 회피하지는 않겠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주 박식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털 없는 원숭이이고, 숭고한 본능를 새로 얻었다지만 옛날부터 갖고 있던 세속적인 본능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를 당황하게 할 때가 많지만, 오래된 충동은 수백만년 동안 그와 함께 존재해왔고 새로운 충동은 기껏해야 수천년 전에 획득했을 뿐이다. 수백만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발생론적 유산을 단번에 벗어던질 가망은 전혀 없다. 

 

초기 인류학자들은 우리의 본성을 해명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엉뚱한 곳만 찾아다녔다.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던 그들은 미개한 부족들의 괴상한 짝짓기 관습과 이상한 친족제도 또는 기괴한 의식 절차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모아서 문명 세계로 돌아왔다. ... 하지만 털 없는 원숭이의 전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정상적이고 성공적인 개체들 즉 절대다수를 대표하는 표본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행동 양식을 조사해야만 알 수 있다. 진보하지 못한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는 쇠퇴하여 더 나빠졌다. 초기 인류학자들이 그런 부족들에게서 발견한 특징은, 그 부족 집단의 진보를 방해한 바로 그 특징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와 정신분석학자들이 이론의 근거로 삼은 사람들은 主流에 속해 있지만, 정상에서 벗어난 변종이거나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한 표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연구는 우리의 행동 양식이 어떤 식으로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기본적으로 지닌 생물학적 본성을 논할 때, 초기 인류학과 정신의학의 연구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 된다.(표본이 정상에서 벗어난 병자들이기 때문)

 

따라서 주요 출처로 사용하는 정보는
 
ⓛ 고생물학자들이 발굴한 우리의 과거 정보, 즉 화석과 유물, 
② 비교행동학자들의 동물 행동연구에서 얻은 정보, 특히 원숭이와 유인원을 관찰한 결과에 바탕한 정보, 
③ 중요 문명권의 성공적인 표본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양식을 관찰한 정보

=> 
짝짓기, 아이 기르기, 탐험, 싸움, 먹기, 몸손질 

=>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부닥쳤을 때, 털없는 원숭이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의 반응은 다른 원숭이나 유인원의 반응과 얼마나 비슷한가?
털 없는 원숭이는 어떤 점에서 독특하고,
그 독특함은 털 없는 원숭이가 걸어온 특별한 진화의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제1장. 기원

털 없는 원숭이는 단순한 관찰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묘사적인 호칭이며, 주제넘은 가정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균형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4237종의 포유류 가운데 털가죽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은 거의 없다. 체온이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면, 신체 조직은 언제나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은 함부로 훼손하거나 가볍게 포기할 수 있는 부가적 기능이 아니다. 따라서 털이 없어져야 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강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털 없는 원숭이가 속해 있는 영장류는 원래 원시적인 식충류에서 생겨났다. 초기의 포유류는 8000만 년에서 5000만 년 전 파충류 시대가 무너진 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영토로 과감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곤충만 먹던 식충류는 먹이의 범위를 넓히면서 과일과 견과류, 딸기류, 식물의 싹과 나뭇잎을 소화하는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나갔다. 이들이 가장 열등한 형태의 영장류로 진화하자, 눈이 얼굴 앞쪽으로 모이면서 시력이 좋아졌고, 두 손은 먹이를 잡는 도구로 발전했다. 3차원적인 시야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팔다리를 갖게 된 영장류는, 두뇌도 서서히 커지면서 차츰 숲속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3500만 년에서 2500만 년 전 영장류는 어느덧 진짜 원숭이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몸의 균형을 잡는 기다란 꼬리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몸의 크기도 상당히 커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는 몸이 더 커지고 무거워졌다. 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대신, 두 손으로 번갈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자 꼬리는 쓸모가 없어졌다. 그러나 이 유인원 단계에서도,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안락하고 먹이를 쉽게구할 수 있는 숲은 그들에게는 에덴동산이었다. (...) 원숭이는 구대륙과 신대륙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했지만, 신대륙의 영장류는 결코 유인원 등급으로 올라가지 못한 반면 구대륙에서는 조상 유인원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삼림지대로 퍼졌다. 

 

그러나 기후가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약 1500만 년 전부터 그들의 본거지인 숲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비좁아지는 숲속을 고수하든가 아니면 에덴동산을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침팬지와 고릴라, 긴팔원숭이, 오랑우탄의 조상들은 숲속에 남았고, 그때부터 그들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 이외에 살아남은 유일한 유인원 - 털 없는 원숭이 - 의 조상들은 숲을 떠나, 이미 오래전 부터 땅 위에서의 삶에 효율적으로 적응한 동물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성공적인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모험은 탐스런운 열매를 맺었다.

 

그들의 앞날은 암담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들판에서 생존해온 육식동물들보다 더 뛰어난 육식동물이 되거나 아니면 초식동물보다 더 뛰어난 초식동물이 되어야 했다. ... 사냥감을 잡는 솜씨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욱 똑바로 서게 되었고, 그 결과 더 빨리 더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해방된 손에 무기를 든 그들은 강하고 효율적인 무기 사용자가 되었다. 그들의 두뇌는 한층 더 복잡해졌고, 그 결과 더 영리한 결정을 보다 신속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차례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사냥하는 유인원, 동물을 죽이는 유인원이 형성되고 있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타고난 무기 대신 인공 무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채택했고 그것은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단계는 연장[도구]을 사용하는 동물에서 연장을 만드는 동물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발전과 더불어 무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이라는 측면에서도 사냥 기술이 향상되었다. 집단끼리 의사소통하고 협동하는 문제에도 머리를 쓸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복잡한 작전이 개발되었고, 그에 따라 두뇌도 계속 발달했다. 

 

그리고 수컷이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수 있는 곳, 암컷과 새끼들이 기다리고 먹이를 분배할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필요해졌다. 그들은 불⋅식량 창고⋅피난처 등 가정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숲속의 원숭이는 땅위로 내려와 지상 원숭이가 되었고, 지상 원숭이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었으며, 사냥하는 원숭이는 영역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고, 이 원숭이는 다시 문화적 원숭이가 되었다.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고기를 먹는 영장류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원숭이와 유인원 가운데 (곤충을 제외하고) 고기를 먹는 종(種)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초식동물에서 육식동물로 바뀌었지만, 판다는 육식동물에서 초식동물로 바뀌었다. 이런 식의 중대한 변화는 이중성을 가진 동물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완전히 새로운 동물 형태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백만 년의 세월이 걸리고, 따라서 초기의 형태는 기묘한 혼합형인 경우가 많다. 

