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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여행법: 저자 강명관 (2019.1.2)

클리오56 2019. 1. 2. 05:37


읽은 소감 및 내용

스리랑카 여행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여러 관련 책들을 빌렸고, 이제 여행 일정의 큰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한학전공의 교수가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느낀 소회인데, 분량 많지 않은 스리랑카 부분만을 읽었다. 플로나루와, 담불라, 캔디, 갈레, 콜롬보는 나의 이번 여행 경유지. 저자는 주로 불교, 식민지배, 현지인 등과 관련한 여러 소감이지만 한번 들른 스리랑카를 어찌 깊이 알수 있으랴. 그저 가볍게 스치는 기분으로 일독. 


교보문고 책소개

40여 년 동안 고전과 역사를 연구한 학자의 눈에 비친 새롭고 낯선 인도와 스리랑카!

둘째가라면 서러운 책벌레 강명관 교수의 인도·스리랑카 여행기 『책벌레의 여행법』. 2016년 1월 11일부터 2월 5일까지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젊은이가 아니기에 예민한 감각으로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감동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여행지를 둘러보며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로 새로운 문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저자가 느낀 소중한 경험들을 모두 담아냈다. 

책벌레답게 저자의 여행에는 시종일관 수많은 책들이 함께 했다. 물론 이 책들은 여행지에 실제로 들고 다닌 책이 아니라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세계사 속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꼭 필요한 《세계사 편력》이나 간디를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는 《간디 자서전》과 《힌두 스와라지》, 인도 사상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하바라타》와 《바가바드기타》, 한국인 저자 정호영이 명쾌하게 정리한 인도 교양서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등 책을 좋아하는 사람라면 여행하면서까지 책을 떠올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웃음 짓게 된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풍부한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인 광활한 아대륙 인도와 동양의 진주 스리랑카. 저자는 이 책에서 폐허만 남은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 함피, 남인도 최대의 힌두교 성지 미낙시 사원, 기원전 3세기에 지은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사원 이수루무니야 사원 등 다양한 유적지와 그 주변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광을 소개한다. 여행자만이 체험하고 전해줄 수 있는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마치 바로 옆에서 들려주듯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저자 강명관

강명관공부를 직업으로 택했고 취미 또한 독서이기에 평생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주로 공부방 책주산실(冊酒山室)에서 읽고 쓰는 일을 한다. 평소 시간이 날 때는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책을 뒤적이지만, 노동이 주는 피로가 쌓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는 훌쩍 여행을 떠난다. 여행자가 되어 문득 떠오르는 문장을 붙잡고, 낯선 문화를 관찰하며 이미 읽은 책과 곧 읽을 책을 떠올리고, 손바닥만 한 수첩에 쉼 없이 메모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즐긴다. 그렇게 여행하고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2008년 제8회 지훈국학상, 2010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간행물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의 뒷골목 풍경》,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 《농암잡지평석》,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열녀의 탄생》,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독서한담》,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여정도 

1월 11일 출발: 세 번째 혹은 마지막 인도 여행 
1월 12일 뭄바이: 간디의 물레 
1월 13일 고아: 자비에르를 이끈 힘 
1월 14일 고아: 인도의 언어 
1월 15일 함피: 폐허가 된 왕국의 수도 
1월 16일 함피: 사원과 종교 
1월 17일 마이소르: 인도의 화장실 
1월 18일 마이소르: 위세품과 권력 
1월 19일 코치: 소박한 아방궁 
1월 20일 코치: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직업 
1월 21일 바르칼라: 타율적 인간을 생산하는 교육 
1월 22일 바르칼라: 종교 의식의 의미 
1월 23일 칸냐쿠마리: 수고에 따른 릭샤 비용 
1월 24일 마두라이: 아내의 선물을 빼앗을 권리 
1월 25일 푸두체리: 사상 동지들의 공동체 
1월 26일 마말라푸람: 기계와 노동 해방 
1월 27일 첸나이: 그들만의 공간 
1월 28일 아누라다푸라: 소수자 차별 
1월 29일 아누라다푸라: 울기 좋은 땅 
1월 30일 폴로나루와: 돌기둥과 나지막한 담 
1월 31일 담불라: 종교와 무소유 
2월 1일 캔디: 붓다의 치아와 칼슘 조각 
2월 2일 피나왈라, 갈레: 제국주의의 유산 
2월 3일 갈레: 아들을 위한 100루피 
2월 4일 갈레, 콜롬보: 평화로운 해변 
2월 5일 도착: 새로운 여로에 서다

