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Seven Meanings in Life):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2024. 12.)
내용 및 소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 유성호의 데맨톡(Deadmantalk)'이라는 유튜브를 통해서 이다. 법의학자이신데 아주 설득력있고 깊은 경험에서 조언을 해주신다.
30여년간 사회인류학 교수로서 연구했던 저자 에릭센은 췌장암 선고를 접하고 남은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에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게되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여러 고찰 끝에 삶의 의미 7가지를 제시한다. 마지막 순간에 고찰하였지만, 전 생애를 통하여 관통하는 소중한 의미들이다.
1. 친밀한 관계가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 삶이 지칠 때 연구로 바쁜 동료 교수가 방문하여 나눈 시간은 소중했다. 호혜적인 관계로 전락하는 상황(커피값을 바로 계산)에서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준 동료가 너무 고맙다.
2. 결핍이 있어야 기대감이 있다. =>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기다리며 용돈을 모았다. 결핍은 기대감으로, 기대감은 성취로 이어졌다. 결핍을 모르면 귀한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언제든 얻을 수 있으면 가진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결핍이 부족한 시대에는 의도적으로 결핍을 쌓아야 한다. 원하는 액수를 모을 때까지 소비를 절제하거나 목표를 이룰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참는 것이다.
3. 꿈의 가능성은 삶을 견디게 해준다. => 많은 꿈이 실현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4. 우리는 나무로부터 느림에 대해 배워야 한다. 나무의 삶은 느리다. => 세상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느리고 반복적인 요소인데, 현대사회는 불안하고 독창적이며 변화무쌍한 것에 중독되어 있다. 과열된 현대세계는 속도에 눈이 멀어 물질적 풍요를 주된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5. 일상에서 순간의 기쁨을 포착하라. => 어느 날 출근길에 자전거 펑크가 났고, 정비공은 빠르게 수리를 마쳤다. 그리고 친절한 인사까지 준다. 이런 날은 너무나 기쁜 하루로 변했다. 순간의 즐거움은 일상에 작은 풍미를 더한다.
6. 상항을 예측하여 차선책을 찾는 것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 사이의 균형 또한 중요하다. =>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위험에 끌리는 것 또한 오만한 행동이다. 불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은 균형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7. 때가 되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 세상은 다채롭고 가능성이 풍부한 멋진 곳이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내려놓아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세상은 당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세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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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0쪽: 생태 철학자 아르네 네스: 삶의 의미는 형이상학적인 수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는 것은 실수라며, 인간의 삶이 수수께끼 같고 신비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많은 의미는 거창하지 않다. 10월 말 지면을 덮는 단풍의 아름다움, 커피 향기, 친구의 미소와 같은 작은 것에 의미가 있다면서.
11쪽: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AI에게 체스에서 이기는 법이나 부탄의 경제 혹은 리스본의 관광 명소에 대해 묻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AI는 인생의 의미를 성찰할 수 없다. AI에게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AI는 육체도 없고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으며 이웃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도 없다.
12쪽: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2016년부터 암과 싸우는 동안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깨달으면서 특히 큰 무게로 다가왔다. 암이 재발했던 시기로부터 나는 '느린 시간'이란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 느린 시간이 있었기에 나 자신에 대해 다시 깨닫고 다른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17쪽: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하고 중립적이며 자유롭다. 삶의 의미는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후, 우리 자신을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하는 실에 대한 긴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가는 실들이 모여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그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거대한 합창단을 이루며,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 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실타래가 바로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첫번째 의미: 관계
22쪽: 차이가 없다면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이는 인간이 관계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25쪽: 아메리카 원주민 둘이 아침에 길에서 만나 식사를 했냐고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예의상 던지는 질문이지만 이들은 다르다. 한 명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질문을 한 사람에게는 바로 상대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이들에게 음식은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며 식사를 했는지 묻는 질문은 예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관한 질문이다. 이들에게 식사 제안을 거절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은 없다.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의 〈혼자 하는 식사〉는 정말 슬픈 노래인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이란 음식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9쪽: 교수 식당에서 동료에게 커피 한 잔을 사면 그 동료가 바로 커피 값을 준다. 동료가 자신과 작은 선물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채무를 청산한다는 것이다. 친밀감에 대한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시민 사회라는 태피스트리를 구성하는 실은 단단하고 두꺼워질 수 가 없다.