 

육식동물의 세계 한쪽에 들개와 늑대 같은 갯과 동물이 있다면, 반대쪽에는 사자와 호랑이와 표범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 자리 잡고 있다. 고양잇과 동물은 번개처럼 빠른 단거리 선수들이고, 갯과 동물은 놀라운 지구력을 가진 장거리 선수들이다. 그들의 소화기관은 한꺼번에 배가 터지도록 포식한 다음 비교적 오랫동안 굶어도 견딜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다. 그들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냥감을 죽이는 치명적인 무기를 개발하는 한편, 자기와 같은 종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원칙도 개발했다. 종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 

 

육식동물과는 달리 원숭이와 유인원은 줄곧 먹어댄다. 말하자면 쉴 새 없이 군것질한다. 대개는 음식을 저장해두지 않는다. (...)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육식동물은 벼룩이 있지만, 영장류는 벼룩이 없다는 것이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이를 비롯한 외부의 기생충 때문에 시달림을 받지만, 벼룩은 전혀 없다. 벼룩은 숙주의 몸 위에 알을 낳지 않고, 숙주가 잠자는 곳의 유기 퇴적물에다 알을 낳는다. 따라서 벼룩은 전형적인 육식동물처럼 일정한 주거지가 있는 동물에게만 붙어살 수 있는 기생충이다. 

털 없는 원숭이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초식성과 새로 획득한 육식성을 혼합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 그 결과 
털 없는 원숭이는 정확히 어떤 종류의 동물이 되었는가? 

억센 근육이 아니라 두뇌로 전투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에, 털 없는 원숭이는 지능을 높이기 위해 극적인 진화를 거쳐야 했다. 이 단계에서 일어난 일은 약간 기묘하다. 사냥하는 원숭이가 어린애 같은 원숭이로 진화한 것이다. 진화 과정에서 이런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것은 유아기의 어떤 특성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대로 계속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서, 전문용어로는 유태보존(幼態保存)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유명한 사례는 도롱뇽의 일종인 아홀로틀이다.  갓 태어난 원숭이 두뇌의 크기는 다 자란 원숭이 두뇌의 70%에 이른다. 나머지 30%는 태어난 지 12개월 만에 완료된다. 반면에 갓 태어난 인간의 두뇌 크기는 성인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태어난 지 6년동안은 급속한 성장이 계속되고, 23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성장 과정이 완전히 끝난다. => 머리 축이 몸통 축과 직각을 이루도록 성장하면서 뇌 크기도 함께 성장(유태보존)

인간의 다양한 자질들이 발달한 속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생식기관은 저만치 앞서서 달려갔지만, 두뇌 성장은 뒤에 처져서 꾸물거렸다. 다른 신체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체 기관 중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의 성장은 느려진다. 그 결과, 조상들이 고안해낸 특별한 기술을 흉내 내고 배울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오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것은 어떤 동물도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혜택이었다. 

 

사냥하는 원숭이 수컷은 암컷과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 집으로 식량을 날라야 했다. 이런 종류의 행동은 새로운 발전이었을 게 분명하다. 영장류의 경우 사실상 암컷 혼자서 새끼를 돌보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새끼가 어미에게 의존하는 기간이 너무 길 뿐만 아니라 어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암컷은 거의 영원히 주거지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 점에서 사냥하는 원숭이의 새로운 생활방식은 전형적인 순수한 육식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문제를 일으켰다. 사냥하는 원숭이의 사냥 집단은 (육식동물과는 달리) 모두 수컷들로 이루어져야 했다. 해결책은 (많은 동물 집단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지만, 영장류 세계에서는 매우 드문) 한 쌍의 암수 관계, 즉 ‘결혼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었다. 암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사이의 심각한 경쟁이 줄어들었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그들 협동 관계에도 도움이 되었다. 함께 힘을 합쳐 사냥을 성공시키려면, 강한 수컷뿐만 아니라 약한 수컷도 모두 제 몫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새끼에게도 이로웠다. 안전하게 키우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응집력 있는 가족관계가 필요했다. 이리하여 암컷은 수컷이 먹여 살려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어미로서 새끼를 보살피는 의무에 전념할 수 있었다. 수컷은 암컷의 정절(貞節)을 확신하고 마음껏 사냥하러 갈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이상적(理想的)인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이 해결책을 채택하려면 영장류로서의 사회적 행동 및 성적 행동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변화의 필요성이 결국엔 유전학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고상한 일이라 해도, 잘 살펴보면 그 밑바닥에는 영장류의 행동 양식이 깔려 있다.

사냥하는 원숭이와 육식동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신체 조건이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사냥감을 쫓아 번개처럼 질주할 수도 없었고, 오랫동안 끈질긴 추격을 벌일 수 있는 지구력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도 생존을 위해서는 그런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 노력은 신체에 큰 부담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체온은 상당히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과열 상태를 줄여야 할 필요성은 절박했고, 아무리 사소한 개선이라도 바람직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상당한 희생을 의미한다고 해도, 그의 생존은 바로 거기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털을 갖고 있던 사냥하는 원숭이가 털 없는 원숭이로 바뀌는 데 작용한 커다란 요인이다. 유태보존이 그 과정을 도와주었고, 앞에서 언급한 부차적인 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두꺼운 털 코트를 벗어 던지고 땀구멍의 수를 늘림으로써 팔다리와 몸을 증발하는 액체의 막으로 뒤덮었다. 물론 날씨가 너무 뜨거우면 노출된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적당히 더운 환경에서는 이런 방법이 바람직하다. 피하 지방층이 발달한 것은 털을 벗은 효과를 없애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피하지방층은 체온이 너무 뜨거워졌을 때는 땀의 증발을 방해하지 않지만, 추울 때는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모델은 다른 것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진보가 유전학적 진보보다 앞서간다는 사실에서 비롯할 것이다.

제2장. 짝짓기

영장류로서 지닌 본능나중에 채택한 육식동물의 특성은 털 없는 원숭이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그리고 정교한 문명사회의 제도는 그들을 또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인류의 성적(性的) 행동은 세 가지 독특한 단계를 거친다. 짝짓기 단계와 성관계 이전 단계 그리고 성관계 단계가 그것이다. 짝짓기 단계는 흔히 ‘구애(求愛)’라고 부르며, 동물의 기준으로 보면 놀랄 만큼 길어서 몇 주일 또는 몇 달씩 걸리는 경우도 많다. 짝짓기 단계는 대부분 공공연히 이루어질 수 있지만, 성관계 이전 단계로 접어들면 남의 눈길이 없는 은밀한 곳을 찾게 된다. 성관계 이전 단계에서는 몸과 몸의 접촉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접촉 시간도 길어진다. 청각 신호와 시각 신호는 점점 중요성이 줄어들고 그 대신 촉각 신호가 점점 더 잦아진다. 이런 행동은 성관계 이전 단계에서 상대에게 주는 성적 자극이며, 성관계가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생리적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영장류의 암컷은 성관계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지만, 털 없는 원숭이 암컷은 유별나다. 맥박은 1분에 70~80이 정상이지만, 성적 흥분의 초기 단계에서는 90~100이 되고, 격렬한 흥분이 계속될 때에는 130까지 올라가며, 오르가슴을 경험할 때에는 약 150으로 최고조에 이른다. 혈압은 약 120에서 올라가기 시작하여, 절정에 도달한 순간에는 200~250까지 치솟기도 한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절정에 도달한 직후에 땀을 많이 흘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상은 성행위에 육체적 노력을 많이 들였든 적게 들였든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땀을 흘리는 현상이 전체적인 체력 소모와는 관계가 없다 해도, 오르가슴 자체의 강도와는 관계를 갖는다. 

