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감상
작년 10월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나의 첫 히말라야 상봉이었고, 여전히 또 다른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년 2019년 여름에 티벳의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 카일라스 답사를 지인들과 기획중인데, 이 책에는 카일라스 산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하기에 인연이 이어졌다.
저자는 거주하는 인도 무수리의 동네산 플래그 힐을 서두로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인도의 최고봉으로 해발 7,817m의 난다 데비, 불교, 힌두교, 자이냐교와 티베트의 토착 종교에서 모두 가장 신성시하는 카일라스, 해발 6,714m, 그리고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정한 텐징 노르가이가 1950년 최초로 등정하였던 당시 저자의 부친의 추억이 함께한 반다르푼치, 이 4개의 산을 순례한 여정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등강기와 하강기를 반다르푼치에 오르면서 처음 시도해보는 아마츄어로서 전문 등반가가 결코 아니었다. 저자는 무신론자이지만 산은 믿는다.
129쪽: 세상의 고봉들을 오르는 일은 그것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이 고봉을 올려다 보고 그곳에 오르고자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만큼 인간이 인간다울 때가 없다는 사실,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대면한 싸움에서의 승리보다 더 값진 승리는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산이 주는 최고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417쪽: (정상 등정 포기의) 옳은 결정들을 내렸음을, 그리고 우리가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이건 최선을 다했음을 앎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심지어 나의 개인적 약점들과 두려움 마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큰 목적과 궤를 같이하는 듯하다. 곧 패배를 받아들이되 우리 정신과 육체가 감당해야 할 한계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각자 산을 만났다는 것과 산의 위대함, 그 장엄한 외관에 깃든 아름다움과 위험을 다시금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원정에서 각자 뭔가를 얻어간다. 우정일 수도 있고 사진이나 재미난 일화, 처음 익힌 식물과 동물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고지대에 대한 깊은 존중과 한층 깊어진 경외심도 자리한다.
교보문고 책소개
스티븐 얼터가 히말라야의 세 봉우리, 반다르푼치와 난다 데비, 카일라스 산을 오르며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모든 것을 담은 기록『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목표로 고봉을 오르기 시작한 그는 때로는 히말라야 지역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의 눈으로,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모순적인 무신론자의 눈으로, 히말라야 토종 동식물의 이름과 학명을 단번에 읊어내는 자연 예찬론자의 눈으로 히말라야를 관찰하며 실제 히말라야 고봉을 올랐던 이들과 직접 나눈 인터뷰를 비롯해 히말라야의 자연사, 각 봉우리에 얽힌 전설과 신화, 설화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스티븐 얼터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감상하며 울퉁불퉁한 히말라야의 산길을 따라 6천 미터 봉우리에 사는 여신과 생기 넘치는 야생화, 아름다운 시들을 만나다보면 자연이 가진 놀라운 치유의 힘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부 플래그 힐 -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권│묻어버리고 싶은 기억│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부 난다 데비 - 지극한 행복을 찾아서
여신에게 가는 길│도살길│애수의 호수│발자취로 새기는 기록
3부 카일라스 - 어느 순례자의 여정
만다라로 들어가다│믿음의 경계│트랜스-히말라야│브라마의 꿈│이 문턱을 넘으며│
정상에 닿을 듯 닿지 못하고│신비의 동굴
4부 반다르푼치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유의 빛│오르고 다시 물러나고│이야기의 결말을 찾아
감사의 말│참고문헌
책 속으로
여러 가닥을 꼬아 만드는 등산용 로프가 절벽과 인간의 몸을 연결해 고산 등반가들의 생명을 단단히 잡아주는 것처럼 난다 데비에 얽힌 다양한 전설도 하나로 묶여 우리를 이 산에 단단히 매어둔다. 등반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제임스 램지 울만James Ramsey Ullman이 쓴 다음 문장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고봉들을 오르는 일은 그것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이 고봉을 올려다 보고 그곳에 오르고자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만큼 인간이 인간다울 때가 없다는 사실,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대면한 싸움에서의 승리보다 더 값진 승리는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산이 주는 최고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129쪽)
