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장영희교수 영미문학

This is just to say: 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

클리오56 2008. 7. 8. 08:32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17> 여보, 고백할 게 있는데 말야…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입력 : 2004.07.20 17:47 33'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
이것도 시(詩)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아주 유명한 시인의 유명한 시입니다. 아내가 아침 식탁에 내놓으려고 남겨 놓았던 자두를 밤에 몰래 냉장고에서 꺼내 먹고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쪽지를 적어놓은 모양입니다. 일부러 남겨 놓은 줄 알면서도 먹어버린 데 대한 약간의 죄의식, 그러면서도 몰래 먹는 것이기 때문에 더 달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품이 마치 몰래 장난쳐 놓고 기둥 뒤에 숨어서 엄마를 엿보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아침상에 놓을 것이 없어져서 당황했다 해도 이런 쪽지를 보면 차마 화를 낼 수 없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장난기 섞인 고백을 하면 그저 눈 한번 흘기고 웃으며 용서해 주리라는 편안함과 믿음이 시에 깔려 있습니다.

사실 시가 별건가요. 공자님은 ‘생각함에 있어 사악함이 없는 것’이 시라고 하셨지요. 이리저리 숨기고 눈치 보는 삶 속에서 한 번쯤 솔직하게 글로 내 착한 마음을 고백해 보는 것,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도 조금 열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