 

 인간의 성행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을 포함한 어떤 영장류보다도 훨씬 격렬하다. 원숭이나 유인원 가운데 한 쌍의 암수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를 맺는 경우도 거의 없다. 성관계 자체도 비비원숭이의 경우 7~8초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짧다. 원숭이나 유인원 암컷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인간 여자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발정기는 대개 한 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것도 하등 포유류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하등 포유류의 경우에는 배란기에만 발정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분명히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性的)인 동물이다. 털 없는 원숭이는 첫째 생존하기 위해서 사냥해야 했다. 둘째 사냥꾼으로서는 열등한 몸을 보완하기 위해 더 우수한 두뇌를 가져야만 했다. 셋째 두뇌를 더 크게 키우고 더 많은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을 더 연장해야만 했다. 넷째 암컷은 수컷이 사냥하러 나가 있는 동안 집에 남아서 새끼를 키워야 했다. 다섯째 수컷들은 사냥할 때 서로 협력해야만 했다. 여섯째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똑바로 서서 손에 무기를 들어야 했다.

=> 털 없는 원숭이는 한 명의 상대에게만 성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개발했다. 이런 식으로 진화하도록 자극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는 어린 시절이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오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기회를 얻었다. 성숙해서 독립하는 동시에 부모와의 이런 유대를 잃어버리는 것은 관계의 공백 상태를 초래한다. 이 공백은 다른 것으로 메워져야만 했다. 

=> 일단 사랑에 빠진 뒤에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암수의 성행위를 좀 더 복잡하고 더욱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섹스를 더욱 섹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동안 여자가 성행위를 하지 못한다면 큰 재난일 것이다. 인간이 성관계를 많이 하는 것은 자녀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자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여자는 임신했을 때도 여전히 남자에게 반응을 보인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귓불과 코와 마찬가지로, 입술도 다른 영장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신체 기관이다. 물론 영장류도 모두 입술을 갖고 있지만 우리처럼 뒤집혀 있지는 않다. 노출된 점액질 입술은 윤곽이 뚜렷하고, 주위 피부와 뒤섞이지 않으면서 고정된 경계선을 만든다. 그리하여 입술은 일종의 광고 효과를 갖는다. 

 

다른 영장류 암컷들은 인간 여성의 것처럼 윤곽이 뚜렷한 반구형의 유방은 갖고 있지 않다. 특유의 모양을 가진 불룩한 유방으로 진화한 것은 성적 신호의 또 다른 본보기인 것 같다. 암컷이 털가죽을 입고 있다면 제아무리 불룩한 유방을 갖고 있어도 신호 장치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겠지만, 털이 없다면 뚜렷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모든 영장류의 전형적인 교미 자세는 수컷이 뒤쪽에서 암컷을 올라타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주로 마주 보는 자세에서 이루어진다. 성행위가 마주 보는 자세로 이루어지면, 성관계 이전 단계에서 느끼던 흥분을 성관계 단계까지 이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여자는 진화를 통해 앞부분을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 남자의 관심을 앞으로 돌리는 게 이득이다. 이런 이유로 맨드릴과 겔라다에게 일어난 자기 모방이 인간 여자에게도 일어났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바로 유방과 입술이 반구형의 엉덩이와 생식기를 자기 모방한 신체 기관이다.

지극히 성적인 영장류로 진화한 털 없는 원숭이에게는 성욕을 억제하는 조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한쪽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이것을 ‘풍선효과’Balloon effect라고 합니다) 가슴을 가리려는 의도였던 브래지어가 도리어 가슴의 윤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키와 아름다움을 위해 신는 하이힐이 정상적인 걸음걸이를 왜곡함으로써, 걸을 때 엉덩이가 더 많이 흔들리게 한다. 오히려 입술의 성적 신호와 체취 신호를 강화하기 위해 립스틱과 화장품과 향수를 널리 사용한다. (...) 차라리 솔직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훨씬 쉽겠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방을 냉각시켜놓고 그 안에서 불을 피우는가?

 

제3장. 기르기

여자의 유방이 수유보다는 오히려 성적인 기능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가장 효율적인 유방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는, 우유병에 달린 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유병은 훨씬 더 길고 여자의 유방처럼 크고 둥근 반구형으로 부풀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기의 입과 코에 어려움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우유병은 인간보다는 오히려 유인원 암컷의 유방과 훨씬 더 비슷하다. 

 

어머니가 아기를 껴안는 자세는 상당히 암시적이다.... 심장이 어머니의 몸 왼쪽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기가 어머니의 몸속에 있을 때 심장의 박동 소리에 각인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태어난 뒤에 이 귀에 익은 소리를 다시 듣는 것은 진정제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실험 결과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 모든 연령층의 건강한 남녀가 잠드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약 20분이다.

 

15개월이 되면 마침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걸을 수 있는 위대한 순간이 온다. 혼자 걷기 시작할 무렵, 최초의 말을 입 밖에 내기 시작한다. 2세가 되면 보통 아이는 거의 300개 단어를 말할 수 있다. 3세가 되면 약 3배인 900개로 늘어난다. ... 말이야말로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이다. 협동활동인 사냥을 하려면 보다 정확하고 유익한 의사전달 수단이 꼭 필요했고, 말은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성과 관련되어 있다. ... 침팬지에게 6년을 힘겨운 훈련을 시켜도 전체 어휘 수는 일곱을 넘지 못한다. 이는 목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두뇌의 문제다. 앵무새 등 여러 새가 문장을 술술 지껄일 수 있지만, 이는 정해진 순서대로 문장을 술술 지껄일 수 있을 뿐. 

 

미소와 웃음은 우리 인간만이 지닌 독특하고 특수한 신호이지만, 울음은 수천 종의 동물이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특수한 신호인 ‘웃음’과 ‘미소’가 ‘울음’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울음과 웃음이 얼마나 비슷한 반응 유형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은 마치 우는 아이의 기다란 울부짖음이 토막토막 잘리는 동시에 더 부드러워지고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우는 반응은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하지만 웃음은 아기가 어머니를 알아보는 때인 서너 달 후부터 나타난다. 아기는 어머니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부터 웃음을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낯선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어 낯선 사람을 보면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절반은 울고, 절반은 어머니를 알아보고 목을 꼬르륵거리는 것이다. 이 마술적인 결합이 바로 ‘웃음’을 낳는다. 그 후 이 결합이 완전히 고정되어, 별개의 독자적인 반응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웃음은 “나는 이 위험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라는 뜻이고, 아기들이 최초의 웃음을 터뜨리는 원인은 까꿍 놀이, 손뼉치기, 박자에
맞춰 아기를 들어 올렸다가 무릎 위로 떨어뜨리기,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기 같은 놀이이다. 이것들은 모두 아기를 놀라게 하는 자극이지만, 안전한 보호자가 주는 자극이다. 

