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 2026.2.18
코스: 과천역~대공원 산림욕장길~국립현대미술관~대공원역
거리: 12.6km
소요시간: 4시간 6분 (휴식 및 관람 47분)
![]() |
![]() |
![]() |
오래만에 대공원의 산림욕장길을 걸었고 여유가 있어 미술관에서 작품 전시도 관람하였다.
최근에 루틴을 재정립하면서 한 주에 두번, 화요일과 토요일에는
여행이나 트레킹, 혹은 전시관람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계획을 잡았다.
이번 화요일은 설 휴관이라 수요일 오늘로 일정을 조정하는 케이스~

산림욕장길 입구
산림욕장길은 7km로 2시간30분 소요로 소개되어 있다.
동물원둘레길이 포장도로를 걷는다면 산림욕장길은 흙길을 오르내리며 트레킹 기분을 만끽.
이날은 좋은 날씨 덕분으로 2시간 정도에 미술관 입구에 당도하였다.



전망대에서의 조망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당도

우선 1층에 전시중인 신상호: 무한변주를 감상

홈페이지에서 본 전시의 소개를 옮겨왔다.
| 신상호(1947~)는 1960년대부터 사회와 미술의 변화에 호응하며 흙을 매체로 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는 다양한 도자 형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한국 현대 도예를 이끌어 온 대표 작가이다.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자 제작으로 도예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후 시대의 변화와 내면의 예술적 탐구심에 따라 도자의 경계를 확장하며 흙의 세계를 다채롭게 펼쳐왔다. 전시 제목 «신상호: 무한변주»는 작가가 한국 도자의 전통적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온 끊임없는 여정을 상징한다. 신상호는 산업 고도화 시대 속에서 민족적 가치가 강조되던 시기, 전통 도자를 제작하며 장인이자 산업 역군으로서 정체성을 모색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도예의 전통적 규범을 과감히 넘어서며 도자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이후 21세기 다변화와 혼성의 시대를 맞아 도자 설치와 건축 도자 작업을 통해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방적이고도 융합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나아가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오랜 시간 탐구해 온 흙을 다시금 전복적으로 사유하며 도자 회화를 선보였다. 그는 국내 현대 도예의 지평을 확장하고, 예술가로서 자유주의적 태도와 실험 정신을 견지하며 끊임없는 도전의 궤도를 그려왔다. 이번 전시는 시대적 전개에 따라 총 5부로 구성되며, 전통 도자에서 도자 조각, 건축 도자, 타 매체와 결합한 오브제, 그리고 도자 회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폭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소개한다. |
<아프리카의 꿈 - 토템>












<아프리카의 꿈 - 우리는 아프리카>



박노수 <선소운>
남정(藍丁) 박노수(朴魯壽, 1927-2013)는 이상범에게 사사했으며, 1946년에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여 김용준, 장우성 등에게 이론과 실기를 배웠으며, 졸업 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3)부터 연속 4회 특선을 수상하여 추천 작가 및 심사 위원이 되었다. 1963년에는 현대 한국화 단체인 ‘청토회(靑土會)’를 조직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재직했다.
박노수는 초기에 배경을 비워 두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인물을 강조하여 그렸으나, 점차 동양적 자연관에 따라 자연을 배경으로 인물을 작게 그렸다. 그는 당시 일본색을 없애자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근대적인 감각으로 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필선을 부각하여 전통적인 동양화를 계승했다.
<선소운(仙蕭韻)>은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5)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검은색 한복을 입고 단정한 머리를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한복의 옷 주름과 윤곽선을 흰색 선으로 단순화 하고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고즈넉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작가는 청아한 동양적 미(美)의 세계를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에서 추구하고 있다.
[화제 풀이]
乙未九月 粤雅莊製
朴魯壽
을미년(1955) 9월 월아장(粤雅莊)에서 그리다.
박노수(朴魯壽)