37쪽: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삐걱거리는 경첩으로 현재를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녀는 우리가 누군인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은 어떤지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다. ... 아이들로 인해 어른은 삶의 취약성과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37쪽: 몇 년 전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면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철학적 삶의 고독함, 때로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은둔자적 삶이 가진 약점을 느꼈다.
38쪽: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권리와 의무가 가득 찬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살 때는 항상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을 우선해야 해서 출장을 취소하고 출세의 야망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것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용서와 겸손, 감사의 능력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잔인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38쪽: 인간관계에서 받는 만족감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최신 인공지능의 발전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있다.
41쪽: 인도와 파키스탄 => 중매 결혼은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낮은 온도에서 시작하여 점차 따뜻한 애정의 냄비로 성장한다고 여긴다. 멕시코 => 새신부에게 결혼 첫해 남편과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항아리에 동전을 넣으라고 한다. 그리고 첫해가 지나면 관계를 할 때마다 항아리에서 동전을 꺼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항아리가 절대 비워지는 일은 없을거라고 냉소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50쪽: 동물은 무고하고 인간은 끔직한 죄인이라는 변변찮은 주장이 이런 식의 견해를 옹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면 동물은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덕관념이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동물에 대한 과보호는 도처에 깔려 있다. 동물이 중동의 난민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면 그 즉시 동물의 존엄성을 요구하는 격렬한 사회운동이 시작됐을 것이다.
53쪽: 해리포트 이야기: 해리는 교장 덤블도어에게 조언을 구한다. "선생님, 제가 선한지 악한지 모르겠어요. 각기 다른 힘들이 저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제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해리, 그건 너에게 달려 있다."
61쪽: 내가 탐색한 모든 관계는 동경과 갈망, 결핍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각기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차이는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가 빠진 것이 생기면 감정이 고조되면서 관계가 불완전해진다. 결핍이 인생의 두 번째 의미인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두번째 의미: 결핍
68쪽: 세계는 예전보다 심각한 물질적 결핍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지금은 다른 형태의 정서적 결핍이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정서적인 결핍은 점점 그 존재가 커질 것이다. 살면서 겪는 이런 유의 결핍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지만 AI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71쪽: 갈증을 모르는 사람은 물의 가치를 모른다. 결핍만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75쪽: 육신을 가혹한 조건에 두면서 단련하는 것은 마침내 필요한 것을 얻었을 때 만족감을 극대화시키도록 결핍을 쌓는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의도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나 운동을 통해 몸을 지치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91쪽: 알랭 드 보통이 여행에 관한 책에서 말했듯이, 휴가의 의미는 멋진 휴가를 기대하는 것과 휴가에서 얻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 두 가지에 있다. 그에 따르면 휴가 자체는 결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울창한 열대 낙원, 번화한 대도시, 산속 휴양지 그 어디를 가든 나와 관계하는 것들로부터 떨어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100쪽: 역경없이는 성취도 없다. 평지를 걷는 것이 좋아도 가끔은 오르막길을 가야 한다. 편한 내리막길을 가려면 힘든 오르막길이 필요하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위험하게도 눈을 뜬 몽유병 환자들이 존재한다.
117쪽: 결핍은 삶의 방향성과 집중도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결핍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삶에 윤활유가 되는 마찰과 저항을 야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마찰과 저항으로 인해 당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되고, 극도로 어렵지만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저항은 결국 성취로 이루어진다. 희망이 없으면 저항도 있을 수 없다. 희망은 꿈에서 자란다. 이것이 꿈이 인생의 세번째 의미인 이유다.