출판사 서평

낯선 거리를 걸으면서도 늘 책을 떠올리는 어느 활자 중독자의 인도·스리랑카 문견록 
텍스트를 엄밀하게 분석하는 성실한 연구자로 이름난 한문학자 강명관의 인도·스리랑카 여행기. 저자는 자신을 그저 ‘여행지를 무심히 지나친 단순한 여행객’이라고 말하지만 낯선 곳을 거닐며 사람과 물정을 살피는 그의 글에는 날카로운 단상과 통찰이 가득하다. 특히 늘 책과 함께하며 연구하는 한문학자답게 그의 여행기는 인도·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여행자만의 특권으로 무심한 듯 남긴 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낯선 장소로 떠나길 꿈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웃음 짓는 책벌레의 여행 
이 책의 특징 1 
책벌레의 머릿속에는 늘 책 생각뿐이다. 오죽하면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癡)라는 말이 있을까.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공부를 직업으로 선택한 교수이기에, 그의 일상은 책을 읽으며 연구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노동으로 꽉 차 있다. 취미 또한 독서인 그는 평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는다. 심지어 잠깐 시간이 날 때에도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헌책을 뒤적이기를 즐긴다. 그렇게 고전에서, 책에서, 책방 골목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엮어 《독서한담》이라는 독서 에세이까지 썼으니, 그의 책 사랑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책벌레 강명관 교수가 2016년 1월 11일부터 2월 5일까지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책벌레답게 그의 여행에는 시종일관 수많은 책들이 함께한다. 물론 이 책들은 여행지에 실제로 들고 다닌 책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세계사 속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꼭 필요한 《세계사 편력》이나 간디를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는 《간디 자서전》과 《힌두 스와라지》, 인도 사상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하바라타》와 《바가바드기타》, 한국인 저자 정호영이 명쾌하게 정리한 인도 교양서 《인도는 울퉁불퉁하다》 등 그의 여행기에 등장하는 책들은 인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추천도서 목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힌두교 사원의 수많은 신상들을 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점을 아쉬워하며 이에 관한 책을 보리라 다짐하는 등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을 정리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면 구제불능의 책 바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라면 여행하면서까지 책을 떠올리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웃음 짓게 된다. 
저자 강명관 교수는 텍스트를 엄밀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한 내로라하는 한문학자이자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등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책들을 출간해온 베스트셀러 저자다. 그렇지만 여행기 집필은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처음 여행기를 출간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인도·스리랑카 여행이 그에게 전해준 경험과 느낌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젊은이가 아니기에 예민한 감각으로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감동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여행지를 둘러보며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로 새로운 문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쉼 없이 메모하여 흩어지는 생각을 기록한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실 여행기를 출간한 것도 그렇게 메모를 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여행기를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 여행법을 독자들에게도 조심스레 권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낯선 경광과 문화를 접해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며 삶의 무의미함을 새삼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다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 혹은 스쳐 지나가는 낱말과 문장들을 붙잡기도 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첩!)에 나만 아는 방식으로 메모하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짬을 내어 정리했다. 태블릿 PC와 롤 형태의 키보드를 가지고 갔는데, 메모한 내용을 정리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 
괴로웠던 것은 워낙 싼 숙소들에 묵었던 탓에 대부분의 경우 간단한 테이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바닥에 앉아 의자를 탁자로 삼은 경우도 있었고, 전화기를 올려놓는 작은 나무 상자 같은 것을 침대 위에 올리고 태블릿 PC를 두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조차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메모할 생각이 없었다면 범상하게 그냥 스치고 지났을 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게 되었던 것이다(혹 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여행기를 써볼 것을 정중하게 권한다). 정말이지 새로운 체험이었다. 귀국 후 인도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도서관에 없는 책은 사들이기도 했다. 여행 전 네루의 《세계사 편력》 등 인도에 관한 책을 읽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 본 것들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 책들을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다. 
_〈2월 5일 도착: 새로운 여로에 서다〉 중에서(355~357쪽) 