남관 <태고>
한국 근대 미술기에서 현대시기로의 전환점에 있어 한국화단의 비중 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이자 그 독자적 작품세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남관(1911-1990)은 초기 캔버스 위에 유채물감을 두텁게 칠하거나 화면에 콜라주(Collage) 하여 다양한 화면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실험적이고 현대적 성향의 작품을 보여주었던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파리 방문 이후, 동양의 정서와 고대의 전설 등을 중심으로 현대적 추상기법을 받아들여 표현해 내는 그의 주된 작품세계는 동양적인 멋과 함께 한국동란의 비극이나 문자형상을 응용한 조형미로 한국 현대추상화단의 발전을 선도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태고>(1967)는 남관의 회화세계에 있어 이러한 추상세계로의 집요한 작업 과정을 추구하고 있던 시기의 대표작으로, 고대의 전설을 비형상적인 감각으로 해석해가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특히 무겁게 가라앉고 있는 무채색과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색점들 그리고 신라시대 왕관에서 응용되고 있는 듯한 형상의 조화는 그의 심화된 추상작업으로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형상미 중의 하나로, 중기 이후 그의 주된 표현 형식이다.《망통(Menton) 국제비엔날레》(1966)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세계와 연결성을 띄고 있는 이 작품의 형상은 동양과 서양의 현대미술 조합점에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미의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문우식 <무명교를 위한 구도>
선암(仙岩) 문우식(文友植, 1932-2010)은 1948년 남관미술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우고 195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이종우, 김환기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김영환, 김충선, 박서보와 함께 《4인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그룹 ‘신상회’ 회원전이나,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 조선일보 주최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에 작품을 출품하며 화단에서 입지를 다졌다. 또한, 1958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한국현대미술전》, 1961년 일본 도쿄 《국제자유미술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을 펼쳤다. 작품 활동 초기인 1950년대에는 주로 구상적인 회화를 제작하며 자화상이나 정물화, 풍경화 등을 그렸으며 1960년대 초부터는 원색의 색채 구성이 두드러지는 완전한 추상 경향의 회화를 선보였다. 문우식은 1960년대부터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회원전에 포스터 선보였으며 1966년 홍익대학교 도안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이후 책 표지 디자인, 잡지 표지화, 관광포스터, 학교 로고 등을 다수 제작하며 디자인 분야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명교를 위한 구도>는 문우식이 1957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에는 교각의 건축 구조를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기하학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1950년대 후반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내다 본 거리 경관이나, 판자집이 모여 있는 모습 등을 소재로 삼아 당대의 풍경을 화면에 담곤 했다. 이 작품에서는 도시가 한창 개발되던 당시의 풍경을 복잡한 건축적 구조물 묘사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 주조의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교각의 상층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과 원근의 표현을 통해 구조물의 크기나 현장감이 강조되었다.

권진규 <코메디>
권진규(權鎭圭, 1922-1973)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47년경에 이쾌대가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웠으며 속리산 법주사 대불 제작에 참가한 바 있다. 1948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1949년 무사시노미술대학(武蔵野美術大学) 조각과에 입학했고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의 제자였던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1897-1981)를 사사하였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니카텐(二科展, 이과전)》에 말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출품했고, 《제38회 니카텐》(1953)에서는 특대(特待)를 수상하였다. 1959년 귀국한 후 1962년부터 동선동에 정착하여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1965년 첫 개인전 《권진규 조각전》을 개최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권진규는 말, 여인의 누드, 인물 흉상과 두상 등을 소재로 했으며, 초기에는 돌이나 나무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귀국 후에는 테라코타(terra-cotta), 건칠 등의 재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환조와 부조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코메디>는 권진규가 스케치를 여러 점 남길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견고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동서양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작품에 담아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코미디를 다루고 있는 듯하며, 중앙의 큰 얼굴은 작가의 가면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다. 무언가에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동자와 크게 벌린 입 모양, 진한 눈썹선의 도상은 한국의 탈과 서양 가면의 복합적인 형태이다. 가면은 본질적으로 은폐, 차단 등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가면 뒤에 숨어 적극적인 발언을 한다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권진규는 가면이 가진 익명성의 개념을 이용하여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권진규 <곡마단>
권진규는 건칠이라는 재료에 대하여 1950년대 일본 체류시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96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가 건칠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내구성이 강하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재료이며 표면효과를 우연하게 만들면서 화면에 다양한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곡마단>은 건칠로 제작된 부조 작품이다. 권진규는 서커스, 코미디 등의 주제로 작품을 여러 점 제작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상당한 양의 스케치도 그렸다. 붉은색 의상을 입고 바퀴 위에 서 있는 피에로와 물구나무 서 있는 흑백 원숭이의 색채와 자세가 대비되어 화면에 긴장감을 자아낸다.