 

웃음이 울음의 부차적인 형태이듯, 미소는 웃음의 부차적인 형태이다. 모든 사회적 접촉은 아무리 우호적인 상황에서도 가벼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웃음이 강도 높게 발전하면, 그것은 언제든지 “너를 더욱 놀라게 해주겠다”는 신호, 즉 위험과 안전이 공존하는 상황을 더욱 철저히 이용하겠다는 신호가 된다. 반면에 강도가 낮은 웃음인 미소가 활짝 웃는 표정으로 발전하면, 그것은 상황이 그런 식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거라는 신호이다. 미소는 우리 인간이 인사할 때만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신호가 되었다.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 것은 그들이 둘 다 약간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매력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다. 

 

침팬지 새끼도 우리처럼 관심을 끌기 위해 비명을 지른다. 그러면 어미는 달려가서 새끼를 안아 올린다. 새끼는 당장 어미에게 매달린다. 우리도 이때 어머니에게 매달려야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붙잡을 털이 없다. 그 대용품은 우리를 안아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 우리 곁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나게 할 만한 신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소’이다. 

 


상벌제도는 아기의 시행착오 학습을 차츰 수정하고 조정한다. 그러나 아기는 ‘학습’ 이외에 ‘모방’을 통해서도 빠른 속도로 배워나간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하는 일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를 모방하여 배운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모방하면서 우리 몸에 깊이 배어든 그리고 오래전에 잊힌 인상에 복종하고 있을 뿐이다. 순수하고 객관적인 지
성(知性)에 바탕을 둔 자극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생각에 맞닥뜨려도, 사회는 (개인처럼) 여전히 옛날의 습관과 편견을 고수할 것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발견한 귀중한 것들과 더불어 조상들의 편견도 함께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4장. 모험심

모험심은 주로 동물들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분기(分岐)해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생존 기술을 완성하는 데만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면, 주위 세계의 복잡성에는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개미핥기에게는 개미만 있으면 되고, 코알라에게는 유칼립투스의 잎만 있으면 충분하다. 반면에 동물 세계의 비전문가들은 한시도 느긋하게 쉴 여유가 없다. 그들은 항상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구석구석을 모조리 알아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우연히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눈을 반짝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먹이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기회주의적인 포유류가 생겨났을까? 대답은 간단하
다. 개미핥기나 코알라 같은 전문가의 생활 방식에는 심각한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크게 변화해서 유칼립투스 나무숲이 사라지면 코알라도 사라질 것이다. (2019년 9월부터 수개월 간 지속된 호주 산불 피해 현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에게서 과일과 견과류를 빼앗으면, 원숭이는 나무뿌리와 새싹을 먹을 것이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비전문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특히 유형성숙의 결과인 털 없는 원숭이의 호기심은, 나이가 들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이런 네오필리아neophilia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다른 영장류들의 네오포비아neophobia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다 3세 후반쯤 되면 시각예술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혼란스러운 끼적거림을 단순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극적인 혼돈 속에서 기본적인 도형들을 추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침팬지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점을 찍는 단계인 정상에 도달하면, 몸은 계속 성장하지만 그림은 성장하지 못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바깥 세계의 정확한 모습을 종이에 담아서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 도달하면 이 활동이 본래 갖고 있던 탐험적이고 놀이적인 성격은 그림을 통한 의사 전달이라는 요구 밑으로 가라앉는다. 침팬지와 어린이가 초기에 그린 그림은 의사 전달과는 아무 관계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바로 보상이었고, 놀이를 위한 놀이였다. 고등 포유류와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탐험 행위가 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별개의 충동으로 발전했다. 탐험의 기능은 주위 세계에 대한 미묘하고 복잡한 인식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주위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순수한 탐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는 사실상 예술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탐험 자체를 위한 탐험에 관심을 둔다. 연구 결과가 실용적인 특수한 목적에 유용하게 쓰이면 더욱 좋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지나치게 내향적인 사람은 주위 환경에서 심한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몇 가지 행동에만 집착해 거기에 익숙해짐으로써 위안과 자신감을 얻으려고 애쓴다. 그에게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이 “모험을 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없다”로 바뀐다. 틀에 박힌 행동은 되풀이되면 될수록 어머니의 심장박동과 비슷해진다. 그것이 주는 친밀감은 점점 늘어나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사람도 이따금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 그런 행동은 대개 긴장된 상황에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다. 긴장되거나 조마조마할 때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거나 북을 치듯 손바닥으로 박자를 맞춘다. 손가락으로 핸드백을 쥐었다 폈다 한다. 몸을 좌우로 흔든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판에 박힌 행동은 몹시 따분한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의 원인은 지루함일 수도 있지만, 긴장일 수도 있다.

제5장. 싸움

동물들이 싸울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또는 자기 영역에 대한 텃세권을 확립하기 위해 싸운다. .... 또한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이 길어진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기 주장을 요구했다. 상당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한쌍의 남녀가 짝을 이루는 가족제도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고, 남자는 이제 가장으로써 전체 개체군의 기지 안에 있는 자신의 집을 제각기 방어하게 되었다. => 세가지의 기본적인 공격 형태  

 

자극을 받아 공격적으로 되면, 신체조직은 두 가지 자율신경계의 도움을 받아 언제라도 행동할 태세를 갖춘다. 교감신경계sympathetic는 격렬한 활동에 대비해 몸을 조율하는 반면, 부교감신경계parasympathetic는 자제심과 정상상태를 유지하는 일을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몸이 이 두 가지 목소리를 듣고, 둘 사이에서 알맞은 균형을 유지한다. 

 