세번째 의미: 꿈
143쪽: 나는 가끔 반신불수가 된 친구가 아내와 함께 달리고, 걷고, 아들과 축구하는 꿈을 꾸지 않을까 생각한다. 꿈속 세상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아무도 우리의 꿈을 빼앗을 수 없다. 꿈의 가능성은 삶을 견디게 해준다. 많은 꿈이 실현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노동이 신성시되고 결속이 이기주의를 이기는 세상을 노래하는 혁명가들의 공상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갈등이 없는 사회라는 혁명가들의 꿈과 걸을 수 있게 되는 장애인의 꿈은 대단히 비슷하다. 모두 불가능에 도달하고,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실을 묶는 것이 가능하다고 약속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149쪽: 꿈과 희망은 비현실적일지라도 결국엔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낙관주의에 불을 붙인다. 상상력을 위한 트램펄린인 꿈과 희망은 시야를 확장시켜서 우주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우리의 능력, 지금 이 순간의 의미 그리고 먼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삶을 이끄는 잠재력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맥락에서 느림이 인생의 네번째 의미이다.
네번째 의미: 느린 시간
153쪽: 극복될 수 있는 결핍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숨 가쁜 우리 시대에 가장 결핍된 것이 있다면 바로 느림일 것이다. 나 자신을 알아가거나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만 느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느림 없이는 상상력도 상공으로 이륙할 수 앖다.
우리는 나무로부터 느림에 대해 배워야 한다.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캘리포니아의 브리슬콘 파인이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이 나무는 나이테가 거의 5천개에 가깝다.
155쪽: 나무는 인간에게 있어 의미의 원천이다. 수분을 머금은 무성한 나무들은 모든 생명체에게 활력을 준다. 그늘을 제공하고 습도를 유지하며, 덩굴식물의 서식처가 되어주고, 거대한 덤불과 다양한 야생동물을 불러들이다.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다.
오아시스가 멋진 이유는 그 주변이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물과 나무가 풍부했다면 오아시스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결핍은 대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조는 인간에게 의미를 갖는다.
156쪽: 나무의 삶은 느리다. 참나무는 자라는데 200년, 사는데 200년, 죽는데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오랜시간 나무와 친밀하게 지내면 인내심을 배울 수 있다. 사람은 시간을 들여야만 자신을 알 수 있고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것들은 이런 시간 감각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나나 당신보다, 챗봇이나 알고리즘보다 훨씬 더 오래 존재해온 나무는 리듬과 성장, 죽음에 대한 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163쪽: 세상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느리고 반복적인 요소인데, 현대사회는 불안하고 독창적이며 변화무쌍한 것에 중독되어 있다. 과열된 현대세계는 속도에 눈이 멀어 물질적 풍요를 주된 목표로 삼기 때문에 미세한 프로클로로코커스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친다. 삶의 전체성과 생명의 그물망을 성찰할 때는 다른 가치관, 다른 종류의 지식, 느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이익을 얻는 일에 아드레날린을 내뿜는다. 그 과정에서 루나족이 당연하게 여겼던 지혜, 즉 누구도 자연을 소유할 수 없으며 존중과 겸허한 마음으로 주변 환경에 다가가야 한다는 중요한 지혜를 잃고 말았다.
166쪽: 느긋한 산책은 느림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몇 년 전 병으로 인해 걷는 속도가 느려진 후에는 걷는 것이 더 좋다.