서두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는 새로운 정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깨침도 없다. 내가 한 모든 이야기는 성인과 현인, 시인과 작가와 학자, 나와 같은 수많은 범인들이 이제까지 말해온 것들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새로운 깨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청년이라면 자신이 살던 익숙한 곳을 뒤로하고 낯선 시공간을 향해 떠나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젊음을 소진한 그는 어른이 되어 깨침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여행 역시 사람에게 새로운 깨침을 가져다주는 법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미 젊은이가 아니다. 
_〈2월 5일 도착: 새로운 여로에 서다〉 중에서(357쪽) 

2. 낯선 사회를 매개로 나와 세상을 성찰하는 인문학자의 여행 
이 책의 특징 2 
강명관 교수는 자신을 그저 ‘말을 달리며 산을 스쳐 지나가듯 무심히 지나친 여행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고전과 역사를 연구한 학자의 눈에 비친 인도와 스리랑카는 새롭고 낯설다. 특히 그가 인도의 상징인 간디를 사유하는 방식과 태도는 무척 흥미롭다. 뭄바이의 간디 기념관 마니 바반을 찾은 그는 간디가 제안한 베틀과 물레 사용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간디는 베틀과 물레를 통한 노동을 기반으로 인도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간디의 물레가 영국 수입 직물을 거의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간디의 물레는 물질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지만 그를 떠받드는 지금의 인도는 그의 정신을 얼마나 계승하고 있는지, 그를 그저 내셔널리즘으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간디가 힌두교의 분열을 걱정하여 불가촉천민의 고통을 외면한 점, 일반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가난과 브라마차리아(성적 금욕)을 선택하고 아내에게 다른 사람들의 선물까지 받지 못하게 한 점 등 간디를 직접 비판하는 부분은 정확하고 날카롭다. 
인도·스리랑카의 사회와 문화,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도 저자의 통찰이 빛난다. 그는 인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는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는 한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카스트가 없어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상층 카스트의 양보도 하층 카스트의 저항도 아닌 오직 자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리랑카 갈레 해변의 장대 낚시는 이미 어업이 아니라 공연으로 변해 있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의해 본질이 바뀐 이 상황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이것이 정말 비판할 일인지 되묻는다. 이처럼 유적지에서, 관광지에서 그가 보여주는 단상과 사유는 낯선 사회를 매개로 자신과 세상을 성찰하는 의미 있는 여행법이다. 서두에서 그는 이제 연암처럼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여행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했지만,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그의 모습은 연암을 닮았다. 

간디는 암베드카르의 주장이 수용되어 불가촉천민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면 힌두교에 커다란 분열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불가촉천민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든 전혀 개의치 않지만, 인도가 분열되어 힌두교의 저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불가촉천민’의 정치적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도를 전혀 모를뿐더러 오늘날의 인도 사회가 어떻게 서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간디의 주장이었다. 
간디의 말은 정말 놀랍다. 차별받는 불가촉천민의 고통보다 ‘힌두교의 분열’이 더 걱정이란 말인가. ‘힌두교의 저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 바로 그 힌두교에 의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차별과 학대, 가난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인가. 도대체 종교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세계의 근원을 이해하는 종교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을 차별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면, 그 종교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사악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나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_〈1월 12일 뭄바이: 간디의 물레〉 중에서(37~38쪽) 