전이(轉移) 활동이라는 행동 양식에서 생겨나는 중요한 특수 신호가 있다. 공격하려는 충동과 달아나려는 충동 사이에서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 동물은 이따금 이상야릇하고 엉뚱한 행동을 보이는데,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으로 억눌린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같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맞서 있던 두 경쟁자가 느닷없이 먹이를 먹기 시작하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다시금 완전한 위협 자세로 되돌아간다. 또는 전형적인 위협 자세를 취하는 틈틈이 제 몸을 발톱으로 긁거나 혀로 핥는 때도 있다. 또 어떤 동물은 잠깐 조는 자세로 고개를 떨구거나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패배자는 복종을 나타내는 특유한 행동을 한다. 패배자가 백기(白旗)를 드는 방법은 적의 공격성을 자극했던 위협 신호를 거두는 소극적인 방법과 비공격적인 신호를 보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단순히 우세한 동물을 진정시킬 뿐이지만, 두 번째 부류는 우세한 동물의 기분을 적극적으로 바꿔준다. 가장 유치한 형태의 복종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전한 무저항이다. 완전한 무저항은 땅에 엎드려 웅크리는 자세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하려면 몸을 최대한으로 확대해야 하므로, 거꾸로 몸을 움츠리는 것은 적을 달래는 작용을 한다. 공격자에게 등을 보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정면 공격 자세와 반대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공격할 때 털을 곤두세우는 동물은 털을 가라앉히면 복종하겠다는 신호가 된다. 드문 경우이지만, 패배자가 공격당하기 쉬운 부위를 적에게 자진해서 내미는 방법으로 패배를 인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부류의 신호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특히 널리 퍼져 있는 방식은 새끼가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는 자세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방법이다. 특히 암컷이 즐겨 사용한다. 이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다. 수컷은 새끼를 돌보고 보호하는 기분이 되어 공격성을 잃어버리고 진정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힘이 약한 동물이 암컷의 성관계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 동물이 암컷이든 수컷이든,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든 아니든, 느닷없이 수컷에게 엉덩이를 들이대는 암컷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우세한 수컷이나 암컷은 복종하는 수컷이나 암컷의 몸 위에 올라타고 성관계하는 흉내를 낸다. 세 번째 방식은 털을 손질해주거나 손질받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힘이 약한 동물은 승자에게 털을 손질해달라고 부탁하거나, 털을 손질해주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 신호를 보낼 때의 특유한 표정도 갖고 있다. 멸종하지 않으려면 동족을 멋대로 죽일 수는 없다. 동족상잔은 금지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텃세권과 계급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에 관한 한,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지 않은 동물은 오래전에 멸종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털 없는 피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털을 곤두세울 수는 없지만, 바로 이 털 없는 피부가 붉어지거나 창백해짐으로써 훨씬 더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은 교감신경계의 활동으로 일어나는 변화로, 이것은 ‘활동’을 뜻한다. 이것이 공격적인 행동과 결합하면 대단히 위험한 신호가 된다. 두려움을 나타내는 행동과 결합하면 공포 신호가 된다. 반면에 부교감신경계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신호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행동 개시를 명령하는 신경계가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화가 나서 새빨개진 얼굴로 당신을 노려보는 사람은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보다 당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훨
씬 작다. 

 

그러나 이런 표정 이외에도 혀를 쏙 내밀거나 뺨을 부풀리는 등 리가 문화적으로 창조해낸 다른 표정들도 있다. 영장류가 복종의 자세로 몸을 웅크리는 것은 인간의 엎드리는 동작으로 발전했고, 엎드리는 것보다 강도가 낮은 복종은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굽혀 절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우리가 빌거나 애원할 때의 전형적인 자세는 침팬지가 손을 내미는 몸짓과 다를 바가 없다. 인사 방법인 악수는 이 몸짓을 변형한 것이다. 허리를 굽히거나 모자를 벗는 것은 원래 몸의 높이를 특히 눈의 높이를 낮추는 행위였다. 안경과 선글라스를 쓰면 응시의 효과를 인위적으로 그리고 부수적으로 강화하기 때문에, 얼굴이 좀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테가 얇거나 테 없는 안경은 응시의 효과를 최소한으로 줄여준다. 시선은 강력한 위협효과를 갖기 때문에, 많은 동물이 보호 수단으로 눈알 모양의 무늬를 발달시켰다. 나방은 날개에 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 쌍의 눈알 무늬를 갖고 있다. 적이 덤벼들면 날개가 활짝 펴지면서 선명한 눈알 무늬가 적의 눈앞에서 번득인다. 많은 어류와 일부 조류 그리고 포유류까지도 이런 수법을 채택했다. 

 

긴장을 푸는 수단인 전이 활동은 사회적 만남의 초기 단계에 유난히 자주 나타난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겉으로 아무리 상냥한 척해도 한 꺼풀만 벗기면 그 밑에는 은밀한 두려움과 공격성이 숨어 있다. 좀 더 강렬한 긴장을 느끼고 있을 때의 전이 활동은 다른 영장류와 똑같다. 우리도 부자연스럽게 몸 손질을 한다. 머리를 긁적거리고, 손톱을 깨물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씻고, 턱수염이나 콧수염을 쓰다듬거나 잡아당기고, 머리 장식을 매만지고, 코를 문지르거나 후비거나 킁킁거리고, 귓불을 만지작거리고, 귀를 후비고, 턱을 문지르고, 입술을 핥고, 두 손을 비빈다. 행동과학적인 의미에서 종교 활동은 많은 사람이 모여 지배적인 존재를 달래기 위해 오랫동안 복종의 몸짓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공격의 목표는 파괴가 아니라 지배이다. .. 그런데 공격이 너무 멀리서 이루어지고 집단이 협동정신으로 똘똘뭉쳐 있기 때문에, 싸움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원래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이제 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돕기 위해 공격하고, 직접적인 복종의 몸짓에 관대해지도록 타고난 성향은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이 불행한 발전이 인류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어 인류의 급속한 멸종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 인구가 오늘날처럼 무서운 속도로 계속 늘어나면 통제할 수 없는 공격행위가 극적으로 늘어나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 과밀상태는 지적통제력이 강화되는 것을 직접 방해하고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을 크게 높혀 준다. => 출산율 저하

 

인간은 무엇 때문에 신을 창조했을까? 집단 사냥에 성공하려면 협동 정신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지배적인 존재가 집단 구성원들의 소극적인 충성이 아닌 적극적인 충성을 유지하려면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갖고 있던 완전한 지배력이 제한된 지배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는 더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필요해졌고, 우리 조상들은 신을 창조함으로써 그 빈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창조된 신의 영향력은 집단 지도자의 제한된 영향력을 보완해주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의 막강한 영향력은 우리의 기본적인 성향, 즉 원숭이나 유인원 조상들에게서 직접 물려받은 생물학적 성향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 때문에 종교는 사회의 응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종교가 없었다면 우리 인류가 과연 이만큼 진보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종교는 기묘한 부산물을 많이 낳았다. 저승에 가서 신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죽은 뒤의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온갖 기묘한 관습이 발달했다. 우리는 뭔가를 믿어야만 한다. 오직 공통된 믿음만이 우리를 굳게 단결시키고 우리를 통제해주기 때문이다. 종교는 감동을 주어야 하고 또 감동을 주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허례허식을 제거하면 심각한 문화적 공백이 생길 테고, 종교의 가르침은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지식을 얻는 것이 옳다는 믿음, 수많은 형태의 미학적 현상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경험을 넓고 깊게 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은 이제 급속도로 우리 시대의 종교가 되어 가고 있다.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 종교도 위험요소를 갖고 있지만, 어차피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이것이 우리 인간의 독특한 생물학적 자질인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심에 가장 적합한 종교인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는 수많은 몸뚱이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맞물리고 겹치는 수많은 부족 집단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관계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털없는 원숭이는 초기의 원시시대 이루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제6장. 먹기

우리는 네 가지 기본적인 맛에만 반응할 수 있다. 신맛 ⋅짠맛⋅쓴맛⋅단맛이 그것이다. 혀끝은 짠맛과 단맛에 특히 민감하고, 양쪽 옆은 신맛에 민감하며, 혀뿌리는 쓴맛에 민감하다. 우리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훨씬 미묘하고 다양한 맛들은 모두 혀가 아니고 코를 통해 맛보아진다. 심한 코감기에 걸려 냄새를 잘 맡을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음식 맛을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우리의 진정한 미각이 지닌 한 가지 측면은, 단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가장 자주 나타나는 전이 활동의 형태는 먹는 것이다. 이것은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몸무게를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먹는 전이 활동의 경우 대개 단 것을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은 껌의 역할이다. 껌은 오로지 전이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발달한 것 같다. 껌은 우리 몸에 해로울 만큼 지나친 열량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서, 긴장을 푸는데 필요한 먹는 행위라는 작업 요소를 제공해준다.