만성적 방랑벽이 있었던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도로와 잘 닦인 길을 버리고 미답의 황무지를 찾아다니라고 권유한다. “인생은 야생으로 이루어진다. 야생이야말로 가장 살아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아직 복종하지 않은 상태, 그런 존재를 보면 우리는 신선함을 느낀다.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그 노력을 잠시도 쉬지 않는 자, 빨리 성장하고 삶에 무한한 열매를 요구하는 자는 언제나 새로운 나라 혹은 새로운 황무지에서 생의 원재료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한다.” (211쪽)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 호수는 각종 신화와 만트라로,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의 상상 속 낙원과 다른 모든 종교 신자들의 마음과 영혼에 고정된 좌표를 가지고 있다는 신비의 지도인 만다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종교의 절대적 축 같은 것이다. 힌두교도들에게 카일라스는 시바 신의 ‘거처’다. 전능한 창조신이자 파괴자, 불멸의 고행자로 분한 시바 신이 이 산에서 여성 배우자와 함께 고결한 금욕의 상태로 수행하며 살아간다. (248쪽)
카일라스 산에 부여된 모든 신성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외가 섞인 불신을 품고 산을 바라본다. 다양한 종교에 딸려오는 신화나 은유가 자극적인 해석과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들려주지만 카일라스의 물리적 외관은 오히려 종교적 설화와 교리를 떨쳐내버린다. 카일라스 자체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거대한 바윗덩어리일 뿐이다. (…) 카일라스를 마주하고 바위에 기대앉아 생각에 잠긴 나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또, 이 순례여행 끝에 얻을 이득이라든가 어떤 대가, 구원 같은 것도 없음을 안다. 모든 신화는 픽션이고 그게 아니라면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다. 이 산이 드러낸 비밀은 그게 전부다. 카일라스의 봉우리는 신성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카일라스는 그냥 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단순한 깨달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종교적 믿음이 뿌려놓은 환영을 초월한다. (311쪽)
대홍수가 발생한 지 3개월, 재앙이 비껴간 사원들과 믿음과 기도의 힘으로 살아남은 자들에 얽힌 미신이 돌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런 운명론적인 해석은 제쳐두고 우리는 계단식 논밭이나 절, 도로와 댐을 얼마나 많이 건설하든 산은 항상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히말라야를 길들이고 굴복시키는 대신 연민과 논리적 사고, 그리고 실체를 볼 수 없는 신앙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산에 접근해야 한다. 고지를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대신, 경계가 불명확한 영토를 땅 따먹기 하듯 차지하며 고산지대의 너그러운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우리는 산을 닮아가야 한다. 인간보다 훨씬 큰 존재이자 인간에 비해 무한히 영속적인 그 존재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427쪽)
출판사 서평
새로운 삶을 찾아 히말라야를 오르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지구의 최고봉이 모여 있는 곳,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의 발원지, 눈雪이 사는 곳. 산에 큰 관심이 없는 이라도 히말라야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하나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도아대륙과 티베트고원 사이에 넓게 펼쳐진 히말라야는 세계 최고봉으로 유명한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14개의 8천 미터 봉우리가 모여 있는 거대 산맥이다. 그러나 마을 어디에서나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인도 북부의 무수리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작가 스티븐 얼터는 히말라야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고봉을 정복하며 쾌감을 느끼는 열정적인 산악인은 아니었다. 그저 평생 동안 보아온 히말라야 풍경을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권’이라 감사하게 여기며 이따금 마을 언덕에 올라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명상에 빠져들기를 좋아하는 소박하고 평범한 작가일 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에게 끔찍한 피습을 당하기 전까지는.
2008년 7월 3일 새벽 5시 반, 침실에 곤히 잠들어 있던 얼터 부부는 갑작스레 집에 침입한 강도들에게 참혹하고 잔인하게 공격당한다. 괴한들이 휘두른 칼에 찔려 크게 찢어진 자상만 8곳, 난도질당한 팔뚝의 근육과 힘줄은 완전히 끊어졌고 허벅지의 깊은 상처는 길이가 30센티에 달했다. 이 사건은 얼터 부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실재하는 악, 코앞에 닥친 죽음을 마주하고 난 후 부부는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와 피해의식, 그리고 악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함께 생활해온 마을 주민 모두가 의심스러웠고 두려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평생 동안 보아온 고향의 친숙한 풍경 속 모든 것들이 돌연 자신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듯한 이질감과 거리감이었다.