167쪽: 인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억지로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잠든 나무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즐긴다. 이처럼 걷기는 날씨를 능가하는 실존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더구나 우리의 신진대사는 반년 동안 몰아서 자는 동면을 허용하지 않는다. 탐험가 엘링 카게는 걷기의 의미에 관한 책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모든 것을 간과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천천히 걸아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카게는 걷기와 침묵이 동전의 양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찰한다. 남극까지 혼자 갔던 그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어폰과 잡담없이 고요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자신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 연결된 실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169쪽: 혼자 식사를 하는 것과는 달리 혼자 걷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혼자 걷는 것은 관계의 실을 강화하고 회복시키며 새로운 실을 생성한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때도 생각과 감정이 해방되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익숙한 풍경 사이를 천천히 걸음으로써 고백을 가능하게 해주는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188쪽: 옥스퍼드의 철학자 로만 크르즈나릭은 14세기 옥스퍼드의 뉴칼리지 설립 이야기에 대한 책, 《좋은 조상》에서 느림과 도토리에 대해 적고 있다. 대학을 지을 당시 책임자는 천장의 참나무 들보가 썩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후 그는 대학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토리 몇 개를 심도록 했다. 들보를 교체해야 할 때쯤 크고 튼튼한 도토리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약 500년 후 들보가 삐걱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수석 정원사는 강가에 위풍당당한 도토리나무 군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들보는 교체되었다. .... 먼 미래와 연결되려면 주차 위반 딱지와 임박한 마감일 등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193쪽: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 동참하는 건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쉬운 일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연결이 연약한 실들을 가꾸고 즐기는데 최선을 다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좌 위로 받들어지는 불멸의 삶을 꿈꾸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명성에 대한 꿈은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삶에서 중요하지는 않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존경받는 평범한 조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건 가치있는 일이다. 긴 삶의 여정에서 작은 톱니바퀴나 먼지 한 줌이 되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에 충분하다. 창조하는 일보다 파괴하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시대에, 우리의 목표는 당장의 충동과 오만 그리고 눈부시지만 뒤틀리고 역설적인 성공을 물리치는 것이어야 한다.
201쪽: 암전문의가 말기 환자에게 하는 전형적인 조언은 "여기, 이 순간을 살라"는 것이다. 언제가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일을 미루어서는 안된다. 지금의 긴 시간도 순간으로 쪼개질 수 있다. 때문에 당신은 모두와 함께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시간은 지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섯 번째 의미: 순간
207쪽: 오늘을 즐기는 것과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 것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능력은 먼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과는 다른 종류의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둘 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이며 둘 다 꼭 필요하다. 역사에 깊이가 더해지려면 강렬한 순간이 필요하며, 그것이 기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더 큰 무언가가 된다. 모든 사건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일어나고 세상은 빠른 시간과 느린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조미료에 비유할 수 있다. 조미료가 없어도 요리를 할 수 있지만, 조미료가 들어가면 아무리 밋밋한 요리도 맛있게 만드는 감칠맛이 더해진다. 가장 맛있는 순간은 번개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오는 법이다.
209쪽: 작은 기쁨의 순간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행운 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인생을 이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을 뜻하기도 한다.
216쪽: 스토아학파의 마지막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아무리 짧은 순간일지라도 충분히 의미있을 수 있으며, 순간을 통해 삶에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27쪽: 매일의 삶에서는 작지만 놀라운 일이 항상 일어난다. 다행인 것은 그중에는 즐거운 놀라움이 많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인터레일 여행을 할 때는 특히 더 그랬다..... 파리의 빵집에서 진짜 햄이 들어간 바케트를 처음 샀을 때의 황홀경은 지금도 잊기 힘들다. 그동안 노르웨이에서 먹어왔던 직사각형의 짭짤한 삶은 돼지고기 조각, 그건 햄이 아니었다. 기쁨의 순간은 앞으로 제대로 된 햄을 골라야겠다는 경각심까지 일깨워주었다.
234쪽: 갑작스러운 깨달음, 갑작스러운 만족감 모두 살아있는 모든 것과 친밀해질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 여기에만 존재한다. 이런 강렬하고 충만한 순간들을 설명하는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바로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끝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자신의 호흡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발가락부터 시작해 천천히 발목, 종아리, 무릎 그리고 그 위로 체계적으로 몸을 느낀다.