 

제7장. 몸 손질

우리에게는 손질해야 할 사치스러운 모피 코트가 없다. 따라서 두 털 없는 원숭이가 만나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싶을 때는 몸 손질을 대신할 수 있는 대용품을 찾아야 한다. 미소는 분명 털 고르기를 권유하는 훌륭한 대용품이다. 하지만 우호적인 접촉을 권유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털 고르기의 대용품은 ‘말의 형태를 가진 발성(發聲)’이다. 발성 단위와 그 단위들을 여러 개 결합하고 재결합한 소리가 이른바 정보 말하기information talking의 토대가 되었다. 그것은 더욱 많은 기능을 획득했다. 그중 하나는 기분 말하기mood talking라는 형태를 취했다. 목소리의 크기와 어조는 많이 배웠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포유류의 신호체계와 아주 비슷해서 인종이 다른 외국인은 물론 개조차도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형태의 발성은 탐구적 말하기exploratory talking이다. 이것은 말하기 자체를 위한 말하기이고, 미학적 말하기이며, 원한다면유희적(遊戱的) 말하기라고 불러도 좋다. 정보를 전달하는 또 하나의 형태인 그림 그리기가 미학적 탐구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하기도 미학적 탐구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몸 손질 말하기grooming talking라고 부르게 된 네 번째 유형의 발성이다. 이것은 사교적 만남에서 볼 수 있는 무의미하고 예의를 갖춘 잡담을 말한다. 이 말하기의 기능은 상대편을 만나 인사할 때의 미소를 강화하고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숭이나 유인원의 털 고르기를 대신하는 우리 인간의 대용품이다. 애완동물의 털을 쓰다듬는 건 우리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털 고르기 충동을 발산할 수 있는 배출구로서 매우 중요하다.

 

 

제8장.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환경을 공유하는 다른 동물을 다섯 부류로 구분하면, 먹이⋅공생자⋅경쟁자⋅기생충⋅약탈자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특별히 특정 동물을 키워서 잡아먹는 경향이 있다. 가축 사육은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보다 더 오래된 예도 있다. 가장 먼저 가축이 된 먹이는 염소와 양과 순록인 것 같다. 그후 한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농업 공동체가 발달하면서 아시아 물소와 티베트산 들소인 야크를 포함한 소와 돼지가 가축 목록에 추가되었다. 조류 가운데 수천 년 전에 가축이 된 주요 동물은 닭과 거위와 오리였고, 나중에 꿩과 메추라기와 칠면조가 추가되었다.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생 동물이 개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적어도 1만 년 전부터는 개와 인간의 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수많은 세대에 걸쳐 좋은 품종만 골라서 번식시킨 결과 말썽꾸러기들은 제거되고, 보다 자제심이 강하고 인간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개량종 사냥개가 등장했을 것이다. 근대에는 개의 특수한 성질을 한두 가지만 선택하여 육성하는 방법으로 품종 개량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인간과 공생하는 개의 전문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 어떤 방면에 유난히 뛰어난 능력을 갖춘 개가 있으면, 그 특수한 장점을 강화하기 위해 근친 교배를 시켰다. 개가 인간의 동료 사냥꾼으로 너무나 일을 잘했기 때문에, 다른 동물을 사냥에 이용하기 위해 길들이려는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상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른 동물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는 7단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단계는 ‘유아기’이다.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해 있는 유아기에는 몸집이 큰 동물을 부모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2단계는 ‘유아 부모기’이다. 부모와 맞서기 시작하는 이 무렵에는 자기 자식의 대용물로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동물에게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애완동물을 기르고 보살피는 단계이다. 3단계는 ‘객관적 미성년기’이다. 이때에는 과학적 탐구욕과 심미적 탐구욕이 상징적 탐구욕을 지배하게 된다. 따라서 벌레를 사냥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나비를 채집하고, 어항에 물고기를 기르는 행동 양식을 보인다. 4단계는 ‘청년기’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동물은 우리 인간의 이성(異姓)이다. 다른 동물은 순전히 상업적이거나 경제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5단계는 ‘어른 부모기’이다. 이 시기에는 상징적 동물이 다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아니라 자녀들의 애완동물로서 들어오게 된다. 6단계는 ‘후기 부모기’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자녀들이 다 떠나고 나면, 그들이 떠나버린 자리에 대신 들어온 동물에게 다시금 관심을 쏟을 수 있다. 7단계인 ‘노년기’에 다다르면, 동물 보호와 보존에 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동물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여기에 상징적 동일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희귀동물이나 멸종 위기 동물을 자신의 임박한 운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동물들의 구해야 한다는 감정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한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웅대한 사상과 오만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동물의 기본적 행동법칙에 모두 순응하는 보잘것 없는 동물이다. 따라서 인구가 위에서 말한 수준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을 지배하는 행동법칙을 너무 많이 깨뜨림으로써 지배적인 동물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교보문고 책소개

어느 열렬한 관찰자의 ‘호모 사피엔스 동물학 보고서’
격렬한 논란의 중심에서 이 시대의 고전이 되기까지

『털 없는 원숭이』가 처음 출판된 후 사람들이 당황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그들에게 가장 큰 거부감을 준 것은 이 책이 인간을 마치 동물학의 연구 대상인 일개 동물 종처럼 다루었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독특한 표현은 대중과 언론을 사로잡았으나 또 한편으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책들을 판매 금지했고, 교회는 이 책을 몰수해 불태우기까지 했다. 저자에게는 종교적ㆍ성적 금기를 깨뜨렸을 뿐 아니라, 인류가 선천적인 강력한 충동에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을 마치 짐승처럼 ? 만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를 동물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털 없는 원숭이’라는 호칭이 타당하다고 주장했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그의 관점과 접근 방식은 많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졌고,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과 행동 양식을 성찰한 이 책은 반세기가 넘도록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여느 고전들이 그런 것처럼 이 책 또한 읽는 시대 상황과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되거나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부각되는 내용들을 보게 되는데, 반세기가 지났어도 저자의 예리한 통찰과 분석, 위트 있는 비유와 알기 쉬운 해설은 여전히 탁월하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상상력과 학문적 성찰의 결합이 빚어낸 의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기원과 섹스, 아이 기르기, 탐험, 싸움, 먹기, 몸 손질, 다른 동물과의 관계 등의 행동과 문화적 의미를 분석하여 인간의 몸속에 숨겨진 본능적인 동물의 파일을 엿보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근원을 찾아가는 충격과 감탄의 지적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번 50주년 기념판은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진정한 우리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는 취지와 더불어 기존 독자들을 위한 배려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가 진행한 저자와의 50주년 기념 특별대담 전문이 그것인데, 이 자리에서 두 석학은 책을 집필했던 50년 전과 현재를 넘나들며 이 책이 갖는 의미를 비판적 시각으로 되짚어보는 한편, 인공지능과 페미니즘, 고령화·도시화에 따른 삶의 변화 등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이슈와 쟁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책에 관한 내용 외에도 유학 시절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읽고 진로를 바꾼 배경과 동물학자이자 동시에 예술가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들어볼 수 있다.