괴한들의 습격 후 큰 수술을 받고 한 달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손을 움직여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그는 평생 바라만 보았던 히말라야를 오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낀다. 무신론자인 그가 생을 위협받는 고통스런 순간에도 유일하게 위안과 구원을 얻었던 대상은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닌, ‘인간은 최악의 트라우마마저 극복할 수 있으며 어떤 고통이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는 스티븐 얼터가 히말라야의 세 봉우리, 반다르푼치와 난다 데비, 카일라스 산을 오르며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목표로 고봉을 오르기 시작한 그는 때로는 히말라야 지역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의 눈으로,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모순적인 무신론자의 눈으로, 히말라야 토종 동식물의 이름과 학명을 단번에 읊어내는 자연 예찬론자의 눈으로 히말라야를 관찰하며 실제 히말라야 고봉을 올랐던 이들과 직접 나눈 인터뷰를 비롯해 히말라야의 자연사, 각 봉우리에 얽힌 전설과 신화, 설화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섬세하면서도 차분한 그의 문장들은 이렇게 히말라야라는 산의 전기를 완성하고, 등반과 글쓰기를 통해 마침내 자신으로 돌아가 위안과 구원을 얻는다.
히말라야의 설봉 위에서 펼쳐낸
신과 산, 인간에 대한 명상과 사색
그가 처음 히말라야를 오르기로 결심한 데는 잔인한 폭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버린 연약한 인간의 신체, 병실 침대에서 창가까지 한 걸음 떼기조차 어려워진 자신의 몸을 완전히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등반 과정에서 그를 가로막은 것은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수술 후 처음으로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산책 삼아 자주 올랐던 집 근처의 낮은 언덕을 다시 오르다 별안간 비이성적인 공포에 압도당한다. 이전 같았으면 고독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라도 혼자 걸었던 길인데, 돌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혹은 몰래 뒤를 밟아 따라온 강도가 자신을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마음의 치유를 위한 사색과 명상이 주를 이룬다. 보는 사람까지 숨을 가쁘게 하는, 신체적 한계에 대한 도전이나 특급 작전을 방불케 하는 극한의 등정 대신, 느릿하게 산을 오르며 차분한 필치로 봉우리에 얽힌 현지 설화와 전설, 오래전 고봉을 올랐던 산악인들의 뒷이야기, 산을 주제로 한 문학과 예술, 히말라야의 자연환경, 자신의 경험 등을 조화롭게 결합시킨다. 바로 여기서 스티븐 얼터의 작가로서의 뛰어난 면모가 빛을 발한다. 다양한 문헌을 종횡무진 오가며 깊고 넓게 사색을 펼쳐나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묵직하고 담담하게 자신만의 메시지를 끌어낸다. 글을 읽다 보면 박식한 이야기꾼 가이드를 따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히말라야를 함께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자연과 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색이다. 선교사 부모 아래서 자란 스티븐 얼터는 무신론자를 자처하면서도 신앙을 배척하거나 교리의 옳고 그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기 보다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탐구적이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인간과 신, 신과 자연, 자연과 인간이 쌓아온 관계의 역사를 다각도로 관찰하며 자유자재로 렌즈를 돌린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신론자이면서도 산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서 위안과 구원을 찾는 어딘가 모순적인 그의 태도를 자연스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신비한 전설도 절대자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예찬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스티븐 얼터가 최종으로 돌아가는 곳은 산 그 자체다.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진리와 행복, 구원을 얻는다. 평생 히말라야를 보아왔고, 그 거친 자연을 직접 경험한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순례’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오로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수백만 년에 걸친 지질 활동으로 융기한 암벽투성이의 눈 덮인 봉우리뿐이다. 그런 자연에서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는 그의 글은 흥분 섞인 영적 간증 없이도 커다란 울림을 준다.
동시에 그는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인간 사회를 향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갑작스레 닥친 대홍수로 정상 등반을 코앞에 두고 반다르푼치를 다시 내려오면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맥없이 스러지는 인공구조물과 희생자들을 바라보며 염려와 당부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는 인간이 주체가 아닌, ‘자연이 인간을 정의하도록 내버려둘 것’을 주장하며 자연을 통제하고 나아가 정복하려는 인간 사회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냉정한 시각으로 평가한다.
현대인 다수가 자연적으로 뿌리 내린 풀 한 포기 제대로 보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가로막힌 건물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창밖 먼 산이라도 한 번 응시하게 된다. 스티븐 얼터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감상하며 울퉁불퉁한 히말라야의 산길을 따라 6천 미터 봉우리에 사는 여신과 생기 넘치는 야생화, 아름다운 시들을 만나다보면 자연이 가진 놀라운 치유의 힘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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