여섯 번째 의미: 균형
253쪽: 상항을 예측하여 차선책을 찾는 것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 사이의 균형 또한 중요하다.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위험에 끌리는 것 또한 오만한 행동이다.
257쪽: 균형의 기술은 복잡한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나를 지켜준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빠졌을 때 아무도 그 물을 다 마셔버리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균형의 기술을 통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내 페이스대로 헤엄 칠 수 있다.
266쪽: 불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은 균형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일곱 번째 의미: 실 끊기
282쪽: 내 단순한 가설은 지금의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데도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와 화해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을 수도, 고백과 후회라는 어려운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더 심각해지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속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90쪽: 장례 의식은 순간과 영원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죽으면 더 이상 아무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다. 500년 후나, 내일이나 똑같이 죽은 사람인 것이다. 생명의 순환 속에서 당신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생태계에 기여하게 된다.
298쪽: 지구 문명은 자신의 종말을 준비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좋은 죽음이 되려면 돌볼 가치가 있는 것을 보호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와 베토벤, 제멜바이스와 플레밍, 젤라또와 흐르는 시냇물, 2023년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7천 개의 언어, 발리의 그림자 연극 등은 포기하면 안 된다.
305쪽: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때가 되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겹겹이 시체가 묻힌 묘지 아래 풀이 우거진 언덕에 앉아 공상에 잠길 수도 있어야 한다. 세상은 다채롭고 가능성이 풍부한 멋진 곳이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내려놓아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세상은 당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세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생은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작별을 고하고 그동안 쌓아온 실이 성장하고 번성하도록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 나의 생각을 부처님의 생각과, 우체부를 참나무와, 게를 아귀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머와 연결하는 시간. 그래야만 원이 완성된다.
교보문고 책 소개
삶에 대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아날로그적인 회귀
말기 암에 걸린 인류학자,
오랜 탐구 끝에 7가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에릭센은 30년 넘도록 사회인류학자로서 탐구해온 인류의 궤적을 ‘인생의 의미’라는 관점으로 재편성한다.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하고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생의 처음과 끝을 파고든 끝에, 그는 세상의 통념과 다른 7개의 단어로 인간의 삶을 압축하였다.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그러나 AI는 인생의 의미를 성찰할 수 없다. AI에게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AI는 육체도 없고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으며 이웃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도 없다.
-서문
관계, 결핍, 꿈, 느린 시간, 순간, 균형, 실 끊기로 이루어진 7가지 의미 안에서 그는 시공간과 인종을 넘어선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훑으면서 각각의 주제어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차분하게 설명한다.
노르웨이에서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라 ‘인생의 의미 찾기’ 열풍을 몰고 왔다. 원유와 천연가스로 경제적 걱정이 사라진 노르웨이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삶을 반추하고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든 책이다. 인간의 삶을 압축한 이 7개의 단어에서 각자 어떤 단어는 빠질 수도 있고 어떤 단어가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톤과 다윈, 모차르트와 슬라보예 지젝까지
삶과 사람에 대한 가장 지적이고 창의적인 담론
이 책으로 독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무엇을 위하여 우리는 이토록 열심히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곱씹어보면서 내가 하는 일들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다. 화려한 부동산과 금융 재산을 내가 사는 이유를 모른 채 소유한다면 재산이 주는 즐거움을 과연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이모를 생각해보라)
인류가 쌓아온 풍부한 지식과 교양이 차오르는 것은 《인생의 의미》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플라톤과 몽테뉴를 거쳐 다윈과 모차르트, 슬라보예 지젝, 데이비드 보위까지. 철학, 과학, 사회학과 예술부터 록음악과 영화 등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저자가 펼쳐놓은 지식의 만찬을 마음껏 맛보고 흡수할 수 있다.
독자로서 삶과 인간에 대해 이렇게 풍부하고 지적인 담론을 읽어본 게 언제인가. 삶에 대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아날로그적인 회귀를 통해 잠깐 멈추어 서서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공들여 생각해볼 시간이다.