저자 : 데즈먼드 모리스

동물학자 미술가/화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생태학자. 1928년 영국 윌트셔주 퍼턴에서 태어나 버밍엄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런던 동물 학회(Zoological Society of London)의 포유류 부문 책임자가 되었으며,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옥스퍼드의 울프슨 칼리지(Wolfson College)의 연구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6년에 ITV 그라나다(ITV Granada)에서 500회 동안 매주 방영된 〈주 타임(Zoo Time)〉과 BBC2에서 방영된 〈동물 세계의 생활(Life in the Animal World)〉 등의 TV 쇼를 직접 제작하고 진행하면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인간 경쟁(The Human Race)〉 〈인간 동물(The Human Animal)〉 등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1967년에 출간한 대표작 『털 없는 원숭이』는 학계의 격찬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려, 그를 세계적인 저술가 반열에 올려주었다. 이와 더불어 『바디 워칭』 『피플 워칭』 『맨 워칭』 등의 ‘관찰(watching)’ 시리즈와 『인간 동물원』 『접촉』 『머리 기른 원숭이』 『벌거벗은 여인(The Naked Woman)』 등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 관한 다양한 저술들을 펼쳐왔다. 평

역자 : 김석희

현대문학가>소설가 번역/통역인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과를 중퇴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ㆍ프랑스어ㆍ일어를 넘나들면서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 카사노바의『카사노바 나의 편력』, 홋타 요시에의『고야』,『몽테뉴』, 앤드루 그레이엄 딕슨의『르네상스 미술 기행』, 이나미 리츠코의『중국의 은자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신비의 섬』, 존 러스킨의『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존 파울즈의『프랑스 중위의 여자』등 2백여 권을 번역하고, 역자 후기 모음집 『북 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을 냈으며,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받았다.생 50권에 달하는 저작을 남긴 그는 특히 고양이에 관심을 쏟아 『거대한 고양이들(The Big Cats)』 『고양이 워칭(Cat Watching)』 『고양이에 대한 열정(A Passion for Cats)』 『고양이 세계(Cat World)』 『세계의 고양이 품종들(Cat Breeds of the World)』 『환상적인 고양이들(Fantastic Cats)』 『구전 고양이 지식(Catlore)』 등의 책을 출간해왔다.
1948년 스윈든 아트 센터(Swindon Art Centre)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시를 열어온 초현실주의 화가이기도 한 그는 침팬지 등 영장류가 그린 그림을 모은 전시를 개최하면서 런던 현대 미술 학회(London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상임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목차

감사의 말
추천사 어느 열렬한 관찰자의 ‘호모 사피엔스 동물학 보고서’
50주년 기념 한국어판 서문 반세기를 꿋꿋이,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성찰하다
저자 서문 우리가 타고난 동물적 특성은 특별하며, 따라서 우리는 특별한 동물이다
머리말 인간의 편견이라는 잠자는 거인을 깨우며
여는 글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

제1장 ORIGINS 기원 놀랄 만큼 강렬하고 극적인 진화
제2장 SEX 짝짓기 강력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성애
제3장 REARING 아이 기르기 가르치고 모방하는 탁월한 능력
제4장 EXPLORATION 탐험 새것 좋아하기와 새것 싫어하기
제5장 FIGHTING 싸움 달아나고 달려드는 충동
제6장 FEEDING 먹기 결코 변하지 않는 식습관
제7장 COMPORT 몸손질 털 손질의 독특한 대용품
제8장 ANIMALS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공생과 경쟁, 애정과 증오심

옮긴이의 덧붙임
50주년 기념판 저자 인터뷰
참고문헌

추천사

최재천(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1980년 가을 학기에 ‘사회생물학’이라는 수업을 수강했는데, 주교재는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었고 부교재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였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건만 나는 밤을 새워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이어서 읽은 책이 제인 구달(Jane Goodall)의 『인간의 그늘에서(In the Shadow of Man)』와 바로 이 책 『털 없는 원숭이』였다. 그리곤 나는 동물관리사의 꿈을 접고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모리스는 이 책을 불과 4주 만에 써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이었지만 그가 다룬 주제들은 더할 수 없이 포괄적이었다. 짝짓기, 아이 기르기, 먹기와 몸 손질에서 모험심과 다른 동물들과의 경쟁과 공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실로 꼼꼼히 다뤘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주제들은 가시고기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의 소제목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분석한 ‘인간 종 동물학 보고서’일 뿐이다. 출간 당시에는 인류학과 심리학 영역을 침범한다는 견제를 받았지만, 어언 50년이 흐른 지금에도 모리스의 관찰과 분석은 흔들림이 없다. 비결은 철저한 진화적 사고와 객관적 분석이었다. 『이기적 유전자』와 『사피엔스』를 읽고 감동한 독자라면 그 원조인 이 책 『털 없는 원숭이』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사고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반세기를 버텨온 책에는 역시 남다름이 있다.

 

프란스 드 발(에모리 대학교 교수)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될 당시만 해도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거나 인간의 성성향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간성은 스스로 창조된다고 여겨졌다. 문화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며 인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유전학은 이러한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런 금기 사항을 깨는 일은 모리스 같은 생물학자에게 진일보한 조치였으며 이 점이야말로 『털 없는 원숭이』가 남긴 가장 큰 공로일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백지상태로 삶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커다란 흠집을 남겼다. 농담조로 풀어낸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출간 당시 매우 민감한 사안을 두고 세간에서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의 성공은 사람들이 진화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준비가 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더 타임즈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이고 납득할 만한 주장이 담긴, 아주 재미있는 책. 인간의 경쾌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고무적인 책이다.