유영국 <산>
유영국(劉永國, 1916-2002)은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으며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 1897-1945)에게서 처음 유화를 접했다. 강압적인 학교 교육에 불만을 품고 중퇴하여, 193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가장 진보적인 미술학교 중 하나였던 도쿄 분카학원(文化学院)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재학시절 일본인 학우들과 함께 N.B.G. 그룹(Neo Beaux-Arts Group)을 결성하여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고, 독립미술협회(独立美術協会), 자유미술가협회(自由美術家協会) 등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미술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는 최고상을 받았다. 귀국 후 1947년 김환기와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상경하여,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을 주도하며 한국화단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64년 6월 《제3회 신상회전》에 참여한 후 대부분의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작업에 몰두했으며 이후에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유영국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산’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기하학적 추상이 주를 이룬다. 1960년대 작품에서는 견고한 구조와 역동성이 강하게 드러나며, 1967년부터 약 10년간은 화면이 밝아지면서, 기하학적 도형이 중첩과 병렬로 반복해 등장하는 서정적 기하 추상이 등장했다. 198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까지의 작품은 부드럽게 순화된 색채 속에서, 추상성과 구상성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산>은 정사각형의 캔버스에 대각선과 삼각형, 어슴푸레한 색채로 새벽에 본 산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영국이 홍익대학교에 재직할 때 제작한 것으로, 이 시기 그는 기하추상 양식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석원 <초토>
박석원(1942- )의 초기작인 <초토>(1968)는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8)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알루미늄 주조의 이 조각은 당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전반적인 추세와 견주어 볼 때, 일종의 앵포르멜(Informel)적 추상조각이라 할 수 있다. 철조 조각으로서의 기법적인 처리가 뛰어난 작품으로, 추상적 형태와 회화의 붓자국을 연상시키는 표면의 부식처리가 인상적이다.

엄태정 <절규>
엄태정(1938- )은 한국 철제 조각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60년대 까다로운 기술적 조건으로 인해 경원시되던 철조분야에서 현대적인 조각언어의 탐구와 개척을 꾀함으로써 '한국 조각의 현대화'에 공헌하였다.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7)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절규>(1967)는 그의 초기작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대한 받침대 위에 철제를 용접하여 뾰족한 형태들을 결합한 형상이 놓여있다. 둔탁한 듯 하면서도 날렵한 선과 면이 서로 떠받치고 교차하여 긴장감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표면의 처리는 표현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최욱경 <환희>
최욱경(1940-1985)의 <환희>(1977) 작품에서는 이전의 작품들에서 나타났던 강렬한 원색의 대비가 사라지고 분홍, 보라, 연두 등의 파스텔톤 색채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밝고 경쾌한 색채와 율동적인 형태구성을 보여주며, 작가의 시적인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다. 형태 또한 좀 더 복잡하고 뚜렷한 곡선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이 형태들은 서로 접근하거나 충돌하고 혼합되는 듯한 유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 형태들이 무엇으로부터 연유된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작가의 설명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설명적인 것이나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감성 본연의 그 자체를 시각적 용어로 환원시켜 음악의 추상성과 같은 것을 표현해 관객에게 새처럼 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전달하는 것이다.