이곳은 바다에 박은 말뚝에 나무를 가로로 대어 거기에 엉덩이를 걸치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장대 낚시로 알려진 곳이다. 사진을 보면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낚시꾼의 모습에 고적한 아우라가 감돈다. 약간은 낭만적이기도 한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생업이라니, 한편으로는 짠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직접 와보니 실제 상황은 딴판이다. 어부들이 바닷가에 막대기 수십 개를 꽂아놓고, 그 앞에 있는 풀로 덮은 오두막에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을 낚는다. 어부들은 오두막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다가,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델이 되어준다. 
사진 찍는 비용은 1인당 200루피다. 그 돈을 받고 외막대기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다. 고기가 잡힐 리 없다. 생업이 어업에서 공연으로 바뀐 것이다. 본질을 버리고 이미지만 팔 때, 원래의 행위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중국 계림의 가마우지 물고기 잡이 역시 생활의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돈벌이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속이 메슥거린다. 나는 생업이 보고 싶은 것이지 쇼를 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생각도 잘못된 것이 아닐까? 원래의 콘텍스트에서 떨어져나와 상품이 된 것은 카타칼리나 스리랑카 댄스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관광이라는 새로운 콘텍스트에 놓여 생업이 된 것이 아닌가? 
_〈2월 2일 피나왈라, 갈레: 제국주의의 유산〉 중에서(341~342쪽) 

3. 설렘과 감동, 휴식을 주는 환상적인 인도·스리랑카 여행 
이 책의 특징 3 
광활한 아대륙 인도와 동양의 진주 스리랑카. 두 나라는 풍부한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다. 이 책에도 폐허만 남은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 함피, 남인도 최대의 힌두교 성지 미낙시 사원, 기원전 3세기에 지은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사원 이수루무니야 사원 등 다양한 유적지와 그 주변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광이 소개되었다. 미낙시 사원의 고푸람이나 마말라푸람에서 본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사람의 설렘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 때로는 의뭉스럽게 시치미를 떼며 돈을 좀 더 벌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은 여행자만이 체험하고 전해줄 수 있는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마치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저자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당장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고푸람은 힌두교의 만신전이다. 시바와 비슈누, 브라흐마 등 트리무르티를 이루는 세 신과 그들의 아바타, 그들과 결혼한 여신들, 자식 신들, 부하 신들, 수행하는 요기 등등 신과 신을 섬기는 존재들이 총집합한 곳이다. …… 
도대체 건물의 문에 이렇게 신상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채색탑을 올리는 것을 누가 처음 생각했을까. 나는 이런 건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어지간한 유적지의 어떤 건물을 봐도 그것은 나의 상상력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다지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피라미드 앞에 섰을 때도 거대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워낙 사진으로 TV로 보던 것이어서인지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집트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앞에서 그 정연한 아름다움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역시 이질감은 없었다. 그것은 도리어 오늘날의 건물 같았다. 하지만 미낙시 사원의 고푸람은 다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찾을 수 없는, 전혀 대면한 적 없는 낯선 공간에 떨어진 것 같다. 혹시 내가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낸 것인가. 
_〈1월 24일 마두라이: 아내의 선물을 빼앗을 권리〉 중에서(206~207쪽)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다시 보러 갔다. 워낙 걸작이어서 한 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이 조각을 만든 사람은 내면에 어떤 형상이 있었기에 이런 아름답고 거창한 부조를 만들어냈을까? 만약 내가 조각가라면 나의 종교심을 어떤 형상으로 나타내어 보일 것인가. 그것은 또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미적 충격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부조에는 완성되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그것도 아주 흥미롭다. 예컨대 돌 속에서 막 나오려는 짐승이 보인다. 몸 절반은 아직 바위에 묻혀 있다. 석공은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짐승의 절반만 끄집어냈을까. 배후의 신화를 지워버리고 온갖 상들을 보면, 마치 살아 있는 것들에게 주술을 걸어 단단하고 차가운 석벽 속에 박아 넣은 것 같다. 코끼리들도 느릿느릿 걸으며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것 같다. 나를 꺼내달라고, 다시 푸른 숲길을 걷고 싶다고. 
_〈1월 26일 마말라푸람: 기계와 노동 해방〉 중에서(254~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