책 속으로

초고를 손 볼 새도 없이 나는 원고를 서류철에 넣어 출판 발행인이 어느 서점에서 주최한 사교 모임에 가져갔다. 복사본이 따로 없었기 때문 에 서류철을 서가에 올려두면서도 행여 원고가 분실되거나 발행인이 깜빡 잊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발행인은 원고를 챙겨 집으로 가져갔고 성탄절에 이를 다 읽었다. 1967년 10월, 책이 출간되자 나는 세 곳의 주요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첫 번째 진영은 책에 참고 문헌 과 각주, 심지어 색인이 빠졌다고 지적한 학자들이었다. 사실 이 모두를 생략한 것에는 나름의 의도된 셈법이 있었다.
- 19p, 저자 서문

인간은 왜 털을 벗어야만 했을까
새로운 종류의 다람쥐를 연구할 때처럼, 겉보기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종과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인간의 이와 손, 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해부학적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인간이 일종의 영장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종류의 영장류 이다. 192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의 가죽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인간의 피부를 어딘가 적당한 위치에 끼워 넣으려고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괴상한 영장류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에 집어넣어도 인간의 피부 는 잘못 놓인 것처럼 동떨어져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피부를 그 줄 의 맨 끝에,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꼬리 없는 유인원의 가죽 옆에 놓을 수밖에 없다.
- 45p, 제1장 기원

사냥하는 원숭이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살펴볼 작정이지만, 우선 대 답해두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제기된 의문이 바 로 그것이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괴상한 종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다른 영장류의 표본과는 전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보았다. 이 특징은 털 없는 벌거숭이 피부였고, 그래서 나는 동물학자로서 그 생물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우리는 그 생물에게 적당한 이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직립한 원숭이, 연장을 만드는 원숭이, 영리한 원숭이,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 등,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우리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들이 아니었다. 단순히 박물관에 전시된 동물학적 표본으로만 바라보면 당장 눈에 띄는 특징은 털이 없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이 호칭이 다른 동물학적 연구와 조화를 이룬다면 끝까지 이 이름을 고수할 작정이다. 게다가 ‘털 없는 원숭이’라는 호칭은 우리가 그 생물에 접근하고 있는 독특한 방식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이 이상야릇한 특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 없는 원숭이가 되어야 했을까?
- 75p, 제1장 기원

‘네오필리아’ 충동과 ‘네오포비아’ 충동의 갈등
나는 이 논의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생략했는데, 그것은 주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무기) 먹고(농업) 보금자리를 짓고(건축) 편안함을 얻는 (의학) 기본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방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과학기술의 발전이 서로 맞물리게 됨 에 따라, 과학 분야에도 순수한 탐구욕이 침입해 들어온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과학 탐구 - 찾고 뒤진다는 이 명칭 자체로 그것이 놀이라는 것 이 드러나고 있다 - 는 대부분 앞에서 열거한 놀이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순수한’ 탐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는 사실상 예술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실험이 아니라 아름다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탐험 자체를 위한 탐험에 관심을 갖는다. 연구 결과가 실용적인 특수한 목적에 유용하게 쓰이면 더욱 좋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예술가든 과학자든 탐험 행위를 할 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충동 (네오필리아 충동)과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충동(네오포비아 충동)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은 우리를 새로운 경험으로 내몰 고, 우리는 새로움을 갈망한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은 우리를 억제하 고, 우리는 낯익은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자극과 우호적인 낯익은 자극이 우리를 양쪽에서 끌어당긴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여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할 것이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곧장 재난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런 갈등상태는 머리 모양과 옷, 가구와 자동차의 유행이 끊임없이 바뀌는 이유를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적 진보의 토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탐험하고 후퇴하고, 조사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조금씩 넓혀간다.
- 192p, 제4장 탐험

위협 신호와 항복 신호
패배자가 백기를 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적의 공격 성을 자극했던 위협 신호를 거두는 소극적인 방법과 비공격적인 신호를 보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단순히 우세한 동물을 진정시킬 뿐이지만, 두 번째 부류는 우세한 동물의 기분을 적극 적으로 바꾸어준다. 가장 유치한 형태의 복종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전한 무저항이다. 공격은 격렬한 움직임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지 자세는 자동적으로 비공격의 신호가 된다. 완전한 무저항은 땅에 엎드려 웅크리는 자세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하려면 몸을 최대한으로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거꾸로 몸을 움츠리는 것은 적을 달래는 작용을 한다. 공격자에게 등을 보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정면 공격 자세와 반대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 215p, 제5장 싸움

선데이 타임즈

독창적이고 자극적이며 기발한 발상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책을 읽고 난 후, 주변 사람들을 새롭게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인간, 그 안에 숨겨진 ‘동물의 파일’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이 책『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류의 진화 발전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특성이라는 점이다. 그런 동물적 특성은 특별하며, 따라서 인류는 특별한 동물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모욕적 언사가 아닌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동물 종 가운데 가장 성공한 비범하고 놀라운 종의 일원이라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있다.

사회적 물의(‘털 없는’이란 단어는 출간 당시에도 여전히 외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를 일으킨 멋진 제목과는 별도로 책의 논조 역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모리스는 이를 ‘고단했던 격정의 4주’로 묘사된 글에 담아냈다. 4주는 책 한 권을 완성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이다. 저자의 글쓰기가 숨 막힐 만큼 빠르게 전개됐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그의 글쓰기는 대개 연구 자료에 대한 참조가 아니라 직접 얻은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에게서 동물 행동학자로 훈련받은 모리스는 대개의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물 종의 특이한 습관을 정확히 묘사한다. 그는 마치 이방인이 된 것처럼 독자가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색다르면서도 더욱 진지한 의미에서 고전에 속한다. 가령 모리스는 인간의 잡담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영장류의 털 손질과 동일한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그의 이런 생각은 진화가 어떻게 털 손질을 수다로 대체시키고 언어 발전을 촉진했는지 설명해주는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모리스는 암수 한 쌍의 결합 관계가 무리의 암컷을 수컷에게 동등하게 분배함으로써 포악한 우두머리 수컷에 대응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수컷들이 함께 사냥하러 나가거나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암컷에 대한 경쟁이 줄어든 것으로 여겨졌다. 수년 전 아르디피테쿠스(약 4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의 줄어든 송곳니가 일부일처제를 암시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간주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생각은 인류학 분야에서 여전히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런 진화론적 견해는 『털 없는 원숭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공로를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필독서로 읽혀 왔으나 과학의 주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보노보(으리으리한 남근을 가진 또 다른 원숭이)의 성적 습성, 협동과 이타성이 진화해온 다양한 방식처럼 우리의 지식은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최신의 지식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출간 반세기를 맞은 책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전히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데, 이는 책의 주요 동력이 수집된 자료나 이론에 있기보다는 앞으로 설명할 사고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생존과 번식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근거로 인간의 행동 양식을 설명하는 진화 생물학자처럼 생각한다. 그는 몸에 털이 없어지고 직립보행을 하게 된 기원, 여성이 느끼는 성적 쾌감과 동성애의 기원, 예술과 문화에서 놀이의 역할에 관한 의문처럼 여느 생물학자라면 해결해보고 싶은 일련의 문제를 통해 인간종이 보여주는 특이한 사회적, 성적 습성을 제시한다. 이 모든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도출된 결론보다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근래에 다시 읽어보더라도 생물학적 성별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에서처럼 저자가 천성을 양육보다 중시한다고는 좀처럼 의식하기 어렵다. 생물학이 당연시되다 못해 대수롭지 않게 돼버린 오늘날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될 당시만 해도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거나 인간의 성성향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간성은 스스로 창조된다고 여겨졌다. 문화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며 인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유전학은 이러한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런 금기 사항을 깨는 일은 모리스 같은 생물학자에게 진일보한 조치였으며 이 점이야말로 『털 없는 원숭이』가 남긴 가장 큰 공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