심경자 <별전>
운산(雲汕) 심경자(沈敬子, 1944‒ )는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4-2001)을 사사했다. 전통 회화를 배웠으나 일찍이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로, 1970년대 초부터 기왓장, 떡살, 나무 등의 재료를 한지에 탁본하여 콜라주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백양회(白陽會),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등에 출품하였으며 1971년 《제2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하고,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해외 전시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별전>은 《제2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작품으로, 심경자의 대표적인 초기 작업 중 하나이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나무의 나이테와 다양한 문양의 *별전(別錢), 동경(銅鏡, 거울)의 뒷면 등 한국적인 소재를 탁본한 후 화면에 배치하였다. 오래된 사물의 표면을 종이에 떠내는 과정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풍부한 질감으로 드러낸 것이다. 후기 작업과 비교했을 때 탁본 기법 자체에 보다 집중함으로써 직관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의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
*별전: 상평통보 주전서(鑄錢署)에서 화폐의 원료인 동(銅)의 순도와 무게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제작한 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동‧식물, 사람 등 다양한 문양을 새겨 주조하여 축원, 장수, 기복 등을 기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윤형근 <청다색>
윤형근(1928-2007)은 1970년대부터 색면이나 색띠로 이루어진 추상화를 제작하였으며 점차 색상을 최소화하여 다색과 청색으로만 이루어진 화면을 창출해내었다. 화면의 두 가지 색깔을 지칭하는 작품의 제목인 '청다색(靑茶色)'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두 가지 색은 윤형근 회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색들은 테레핀이나 린시드와 혼합되어 밑 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 위에 여러 번 발라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번져나가는 모양 또한 윤형근 회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점이다.
<청다색>(1973)은 두 가지 색이 화면 상에서 혼합되어 깊은 검정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달리 두 가지 색깔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권영우 <무제>
권영우(權寧禹, 1926‒2013)는 1950년대까지 전통적인 동양화를 그리다가 1962년부터 붓과 먹을 버리고 한지를 찢고 뚫고 붙이는 ‘종이의 화가’로 거듭났다. 이후 1978년부터 10여 년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동양화에서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먹과 붓을 사용하지 않고, 그리기를 배제하였으며 흰색의 화면에 펼쳐지는 다양성과 우연성에 집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소재, 한지를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사용하면서 그 표면을 찢고 뚫는 행위를 통해 순박한 질감을 지닌 화면의 자율적 구조를 만들어나갔다.
‹무제›에서 권영우는 먹과 과슈(gouache)를 혼합한 반투명의 청회색 물감을 종이의 뒷면에 침투시켜 한지 위에 배어 나오도록 하고 있다. 화면이 물들어 생긴 색 면은 자연 발생적인 농담에 의한 은은한 운치를 지니고 있으며 화면의 흔적들을 따라 번지고 수축되고 유동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감각적이고 시적인 세계를 펼쳐 나간다.

송수남 <자연과 도시>
남천(南天) 송수남(宋秀南, 1938-2013)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 동양화를 공부했다. 1962년 《제1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비구상 화풍으로 입선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1967년 제9회 도쿄국제비엔날레, 1970년 제2회 인도트리엔날레,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국제전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한국적 수묵화에 대해 고민하며 수묵화 운동에 앞장섰다. 송수남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다양한 수묵과 채색의 변주를 시도하며 새로운 한국화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자연과 도시>는 송수남이 1984년부터 1988년까지 4년여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작한 ‘자연과 도시 1984-1988’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일련의 작업은 1988년 5월에 동산방 화랑에 100여점 출품되었으며, 작가는 당시 작품을 교체해가며 연작을 소개했다. 이 작품에는 가로수가 수묵으로 대담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사이로 현대 도시 속 건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도시는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어딘가 조화롭지 못한 느낌으로 현대 도시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박생광 <무속4>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 1904-1985)은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치카와세이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学院)에서 3년간 수학한 후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絵画専門学校)에 입학하여 일본화를 공부했다. 일본에서 메이로미술전(明朗美術展), 신미술인협회전(新美術人協会展), 일본미술원전(日本美術院展) 등에 출품하며 일본 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45년 귀국 후 한국화 단체인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여했으나, 광복 후 국내 화단은 일본화풍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채색화가 외면받기도 했다. 1974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77년 귀국한 후에는 감청(紺靑), 주(朱), 황(黃)을 주조로 한 한국적 색채를 사용하여 불교와 민속적인 소재를 다루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박생광은 1980년에서 1985년까지 ‘무속’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했다. 당시 그는 굿장을 쫓아다니며 밤새 스케치를 할 정도로 우리나라 민속과 무속 이미지에 열중했다. <무속4>는 굿판이 벌어진 장면을 박생광 특유의 공간 구성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신령도를 배경으로 부채와 방울을 들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무녀, 머리를 풀고 가슴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여인, 그리고 돼지머리를 올린 제사상 등이 전통색인 오방색으로 진하게 표현되었다. 작품 왼쪽 아래 단기로 ‘사천삼백십삼년(1980년)’을 적어 제작연도를 밝혔다.