저자(글)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암 선고 이후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고 인류학 연구와 삶의 경험, 분야를 넘나드는 풍부한 지식을 모아 《인생의 의미》를 썼다. 이 책은 노르웨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출간 후 그는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현재 오슬로 대학교의 사회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르웨이 과학·문학 아카데미 회원, 왕립 인류학 연구소 명예 회원, 막스 플랑크 소사이어티의 객원 회원이며, 인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웨덴 인류학 및 지리학회 금메달을 수상했고, 노르웨이 연구 위원회의 과학 소통 우수상, 오슬로 대학교 과학상과 연구상을 수상했다.
번역 이영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살면서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모두 거짓말을 한다》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운동의 뇌과학》 외 다수가 있다.
목차
- 서문
첫 번째 의미 : 관계
문화마다 다른 음식과 환대의 의미
연결은 인간을 어떻게 보호하는가
혼자 사는 삶과 결혼에 대하여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식
개인과 개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두 번째 의미 : 결핍
젊은 날의 갈증과 갈망
풍요가 불러온 재앙의 종류
부족한 삶에 대한 낭만
저항, 삶의 긍정적인 자극
지금 당신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의미 : 꿈
꿈의 다섯 가지 종류
인공지능과 동물의 상상력
환각과 꿈의 경계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네 번째 의미 : 느린 시간
느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산책의 힘, 어떻게 걸을 것인가
과거와 미래를 잘 연결하기
짧은 시간을 길게 쓰는 법
시간을 제대로 계획하는 사람들
미래를 위한 느림 근육 단련하기
다섯 번째 의미 : 순간
삶의 기쁨을 느끼는 작은 지점들
순간이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놀라움을 느낀 게 언제입니까?
지혜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작은 깨달음
여섯 번째 의미 : 균형
정착민과 유목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균형의 여러 역할들
외모와 내면
진실과 거짓
전체와 일부, 큰 것과 작은 것
일곱 번째 : 실 끊기
산 자를 위한 장례식
좋은 죽음에 대하여
더 큰 세계로 가기 위한 내려놓음
주석이 있는 참고 문헌
책 속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둘이 아침에 길에서 만나 식사를 했냐고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예의상 던지는 질문이지만 이들은 다르다. 한 명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질문을 한 사람에게는 바로 상대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이들에게 음식은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며 식사를 했는지 묻는 질문은 예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관한 질문이다. 이들에게 식사 제안을 거절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은 없다.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의 〈혼자 하는 식사〉는 정말 슬픈 노래인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이란 음식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첫 번째 의미 : 관계
나는 가끔 반신불수가 된 친구가 아내와 함께 달리고, 걷고, 아들과 축구하는 꿈을 꾸지 않을까 생각한다. 꿈속 세상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아무도 우리의 꿈을 빼앗을 수 없다. 꿈의 가능성은 삶을 견디게 해준다. 많은 꿈이 실현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노동이 신성시되고 결속이 이기주의를 이기는 세상을 노래하는 혁명가들의 공상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갈등이 없는 사회라는 혁명가들의 꿈과 걸을 수 있게 되는 장애인의 꿈은 대단히 비슷하다. 모두 불가능에 도달하고,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실을 묶는 것이 가능하다고 약속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 번째 의미 : 꿈
옥스퍼드의 철학자 로만 크르즈나릭은 14세기 옥스퍼드의 뉴칼리지 설립 이야기에 대한 책, 《좋은 조상》에서 느림과 도토리에 대해 적고 있다. 대학을 지을 당시 책임자는 천장의 참나무 들보가 썩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후 그는 대학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토리 몇 개를 심도록 했다. 들보를 교체해야 할 때쯤 크고 튼튼한 도토리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약 500년 후 들보가 삐걱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수석 정원사는 강가에 위풍당당한 도토리나무 군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들보는 교체되었다. 먼 미래와 연결되려면 주차 위반 딱지와 임박한 마감일 등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네 번째 의미 : 느린 시간