천경자 <누가 울어2>
천경자(千鏡子, 1924-2015)는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부터 도쿄 조시미술전문학교(女子美術専門学校, 현재 조시비미술대학) 고등과 일본화부에서 수학했다. 유학 중 《제22회,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1942, 1943)에 출품하여 연달아 입선했다. 1954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1955년 《제7회 대한미협전》에서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57년에는 한국화의 현대성을 모색하는 그룹 백양회와 서양화가 단체인 모던아트협회에 가담하면서 소재, 주제, 기법 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전개했다. 19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과 남태평양을 여행했다. 귀국 후 1972년에는 베트남전쟁 종군화가로 복무하기도 했다. 천경자는 유학하면서 일본식 채색 인물화풍을 익혔으나, 광복 후 새로운 채색화 기법을 연마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했으며, 여성의 정체성을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서정으로 표현하였다. 1974년 교수직을 사퇴한 후에는 자전적인 성격의 여인상을 그려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천경자의 작품에는 여성, 동물, 꽃, 뱀 등의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천경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암시하는 상징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누가 울어2>는 노을 지는 아프리카의 초원을 배경으로 관능적인 나체의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멀리 황금빛 초원을 건너는 코끼리와 그 위에 쪼그리고 앉은 여성은 울고 있는 것 같다. 검은 양탄자 위에는 꽃으로 장식된 모자와 장갑, 황금색 목걸이와 트럼프 카드 등 덧없는 탐미와 욕망을 암시하는 사물들이 놓여있다. 양탄자 가장자리에는 갈색 강아지가 턱에 하트 카드를 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천경자가 모친과 남편을 떠나보낸 후 슬픔을 잊기 위해 그린 자전적인 작품으로,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가수 배호의 ‘누가 울어’를 듣고 동명의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서세옥 <사람들>
산정(山丁) 서세옥(1929- )은 해방이후 미술계의 첫 세대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에서 <꽃장수>(1949)란 작품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는 대담하게 전통화단에 실험정신을 불러일으키며 비구상의 조형적 발상과 이질적 화면이 서양화가들의 방법과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재료로 용묵, 용필, 그 밖의 동양적 사색과 사상성의 표상이 확연한 비서구적인 세계를 전개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세옥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북두칠성을 상기시키는 흑점의 배열과 약간의 은근한 색면으로 이루어진 <은하>를 발표한 후 확실한 자기정립의 변신을 시작한다. 이 시기 서세옥의 작품은 동양적 자연관, 우주관에 입각한 철학적, 사상적 형상들을 매체로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그 생명력이 주제이며 나아가서는 작가의 눈이 아니라 영혼으로 본 무한한 정신적 공간으로 나타난다.
서세옥 작품의 활력은 구상적인 표현에 의해서가 아니라 붓의 활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법상으로는 ‘먹을 금처럼 아껴 쓴 방법’인 석묵(惜墨)과 ‘흐르는 먹물을 던진 방법’인 발묵(潑墨)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이다. 이 두 기법의 우연적인 효과와 함께 필연적인 작가의 직관에 의한 결정과 속도가 조화를 이룬다.
군상들은 발묵(潑墨)효과에서 오는 회화성의 인물표현이라는 측면을 압도한다. 금석문(金石文)이나 문자의 발생기에 출현한 것 같은 기호 등은 잘 보면 여러 가지 신체 자세의 변화상(變化相)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람들>(1995) 역시 호방(豪放)한 필법의 효과가 상형성을 압도한다.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線描形象)에서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 자발성이 채색의 경우보다 강하게 나타낸다. 붓을 두서너 번 놀린 선화(禪畵) 같은 그림들은 기교(技巧) 없는 지고(至高)의 상태(狀態)라 할 것이다.

김수자 <마음과 세계>
'보따리' 작업으로 유명한 김수자(1957- )는 천을 매개로 한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1983년부터 천과 바늘을 이용하여 그린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직접 물질을 꿰매거나 이어 붙이거나 감싸는 작업을 한다. 당시의 한국화단에서는 평면성에 대한 극복과 대안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는데, 김수자는 삼각이나 사각의 천을 콜라주(Collage) 형식으로 꿰매어 붙임으로써 고정된 사각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김수자에게 있어서 천 조각을 잇고 꿰매는 것은 존재에 대한 관계성을 묻고 파악하려는 탐구의 자세를 가지는 가운데 삶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과 세계>(1991)에서 연두, 자두, 옥색, 빨강 그리고 온갖 식물적 문양들이 엮어 내는 화려하지만 슬픈 분위기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무속의 애절한 가락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작가의 대상에 대한 시각을 나타내듯 무겁고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걷기: 둘레길 > 수도권 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양 일산호수공원 (2026.5.23) (0) | 2026.05.24 |
|---|---|
| 2026. 4월 트레킹 요약 (0) | 2026.05.01 |
| 인천 연수둘레길 일부 (2025.11.30) (1) | 2025.11.30 |
| 시흥갯골생태공원 (2025.11.22) (1) | 2025.11.24 |
| 과천 동물원둘레길 (2025.11.14) (0) | 2025.11.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